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2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28화
"어떠냐, 천웅아?"
"대충 봐도 시원치 않네요."
"그러냐? 그럼 너 혼자 해결해라."
"정말이지요?"
"당연하지. 그동안 몸을 제대로 못 써 곰팡이 슨 거 마음껏 풀어라."
"역시 형님이 제일이야요."
둘이서 떠드는 걸 듣던 낭인무사와 호위무사들은 기도 안찼다. 적들은 얼핏 봐도 자신들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무서운 일류고수들이거늘 저 둘은 신경도 안 쓰는 게 영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신의괴협 소천악은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무서운 고수였다. 그 막연한 믿음이 밀려오는 두려움을 조금은 가라앉혔다. 사실 호위무사들은 소천악이 낭인무사를 이끌고 오지 않았으면 대부분 도망갈 위인들이었다.
소천악이 신중하게 적의 기세를 살펴보니 단 한 명도 초절정고수는 보이지 않았다. 안심이 된 그가 탁천웅에게 말했다. 자신이 나서자니 검사권생 원칙에 따라 죽여야 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한 선택이다.
"천웅아! 별볼일없으니 가서 싹 쓸어버려라."
"네, 형님! 모조리 뼈다귀를 꺾어버릴 거다요."
"응! 그거야 네 맘대로 하되 어지간하면 죽이지는 말아라. 저분들 뒤가 만만치 않으니 성가시다."
"형님! 그냥 싹 모가지를 꺾어버리면 안 되나요?"
"안 되지. 다 죽이면 떨거지들이 몰려오시면 성가셔."
"알았수. 형님 말이니 따를게요."
"오! 역시 천웅이는 착한 동생이야. 자, 가서 놀다 와라."
"다녀오겠소요."
탁천웅은 거구를 흔들며 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적들은 신의괴협 소천악만 주시하다 엉뚱한 놈이 걸어오자 적잖이 당혹감에 빠졌다.
"저놈은 또 뭐냐?"
"글쎄요. 덩치 하나는 엄청 크긴 하네요."
수군거리는 적들 삼 장 앞까지 다가간 탁천웅이 외쳤다.
"덤벼라, 떨거지들아."
"뭐? 떨거지? 이런 미친놈이."
노화가 하늘에 치민 수라도(修羅刀) 낙무극(洛無剋)이 옆에 서 있던 거령신(巨靈神) 뇌중악에게 소리쳤다.
"뇌중악! 가서 저놈의 허리를 꺾어버려라."
"존명!"
스윽 앞으로 나서는 뇌령신의 덩치도 탁천웅 못지않게 어마어마했다. 무려 칠 척에 가까운 키에 단단한 신체를 자랑하는 외공의 고수였다. 철사를 방불케 하는 구레나룻에 가린 얼굴은 거칠고 눈매는 사나웠다.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내 오늘 네놈의 장례를 치러주마."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뇌중악의 말에 코를 후비며 대꾸하는 탁천웅이다.
"얼른 와! 다 쓸어버리려면 시간 없어."
"이런 후레자식이!"
반말에 기분이 상한 뇌령신이 덩치와 달리 날렵하게 몸을 날려 탁천웅을 덮쳐왔다. 마치 무거운 돌더미가 밀려오는 듯한 위세였지만 탁천웅은 무신경하게 팔 하나를 쭉 내밀었다. 두 사람의 주먹이 마주치는 순간!
꽈지직! 빠각!
뼈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 메아리쳤다.
"으악! 내 팔!"
팔목을 부여잡고 펄펄 뛰는 뇌령신은 이미 팔이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었다. 단 일 합의 겨룸의 결과치고는 놀라웠다. 고통에 겨워하는 그에게 번개같이 다가선 탁천웅이 머리를 가볍게 톡 치자 입에 거품을 물고 뇌령신은 기절했다.
"자, 이제 시작이야. 덤벼라."
미친 황소가 달려가듯 거세게 밀려오는 그를 본 세외고수들은 잠시 주춤거렸다. 상상외의 외공에 움찔한 상태였다. 개중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역시 낙무극이었다.
"모두 뭐 하느냐? 상대는 외공 따위를 익힌 하수다. 세외고수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검으로 아예 갈기갈기 토막내 버려라."
살기 어린 외침에 정신이 든 세외고수들은 곧 흉악한 눈빛을 빛내며 검을 손에 들고 거침없이 마주쳐갔다. 수십 개의 검이 일제히 탁천웅의 전신을 노리고 밀려왔다.
깡. 챙그랑!
검이 마치 썩은 나무토막처럼 부서져 내렸다. 단 한 자루의 검도 탁천웅의 몸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헉, 이게 도대체 무슨 외공이냐?"
놀란 세외고수들이 경악성을 발할 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탁천웅의 손과 발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이런 나쁜 놈들! 맨손으로 오는 나에게 검으로 공격해!"
탁천웅의 손발은 거침없이 세외고수들의 몸을 강타했다.
"컥! 이건 쇳덩이 인간이야!"
맞은 고수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단 일 격에 가랑잎처럼 날아가 기절했다. 소천악의 당부대로 죽지만 않을 정도로 연타를 날렸다.
완전히 무인지경이었다. 아무리 검으로 찌르고 베어도 상처 하나 나지 않고 멧돼지처럼 돌진하는 탁천웅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이각여가 흐르자 이미 탁천웅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 가공할 외공에 질린 세외고수들이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검으로 베어도 마치 쇳덩이를 친 듯 검이 힘없이 부러져 나가며 주먹이 날아와 얼굴을 뭉갰다. 발로 차봐야 발목만 부러질 뿐 도무지 티끌만 한 상처 하나 나지 않는데 무슨 재간을 부릴 것인가.
수라도 낙무극은 점점 소름이 끼쳐왔다. 말로만 들었던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고수를 본 기분이었다. 지켜보던 소천악이 크게 소리쳤다.
"천웅아! 저기 파란 무복을 입고 좌측에 서 있는 분이 두목님이다. 가서 사뿐하게 손봐드려라."
"네, 형님!"
씩씩하게 대답한 탁천웅이 낙무극을 발견하고 번개같이 덮쳐갔다. 자신을 노리는 일격에 격노한 낙무극이 소리쳤다.
"이런 건방진 놈! 내가 누군지 알고."
"네가 누군데? 잔소리 말고 쓰러져라."
역시 탁천웅다운 대답이 나오며 이미 일 장여로 접근한 손이 세차게 회전하며 전신을 으스러버릴 듯 매섭게 짓쳐왔다. 안색이 급변한 낙무극은 섬전같이 애도를 뽑아 들고 십자로 탁천웅의 온몸을 갈라 쳤다.
쩡!
검은 금성철벽을 두들긴 듯 힘없이 두 조각 나고 연이어 탁천웅의 둔탁한 손이 밀려왔다. 놀란 낙무극이 얼른 쌍장을 교차하며 죽을힘을 다해 마주쳐 갔다.
뿌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낙무극의 양손이 힘없이 꺾이며 밀려오는 통증에 낮은 신음을 토할 사이도 없이 가슴에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 타격은 순간적으로 수차례 연속되며 점차 낙무극을 무너뜨렸다.
"크악! 이런 무식한 무공이."
억울하다는 듯 고함을 치며 주저앉은 낙무극의 머리를 노리고 탁천웅의 손이 밀려오는 순간 소천악의 제지가 뒤따랐다.
"천웅아! 그만 해라. 그만하면 그분 많이 맞았다."
"네, 형님! 이제 밥값은 한 거지요?"
"응, 한 끼 밥값은 훌륭히 했다. 움직이느라 수고 많았다."
칭찬에 입이 헤벌레 벌어진 탁천웅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천악이 걸음을 옮겼다. 무사한 세외고수들은 감히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길을 열어줬다. 쓰러져 신음하는 낙무극에게 천천히 다가선 소천악이 음산하게 말했다.
"우리 동생이니 목숨은 건진 거요. 만약 나였다면 무기를 든 당신을 바로 황천길로 보냈소이다."
"으윽!"
신음을 토하며 살기를 가득 드러내는 낙무극이다. 자존심상 굽히기가 죽기보다 싫어 눈길만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사내대장부의 기개를 보여주는 듯했다. 하나 불행한 건 상대가 보통 인간이 아닌 소천악이란 점이다.
"이런, 어디서 이런 고상한 눈길을 주시는 겝니까? 안 되겠군요. 일단 푸닥거리를 한 후 다시 이야기를 합시다."
"죽여라, 이놈!"
"우리가 인간성이 좋아서 부탁하면 아주 잘 들어드리는 편입니다. 죽여드리죠. 천웅아."
"네, 형님!"
"이 양반 삭신이 노곤하도록 밟아드려라. 아직 뼈가 튼튼해 입이 사신 거 같다."
퍼퍼퍽.
"크아악! 이런 잔인한 놈!"
탁천웅은 비명을 지르는 낙무극을 무심한 얼굴로 솥뚜껑만 한 손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얼마나 강력한 위력인지 한 대 맞을 때마다 낙무극의 몸이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들썩였다.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며 몸을 굴리자 이번엔 큼직한 발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몸이 휭하니 날아 일 장 앞 땅에 풀썩 떨어지며 가는 신음을 토하는 낙무극이다.
"으윽! 죽여라."
독기를 가득 품으며 소리치는 낙무극의 몸은 이미 피투성이로 변해갔다. 바라보던 소천악의 입에서 음산한 말이 나왔다.
"천웅아! 저분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한 방에 보내드려라."
"네, 형님! 기다렸수요."
"으이구, 저놈의 요 자는 언제나 안 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천악이었고 탁천웅은 주먹을 꽉 쥐고 낙무극에게 걸어갔다. 그제야 겁이 덜컥 난 낙무극이다. 아무리 봐도 저 덩치 큰 놈이 자신을 한 방에 죽일 것 같은 불안감에 소리쳤다.
"멈춰라. 내가 대막살궁의 궁도니라. 나를 건드리면 대막살궁에서 복수할 것이다."
"알았소이다. 그 복수 기꺼이 받아주지요. 어서 황천길로 가시기나 하시구려."
시큰둥하게 말하는 소천악이다. 탁천웅은 씩 웃으며 다시 낙무극을 노려보며 주먹을 서서히 치켜들었다. 단방에 때려죽이려는 기세가 모두에게 느껴졌다.
그때 탁천웅의 귀에 가는 전음이 들렸다. 소천악이 고개를 돌리고 은밀하게 전해준 말이었다.
"천웅아, 죽이지는 말고 일부러 잘못 친 것처럼 바로 옆 땅을 세게 쳐라."
전음을 들은 탁천웅은 의아했지만 곧 수긍했다. 골치 아플 필요가 없는 게 형님 말을 잘 들으면 밥도 나오고 떡도 나온다는 걸 잘 알았다. 느린 듯 움직이던 그의 주먹이 섬전같이 낙무극에게 날아갔다.
꽈앙.
마치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친 듯한 폭음이 들리며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났다. 가까스로 그 주먹을 피한 낙무극은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은 땅을 보다 식은땀이 한 말 가까이 흘러나왔다.
땅은 마치 벽력탄이 터진 듯 깊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에 저 무식한 주먹이 적중되었다면 바로 피떡이 되어 황천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버럭 소리쳤다.
"소천악 대협! 잠시만 멈춰주시오."
"멈추긴 뭘 멈춥니까? 아까처럼 기세등등하게 죽여라 하십시오. 이번에는 확실히 보내드려라, 천웅아."
"네, 형님!"
꼭 그러겠다는 신념을 담고 다시 다가서는 탁천웅이 저승사자로 보이는 낙무극이다. 절로 마음이 급해진 채 급히 외쳤다.
"소 대협! 잠시 멈추고 이야기를 합시다."
"천웅아! 저분께서 할 말이 있으시니 잠시 기다려라. 자, 우리는 바쁜 사람이니 어서 말씀하시지요."
느긋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면상을 당장에라도 뭉개버리고 싶은 낙무극이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겨우 후들거리는 육신을 수습한 채 급히 말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요?"
낙무극이 꼬리를 내리자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던 소천악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요. 유가상단을 지키는 게 내 목적이오. 이리 곤욕을 치르고도 다시 공격한다면 이번에는 아주 단체로 황천길 여행을 보내드리지요."
"좋소. 나 낙무극의 명예를 걸고 다시는 유가상단을 공격하지 않겠소."
급히 약속하는 낙무극을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믿어보지요. 하긴 약속을 어기려면 어기셔도 좋소이다. 결과는 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