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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0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08화

 

  아름드리가 넘는 나무가 갑자기 갈기갈기 나무토막으로 변하며 우수수 산길로 흩어졌다. 놀란 길지경이 입을 쫙 벌릴 때였다.

 

  소천악의 손 위에는 손잡이가 얇고 끝이 두툼한 나무 몽둥이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아니 대협! 그건 뭐 하시려고?"

 

  "아, 이건 인간성 개조용 몽둥이라는 겁니다."

 

  "네?"

 

  영문을 몰라 멍청하게 바라보는 길지경을 싹 무시한 채 다른 작업에 몰두했다. 길가의 축축한 흙을 대충 반죽해서 동글동글 말아 환약 비슷하게 만들었다. 형태가 대충 완성되자 소천악은 바로 가래침을 거세게 뱉었다.

 

  "카악, 퉤엣!"

 

  누런 가래침이 잘 섞이게 다시 한 번 단약의 모양을 만들었다. 이윽고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길지경에게 단약을 무수히 전해주며 소천악이 말했다.

 

  "이건 들고 있다가 제가 말하면 바로 나눠 주시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눈이 커진 채 묻는 길지경에게 묘한 웃음을 던지며 소천악이 무심히 대답했다.

 

  "차차 보면 알 겁니다. 자, 가죠."

 

  "네, 대협!"

 

  어느새 길지경의 목소리는 힘차게 울려 나왔다. 방금 전 그가 본 무공은 태어난 이래 절대로 본 적이 없는 놀라운 경지였다. 생전 딱 두 번 본 절정고수의 실력도 여기에 비한다면 태양 아래 촛불인 정도란 생각이었다.

 

  소천악의 진신절학을 본 길지경은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들자 씩씩하게 길 안내를 하며 처음으로 활기차게 말했다.

 

  "이 산의 채주는 강호에서 귀혼마로 불리던 자로 쌍도를 잘 쓰는 자입니다. 그리고 부채주는 비혼이라 불리는……."

 

  "이보시오."

 

  "네, 대협!"

 

  "그분들 신상이나 무공은 관심 없소이다. 시간도 없으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적을 알아야 승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적이 적 같아야 연구도 하는 겁니다. 조금 있으면 땅바닥을 길 분들의 신상을 알아서 무엇 합니까?"

 

  너무도 자신만만한 소천악의 답에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안내하는 길지경이었다. 비록 속으로는 부지런히 염불을 외었지만 말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살님, 제발 오늘 살려주시면 내일부터 절에 가 부지런히 공덕을 쌓아올리겠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길지경에게는 생사를 건 절실한 염불이 가슴속에서 절로 올라왔다.

 

 

 

  산채는 호로병 같은 절벽 사이에 있었다. 적이 기습하려 해도 앞이 훤히 트여 불가능해 보였다. 산채 입구에선 두 명의 녹림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소천악이 짐짓 감탄하며 말했다.

 

  "오호! 잔머리를 많이 굴리셔서 만든 곳이군요."

 

  "말도 마십시오. 저 산채를 공격하려던 무림고수들이 지형의 이점을 업은 저놈들에게 무참하게 패한 적이 벌써 네 번입니다."

 

  "죽을 사(死)가 지났으니 이젠 끝입니다. 자, 어서 가서 정리하고 내려가야지요."

 

  "대협! 저도 갑니까?"

 

  조심스런 길지경의 말에 소천악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길 형은 멀리 떨어져서 쓰러지신 분들이나 질질 끌어오시구려."

 

  "네, 대협!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지요."

 

  기쁨에 찬 길지경의 내심은 관심 없이 소천악은 묵묵히 산채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 한참 입씨름에 여념이 없던 둘 중 하나가 먼저 봤다.

 

  "어? 저건 뭐 하는 물건이야?"

 

  동료의 말에 고개를 돌린 다른 녹림도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아무리 봐도 일행이 없는 게 산을 넘어가는 중에 길을 잃었나 보네."

 

  "흐흐, 재수도 더럽게 없는 놈이네. 기껏 찾아온 곳이 염라전인 줄 모르겠지?"

 

  "그러게. 얼래? 저놈이 이리로 오네."

 

  "심심한데 데리고 놀다가 목이나 댕강 썰어버리자고."

 

  "그러자. 뭐 안에 연락할 일도 없이 우리 손에서 해결하자고."

 

  두 녹림도는 재미있는 일거리를 찾은 기분으로 성큼 다가서는 소천악을 바라봤다. 이윽고 바로 눈앞에 다가선 소천악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 녹림도가 협박 투로 말을 꺼냈다.

 

  "뭐 하는 놈이냐?"

 

  "여기 노양산 산채 맞소이까?"

 

  "뭐라고? 아니 이놈이 실성을 했나! 감히 녹림호걸이 계시는 산채인 줄 알고 겁도 없… 컥!"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녹림도는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옆에서 웃던 동료도 마찬가지로 몽둥이에 맞아 기절했다.

 

  소천악은 귀찮게 떠드는 두 놈을 단매에 기절시킨 채 뒤를 향해 소리쳤다.

 

  "길 형! 이제부터 쓰러지는 놈을 모두 산채 중앙으로 끌어 오슈."

 

  "네, 대협!"

 

  멀리서 따라오던 길지경은 슬쩍 휘두른 몽둥이에 녹림도 두 명이 힘도 못 쓰고 쓰러지는 장면에 절로 힘이 철철 넘쳤다.

 

  어기적거리던 걸음이 비호같이 빨라지며 얼른 쓰러진 녹림도의 팔을 잡고 질질 끌며 산채로 들어갔다. 이미 소천악은 길지경을 무시한 채 산채로 빠르게 들어섰다.

 

  산채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수십 채의 오두막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만만치 않은 녹림도가 우글거린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줬다.

 

  소천악은 거침없이 산채 중심부로 걸어갔다. 낯선 얼굴이 나타나자 잠시 의아했던 녹림도들은 발길을 따라 점차 주시하는 눈이 늘어갔다.

 

  소천악은 산채 중앙에 있는 조그만 단상 위에 성큼 올라선 후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역시 길지경이 말한 대로 인상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백여 명의 남자들이 흉악한 눈빛을 부라리며 자신을 쏘아보았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내력으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웅장하면서도 왠지 모를 적대감을 싣고 산채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들으시오. 여러분들은 기본적으로 나쁜 분들이시오."

 

  "저거 뭐 하는 놈이냐?"

 

  어이없다는 듯 소천악을 바라보는 녹림도들을 무시한 채 소천악은 연이어 섬뜩한 단어를 토해냈다.

 

  "그런 고로 일단 두들겨 맞고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저런 미친놈이!"

 

  녹림도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는 순간 소천악은 이미 허공에 몸을 날려 손에 든 몽둥이를 돌개바람처럼 빙빙 돌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매처럼 내리꽂혔다. 두 눈 멀거니 뜨고 바라보던 녹림도들이 섬전 같은 소천악의 몸놀림에 놀라 막 뭐라 외치려 했으나 이미 몽둥이는 머리에 사정없이 강타했다.

 

  퍼퍼퍽.

 

  "크아악!"

 

  "켁! 내 머리!"

 

  단말마의 고통스런 비명이 터지며 수수깡처럼 녹림도들이 머리를 격중당해 땅에 퍽퍽 쓰러졌다. 삽시간에 십여 명의 녹림도가 기절하자 멀리서 실실 비웃던 귀혼마 채주가 경악한 채 소리쳤다.

 

  "보통 놈이 아니다. 모두 포위해서 합공하라."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쉴 새 없이 녹림도를 때려눕히던 소천악이 바로 응수했다.

 

  "보통 분은 당연히 아니지요. 오늘 여러분들은 날 잡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저항하시구려. 빌빌거리시면 이 몸이 더욱 열받소이다."

 

  차갑게 말한 소천악은 몰려 있는 녹림도 쪽으로 파고들었다. 번쩍하는 사이 이미 코앞에 나타난 소천악을 보며 녹림도들이 기겁한 채 외쳤다.

 

  "쳐 죽여… 컥!"

 

  이미 머리를 세차게 맞은 한 녹림도가 힘없이 쓰러졌다.

 

  "버릇없으신 분들은 몽둥이찜질이 약이지요."

 

  바로 녹림도들이 살기를 드러내며 소천악을 갈기갈기 찢을 듯 밀려들었다 소천악은 이미 연환보를 시전해 마치 몸이 둘인 양 희미한 잔영을 남기며 밀려오는 검을 슬쩍 피하며 가공할 속도로 몽둥이를 휘둘러 갔다. 연신 격타음이 들리며 옆에 있던 녹림도들이 픽픽 쓰러졌다.

 

  이미 신명이 난 소천악은 가차 없는 손속으로 덤벼오는 모든 녹림도들을 일인당 딱 한 방으로 박살냈다.

 

  정확히 일격에 딱 한 명씩 땅바닥을 굴렀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바닥에 드러눕는 녹림도들이 늘어만 갔다. 모두 머리나 가슴에 시퍼런 자국이 생긴 채 기절한 상태였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점차 안색이 누리끼리해진 귀혼마가 급히 외쳤다.

 

  "멈춰라."

 

  "싫소이다."

 

  뉘 집 개가 짖냐 식으로 무시한 소천악은 빠르게 몽둥이를 종으로 횡으로 현란하게 움직이며 녹림도들을 때려눕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덤비는 녹림도보다 피해 다니는 자가 늘어갔다. 이건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개 녹림도가 강호에 위명을 떨치는 소천악을 제압한다는 게 사실 꿈이었다. 바라보던 귀혼마의 안색이 시꺼멓게 변해만 갔다.

 

  아무리 그라 해도 저런 무공을 감당할 자신이 별로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에 점차 기가 질려갔다. 잠시 생각하다 이내 입술을 질끈 물고 옆에 있던 부채주를 불렀다.

 

  "합공하자."

 

  "네, 채주님! 대단한 놈이군요."

 

  눈빛만으로 의견을 교환한 두 사람은 날뛰는 소천악의 빈틈을 찾아 노렸다. 어느 순간 귀혼마의 안광이 번뜩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쳐라."

 

  "죽어라, 이놈!"

 

  두 사람은 하나처럼 몸을 날려 직선으로 쭉 뻗어갔다. 그들의 손에는 시퍼런 검광을 발하는 두 자루의 검이 소천악의 가슴과 배를 노려왔다.

 

  "후후! 그럴 줄 알았지. 이게 빈틈이 아니고 지옥의 아가리임을 몰랐지요."

 

  섬전같이 몸을 회전하며 허공으로 치솟은 소천악이 마치 돌개바람처럼 거세게 두 사람과 마주쳐 갔다.

 

  퍽퍽! 빠각!

 

  살 터지는 소리와 머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귀혼마와 비혼이 각각 머리와 가슴을 얻어맞고 땅에 떨어졌다. 가공한 쾌가 담긴 몽둥이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제압되었다.

 

  다시 고개를 돌린 소천악은 남은 녹림도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머리를 두들겨 패 모조리 기절시켰다.

 

  기절한 귀혼마 등에게 다가가 대혈을 짚어 무공을 폐쇄하는 일까지 마친 후 천천히 허리를 폈다.

 

  일을 마친 후 단상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는 소천악에게 길지경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말문이 막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힘없이 널브러진 산적 떼를 바라봤다.

 

  신의괴협이란 위명을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까 그가 말한 자신감이 왜인지를 절실히 느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귀혼마 등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으르렁거리듯 입을 열었다.

 

  "모두 깨우시오!"

 

  "아니 어떻게 정신을 차리게 하지요?"

 

  "물을 쫙 뿌려주시구려."

 

  길지경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얼른 물동이를 집어 들고 기절해 있던 귀혼마를 비롯한 녹림도에게 물벼락을 안겨주었다.

 

  "어푸푸!"

 

  심장이 멈출 듯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귀혼마를 처음으로 모든 산적들이 정신을 차렸다. 잠시 어리벙벙하던 귀혼마는 상황을 깨닫자 노호성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감히 네놈이 우리를!"

 

  "마지막 경고외다. 다시 한 번 반말이나 욕설이 나오면 세상 그만 살고 싶다는 뜻으로 알고 가차 없이 황천길로 보내겠소. 이미 모든 분들의 무공은 폐쇄되었으니 까부시다가 뒈지고픈 분은 서슴없이 앞으로 나서시오."

 

  "헉, 무공 폐쇄를!"

 

  놀란 건 귀혼마뿐만이 아니고 전 녹림도가 아득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여태껏 자신들이 저지른 패악을 추궁한다면 목이 열 개라도 살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소천악의 입이 다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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