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0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02화
"음! 이런."
노련한 강호경험을 가진 지공타가 소천악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더 이상 복면인들을 공격하면 전멸이야 시킬 수있지만 자기들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할 판이다. 막판에 수하를 잃고 집마부로 돌아가면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마지못해 고개를 흔들며 소리치는 지공타다.
"모든 집마부 고수들은 뒤로 물러가라."
"우리 사존맹 고수들도 물러가라."
뒤를 이어 상황을 눈치챈 사존맹의 요문탁 당주의 말이 잇따르자 이미 싸움판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바라보던 소천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 그만하고 물러가시지요. 여기 여러분들의 지휘자는 내가 깨워 보내리다."
말과 동시에 그의 손은 현란하게 궁지유의 전신대혈을 쳤다.
"크윽!"
비명을 지르며 아픔을 호소하는 그를 보며 복면인들에게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했다.
"어서 와서 이분을 데려가시오."
복면인들은 잠시 주춤대는가 싶더니만 이내 다가와 얼른 궁지유를 업고 가려 했다.
"잠시, 이것도 가져가 높으신 분에게 전해주시오. 그리고 이젠 제발 다시 만나지 맙시다. 이거 전생의 악연도 아니고 만났다 하면 목숨 걸고 싸우려니 사실 이젠 귀찮소. 이 말도 꼭 전해주시오."
어제 심자앙이 준 서찰을 조용히 건네주자 주춤거리며 받아든 복면인이 대답했다.
"알겠소이다."
감히 반말을 하지 못하고 복면인들이 궁지유를 데리고 물러서자 소천악이 요문탁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무래도 지공타 쪽은 영 미덥지가 않았다. 수틀리면 공격할 낌새라 영 불안한 터였다.
눈짓의 의미를 얼른 알아챈 요문탁이다.
"길을 열어줘라."
그가 묵묵히 수하들에게 길을 열라 지시하자 포위망 한 틈이 조용히 열렸다. 복면인들은 올 때 의기양양했던 것과는 상반적으로 풀이 잔뜩 죽어 동료들의 시신을 챙겨 바람처럼 사라졌다.
"와! 이겼다!"
그제야 사존맹과 집마부 고수들의 환성이 들렸다. 뒤에서 지키던 흑마전과 혈살막 고수의 안색에도 안도감이 맴돌았다. 사방을 둘러보며 피해를 살펴보던 소천악의 귀에 말소리가 들렸다.
"대주님! 수고했소이다. 덕분에 우리 피해가 불과 이십여 명에 그쳤소이다. 자칫하면 큰 피해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대주의 은덕이오."
좀처럼 공치사를 하지 않던 요문탁의 입에서 칭찬이 흘러나왔다. 빙긋 미소를 짓던 소천악이 겸손을 떨었다.
"아닙니다. 이건 다 우리 심자앙 수석책사와 책사님들이 애쓴 결과입니다."
만족스런 미소가 서로에게 오갔다. 그 후론 아무도 일행을 공격하려 하는 낌새조차 없었다.
평온한 며칠간의 여행이 지나가자 드디어 국경을 지키는 요새를 눈앞에 뒀다.
마침내 중원 땅에 다시 돌아오자 모든 이의 시선에는 감개무량한 빛이 역력했다. 어렵고 어려운 대장정의 끝이 보였다.
"으하하! 중원이다!"
"왔구나. 크하하하!"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이의 입에서 통쾌한 웃음이 흘러나오자 마치 전염병처럼 일행 모두에게 퍼져갔다.
소천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로 멀고도 먼 천축길을 다녀온 게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별로 좋은 사이도 아니었던 관무평 사신에게 말을 건넬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관 대인! 이제 중원입니다. 원로에 고초가 크셨습니다."
"허허! 이게 다 소 대주의 힘이란 걸 잘 아오. 참으로 크나큰 신세를 졌소이다. 내 황제 폐하께 이런 내막을 자세히 말씀드리겠소이다."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관 대인도 결코 소인배가 아니었다. 어려운 임무를 무사히 마치게끔 해준 소천악의 공을 깎아내리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하하! 그동안 제가 마음 상하게 한 점이 많았을 겁니다. 다 안전한 여행을 위한 것이었으니 넓게 생각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지나고 보니 소 대주의 말이 하나도 그릇됨이 없더이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오이다."
덕담이 오갔다. 고향을 찾아온 이의 마음은 이처럼 여유로 넘쳐흘렀다.
며칠 동안 움직이는 동안 마중 나온 지방관리의 융숭한 접대를 받으며 일행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천성(四川省)에 이르자 일행은 마음을 푹 놓고 경치를 즐기며 서서히 북상했다.
얼마 후 조용히 찾아온 요문탁 당주와 지공타 대주와 밀담을 나누는 소천악이다.
"소 대주님! 이제 우리는 상단을 이끌고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꺼내는 요문탁의 얼굴은 밝게 빛났다. 옆에 있던 지공타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소기의 목적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둔 터라 얼굴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참으로 기나긴 세월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하하! 물론이오. 다시 보면 내 크게 술 한 잔 대접하리다. 날 잡아 꼭 우리 사존맹에 오시오. 맹의 귀빈으로 대접하겠소이다."
"껄껄. 우리 집마부에도 안 오시면 서운하오이다."
요문탁과 지공타의 인사말을 들으며 소천악이 밝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시간 나면 꼭 들르지요."
화기애애한 인사를 나누며 사존맹과 집마부의 고수들이 총총히 길을 떠났다. 길고 긴 천축 여행을 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알지 못할 정마저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들이 떠나자 소천악도 관무평 대인과 헤어질 시간이 온 걸 직감했다. 미소를 지으며 관무평에게 간 그가 아쉬운 듯 말했다.
"관 대인, 이제 우리도 떠날 시간입니다. 이제부턴 별 위험이 없을 듯하니 안심하고 가려 합니다."
"오, 수고하셨소. 아무리 그래도 황상 폐하는 뵈어야……."
"이미 떠나기 전에 폐하와 이야기를 나눈 겁니다. 저 같은 야인이 또다시 언감생심 폐하를 뵈오리까."
겸양을 떠는 소천악의 내심을 짐작한 관무평은 더 이상 강권하기가 어려운 걸 느꼈다.
"알겠소이다. 가서 소 대주의 혁혁한 공을 황상께 아뢰지요."
"하하! 고맙소이다. 가는 길에 이걸 악관필 대장군에게 전해주십시오."
품속에서 고이 간직한 서찰을 꺼내 관무평에게 전해주는 소천악이다.
"염려 마시오. 내 반드시 전해주리다. 다음에 장안에 올 일이 있다면 꼭 들르시구려."
"그러지요. 초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부디 승승장구해 대승상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허허! 대승상이라. 말만이라도 고맙소이다."
덕담에 입이 귀에 걸린 관무평이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그는 소천악과 헤어진 이후 지방을 관할하는 절충도위의 엄중한 호위 속에 장안으로 돌아갔다.
임무를 무사히 마친 후라 벼슬이 올라갈 건 물론이고 앞길이 탄탄대로인 기분이 들었다. 황상을 배알한 후 악관필에게 남몰래 소천악의 서신을 전해줬다. 악관필은 서슴없이 서찰을 쫙 펴고 읽어내렸다.
<악관필 대장군님 귀전.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합니다.
이번 천축행은 들으신 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황명에 따라 왕자를 볼모로 보내는 걸로 제 소임은 다한 걸로 사료됩니다.
이제는 관직에서 벗어나 야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약속하신 거니 별말씀 없으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유능한 인재들의 명단을 첨부하오니 잘 포상해 주도록 도와주십시오. 정 황제 폐하가 거부하시면 없던 일로 해도 좋습니다. 그럼 천소에게 안부 전해주시고 길 가다 한가하면 들르지요.
소천악 배상.>
"허허! 역시 인물은 인물이야. 황궁이란 울타리도 좁다 이거군. 한번 지켜보겠네. 어떤 행보를 보일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악관필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제3-8장 수구초심(首丘初心)
한편 심자앙과 종천리, 두 사람과 깊은 밀담에 들어간 소천악이다. 어디로 보나 많은 정을 주고받은 사이라 특별히 불렀다.
"심 책사님! 그리고 종 막주님! 이제 전 잠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두 분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대주님! 이미 우리 둘과 모든 이들은 대주님과 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책임지십시오."
단호하게 대꾸하는 심자앙의 말에 기겁한 소천악이 소리를 뻑 질렀다.
"헉! 책임이요?"
막무가내로 덤비는 두 사람을 보고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리 자신을 믿어주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함께 움직이기는 정말 싫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소천악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일단 온 대인 상단에 몸을 의탁하고 기다리세요. 하던 일 마무리하고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지요."
절대 협상은 없다는 의지를 읽은 두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기다리지요.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 마십시오."
"하하! 설마 호호백발이 돼서야 가겠습니까? 자,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을 짓죠."
이후 온 대인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우군이 늘어나는 일에 반대할 리가 없는 그가 두 손 들고 찬성함으로써 일이 마무리되었다.
모든 인연을 떨쳐버린 소천악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시 여정에 올랐다. 다시는 황궁 쪽으로는 오줌도 누고 싶은 마음도 안 들 정도로 지긋지긋했다.
"제기랄! 권력이 뭐가 그리 좋다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면서 머리 빠지게 사냐?"
투덜거리는 말이 곧 그의 마음이다.
객잔에 든 소천악은 그동안 굶주렸던 위장에 나른한 포만감을 잔뜩 선사한 후 사천성에 있는 하오문을 찾아 불쑥 들어갔다.
"안녕하시오. 나 소천악이라고 하외다. 지부장님을 뵙게 해주시오."
"헉! 소천악 대협이라고요?"
"응? 대협이라니요? 소협입니다."
하오문도는 용모파기에 그려진 얼굴과 판박이인 소천악을 확인하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만나뵈어서 영광입니다. 자, 이리로 오시지요. 바로 능철위(凌鐵僞) 지부장님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인 소천악이다. 황망 간에 하오문도를 따라 들어간 곳은 접견실이었고 이내 사라진 문도를 따라 얼마 안 지나 지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정신없이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소천악 대협!"
"아니, 지부장님도 대협이라 부르시는 게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미 강호무림에는 대협의 위명이 자자합니다. 천축에서 보여준 무위가 소문을 타고 퍼졌습니다."
능철위 지부장의 설명이 이어지자 환한 미소를 짓는 소천악이다.
"오호!"
내심 기분 좋은 기색을 애써 숨기는 소천악에게 능 지부장의 조심스런 다음 말이 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 안 좋은 건 대협의 별호가 일부에서 바뀌어 불리고 있다는 겁니다."
"네? 별호가 바뀌었다고요? 그래, 뭐로 호칭하는지요?"
기대감이 충만한 기색으로 묻는 소천악을 보며 능 지부장은 툭하니 나온 실언에 가슴을 쳐야 했다.
"그게……."
"어서 말씀해 보시오. 그래, 강호무림 동도들이 절 뭐라고 부르는지요?"
거듭되는 독촉에 할 수 없이 말을 꺼내는 능 지부장이었다.
"휴우, 이제 대협은 강호무림에서 아수라협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아수라협? 그게 무슨 뜻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