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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8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88화

 

  "음!"

 

  침음성을 토한 소천악은 더 이상 말을 아꼈다. 말하며 걷는 동안 낭인무사와 흑마전 고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섰다.

 

  "소 소협! 오랜만이요. 하하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낯익은 얼굴이 눈에 보이자 소천악의 눈빛이 따스하게 변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등해린 대협 아니시오. 정말 반갑습니다."

 

  "하하! 이젠 소협이 아니라 대주님이라 불러야겠습니다."

 

  "후후! 객쩍은 소리 마십시오."

 

  손사래를 휘휘 치는 소천악의 모습에 등해린은 전혀 변함없는 걸 보고 마음이 푹 놓였다.

 

  "전에 그렇게 헤어진 후 영 마음 한쪽이 걸려 찝찝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속이 후련합니다."

 

  등해린의 얼굴을 바라보니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핼쓱한 얼굴색이었다. 사실 그는 소천악과 헤어진 후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지우기 힘들어 술로 나날을 보냈다. 이번에 천축행에 청부한 자가 소천악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앞뒤 안 가리고 지원했다.

 

  그의 지원은 많은 낭인무사의 지지를 얻어냈다. 먼저 청부한 사람과의 좋은 관계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신뢰감이 든 낭인무사들이 대거 따라오게 되었다. 작은 인연 하나가 이리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팔자에 없는 동료가 되었네요. 모두 살아 가도록 이 사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주님."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등해린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 소천악이 얼른 손을 저었다.

 

  "대주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 가는 사이로 지냅시다. 또다시 이런 호칭을 쓰시면 화낼 겁니다."

 

  "이런 곳에서는 명령이 최우선입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등해린은 절대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종천리가 앞으로 나섰다.

 

  "등 대협의 말이 백번 지당합니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서는 일체의 사감으로 움직이는 건 모든 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둘이 합공하자 어쩔 수 없게 된 소천악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좋소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존댓말까지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아, 사람 나고 벼슬 났지 벼슬 나고 사람 난 건 아니지요."

 

  "허허! 소 소협도 어지간한 고집이시구려. 그렇게 하십시다."

 

  이번에 등해린이 조금 양보하고 들어갔다.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낭인무사와 흑마전 고수들이 내심 감탄사를 연발했다. 멋진 사나이끼리의 대화를 듣다 보니 웅심이 가슴에서 솟구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 모든 결과가 소천악의 의중에서 나온 행동이다. 소천악은 마음에도 없는 미사여구를 구사하여 순식간에 낭인무사와 흑마전 고수의 마음을 송두리째 휘어잡았다. 이 모든 게 혈사부의 독행강호주유기에서 얻어낸 생생한 경험을 이용한 심리수법이다.

 

 

 

  시꺼먼 속을 하얗게 숨긴 채 소천악은 중원을 벗어날 준비를 서둘렀다. 어차피 뒤에서 따라가는 걸로 결정된 이상 본진이 움직이는 걸 보고 움직여야 했다. 슬쩍 바라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 진여해 장로를 비롯한 무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는 소리가 얼핏얼핏 들렸다.

 

  모조리 무시한 채 소천악은 등해린과 흑마전 고수를 이끌고 온 내당 부당주인 백무연(白務淵)을 불렀다.

 

  "두 분, 잘 들으세요. 이제 곧 살수들이 적의 매복을 찾아내 제거하며 전위에 설 겁니다. 흑마전 고수 분들이 뒤를 이어 진격하시고 낭인무사들은 엄호조로 따라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전주님의 목숨을 걸고 도와드리라는 당부가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보내주신 상인과 일이 잘되어 벌써부터 흑마전의 살림살이가 한결 나아졌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고맙긴요. 다 서로 잘 먹고 잘 살자는 취지에서 나온 일이지요."

 

  겸양을 떤 소천악이다. 그가 지시를 내리자 낭인무사 대열로 돌아간 등해린과 흑마전 고수에게 설명하는 백무연이다.

 

  무림고수들답게 이야기를 듣자 바로 이해한 두 집단은 서둘러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거추장스러운 갑옷은 피하고 독문병기를 휴대한 채 경쾌한 움직임을 보였다.

 

  여분이 충분한 마필을 이용해 기마로 움직이는 탓에 얼굴은 환히 빛났다. 가벼운 무복 차림의 그들은 바로 더 이상 지체함 없이 세외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라보던 소천악이 천천히 몸을 돌려 수석책사에게 지시했다.

 

  "심 수석책사님! 잠시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사존맹과 집마부에서 온 고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듯합니다. 그동안 병사들을 잘 지휘하셔서 별 소란 없이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가능한 한 빨리 다녀오십시오."

 

  "흐흐! 이거 정파 무림인보다 우리 세력이 훨씬 큰 듯해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적들이 조심해야 할 겁니다."

 

  슬쩍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소천악이 무릎도 굽히지 않고 바로 신형을 허공으로 띄워 암암리에 따르는 사존맹과 집마부를 향해 달려갔다.

 

  "오호, 저런 가공할 경신법이!"

 

  "그러게. 저 신법은 소위 절정고수들이란 자들도 함부로 쓰기 힘들다는 거 아닌가?"

 

  남아 있던 낭인무사들이 놀라움에 찬 외침을 자신도 모르게 내질렀다. 그들로서는 평생 처음 보는 가공할 신법이다.

 

  "과연 신의괴협이란 명성은 허명이 아니군."

 

  "그러게 대장이 강하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 하하하!"

 

  "맞아. 살아 갈 확률이 더 커진 거 같네."

 

  낭인무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을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인기척을 찾아 움직이다 보니 숲길을 통해 은밀하게 움직이는 수백 명의 흔적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행렬의 좌우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마부와 사존맹의 고수들이었다. 살며시 그들 앞에 나타나 포권으로 예를 표하며 인사를 건네는 소천악이다.

 

  "반갑습니다.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의 신법에 적지 않이 당황한 요문탁과 지공타 등 두 파의 지휘자들이 분분히 답례해 왔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이번 일의 주역인 소천악 대주님이시구려. 반갑소이다. 사존맹 외당 당주인 구지귀왕 요문탁이 정식으로 인사드리외다."

 

  "후후! 반갑소이다. 나 집마부 흑혈대주 탈혼검 지공타도 인사드리오."

 

  두 사람이 인사하자 소천악은 호의 서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거 구면을 보니 반가움이 배가됩니다. 이렇게 중원에 대명이 자자하신 두 분과 함께 일을 하니 가슴이 든든하오이다."

 

  "별말씀을. 당금무림에서 신의괴협 소천악 소협의 위명을 어찌 감당하겠소이까?"

 

  "하하! 이리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덕담이 오고 가는 화기애애한 자리가 이어지며 요문탁 당주가 입을 열었다.

 

  "허허, 드디어 머나먼 천축길이 시작이군요."

 

  감회 어린 그의 말에 소천악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제 조금만 가면 국경지대를 넘어 세외로 들어갑니다. 일단 국경을 통과하면 모두 행렬에 합류하여 함께 행동하는 걸로 합시다. 그리고 이건 우리 심자앙 수석책사가 고심해서 만든 방어진입니다. 아무래도 무공이 뛰어나신 사존맹과 집마부 고수 분들이 궂은일을 해주셔야 할 겁니다."

 

  서찰을 건네주며 은근히 치켜세워 주는 말에 우쭐한 요문탁과 지공타는 가슴을 탕탕 치며 호기롭게 외쳤다.

 

  "그래야지요. 그나저나 눈엣가시 같은 정파 놈들 꼴을 안 봐도 되니 그건 속이 시원합니다. 우리끼리 뭉쳐서 잘해봅시다."

 

  "후후! 저도 체면이나 차리는 정파는 영 체질에 안 맞습니다. 일단 돌아갈 테니 국경을 지나면 다시 보는 걸로 하죠."

 

  장단을 착착 맞춰주는 소천악이 더없이 미더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럽시다. 그럼 국경이 지나가면 합류하는 걸로 하지요."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한 소천악이 바로 자리를 떠났다. 바라보던 요문탁이 지공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적이 아니고 당분간 한편이란 걸 피차 명심하도록 하십시다."

 

  "물론이요. 보아하니 저자도 뒤통수를 때릴 위인은 아닌 거 같아 안심이 됩니다. 잘 지내봅시다. 다시 중원에서 만나면 적으로 볼지는 몰라도 이순간만은 동료로 지내봅시다."

 

  "하하! 역시 지대주님도 사내대장부요."

 

  호탕하게 웃는 요문탁의 입이었다. 사내끼리의 호탕한 대화가 잠시 오간 후 소천악은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 지점에 이르자 우뚝 선 채 입을 열었다.

 

  "이제 나오시구려."

 

  아무도 없는 듯한 숲속에 공허하게 던지는 말이 나오자 놀랍게도 수십 명의 인물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무영살막의 손두호 막주와 휘하 살수들이었다.

 

  "소 소협! 약속대로 우리가 왔소이다."

 

  불만이 가득 찬 어투로 말하는 손두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뚱딴지같이 천축에 같이 가자는 소천악의 제안이 달가울 리가 없는 그였다.

 

  "하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이제 전에 약속했듯이 한 가지 일을 처리해 줄 시간이라 모셨소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청부살인이오?"

 

  "아니외다. 일단 여기 청부금이나 받으시구려. 약소하나마 십만 냥을 넣었소이다. 앞으로 일이 잘되면 더욱더 많은 은자를 드리겠소."

 

  "헉, 십만 냥이나!"

 

  놀란 손두호가 탄성을 지르자 소천악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부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갈 길에 먼저 가셔서 정보를 수집해 주세요. 특히 기습하려는 문파 등을 미리 말해 주시면 됩니다. 은잠술에 뛰어난 살수 분들이니 조심하시면 인명 피해는 없을 겁니다."

 

  "단지 그것만 하면 됩니까?"

 

  "물론이죠. 설마 손 막주님에게 거대문파를 기습하라고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소천악의 웃음을 들으며 생각하던 손두호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쉽게 느꼈다. 살행에 나서는 것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적었고 청부액도 컸다. 당연히 그의 선택은 뻔했다.

 

  "좋소이다. 소 소협의 청부를 받아들이겠소이다. 연락은 어떻게 하죠?"

 

  "인편이나 전서구를 이용해 주세요."

 

  "알겠소이다. 그럼 지금부터 청부를 받아 우리 무영살막이 움직이겠소이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손두호와 무영살막 살수들은 다시 숲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그들이 가자 비로소 할 일을 마친 소천악이 중얼거렸다.

 

  "제길, 이거 심자앙 수석책사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네. 팔자 더럽게 꼬여 고생길이 훤하네. 휴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천악은 다시 행렬로 돌아갔다.

 

  일단 국경을 지나자 소천악은 전신의 감각을 모두 올렸다. 이제부턴 생과 사가 순간의 방심으로 바뀌는 혈전장에 들어선 기분을 절실히 느꼈다.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행렬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미 정파 무림인들이 호위하는 관무평 사신단 일행은 십여 리 밖에서 전진하는 게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사실 이만한 무력을 가진 집단을 공격하기란 만만치가 않았다. 마적단들도 이들이 온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감히 덤빌 엄두가 날 리 없었다. 그들의 정보에 의하면 이건 상단이 아니라 중원 거대문파가 통째로 움직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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