소천악 13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37화
"그게 무인의 삶이니라. 모름지기 무인이라면 하루도 빠짐없이 심신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야."
"그렇게 말하는 형은 왜 방에 처박혀서 한 달을 보냈소요? 천마대 애들이 말하는데 형은 아주 극락을 오간다 하더만요."
불만이 가득한 탁천웅의 말에 슬쩍 말을 돌리는 소천악이다.
"자식이 극락은 무슨! 다 우리가 무사히 빠져나오기 위해서 피땀(?) 흘려 봉사한 거야."
"어, 그런 거요?"
"그럼. 형이 고생한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일박이일이야. 잔소리 말고 어서 가자. 중원으로 돌아가 알아볼 거 알아보고 할 일을 정해야지."
"응, 그러자고요."
얼렁뚱땅 탁천웅의 입을 막아놓은 소천악은 빠른 걸음으로 하산 길에 나섰다. 벌써 마교로 온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터라 마차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말로는 기다린다고 했지만 척박하고 살벌한 땅에서 무사할지도 의문이었다.
투덜대는 탁천웅의 모가지를 잡아채고 서두른 탓에 칠 주야 만에 도착했다. 약속한 객잔으로 향하는 소천악이었다. 주위를 살펴본 소천악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타고 온 마차가 보이질 않았다.
객잔 안으로 들어선 그는 달려온 낯익은 점소이에게 대뜸 물었다.
"여기 사십여 일 전에 화려한 마차를 타고 온 마부가 있소이까?"
살벌한 어투로 말하는 소천악을 보고 주춤거리던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무슨 일로? 아, 그분이시군요. 같이 오신 분 맞죠?"
"그렇소."
"이리로 오시지요."
침울한 표정으로 말하는 점소이를 따라 올라간 객방에는 마부가 온통 천으로 둘둘 말린 채 누워 있었다. 얼핏 봐도 죽도록 얻어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말도 마십시오. 이 형님이 보름 전에 귀혼방에서 나온 무사들과 말다툼을 하다 이 꼴이 되셨지요."
"귀혼방이오? 그분들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뭐지요?"
딱딱 끊어지는 말투를 들은 탁천웅이 뒤에서 떨었다. 저런 말투 뒤에는 가공할 분노가 서려 있음을 익히 아는 그로서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제5-1장 건드리면 다친다
갑자기 변한 소천악의 분위기에 잔뜩 주눅이 든 점소이가 힘겹게 말했다.
"마차 때문입니다. 우연히 객잔에 왔다가 마차를 본 단소영 귀혼방 소방주가 흑심을 품고 마차를 가져가려 하자 죽을힘을 다해 막다가 저 꼴이 되었습니다."
안쓰러운 눈으로 가만히 마부를 들여다보던 소천악은 곧 이상한 점을 느끼고 점소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치료한 흔적이 아주 오래되어 보이오?"
"그게 치료비가 없어서 일주일 전에 한 마지막 치료가 끝입니다. 제가 도우려 했지만 워낙 중상이라 치료비가 엄청나서……."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점소이를 바라보던 소천악이 아무 말 없이 전표 하나를 쑥 내밀었다.
"이거 이백 냥인데 이거면 되오?"
"충분합니다. 의원이 백 냥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간 후 사람들을 불러 의원으로 데려가 치료토록 하시오. 아! 치료는 최상급으로 하라 하고 모자라면 또 준다 하시오."
"네, 공자!"
씩씩하게 대답하는 점소이의 눈빛이 환해졌다. 그를 바라보던 소천악도 왠지 흐뭇한 기분에 흥취에 겨워 백 냥짜리 전표 하나를 건네줬다. 한사코 거절하는 점소이를 보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기어코 전표를 손에 안겨준 후 다시 마부를 바라보던 소천악의 눈매가 스산하게 변하며 점소이에게 물었다.
"귀혼방은 어디 있는가요?"
"대로를 따라 쭉 올라가시면 바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시면 안 됩니다. 그들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방파입니다. 무사 숫자만 해도 이백여 명이 훨씬 넘습니다."
"알았소. 자, 우리 마부를 이리 간호해 줘서 고맙소."
"아니 이러시면 제가 미안합니다. 치료도 제대로 못 해드렸는데."
전낭에서 이번에는 이백 냥짜리 전표를 꺼내주는 소천악이다. 액수를 확인한 점소이가 기겁을 하며 온몸을 부들거리는 것을 살살 달래어 손에 쥐어주고 보낸 소천악이 바로 침대로 다가가 말했다.
"이보시오, 어쩌자고 무인한테 시비를 거신 게요?"
목소리를 겨우 알아본 마부가 힘겹게 말했다.
"공자시군요. 제가 명색이 사내대장부입니다. 약속했으니 지키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이 꼴이 돼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일단 고맙소만 다음부터는 누울 자리를 보고 누우시오. 잘못해 목숨이라도 잃었으면 내가 어찌 편히 살겠소이까?"
"그 말 한마디면 족합니다. 으윽!"
말을 많이 해서인지 마부가 목이 아픈 듯 부여잡고 신음을 토하자 얼른 눕혀준 소천악이 고개를 돌려 탁천웅에게 말했다.
"빚 받으러 가자."
"네? 무슨 빚?"
"사람 때린 놈에게 뭘 받겠냐? 가서 두들겨 패야지."
"좋죠. 그런데 죽이면 안 되지요?"
"안 되지. 저놈들이 마부를 이리 만들었으니 우리는 약간 이자를 붙여 한 일 년 정도 침대 생활을 하게 만들면 된다."
"갑시다, 형님!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거렸다요."
"그렇게 비무를 해도 근질거리는 몸뚱이는 도대체 뭔지!"
고개를 흔들며 소천악이 나서자 바로 탁천웅도 뒤를 따랐다. 길을 나서자 불과 얼마 안 걸어 귀혼방의 현판이 떡하니 시야에 들어왔다. 매섭게 노려보던 소천악이 말했다.
"너는 주먹으로 패라. 난 검집으로 두들겨 팰 테니. 단 무기를 들고 덤비는 놈은 알아서 죽이든지 말든지 해라."
"형은 어쩔 건데요?"
"나야 당연히 죽이지. 싸가지 없이 무기 들고 설치는 놈은 살려둘 이유가 없다."
"알았다요. 얼른 가자요."
"으이구! 저 요 자를 안 하는 교육을 시키든지 해야지. 들을 때마다 귀가 멍하니."
둘은 성큼성큼 정문으로 다가섰다. 정문에는 두 명의 경비무사가 서로 음담패설을 나누며 히히덕거리다 다가오는 소천악을 보고 소리쳤다.
"웬 놈이냐? 귀혼방에 온 이유를 밝혀… 커억!"
말하던 한 경비무사의 입에 번개같이 소천악의 발이 틀어박히며 비명이 울려퍼졌다.
"말하고프지 않소. 일벌백계가 무언지를 오늘 보여주지요."
막 옆에 선 다른 경비무사를 손보려던 소천악은 순간 멍해졌다. 이미 그는 탁천웅의 주먹에 배를 맞아 아까 먹은 걸 확인하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탁천웅은 자기 주먹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형님! 가자요."
"그래, 가자. 일단 정문을 시원하게 부숴라. 오늘 이후로는 다시는 쓸데가 없을 테니 장작으로 쓰게 만들어줘야지."
"네, 형님! 아얍!"
큰 덩치로 정문에 그대로 부딪치는 탁천웅의 발길질에 정문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가리 부서져 나갔다.
"뭐야? 정문이 왜?"
대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무사들이 놀라 검을 뽑아 들고 달려갔다. 그들의 시선에 정문을 타고 들어오는 소천악이 보이자 바로 소리쳤다.
"저놈들이다. 쳐 죽여라."
번쩍이는 검날을 앞에 대고 밀려오는 무인들의 기세는 험상궂기 이를 데 없었다. 조용히 쳐다보던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천웅아! 저분들은 검이다. 바로 황천길로 보내드려라."
"네, 형님!"
힘차게 대답한 탁천웅이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검이 그의 몸에 인정머리 없이 작렬해 왔다.
쨍그렁! 탱!
무인들은 탁천웅의 몸에 검을 대고 바로 들려오는 황당한 소리와 함께 애검이 부러지는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잠시 공황상태인 무인들의 몸에 무식한 위력의 주먹이 밀려왔다.
와지직! 뚜둑!
"크아악. 내 머리!"
정확하게 머리통을 향해 적중된 탁천웅의 주먹은 한마디로 한 방에 즉사였다. 주먹에 맞은 무인들은 수박 깨지듯 머리가 박살나며 외마디 비명을 마지막으로 이승 구경을 끝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무인들을 격살하는 탁천웅의 눈은 무심 그 자체였다. 단순한 그로서는 소천악의 말이 곧 법이었다. 순식간에 덤벼들던 팔 인의 무인이 피떡으로 변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천웅아! 오는 분 잘 구분해라. 주먹으로 오시는 분은 살려줄 가치가 있다."
"왜요?"
"주먹은 한마디로 남자의 패기야. 검이나 무기를 든 분은 우리를 죽이려는 분들이니 바로 보답을 해줘야지. 물론 죽음으로."
"네, 형님!"
우직하게 답하는 탁천웅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미 앞을 막는 정문 무인들은 전멸해 아직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안에서 수많은 고수들이 밀려들었다. 푸른 무복으로 통일한 복색을 갖춘 무인들은 한결같이 분노한 표정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나는 귀혼방의 외당당주 피위소다. 웬 놈들이기에 이리 소란을 피우느냐?"
"피울 만하니 피우는 거외다. 잔소리 마시고 소방주란 분 당장 데려오시길 바라오."
"무엇이? 이런 무례한 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난리야?"
"고개야 들 만하니 드는 거고 이야기가 영 안 통하는군요. 천웅아!"
욕을 먹은 소천악이 부르자 역시 기분이 상한 탁천웅이 바로 대답했다.
"네, 형님!"
"가서 확 휘저어버려라."
"형님, 저놈들 다 무기 들고 있는데요."
"그럼 다 죽여!"
가차 없는 말이 떨어지자 피위소 당주를 비롯한 귀혼방 무인들은 실소를 머금었다. 겨우 두 명이 설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저런 세상 물정 모르는 놈들!"
"그러게. 아주 토막을 쳐버리자고."
살기 띤 말로 떠드는 귀혼방 무인들에게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는 탁천웅이다.
"저놈이 미쳤나. 아주 산산조각 내라."
피위소 당주의 말이 떨어지자 무인들은 분분히 몸을 날려 살검을 뿌려댔다. 허공에서 수많은 검이 일시에 탁천웅의 몸에 떨어졌다. 탁천웅은 밀려오는 검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번개같이 손을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쨍그랑! 꽈지직!
이질적인 두 소리가 뭉치며 검은 부러지고 탁천웅의 주먹은 무인들의 머리와 가슴에 사정없이 작렬했다.
"크아악! 검이 부러지다니."
"으악! 이놈은 외공의 달인이다."
머리와 가슴이 으스러진 채 맥없이 죽어가는 무인들의 단말마가 처량하게 들렸다. 탁천웅은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고 좌충우돌하며 무인들의 생명을 차곡차곡 앗아갔다. 양떼에 뛰어든 늑대가 저럴까!
이십여 명의 무인이 힘도 못 쓰고 죽어가자 그제야 포위했던 다른 무인들이 공포를 느끼며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섰다.
"으으! 저놈은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야."
두려움에 전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나오자 무인들은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검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탁천웅이 어찌 나올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날카롭게 입을 열었다.
"천웅아! 아직도 검을 든 분들 어서 해탈시켜 드리거라. 무기를 버리는 분들은 사정을 봐드려라."
"해탈이 뭐냐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탁천웅을 보며 아주 간단한 소천악의 해석이 나왔다.
"음, 간단하게 머리통을 힘껏 두들겨 패는 게 바로 해탈이야."
"알았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