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2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27화
"소천악 대협이십니까?"
"그렇소이다."
"아, 얼마 전에 전갈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유천기 유가상단주였다. 두려움에 떨던 그로서는 소천악의 등장은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위협하는 무림고수들 때문에 호위무사 중 벌써 반 이상이 야반도주했고 얼마나 더 도망갈지 모르는 암울한 현실이었다.
이제 소천악이 오자 한시름을 놓았다는 기분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지나치게 긴장했다가 갑자기 풀리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 심리를 대충 알아챈 소천악이 살살 달랬다.
"하하, 유 대인! 이제 걱정 마시고 편하게 마음먹으십시오. 저기 있는 호걸들과 제가 책임지고 막아드리지요."
"휴우,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들이 말한 최후통첩이 불과 이틀 남아 잠도 자기 힘들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먼 길을 온 탓에 약간 허기가 집니다. 식사라도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하지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손을 잡아끌다시피 들어간 장원이다. 곧 진수성찬이 준비되고 배 터지게 먹은 낭인무사들은 포만감에 각자 숙소로 들어갔다. 소천악은 유천기와 밀담을 나눴다.
"대충 사정을 설명하시지요.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야 대처를 해도 하지요."
"휴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얼굴에 그늘이 가득한 유천기의 말에 소천악이 마음을 푸는 말을 꺼냈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젠 안심하시고."
"허허, 그리 말씀하시니 말하지요. 한 보름 전부터 갑자기 나타난 세외무림인들이 은밀히 연락하더군요. 유가상단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더군요. 말은 보상을 하겠다지만 상단이라는 게 달란다고 덜렁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딸린 식구도 있고 거래관계도 복잡하고……."
속상하다는 듯 말을 얼버무리는 유천기를 살살 달래는 소천악의 말은 듣기에 좋았다.
"음, 그랬군요. 그 정도면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야 들을수록 골치만 아플 것 같네요. 저야 뭐 무림인이니 덤비면 두들겨 패면 되는 거죠."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 마시고 가서 푹 주무세요. 그분들이 오시면 정말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만들어드리지요."
"네, 일단 소 대협을 믿겠습니다."
더 이상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유천기로서는 소천악이 유일한 희망이 된 셈이다.
소천악의 도착 소식은 정보망을 통해 즉각적으로 혈교에 알려졌다. 혈교의 총책임자인 파면수라 두수종이 머리에 손을 대고 앉아 있는 가운데 혈인귀 막광 각주가 자세한 보고를 올렸다.
"영주님! 지금 유가상단에 소천악 이놈이 또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보고를 들은 두수종 영주는 머리를 싸매고 탄식을 터뜨렸다
"또 그놈이냐? 아주 전생의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
"어떻게 할까요, 영주님? 세외고수들만 가지고는 그놈을 막아설 수가 없습니다. 숨겨놓았던 본 교의 정예 무인을 보낼까요?"
막광 각주의 요청에 곰곰이 생각하던 두수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니야. 이번 기회에 이이제이의 계략을 써보는 거야. 그냥 세외고수들만 보내도록 해."
"소천악이 그놈들을 죽이면 자파고수를 죽인 그놈을 세외 강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한마디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지."
"아, 그런 묘안이! 영주님, 놀라운 계략입니다."
"이놈의 새끼야, 계략이라니! 이걸 보고 하늘의 책략이라고 그러는 거다. 빨리 그렇게 시행토록 움직여라."
"존명!"
막광 각주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인사한 채 떠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두수종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어디 두고 보자. 이번에도 네놈이 피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노라."
말하는 그의 눈에는 원망 광망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약속한 날.
저녁에 되자 장원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활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언제라도 폭발할 듯한 기운을 풍겼다. 유천기 상단주도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딱 두 사람만이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이채를 연출했다. 물론 소천악과 탁천웅이 그 장본인이었다. 둘은 마치 남의 일 구경하듯 바라보며 모종의 일에 열중했다.
"야, 천웅아! 고기는 저쪽에 있는데 왜 여기다 던지고 지랄이야?"
"아따 형님! 보시면 모르슈! 고기들이 열심히 헤엄치잖아요. 자식들이 움직이다 보면 이리로 올 거야요."
"어느 세월에?"
"기다리다 보면 온다요."
"에라, 썩을 놈!"
천하태평인 탁천웅의 말에 혈압이 올라간 소천악이 바로 다른 낚싯대를 집어 들고 고기들이 몰려 있는 곳에 정확히 낚싯바늘을 던졌다. 과연 당장에 효과가 나타나며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싯대가 흔들렸다.
"으하하! 잡았다."
소천악이 큰 소리를 치며 낚싯대를 잡아채자 크기가 팔뚝만 한 잉어가 퍼덕거리며 올라왔다.
"아따 형님! 잡았네요."
"봐라, 인마! 형님을 따라하면 고기가 나오잖아."
"맞네요. 그런데 이놈의 고기들이 인간 차별하네요."
"자식아! 고기도 다 눈깔이 있어서 사람 알아보는 거야."
싱글거리며 비웃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탁천웅의 노화가 치밀었다.
"이런 빌어먹을 고기들이 감히 나 탁천웅 님의 울화통을 건드려?"
고래고래 소리치던 탁천웅이 두리번거리다 근처에 박힌 커다란 조각된 돌을 보더니 눈에 광채가 번뜩거렸다. 얼른 다가간 그는 팔로 돌을 싸 감은 후 힘을 쓰기 시작했다.
"으라차차!"
팔뚝에 시퍼런 힘줄이 불뚝거리나 싶더니 땅에 깊이 박혔던 이천 근은 족히 나갈 듯한 돌이 뿌리째 서서히 뽑혀 올라왔다. 바라보던 소천악이 혀를 차며 놀렸다.
"낚시하다 말고 짱돌은 왜 뽑냐?"
"끄으응, 어디 두고 보세요. 제가 형님에게 낚시의 진미를 보여드리지요. 끙차!"
가공할 신력으로 돌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탁천웅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힘차게 돌을 정원 안의 호수로 집어 던졌다.
풍덩.
한아름이 훨씬 넘는 돌은 십여 장을 날아가 호수 가운데 정확히 떨어지며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켰다. 거의 호수 전체가 출렁거리며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잠시 후 호수 안에는 충격에 기절한 잉어 등 각종 물고기가 둥둥 떠올랐다. 기가 막혀 입을 아 벌린 소천악에게 기세등등한 탁천웅의 말이 이어졌다.
"으하하! 봐요, 형님. 이게 낚시예요."
"허, 누가 이걸 가르쳐 준 거냐?"
"당연히 위대한 제 사부님이야요."
"끙, 아주 사제지간이 어쩌면 이리 판박이냐?"
혀를 차는 소천악을 뒤로하고 호수에 들어간 탁천웅은 기절한 고기를 마구 건져냈다. 거의 백여 마리를 잡은 후에야 호수에서 나온 그는 빠르게 주변에 있던 나무를 주먹으로 패서 부러뜨린 후 모닥불을 지폈다.
말이 모닥불이지 거의 불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모닥불이었다. 그 위에 고기를 쏟아 부은 후 주변을 지나가던 하인에게 말했다.
"이보쇼, 가서 술 몇 통 가져와요."
"네, 무림고수 어르신!"
하인은 처음부터 바라본 후라 엄청난 신력에 두려움을 느끼며 얼른 술을 가지러 갔다. 잠시 후 벌어진 술판에 참여한 인원은 딱 두 사람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태연히 술을 퍼 마실 담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화끈한 화력에 고기는 바로바로 익어 거의 대부분이 탁천웅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야! 작작 먹어라. 조금 있으면 살풀이를 해야는데 걷지도 못하겠다."
"걱정 마요. 이 정도는 먹어야 일해요."
"끙, 좌우간 먹기는 무지하게 먹네."
아웅다웅거리는 두 사람을 멀리 집무실에서 바라보던 유천기 상단주가 옆에 서 있던 권산(權算) 총관에게 말했다.
"저자들이 아주 내 아끼는 물고기들을 모조리 입속에 처박는구먼. 저건 한 마리에 오십 냥 하는 서역산 비단잉어인데 아주 씨를 말리는군. 그리고 멀쩡한 조각상은 왜 뽑아 던지고 난리야!"
안타까운 듯 말하는 유천기의 말에 바로 대답하는 권산 총관이다.
"아무 말 마십시오. 소천악 대협은 괴팍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강호의 무서운 고수라는 소문입니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자네가 한번 보게! 저거 무서운 고수들 맞나? 어째 배에 거지만 잔뜩 들어 있는 고수 같아."
"그러게 말입니다. 하는 꼴이 사실 영 믿음이 안 갑니다. 온 날 이후로 매일 말도 안 되는 낚시만 하고 있으니."
"휴, 신의괴협 소천악이라면 중원에 대명이 자자한 인물이니 믿어볼 수밖에. 이 일만 잘 처리된다면 호수 작살낸 거야 눈감을 수 있겠는데."
"맞습니다. 녹류강 대장로님도 믿으라 하셨잖습니까?"
"제길! 이거 어디 불안해서 살겠냐! 아차 하면 오늘이 우리들 합동 제삿날이 될 판이니."
영 미덥지 않은 형색을 보이는 두 사람을 한없이 바라보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유천기였다.
한편 고기와 술을 마시던 소천악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듣던 소천악이 확신을 가진 듯 탁천웅에게 넌지시 말했다.
"천웅아! 손님이 오신 모양이다. 슬슬 마중 가야지."
"이거 먹고 가면 안 돼요?"
"이따 일 처리하고 와서 마저 잡아먹자."
"알았어요. 빌어먹을 놈들이 먹을 시간도 안 주네요."
"인생이 원래 이런 거야."
말이 될 듯 말 듯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소천악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자 탁천웅이 못내 아쉬운 듯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소천악은 정문으로 걸어가며 소리쳤다.
"적이 오니 모든 무사들은 정문 쪽으로 오시오. 낭인무사들께서도 속히 모이시오."
언제 술잔치를 했냐는 듯 냉정하게 지시하는 소천악의 기세는 금세 살벌한 예기를 전신으로 풍겨냈다.
"네, 대협! 모두들 가자. 드디어 일할 시간이다."
가장 먼저 대답하는 귀안도검 홍유안이다. 다른 낭인무사들도 번개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검을 어루만졌다.
삶이 항상 고비였기에 대비하는 자세도 호위무사들보다야 한 수 위였다. 그들이 모두 소천악의 뒤를 따르자 그제야 여기저기서 호위무사들이 주춤거리며 뒤를 이었다.
바라보던 유천기는 가슴이 흠칫했다.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소천악의 기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허, 역시 강호에 이름난 고수는 맞구먼."
"거 보십시오. 역시 대협이란 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겁니다."
"그렇군. 애써 키운 고기를 잡아먹지만 않는다면 금상첨화이거늘."
유천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삼 년 이상 애지중지 키운 비단잉어 등을 모조리 잡아먹은 소천악과 탁천웅이 곱게 보이질 않았다.
정문에 서서 기다린 지 불과 일각도 되지 않을 무렵 멀리서 어둠을 뚫고 수많은 인영이 몰려왔다. 대막살궁에서 보낸 정예고수들이었다. 척 봐도 일류고수 이상이라는 듯 신법을 전개하는 자세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자신들의 무공실력을 과시하며 미리 기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 여실히 보였다.
하지만 바라보는 소천악과 탁천웅은 시큰둥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