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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9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95화

 

  "알겠습니다. 일단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염려 마세요. 금방 다녀오리다."

 

  피식 웃음을 짓고 일어선 소천악은 마라십존자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정사 무림인들은 구심점을 잃고 다시 으르렁거릴 조짐이 보였다. 언제 충돌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건 관무평 사신과 상인들뿐이었다.

 

  포달랍궁 고수와 혈살막, 그리고 흑마전 고수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유롭게 바라볼 뿐이다. 겨우 하루 동안에 바로 피를 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여러 번 나왔지만 심자앙 수석책사의 회유로 겨우 겨우 넘어갈 정도였다.

 

  등골에 일각이 멀다 하고 식은땀이 배어져 나온 심자앙이 종천리에게 하소연했다.

 

  "종 막주님! 대주님은 언제 돌아오실까요?"

 

  "그건 하늘만 아시지요."

 

  약올리듯 말하는 종천리를 당장에라도 두들겨 패고픈 심정이지만 무력에선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으니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그렇게 심자앙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무렵 마침내 소천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소뢰음사와 대뢰음사의 고수들이 수백 명 따라오는 장관이 펼쳐졌다. 어이없이 바라보던 심자앙이 중얼거렸다.

 

  "이건 도대체! 갔다 하면 고수들을 떼거리로 데려오니! 이러다 새로운 천하의 강파 하나 나오겠네."

 

  "흐흐! 소 소협이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해 뵈지도 않소이다. 다만 별로 뜻이 없어서 그렇지. 이보시게, 우리가 잘 설득해서 한번 천하를 웅비해 볼 생각은 없는가?"

 

  달콤한 사탕발림을 하는 종천리의 말에 내심 웅심이 타오르는 심자앙이다.

 

  "멋진 생각입니다. 사내대장부로서 천하를 주름잡는다는 거, 그거 가슴이 불타오르죠."

 

  "잘해봅시다. 지금은 비록 소 대주께서 별 관심이 없다지만 세월이 가면 그 마음도 바뀔 겁니다."

 

  "글쎄요."

 

  아직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대답하는 심자앙이다. 머리가 좋은 그는 이미 소천악의 내심을 간파한 터였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그의 마음이었다.

 

  소뢰음사와 대뢰음사의 고수까지 합류하자 이때까지 제일 강대한 세력을 가졌던 사존맹과 집마부의 위상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소천악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도 찬밥으로 변할 위기에 놓이자 절로 안색이 변하는 요문탁과 지공타였다.

 

  세력으로 볼 때 포달랍궁을 위시한 세 문파의 연합세력을 상대하기란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은연중에 최고 실력자로 부상한 소천악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덕분에 정사 무림인들은 반목할 틈도 없이 소천악의 눈치를 살피고 경계하느라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소뢰음사의 혈불단과 대뢰음사의 제마불단 고수들은 일류를 넘어선 고수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절정에 이른 고수만도 무려 이십 명이 넘는 터였다.

 

  실로 중원의 정사양도와 포달랍궁과 소뇌음사 그리고 대뢰음사의 고수들이 포진한 관무평 사신 일행은 명실 공히 움직이는 천하의 초강세가 되었다.

 

  제아무리 강파라 해도 감히 덤빌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대한 세력이었다.

 

  중간에 철없는 마적 떼가 숫자를 믿고 습격했다 순식간에 전멸당하는 일이 두어 번 있은 후에는 발 없는 소문이 퍼지고 퍼져 아무도 얼씬하지 않았다.

 

  습격이 사라지자 행렬은 마치 소풍 나온 이들처럼 한가하게 경치구경을 하면서 각국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천축으로 가는 길에 있던 성도를 지날 때마다 상인들은 중원에서 가져온 특산물을 팔거나 물물교환을 해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 이익의 삼 할을 포달랍궁과 대뇌음사 그리고 소뇌음사에 공평히 분배하니 각파에서 파견된 고수들도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더 상단호위에 전력을 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문파마다 할당된 일 할의 수익금은 실로 엄청났다. 희귀한 중원의 물품은 천축이 가까워질수록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다. 눈이 돌아갈 만큼 은자가 주어지자 약간의 경계심마저 무너진 세 문파의 고수들은 윤택해진 자파의 입지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마치 자신들의 상단처럼 철두철미하게 호위하니 거래하는 상단도 괜시리 위축되는 걸 느꼈다. 어이없는 거래를 요구하다 하루아침에 시체로 변할 것 같은 위기감마저 느껴 애써 정당한 거래에 노력했다. 그렇게 해도 많이 남는 장사였기에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변방의 강파고수들이 모두 오로지 소천악만 신뢰하니 상인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상의했다. 소천악은 이 점을 이용해 온 대인 상단에게 애로사항을 일임하는 재주를 부려 점점 더 온 대인 상단의 입지가 확고해지고 입김이 세졌다.

 

  상단에 칠 할 이상 암중의 지분을 가진 소천악의 부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늘어만 가 이젠 주판으로 두들기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재산이 늘어 이대로라면 중원에서 손꼽히는 거부 대열에 합류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신단도 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포달랍궁과의 충돌 이후 기습 걱정은 아예 잊어버린 채 본연의 임무인 각국의 왕과의 교류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더구나 변방 강파의 지지를 받는 사신단을 홀대할 왕국은 없었다. 왠지 거부했다간 어려움에 처할 것 같은 위기감에 협상은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관무평 대인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점을 인식했다. 점점 더 관무평 대인도 소천악에게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고 그 일을 변방 세력을 통해 풀어냈다.

 

  이 같은 일로 소천악을 해하라는 건성제의 명은 도무지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 관무평 대인은 고민 끝에 밀서를 전서구을 통해 건성제에게 보냈다.

 

 

 

  관무평의 소식을 받아든 건성제는 노발대발이다.

 

  "이런 괘씸한!"

 

  펄펄 뛰는 건성제를 옆에서 달래는 악관필 대장군이다.

 

  "폐하! 이건 대의를 따라야 합니다. 이제 소천악을 죽이면 이번 사신행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말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건성제는 처음으로 그 막강한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자 울화병이 올라올 지경이다.

 

  "대륙을 다스리는 너그러움으로 그냥 이번만은 넘어가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어차피 소천악 그자는 권력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시면 저 혼자 강호를 유람할 게 자명합니다."

 

  "음! 하긴 권력욕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으니. 게다가 죽으라고 보낸 천축행에 오히려 무림강파와 유대관계만 만들어준 꼴이니!"

 

  기가 막혀 말도 더듬는 건성제였다. 그런 그를 살살 구슬리는 악관필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행운이 따르거나 기가 막힌 처세술을 가진 자입니다. 더 이상 적대하면 좋을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에게 덤비는 법입니다."

 

  "맞는 말이오. 알았소. 내 더 이상 그놈을 죽이려 들지 않겠소. 그놈이 무사히 돌아오면 앞일은 대장군이 알아서 적당히 예우해 주시오. 난 개인적으로 그놈 목소리도 듣기 싫소."

 

  "심려 마십시오. 다시는 황상 옆에 안 오도록 조치하지요."

 

  "그러시오. 휴우, 정말 골치 아픈 놈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건성제였다.

 

 

 

  건성제의 한 서린 고함소리는 모른 채 소천악과 일행은 거침없이 천축행을 거듭했다. 전원이 말이나 마차를 이용해 가는 길이지만 멀어도 워낙 먼 길이다.

 

  들르는 왕국이 많아질수록 관무평 대인의 표정은 밝아져만 갔다. 황제의 뜻대로 천축 각 왕국이 호의적이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늘어만 갔다.

 

  그 내막이야 소천악으로선 알 바 아니었다. 다만 상단의 이익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만이 즐거울 뿐이다. 사실 은자야 이제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달픈 천축행에 낙이라곤 오로지 그것뿐이라 그저 즐거워할 뿐이다. 중원에서 만나본 천축 여인들은 보기는 좋았지만 왠지 고약한 몸 냄새가 나는 듯해 영 내키지가 않았다. 덕분에 중원에서처럼 천방지축으로 여인을 찾아다니는 일을 저지르진 않았다.

 

  말에 탄 채 권태롭게 가던 소천악의 눈빛이 섬광을 발했다. 하늘 멀리 전서구 한 마리가 다가서는 걸 보았다. 전서구는 빠르게 그의 손 위에 내려앉았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급히 서찰을 펼쳤다. 소천악이 안배한 무영살막의 비밀 전서구였다.

 

 

 

  <소천악 대주님 귀전.

 

  지금 앞에선 천축을 주름잡는 아수라마궁(阿修羅魔宮)의 정예고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사신단과 상단을 기습할 속셈으로 간파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들을 과시하려는 속셈이지요. 사신단을 박살내 모두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겁니다.

 

  둘째는 실리적인 면인데, 상단을 약탈해 금은보화를 갈취할 목적입니다. 이미 육궁주와 칠궁주가 이끄는 고수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아무쪼록 잘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무영살막주 손두호 배상.>

 

 

 

  내용을 읽던 소천악의 안색이 급변해 심자앙 수석책사를 불렀다.

 

  "심 책사님! 잠시 이리로 와보시지요."

 

  "무슨 일인가요?"

 

  "이 서찰을 우선 보시지요."

 

  건네주는 서찰을 읽어본 심자앙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니, 이거 큰일 아닙니까?"

 

  "큰일은 무슨 큰일입니까! 힘에는 힘! 절충에는 절충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이게 다 심 책사님에게 배운 겁니다. 두고 보시면 압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계토록 하세요. 별일이야 없겠지만 만약을 모르는 거지요. 그리고 저들과 일단 대화를 해봐야 하니 통역도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알려주고 오지요."

 

  다급히 달려간 심자앙에 의해 사실이 알려지자 각파의 고수들은 결전준비를 갖추었고 관무평 사신과 상단들은 경계망 안에 모여 위험에 대비했다.

 

  특히 자파 이름에 도전한 듯한 기분이 든 포달랍궁과 소뢰음사 그리고 대뢰음사 고수들이 격분했다. 당장에라도 쫓아가 요절을 낼 기세였다. 하지만 그들도 아수라마궁의 잔혹한 과거 행각을 볼 때 방심하기는 어려웠다. 아수라마궁은 철저히 피와 힘을 숭앙하는 밀교의 교리를 따라 만들어진 문파였다.

 

  적이 있다는 소식에도 행렬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진을 계속했다. 마침내 아수라마궁이 대기하고 있다는 곳에 당도하자 이미 수백여 명의 아수라마궁도들이 앞길을 턱 하니 막고 모여 차가운 예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소천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 저분들이군요. 갑시다, 심 책사님."

 

  "그러죠, 그런데 우리 둘만 갑니까?"

 

  "아, 둘이면 충분하지요."

 

  심드렁하게 말한 소천악이 말을 채고 나가자 멍한 표정을 짓던 심자앙도 말을 몰고 따라갔다.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 적들에게 닭 잡을 힘도 없는 자신이 다가선다는 건 살 떨리는 두려움이었다. 그런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아수라마궁 고수들 십여 장 앞에 온 소천악이 말하자 심자앙이 바로 통역했다.

 

  "난 건성제 폐하의 명을 받고 천축으로 가는 금위대주 소천악이라고 하오. 기다린단 소식을 듣고 인사차 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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