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23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23화
술잔을 비우며 투덜거렸다.
"제길, 하필이면 하고많은 이백 년 세월 중에 내가 강호에 나오니 지랄이야! 혈사부 시절에 나와야 그 양반이 싹 쓸어버리고 내 행로가 편해지는 건데."
그 후론 이런저런 이야기를 엿들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혈교가 본격적으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게 주 화젯거리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소천악이 요리 한 점을 먹으려 젓가락을 들었다가 공허한 눈빛으로 탁천웅을 바라봤다. 이미 식탁은 말끔히 비워진 빈 접시만이 남았다.
"야!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형님 것도 죄다 먹냐?"
"미안하다요. 요리가 맛있다요."
머리를 긁적이는 탁천웅을 쏘아보다 씁쓸하게 남은 술을 다 마신 후 객잔을 나섰다. 먼저 웅비표국이 움직일 터전을 빨리 마련한 게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찝찝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이렇게 아귀가 딱딱 맞다니! 집안 일으키기도 어려움이 많네."
하늘에 잠깐 하소연을 한 후 당분간 웅비표국의 일에 신경을 써주기로 작정했다. 물론 멀리서나마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족했다.
미인 찾아다니기를 하오문에 떠넘기자 별로 할 일이 없었던 소천악은 바로 혈사부의 누명을 벗겨주기로 결심했다. 전에 하오문에 의뢰했지만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인 걸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강호무림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화산파의 일에 하오문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무리가 따랐다. 다만 음지에서 조용히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기다려본 후 행동을 결정할 생각이다.
그 길에 가까운 행로를 잡고 우선적으로 장안에 있는 개방분타를 찾아가기로 했다. 어느새 지부는 분타로 승격되어 나지문이 분타주로 영전했다는 소식을 하오문을 통해 들었다. 자신에게 이상한 명호를 선사한 작자를 가만둔다는 건 소천악답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하오문에 맡겨놓은 호화 마차를 찾아 편하게 움직일 마음도 함께였다.
소천악은 말과 식량을 구입해 서둘러 장안으로 움직였다. 얽매임이 없으니 움직임도 자유로웠다.
감히 자신에게 아수라협이란 명호를 준 개방에 대한 복수극을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정사를 떠나 자신을 건드린 개방을 가만히 둔다는 건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팰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신중한 발걸음이 필요했다. 다행스러운 건 심자앙 책사로부터 지략을 들어 차곡차곡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 장안성으로 들어섰다. 황도답게 여전히 위용을 자랑했지만 소천악에게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객잔을 잡고 탁천웅을 요리더미에 묻어놓은 후 바로 개방분타의 위치 파악을 마친 후 은밀하게 움직였다. 이미 날은 저물어 어둑어둑해 움직임이 한결 수월한 소천악은 다리 밑에 있는 장안 분타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나무에 은신한 채 날카로운 시선을 번뜩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방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구걸한 음식을 커다란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헤헤, 오늘은 유난히 푸짐한 저녁이네."
"그러게. 마침 잔치가 두 군데라 고기도 잔뜩 들어간 저녁이잖아."
꼬질꼬질한 두 개방도의 말을 들으며 바라보던 소천악의 시야에 한 인물이 서서히 다가서는 게 보였다. 당장에라도 두들겨 패고픈 구지신개 나지문이었다.
"잘돼 가나?"
"네, 분타주님! 이거 보십시오. 고기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거!"
"클클! 간만에 배가 호강하겠구나. 어서 익혀서 먹도록 해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슬쩍 쳐다본 나지문이 볏짚으로 만든 움막에 다시 쑥 들어갔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은 섬광 같은 눈빛을 번쩍이며 품안에서 작은 환약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후후, 재미있게 놀아주마. 감히 나 소천악을 건드리다니!"
냉소를 짓는 그의 시야에 개방도 하나가 솥뚜껑을 여는 장면이 보이자 번개같이 손가락을 튕겼다. 환약은 내력을 받아 쏜살같이 날아가 자욱한 수증기를 방패 삼아 개방도의 눈을 피해 솥 속으로 사뿐하게 들어갔다.
그 후 한 시진이 지날 무렵!
장안성 개방 분타는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윽, 어서 나와! 바지에 싸겠어."
얼굴이 잔뜩 구겨진 한 개방도가 소리치자 천으로 달랑 가린 유일한 뒷간에서 버럭 소리가 들렸다.
"아, 좀 참아라! 나도 줄줄이 흘러나오는데 미치겠다."
"야! 안 나와!"
참다못한 개방도가 천을 휙 열자 안에 있던 개방도가 목소리를 높였다.
"야! 천 내려! 안 보이냐!"
밖에 있던 개방도는 할 말이 없었다. 고약한 냄새와 더불어 엉덩이에서 들리는 푸드득 소리에 절로 인상을 찌푸리며 급히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이미 여기저기서 엉덩이를 까 내리고 힘을 주는 개방도가 득실거렸다.
거기에는 분타주 나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엉덩이에 힘을 주며 인상을 쓰던 그가 버럭 소리쳤다.
"야, 어떤 놈이 상한 음식을 가져온 거야?"
"끙! 모르지요."
바로 옆에서 힘주던 개방도 하나가 대답하자 인상을 버럭 쓰던 나지문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수선스럽게 우왕좌왕하던 개방도들은 서서히 힘이 빠져 옷을 내릴 힘도 없어졌다.
"끙! 으아아! 똥구멍 찢어지겠다."
"맞아, 똥구멍이 쓰라려 미치겠어."
설사를 하다 보면 쓰라린 법인데 심한 설사를 하다 보니 모든 개방도들이 마치 똥구멍이 빠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어떤 놈이 가져온 음식이야!"
처절한 절규가 메아리치는 개방 장안성 분타였다. 다리 위를 지나던 행인들도 스멀거리고 올라오는 고약한 냄새에 절로 코를 막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거지 새끼들이 아주 단체로 똥 싸네. 더러운 놈들!"
"그러게. 관가에 신고해 버릴까?"
"아서라! 저 거지들이 보통 거지냐? 개방이라는 거지 폭력배 조직 소속이란다. 잘못 건드리면 집 앞에 거지가 떼거리로 몰려온다더라."
"에이! 진짜 거지 같은 새끼들!"
욕하던 행인들은 가래침을 거칠게 탁 다리 밑으로 뱉곤 사라져 갔다. 개방도들은 열불이 치밀어 쫓아 올라가 어느 놈인지 확인하고파도 뒤가 마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부드득! 감히 천하의 개방도를 우롱하는 놈들이 있다니!"
"빌어먹을 새끼들. 두고 보자!"
"야, 빌어먹을 새끼는 우리잖아."
"그렇구나. 에이, 가다가 다리나 똑 부러져라."
"다리 가지고 되냐? 가다가 급살이나 맞아라. 인정머리 없는 놈!"
"크하하하! 윽! 똥구멍이 웃으니 더 쓰라리네. 제길!"
엉덩이를 까 내리고 떠드는 개방도를 바라보는 소천악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게 정파의 머리라는 구파일방의 제자들인가! 웃기지도 않는군."
하도 개방도들이 끙끙대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었던 소천악의 마음이 갈수록 완강해져 갔다.
한참이 더 지난 후 비로소 약발이 떨어진 개방도들이 기진맥진해 다리 밑 아무 데나 널브러졌다. 숨만 깔딱대는 모습이 어지간히 힘을 쏟아 부은 모습이다.
"이런 제기랄! 살다 살다 이렇게 지독한 설사는 처음이네."
"그러게. 얼마나 상한 음식을 가져왔으면 이 꼴이야. 거지가 배탈나는 수치를 다 겪게."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지독한 설사를 할 정도의 음식이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해야 하는데 전혀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거든."
"하긴! 그런데 아무도 근처에 오지 않았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개방도들은 이내 생각하기도 귀찮은 듯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모든 개방도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자 서서히 한 사람이 유령처럼 번뜩이며 움직였다.
소천악이었다.
그는 잠에 빠진 개방도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나지문이 자고 있을 천막을 슬며시 들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지쳐 잠들어 심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소천악은 슬며시 다가서서 수혈을 사정없이 눌렀다. 끽소리도 못 하고 나지문이 정신을 잃자 사뿐하게 들쳐 업고 빠르게 천막을 나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한 사람을 들고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수법은 보는 이가 있다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판이다.
어둠을 타고 섬전같이 날아가는 그의 모습은 누구의 시선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쾌속했다. 이윽고 장안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지붕에 살포시 내려앉은 소천악은 기절한 나지문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남을 해코지하시면 본인도 피 본다는 걸 오늘부터 보여주지요."
소천악은 가차 없이 넝마에 가까운 나지문의 옷을 벗겼다. 냄새가 구리구리했지만 애써 코를 막고 아래 중요 부위를 가린 속옷만 남긴 채 벌거숭이로 만든 후 인적이 없는 틈을 타 얼른 거리 한가운데에 패대기쳤다.
큰대자로 늘어진 나지문을 고소한 듯 잠시 바라보다 속옷 안에 서찰 하나를 슬며시 끼워 넣고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점혈됐던 수혈이 비로소 풀려 잠에서 깨어난 나지문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분명히 움막 안에서 잠이 들었건만 난데없이 대로변에, 그것도 가장 번화한 대로변 한가운데 달랑 치부를 가린 속옷 하나만을 입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한마디를 던지며 사라졌다.
"저런 미친놈!"
"나 저놈 알아! 다리 밑 거지 대장이야."
"미치려면 곱게 미치지. 왜 주접은 떨고 난리야."
"에이 빌어먹을 놈! 우리 딸내미가 볼까 봐 두렵다, 두려워."
온갖 욕을 다 얻어먹은 나지문은 사과 빛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 도망가야 하는데 영 발이 천근만근인 양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그가 사방을 둘러보다 쌀부대 하나를 발견하고 앞뒤 가릴 여지없이 일단 뒤집어썼다. 이후 얼굴을 땅에 처박다시피 한 채 정신없이 꽁무니를 뺐다. 물론 뒤에서는 계속 욕지거리가 날아오는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
"이게 무슨 꼴이야."
누가 들을세라 투덜대며 다리 밑으로 달려오는 그의 발은 가공할 쾌속의 질주였다. 겨우 움막 안으로 들어선 그는 벽에 걸린 다른 옷을 걸쳐 입으려다 속옷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서찰이 나오자 눈을 번뜩이며 거의 찢다시피 펼친 후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분타주님의 호의로 아주 고상한 별호를 선사받았소이다.
사내대장부로 어찌 이 과분한 은혜를 잊으오리까!
오늘 가벼운 선물이 고마우셨나 모르겠소이다. 섭섭하시다고요?
염려 놓으시지요. 내일은 그나마 거추장스러운 거 마저 벗겨 그 냄새나고 덜렁거리는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시키도록 하지요.
세상은 다 자업자득이랍니다. 감히 나를 건드리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이 있으셨다면 애당초 포기하심이 건강에 이로울 듯합니다.
자, 그럼 내일의 축제를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네 이놈! 아수라협인지 거지발싸개인지 이런 괘씸한 놈!"
돌대가리가 아닌 나지문은 바로 서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눈치채고 길길이 날뛰었다.
소천악!
그가 아니고는 이런 짓을 할 위인은 감히 없었다. 개방의 장안 분타주라면 이제 곧 당주 서열로 올라갈 개방의 핵심인재 중에 하나였다. 그런 그를 이렇게 수치스럽게 한다는 건 곧 개방과 적대시한다는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