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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1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16화

사마경과 한 마차를 타고 이동한 지 한나절, 그 시간은 정유에게 천국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와 코앞에서, 그것도 같은 마차 안에서 마주본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사마경은 선녀였다. 꿈속에서나 볼 법한 미모의 선녀.

마차 안에 함께 있다 보니 그녀에게서 흐르는 은은한 사향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류화와 연송하의 미모는 또 어떤가.

사마경에게 조금 뒤질 뿐 천하 어디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절세미인들이다.

‘황홀한 꽃밭에 빠진 기분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이해하겠어.’

이토록 많은 여자와 마주 앉아서 한나절 내내 이야기를 나누어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후 처음이었다.

우문각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아마 그가 알았다면 ‘너는 전쟁의 경험 말고도 여자에 대한 경험도 필요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군사, 아주 좋은 조언이었어요.”

사마경의 칭찬에 정유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소성주.”

그때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섭가장에 도착했습니다, 소성주!”

정유는 그 소리가 무척 아쉬웠다.

조금 더 늦게 도착해도 되는데…….

 

***

 

사마경이 패왕거에서 내렸다. 하얀 무복을 입고 하얀 면사를 쓴 사마경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소연추와 연송하, 류화가 그녀의 옆에 서서 그녀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더 빛내주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흑월대원들은 눈빛을 번뜩이며 사방을 경계했다.

은명객도 오늘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다.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소성주를 뵈오!”

섭평산이 섭가장의 장로와 간부 등을 모두 대동하고 정문 앞으로 나와서 사마경을 맞이했다.

살이 약간 찐 몸에 후덕한 인상, 체구도 당당하다. 조카인 섭중화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며칠 만에 다시 뵙는군요.”

“하루가 다르게 아름다워지십니다 그려.”

형식적인 인사가 간단히 오갔다.

섭평산은 지부장 중에서도 공손백의 양팔 역할을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사마경은 입에 발린 소리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짧게 답했다.

“고마워요.”

“섭 장주, 오늘 하루 신세 좀 져야겠습니다.”

백리호가 친근함을 자랑하듯 나서서 말했다.

섭평산은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신세라니요?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으니 걱정 마시구려. 들어가시지요, 소성주.”

사마경은 손을 들어서 가볍게 공수의 예를 취하고는 도도한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정문 앞에 놓인 커다란 용호 조각상뿐만 아니라, 장원 안의 정원에도 멋진 조각상들이 즐비했다. 굳이 하나하나 따질 것도 없이 척 봐도 돈깨나 발랐다는 게 엿보였다.

“섭가장이 신양의 상권을 좌지우지 한다더니, 그 동안 돈을 많이 벌었나 보군요.”

생각지도 못한 사마경의 말에 섭평산의 미소 띤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허, 허, 허.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요.”

 

흑월조의 호위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는 사마경은 한 마리 봉황 같았다.

그녀는 물론 류화와 연송하의 아름다운 모습에 섭가장 무사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섭평산의 아들인 섭중만도 입이 반쯤 벌어졌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는 사마경이 섭평산을 따라서 검양전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섭가장 주전각인 검양전에 도착하자, 백리호가 흑월대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곳에 있어라.”

토벌대에 고위간부만 해도 이십 명이 넘는다. 사마경도 흑월대원을 모두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천운과 세 조장만 따라와.”

백리호는 장천운과 구산, 사공명신, 혁련기가 동행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사마경이 휭 하니 앞서 걸으니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정말 제멋대로군.’

 

검양전의 내부에는 오십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탁자가 놓여 있었다.

토벌대와 섭가장의 주요 인사들이 앉기에 충분한 좌석이었다.

웅성거리던 군웅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섭평산이 재차 환영인사말을 건넸다.

그 사이 장천운은 섭가장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사마경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세 종류였다.

비웃음과 걱정스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에 반쯤 넋이 빠진 표정.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이다.

장황한 섭평산의 인사말이 끝나자, 사마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장주.”

“예, 소성주.”

“섭가장에서 어느 정도 인원을 지원해줄 수 있나요?”

갑작스런 말에 섭평산이 멈칫했다.

잠시 자연스럽게 좌중을 둘러본 그가 말했다.

“글쎄올시다. 장강팔련 때문에 지원 나가 있는 무사들이 많아서…….”

“제가 알기로 섭가장에 남은 무사가 현재 오백 명 정도라던데요. 그렇다면 이백 명 정도는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지 않나요?”

“그게…….”

“안 된다는 건가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현재 본 장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섭평산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며 눈짓으로 백리호에게 구원을 청했다.

기다렸다는 듯 백리호가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허험. 소성주, 섭가장은 지금 장강으로 많은 무사들을 파견한 상태라서 지원이 쉽지 않다네.”

“장강팔련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아닌데, 왜 무사들을 지원할 수 없다는 거죠?”

“지금 본 성을 노리는 자들이 어디 장강팔련만 있는가?”

“그러니까, 섭가장의 안전을 위해서 지원무사를 파견할 수 없다? 그렇게 알아도 되나요?”

섭평산이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소성주.”

“그럼 앞으로는 섭가장이 위험에 처해도 우리가 바쁘면 못 본 척해야겠군요.”

생각지 못한 말에 섭평산이 움찔했다.

“소성주?”

“십이지부에게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는 않겠어요. 단,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아두세요. 강호에서는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거!”

“너무 심한 말씀이오, 소성주!”

섭평산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러나 사마경은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았다.

이미 섭가장에 올 때부터 작정하고 있던 그녀다. 여기서 밀리면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배는 더 어려워질 터. 그녀는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말이 심하다? 우리 구천성이 왜 나섰는지 모르시나요? 신천검문이 멸문지경으로 당했기 때문에 나선 거예요. 구천성에 충성을 맹세한 지부를 위해서! 그런데 그들과 같은 지부인 섭가장은 자신들의 안전만 생각하겠다고요? 우리 구천성은 그런 지부를 위해서 피를 흘릴 생각이 없어요!”

말을 마친 사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운!”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히 서 있던 장천운이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소성주.”

“신양성에 사람을 보내서 객잔을 알아봐! 동료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집에서 밤을 지내고 싶진 않으니까!”

“어허! 소성주, 왜 이러시는가? 소성주가 그러면 섭 장주가 서운해 하지 않겠는가?”

백리호가 짐짓 눈을 부라리며 다그치듯 말했다.

하지만 사마경의 기세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섭 장주가 신뢰를 저버린다면 어쩔 수 없어요.”

“정말 답답하군. 천은방이 등을 돌린 마당에 섭가장까지 잃을 생각인가?”

협박조의 말에 사마경이 백리호를 직시했다.

눈빛이 어찌나 차가운지 서리가 내린 듯했다.

그때 혁련광이 입을 열었다.

“섭 장주, 정말 지원무사를 내줄 수 없소이까?”

“전주, 내주고 싶어도 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외다.”

섭평산이 짐짓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풍혼단주 엽가승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상황이 아니라니? 그럼 어떤 상황이어야 지원무사를 내줄 수 있단 말이오?”

“미안하외다. 난들 어찌 무사들을 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도 이해해 주시구려.”

섭평산이 끝까지 거부하자, 백리호를 바라보고 있던 사마경이 선언하듯 말했다.

“모두 잘 들으세요! 임시긴 해도 저는 구천성의 성주예요. 이제부터 성주이자 이번 일의 책임자인 구천령주의 권한으로 말씀드리겠어요!”

백리호가 흠칫했다.

“무슨……?”

“섭가장이 지원을 보내지 않겠다면…… 오늘 부로 섭가장을 더 이상 구천성의 지부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천혼전주께서도 더 이상 섭가장을 옹호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제가 이리 말했는데도 섭가장을 비호하겠다면…… 저도 냉정하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사마경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자 백리호조차 당황했다.

“무슨 뜻이냐?”

“제 명령을 거역하고 싶으면 하세요. 단,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전주께서 져야할 거예요!”

폭풍이 휘몰아치듯 내려진 결정에 모두들 입이 얼어붙었다.

섭가장의 간부들조차 눈을 부릅뜬 채 입을 꾹 다물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 중 몇은 불만이 있어도 차마 나서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였다. 그리고 몇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이었다.

구천성의 장로 중에서도 사마경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동곽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소성주께서 지나치게 월권을 하시는 것 같소이다 그려!”

“월권이라고요?”

“그렇소이다. 솔직히 소성주는 임시일 뿐이지, 정식 성주가 된 것도 아니지 않소이까?”

“그런가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르시나 보오만, 섭가장은 십 년 이상 본 성과 동고동락해온 사이외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남 취급을 하겠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요?”

“장로께서는 조금 전의 제 말을 듣지 못했나보군요.”

“듣긴 들었소만…….”

“지금은 본 성의 위기상황이에요. 위기상황에서 명령권자의 명을 어기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진 않으실 텐데요?”

사마경이 예상 외로 강하게 나가자, 마동곽이 붕어처럼 입술만 껌벅였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젠장, 왜 갑자기 미친년처럼 날뛰지? 오늘이 그날인가?’

어쨌든 일단은 입을 조심하는 수밖에.

마동곽이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자, 사마경이 좌정한 군웅들을 둘러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구천률로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아세요!”

날벼락 같은 말에 모두의 입이 꾹 닫혔다.

법이란 게 본래 귀에 달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 아니던가.

누가 공연히 나서서 애꿎은 희생양이 되고 싶을까.

입이 근질근질했던 사람도 눈살만 찌푸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봤다.

어지간하면 나서서 한마디 하겠는데, 사마경의 말투가 워낙 단호해서 나서기가 영 껄끄러웠다.

그때 정유가 두 손을 맞잡고 정중하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소성주,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말해보세요.”

“섭 장주라 해서 어찌 본 성의 명을 거역하고 싶겠습니까? 하니 일단 노여움을 푸시고 섭 장주의 말을 들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 머릿속은 지금, 어떻게 하면 신천검문의 복수를 해주고, 본 성의 꺼꾸러진 체면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어요. 그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게 누구든! 용서치 않을 것이니 명심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정유가 허리를 숙이며 짧게 답하고 섭평산을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듯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섭 장주님.”

“으음, 말씀하시게.”

“당장 지원 무사 이백을 내주시기가 어렵다 하셨지요?”

“그, 그게 말이네…….”

슬쩍 백리호를 일견하는 섭평산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백리호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이제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듯.

‘빌어먹을! 사마경 쯤은 한손으로도 좌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어쨌든 사마경의 청을 들어주자니 공손백이 두렵고, 들어주지 않자니 당장 날벼락이 떨어질 판이다.

그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자, 정유가 넌지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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