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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0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05화

 

  그 지독한 냄새에 이마를 찌푸리던 그는 바로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해가 떨어지고도 한참이 지나 밤이 깊어갈 무렵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그는 목욕을 마치고 바로 방에서 벗어났다. 손에 쥔 검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제4-1장 복수의 장

 

 

 

 

 

  알지 못할 분노를 가슴에 담은 소천악은 서둘러 걸음을 낮에 간 장원으로 옮겼다. 한땐 자신이 살던 집이었지만 이제는 타인의 소유가 된 곳을 찾아가는 마음이 착잡했다. 밤은 벌써 깊어 거리에는 사람들의 기척이 없다시피 했다.

 

  설령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지금의 기분으로는 별로 개의하고프지도 않았다. 그런 하찮은 걱정에 신경을 분산시킬 만큼 편안한 마음이 아니다.

 

  "감히 아버지를 무시해? 아주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장원이 시야에 보이자 소천악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법을 펼쳐 스며들듯이 은밀하게 장원 안으로 남몰래 파고들었다. 절정의 몸놀림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자 어느새 그의 몸은 장원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를 바람처럼 스치며 움직여 갔다.

 

  옆에서 누가 눈을 부라리고 쳐다봐도 전혀 흔적을 눈치채기 힘든 절정의 신법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장원 안에 유일하게 서 있는 높이가 십여 장에 이르는 나무 꼭대기에 두 발을 걸치고 서 있는 소천악이다. 산들바람에도 일렁이는 그야말로 가냘픈 가지 위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겨우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의 나뭇가지가 철벽처럼 그의 몸을 지탱했다. 백 근이 훨씬 넘는 몸무게를 가냘픈 나뭇가지가 지탱하는 건 자연의 이치에 안 맞는 모습이다. 가히 절정을 넘어서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무공경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소천악의 눈은 쉴 틈 없이 장원 내부를 샅샅이 훑어갔다. 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 부모님의 침소를 기억하자 바로 몸을 날렸다.

 

  중앙부에 있는 커다란 전각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천리지청술로 전각 내부의 소리를 남김없이 귀로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에 야릇한 음성이 들렸다.

 

  "이런 제길! 오나가나 재미 보는 소리만 들리네. 이것들이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불만을 토로한 소천악의 신형은 미끄러지듯 전각 내로 스며들어 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다가섰다. 아무런 기척 없이 문을 슬쩍 열고 몰래 방 안으로 들어선 소천악은 눈꼴시는 장면을 보기 싫어 일부러 딴청을 피우며 시간을 끌었다.

 

  이윽고 귀를 괴롭히던 소리가 조용해지며 나직한 남녀의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먼저 여인의 아양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좋았어요."

 

  "하하! 뭘 이 정도 가지고 수선을 피우느냐?"

 

  자부심이 그득한 남자의 굵은 목소리에 이어 애간장을 녹이는 여인의 사탕발림이 여지없이 이어졌다.

 

  "소첩은 하늘을 붕붕 날다가 내려온 기분이옵니다."

 

  "흐흐! 나도 너와 함께라면 무릉도원에 가는 느낌이니라."

 

  어둠을 한낮같이 바라볼 수 있는 소천악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나이가 맞지 않는 어색한 사이로 느껴지는 남녀가 보였다. 남자는 분명 낮에 본 장주가 분명한데 여자는 아무리 많이 봐줘도 이십대를 갓 넘긴 것으로 느껴졌다.

 

  나신을 드러낸 여인은 우윳빛 살결에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나름대로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였다.

 

  특히 몸매가 보들보들한 게 여러 남자 울렸음 직했다. 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에서 농염한 유혹이 가득 담겨 나왔다.

 

  소천악의 예상대로 남자는 장주인 길완청(吉婉淸)이었다. 소가표국이 망한 후 장원을 인수해 사업 수완을 발휘해 많은 이익을 남겼다. 나름대로 일류고수의 기운이 풍겨 나왔으나 소천악의 눈에는 가소로운 무공경지임은 뻔했다. 생각하기도 귀찮은 소천악이 몸을 번뜩이며 침대 위로 섬전같이 날아갔다.

 

  손끝에서 끌어올린 내력이 뿜어져 나가며 아지랑이 같은 실선이 길완청의 전신대혈을 송골매가 급강하해 먹이를 노리는 동작처럼 재빨리 찔러갔다.

 

  "헉, 어떤 놈이 감히!"

 

  섬뜩한 기운에 경악한 길완청이 놀라 안간힘을 쓰며 몸을 침대 옆으로 굴렸으나 소천악의 공격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부드럽게 유선을 그리며 움직인 손가락이 어김없이 길완청의 대혈을 정확히 점혈하자 곧바로 몸이 딱딱한 나무토막으로 변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소천악의 다른 한 손은 이미 침대 안에서 놀라 눈을 크게 뜬 여인의 수혈을 가볍게 제압해 깊은 잠으로 빠뜨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을 제압한 후 소천악은 부드럽게 침대 옆에 자리했다.

 

  아무 말 없이 제압한 아혈을 풀어주자 길완청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바로 흘러나왔다.

 

  "누구냐?"

 

  "바보 같은 소리 마시지요. 내가 누군지 밝히고 싶다면 미쳤다고 복면을 뒤집어쓰고 왔겠소이까?"

 

  차갑게 대꾸하는 소천악의 말투에는 잔뜩 악의가 실려 나왔다. 긴장한 길완청은 길보다 흉이 많은 일진임을 인정하며 나름대로 노련한 강호인답게 곧 말투를 바꿨다.

 

  "좋다. 이러는 영문이나 말해 봐라. 은자냐?"

 

  "제가 원래 말 많은 분을 안 좋아합니다. 도대체 왜 당신께서 질문을 하고 내가 대답을 해야 합니까? 칼자루를 쥔 사람은 나요."

 

  "커험!"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는 장주에게 소천악은 비정하게 말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겠소이다만 한마디만 하죠. 아무 영문 없이 구타당하면 장주님도 억울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두들겨 패는 제가 더 억울하오이다. 이유는 말해 주기 싫고 하니 잔소리 말고 일단 맞고 시작합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사정없이 장주의 몸에 손과 발을 날려 무차별로 구타하는 소천악이다. 마치 신들린 듯 거칠게 연타로 두들겨 팼다.

 

  퍽! 빡! 퍼퍼퍽!

 

  "크으악! 왜 이러는 것이냐? 이유를 말… 컥!"

 

  통증을 가장 많이 느끼는 경혈을 중점적으로 두들겨 패는 통에 갑자기 얻어맞는 장주는 혼이 반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소천악은 십 년 이상 쌓인 울분을 주먹과 발에 실어 얼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두들겨 패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만약 장주가 비명을 지르지 않고 버티면 제 기분이 아주 나빠질 거 같으니 돼지 멱따는 소리라도 지르시구려. 뭐 사내대장부니 뭐니 하면서 오기로 참겠다면 그리하시든지요."

 

  말하면서도 쉬지 않고 길완청의 전신을 아주 즈려밟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복날 개 얻어맞듯 두들겨 맞았다.

 

  "크헉! 그만!"

 

  온몸을 비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장주를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동자는 새하얗게 빛났다. 극도로 분노한 기색이 역력한 채 들은 척도 안 하고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팼다.

 

  "죽으시오! 에잇, 패도 패도 분이 안 풀리네요."

 

  "허헉, 그으만……."

 

  "누구 마음대로 그만이십니까? 턱도 없는 소리 마시지요."

 

  차갑게 말하며 소천악의 주먹이 턱으로 날아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격타했다.

 

  "으아아! 왜 나를!"

 

  "이유 없이 패면 미친놈이지요. 다 이유가 있으니 당장은 억울해도 맞으시구려."

 

  "이런, 개 같은 경… 컥!"

 

  악을 쓰는 길완청의 입에 왼발을 들입다 질러 말문이 막혀 컥컥대는 길완청이다. 단번에 이가 두 대 부러져 옥수수 떨어지듯 방바닥에 굴러다녔다. 구타 소리와 비명이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무려 반 시진을 지속한 구타였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소천악이 쓰러져 신음소리를 내며 끙끙대는 길완청에게 툭하니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이다. 왜 그리 사신 게요?"

 

  "……."

 

  말문이 꽉 막히며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길완청이 멍하니 소천악의 복면을 쳐다봤다. 소천악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리 잘 산 거 같지는 않아 부담 없이 다시 두들겨 팰 수 있겠군요."

 

  주먹을 들고 다가서는 소천악을 바라본 장주가 놀라 소리쳤다.

 

  "도대체 영문이나 알고 맞아도 맞읍시다."

 

  "지금 내 기분이 아주 착잡합니다. 오늘은 아무 소리 마시고 일단 다시 두들겨 맞으시지요."

 

  "아니 이런 경우가!"

 

  놀란 길완청이 급히 소리치자 소천악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서서히 다가와 두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해 거칠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빡!

 

  살을 뭉개고 뼈를 가격하는 소천악의 손길에는 추호의 인정미도 보이지 않았다. 복면 안에 무표정한 얼굴로 정확히 길완청의 급소를 살짝 피하지만 고통이 극심한 부위를 집중 난타했다. 점점 길완청의 얼굴과 온몸이 시퍼런 색으로 변해가다 아예 검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인 길완청이 외마디 비명처럼 소리쳤다.

 

  "크으악,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러는 것이냐?"

 

  "오늘은 말하고 싶지 않소이다. 보아하니 장주님도 인생 꼬이게 사신 듯하니 그냥 맞으시구려. 때리는 나도 지금 기분 같아서는 단방에 요절을 내고 싶지만 참고 있으니 더 이상 비위를 건들지 마시구려."

 

  손발이 바로 옆에서 봐도 보이지 않는 쾌속한 구타가 또다시 반 시진을 이어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복면인에게 죽도록 얻어맞는 길완청은 죽을 맛이었다. 도무지 영문도 모르고 개 패듯 두들기는 복면인에게 처음에는 증오가 밀려왔으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독기보다는 공포심이 일었다.

 

  인정머리라곤 약에 쓰려도 찾아볼 수가 없는 인간이란 사실이 더욱 가슴에 두려움을 심어줬다. 미치고 환장할 일은 어떻게 때리는 손속이 처음이나 나중이나 전혀 변함없는 강도로 날아와 같은 고통을 심어준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같은 무림인의 입장에서 그 절묘한 손속에 절로 소름이 끼쳐왔다. 눈앞에 별이 수십 개가 번쩍이며 극통에 시달리던 길완청은 서서히 자존심이란 게 사라져 갔다.

 

  분이 안 풀리는 듯 소천악은 벌떡 일어서서 두리번거리다 안광을 빛내며 탁자 위에 있는 작은 목함을 들고 다가와 다짜고짜 길완청의 입 주위를 무차별로 찍어댔다.

 

  "이놈의 입이 항상 말썽이지요. 에라, 뭉개져라."

 

  "으읍!"

 

  연약한 살로 이뤄진 입이 목함의 가차 없는 구타에 이겨낼 리가 없었다. 이내 입 주위는 처참하게 뭉개져 갔다.

 

  딱 반 시진이 지나자 소천악의 가공할 구타는 뚝하니 멈췄다. 순간의 기회를 포착한 길완청의 입에서 애절한 하소연이 나왔다.

 

  "으허억, 제발 그만 하시구려. 무언지는 몰라도 내가 잘못했소이다."

 

  평소에 위엄을 과시하던 그의 입에서 설설 기는 애원이 나와도 소천악은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고 씹어뱉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가지요. 단 해가 뜨고서도 또 내 비위를 건드리신다면 다시 찾아오리다. 경비무사를 더 배치해도 좋고 절정고수를 불러와도 됩니다. 단 그런 경우에는 정확히 오늘의 고통이 배로 늘어날 것만 각오하시면 됩니다."

 

  "안 하겠소. 약속하리다."

 

  "그거야 장주님 마음이고 난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니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여기가 오늘의 교훈 끝이 아니외다. 마지막 접대가 남았으니 잘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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