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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1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11화

 

  이제 그 성세가 최대를 달리는 흑마전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율금무 전주가 다급하게 물었다.

 

  "이보시게, 어서 소천악 대주를 지원할 고수들을 선별해 파견해야 하지 않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미 파견할 고수를 선정해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게 다 소 대주 덕분 아니겠는가?"

 

  "그렇지요. 모든 고수들이나 식솔들이 배 두드리며 여유롭게 사는 이유를 왜 모르겠습니까! 안 그래도 고수를 뽑는다 하니 너도나도 지원하는 실정이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 실무자의 말이 들어옵니다."

 

  "허허! 대주는 복도 많은가 보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율금주 전주를 보며 나문부(羅門腑) 군사는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그건 인복이라기보다는 그와 함께하면 떨어지는 떡고물이 많다는 소문이 더 큰 작용을 했다는 걸 말해 전주의 좋은 기분을 잡치게 할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좌우간 선별을 마치는 대로 급파하겠습니다."

 

  "그래 주게. 생각 같아서는 나도 따라가 대주와 한잔하고프지만 전주란 자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네그려."

 

  율금무의 결정에 따라 신속하게 파견될 고수들이 흑마전을 떠나 소천악에게 달려갔다. 넉넉해진 재정을 보여주듯 전부 준마 편으로 이동했다.

 

  혈살막도 연락을 받자마자 환호했다. 살수행을 중단한 그들에게 더 이상 일거리가 없는 판에 천축행에 이어 다시 할 일이 생기자 잠시 침울했던 살수들이 단연 활기를 되찾았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종천리가 말했다.

 

  "보게나. 소천악 대주를 따라다니다 보면 할 일이 널릴 거라 하지 않았나."

 

  "역시 막주님의 탁월한 통찰력은!"

 

  "살다 보면 다 알게 되는 산경험이라 할 수 있지. 자, 일차적으로 소가표국을 기만한 표두와 표사를 잡아 세찬 교육에 들어가도록 하지."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간 종천리의 말에 현비량 부막주는 동감하며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혈살막 살수들은 막주로부터 시작해 전원이 이동했다.

 

  온 대인 상단도 분주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처음 하는 부탁을 들은 온유상이 솔선수범해 상단을 쥐어짜며 표국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온유상은 몰래 전해진 밀서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천려일실(千慮一失)을 범할세라 조심스레 움직였다.

 

  "서둘러라! 이제 우리 상단은 표국도 거느리는 명실상부한 중원 대상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알겠느냐?"

 

  "네, 대인 어른! 안 그래도 은자 이십만 냥과 표국을 건립할 인재들을 급히 선별해 놨습니다."

 

  재빨리 대답하는 자는 저번 천축 원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다섯 명의 책사 중 하나인 능서운(陵瑞雲)이었다. 그 지략을 높이 산 온 대인에 의해 상단의 두뇌로 자리잡았다.

 

  "그래, 수고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소 대협의 일이니 한 치라도 실수가 있다면 내 어찌 그분의 얼굴을 제대로 보겠는가!"

 

  "심려 마시지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일 오전이면 상단이 출발할 예정입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제가 직접 인솔해 다녀올 것입니다. 그리고 흑마전과 혈살막 살수들이 엄중히 호위함은 물론이고 집마맹이나 사존맹에서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서찰이 당도했습니다."

 

  자부심이 어린 능서운의 말이다. 사실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당금무림에서 손꼽히는 거대문파들이 제 발로 찾아와 도와준다는 상단의 핵심이 자신이었다. 불과 이 년 전에 저녁 끼니 걱정을 하던 자신이 이제는 집에서도 큰소리 탕탕 치는 가장으로 거듭났다.

 

  신뢰 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온유상이 말했다.

 

  "잘해주게나. 이 일은 정말 중요하이. 은자 아끼지 말고 퍼부어."

 

  "네, 대인 어른. 저도 중요성을 압니다. 은인이신 소천악 대협께서 처음으로 부탁하는 일인데 어찌 소홀하겠습니까! 신명을 바쳐 노력하지요."

 

  "그래 주게. 난 이 길로 소 대협에게 가 일을 처리하겠네. 얼른 일을 처리하고 자네도 따라와 심 책사님을 도와줘야지. 그분 혼자 얼마나 힘들겠나."

 

  "네, 바로 가도록 하지요."

 

  두 사람은 서둘러 말을 마치고 각자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 모든 변화의 주역인 소천악 대협의 일이라는데 어찌 뒷짐 지고 구경할 수가 있겠는가!

 

  소천악의 일갈에 따라 중원 각지에서 몰려드는 군웅이 하나둘씩 늘어만 갔다.

 

 

 

  그로부터 보름 후.

 

  객잔에는 네 사람이 자리한 채 앉아 있었다. 소천악을 필두로 온유상 그리고 심자앙과 능서운이었다. 소천악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처음 입을 열었다.

 

  "이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부터 능 책사님은 심자앙 수석책사님과 함께 표국 건립에 관한 일을 처리해 주시지요."

 

  "최선을 다해 대주님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능서운이 기꺼이 대답하자 흔쾌한 기분에 온유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온 대인께서는 소대영을 만나셔서 잘 설득해 주시지요."

 

  "네, 이미 서찰에 적은 걸 봤습니다. 별 걱정 하지 마시지요. 제가 이래 봬도 장사꾼입니다. 사람 설득이야 그리 어렵지가 않지요."

 

  "그래만 주신다면 저야 더 바랄 나위가 없죠."

 

  이후 네 사람은 깊은 의논을 나눈 후 각자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 심자앙은 표국 설립 계획을 세우느라 잠잘 틈도 없이 격무에 시달렸다.

 

  "이런 제길! 아무리 머리 쓰는 게 내 일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버럭 소리치는 그를 힐끗 바라본 능서운이 말했다.

 

  "팔자려니 하십시오. 그나마 일하는 게 어딥니까. 막말로 대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배곯는 식구들을 대책 없이 바라볼 신세가 아닙니까?"

 

  "휴, 가장이 뭔지. 우리 식구들은 제 아비가 이리 시달리는 거 아는지 원."

 

  "몰라도 역시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요. 퍼질러 낳아놓고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부모보다야 우리가 행복입니다."

 

  "야! 네놈이 성인군자냐? 이거 하는 말마다 도통한 스님 같은 소리만 하고 있어. 완전히 부처님 하나 나타나셨네."

 

  성질이 난 심자앙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능서운이 말했다.

 

  "도통하지 못해서 이런 말 합니다. 이 년 전의 우리 집은 하루 한 끼 그나마 피죽으로 연명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흐음."

 

  "바로 대들보에 머리 박고 죽고 싶었습니다. 무능력한 아비 만나 배고픔에 우는 아이들을 차마 보지 못해 동네를 서성이다 자정이 다 돼 들어가 잤습니다.

 

  이제는 그 녀석들이 배 터지게 먹고 글방에서 공부도 합니다. 좋은 옷 입고 명문가 자제들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도 합니다. 그놈들이 우리 자식이 예뻐서 놀아줄까요? 천만에요. 우리 뒤에는 금위대주인 소천악 대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황제와 사이는 나쁘다 해도 엄연히 금위대주님이시고 또 악관필 대장군님과 친분이 깊다는 걸 그들의 부모도 모르지 않지요. 그게 세상사입니다.

 

  "

 

  "커험! 노닥거릴 시간이 없네. 어서 일이나 하세나."

 

  불평하다 본전도 못 찾은 심자앙이 얼른 말을 돌리며 붓을 들어 열심히 쓰는 척했다. 피식 웃던 능서운도 얼른 자신의 일을 찾아 부산스레 움직였다.

 

  그들이 계획서를 만들면 만들수록 점점 표국 설립은 박차를 가하며 탄력이 붙였다.

 

 

 

  온유상은 조용히 소대영의 집을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그를 본 소대영은 느닷없이 찾아온 온유상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온유상은 잔잔한 웃음과 더불어 부드럽게 서두를 시작했다.

 

  "소 대인! 당신의 경험과 지식을 사러 왔소이다. 이 사람은 온가 상단을 이끌고 있는 온유상이라 합니다."

 

  뜻밖의 제안에 대뜸 사양부터 하고 보는 소대영이었다.

 

  "허허! 사람 잘못 보셨소이다. 보시다시피 전 허드렛일을 하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니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다른 데 가셔서 정말 능력 있는 분을 찾으십시오."

 

  "본시 사람이란 겉모습에 현혹되어 움직이다 낭패를 당하는 법이외다. 제가 이미 소 대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소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변 정리를 말끔하게 하셨더군요."

 

  나름대로 알아본 듯한 온유상의 말에 어색한 듯 눈을 돌리며 딴소리를 내뱉는 소대영이다.

 

  "험! 별걸 다 조사하셨습니다."

 

  민망한 듯 소대영이 헛기침을 연발하자 미소짓던 온유상이 말을 이었다.

 

  "이미 전 결심을 굳혔으니 이젠 소 대인이 양보할 차례이오이다. 힘을 합쳐 거대 표국을 한번 만들어봅시다."

 

  "허허! 이런 난감할 데가!"

 

  소대영은 진실로 마음이 착잡하면서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표국이 망하고 동분서주했으나 다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에 이젠 재기의 희망을 아예 접은 지 십여 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생계를 위해 하인 신세로 전락해 살다 보니 어느새 타성이 붙어 그럭저럭 지낼 만할 때 유혹의 손길이 다가왔다.

 

  거듭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건만 온유상이란 사람은 요지부동이다. 마치 자신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하고 온 자처럼 집요하게 권유했다.

 

  "소 대인! 성실하고 신뢰가 있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소이다. 같이 하시구려."

 

  "허참!"

 

  곤란한 표정으로 사양의 말을 연신 날리는 소대영의 속은 참으로 복잡했다. 표국이 망한 후 급변한 세상인심을 뼈저리게 느낀 터에 이런 제의가 황당하기만 했다. 온유상은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못을 박기 시작했다.

 

  "자, 하시는 걸로 알겠소이다."

 

  "흠! 저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시지요."

 

  "좋소이다. 하루야 못 드리겠소이까! 좋은 판단으로 오시길 바라겠소이다. 그럼 이만 전 가보겠소이다."

 

  온유상이 떠난 후 소대영은 깊은 고심에 빠져들었다. 제안치고는 너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통에 영 신뢰감이 가질 않았다. 벌떡 일어선 그는 서둘러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잘 나갈 무렵 친하게 지내던 자로 현재 중원 각지를 다니며 소금 장사를 하는 장칠상이었다.

 

  "이보게, 칠상이! 자네 혹시 온가상단에 대해 잘 아나?"

 

  "온가상단! 거기 지금 떠오르는 태양 같은 상단이지. 아마 벌써 중원 십대상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풍문이야."

 

  "음, 그리 큰 상단이 어찌 순식간에 생길 수 있나?"

 

  "모르긴 몰라도 천축과의 상거래로 큰 상단일 거야. 저번에 황제 폐하가 보낸 사신단에 딸려 간 상단이었지."

 

  "아니 온가상단이 황실과 연관이 있나?"

 

  "그게 아니고 소문에 의하면 거 누구더라?"

 

  잠시 기억이 가물거리는 듯 고개를 흔들다 무릎을 탁 치며 말을 잇는 장칠상이었다.

 

  "아, 맞아! 금위대주라던 소천악 그분이 추천했다더군."

 

  "무엇이라! 소천악! 그 이름이 맞나?"

 

  놀란 소대영이 묻자 장칠상은 그제야 이름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경악했다.

 

  "아니 소천악이라면 자네가 십여 년 전에 무도관에 보냈던 아들 이름이 아닌가? 이젠 소식도 없이 행방불명된!"

 

  "크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무진 애를 쓰는 소대영이었다. 소천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일의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자네 아들이 맞는가?"

 

  "아직 모르네. 천하는 넓고 사람은 많으니 동명이인일 수도 있어. 게다가 그 녀석은 어려서부터 말썽쟁이로 소문이 자자한 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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