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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8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80화

 

  "어어! 그거 지금 드시면 안 되는데요."

 

  깜짝 놀란 소천악이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약은 공이추의 목구멍을 쏙 넘어갔다.

 

  효과는 기다릴 틈도 없었다. 불과 숨 한 번 쉴까 말까 한 순간에 공이추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가며 점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커흠! 이거 이거!"

 

  당황한 공이추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이자 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소천악이 한마디 했다.

 

  "이제 끝입니다. 얼른 집에 다녀오시지요."

 

  귓가에 소천악의 말소리가 들리자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며 공이추가 힘겹게 말했다.

 

  "그래야겠소. 자, 어서 갑시다."

 

  쏜살같이 소천악을 끌고 건성제가 있는 방 앞에 온 공이추는 수하들에게 급히 말했다.

 

  "이상 없는 약이다. 어서 안으로 모시어라. 난 잠시 집에 급한 일이 생겨 다녀올 터이니 그리 알아라."

 

  "네, 호위장 어른!"

 

  수하의 복명을 받는 둥 마는 둥 공이추는 다리가 불편한 듯 어기적거리며 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궁무고에서 익힌 절정경공술로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뚜렷이 바라보던 소천악은 내심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겨운 노력을 해야 했다.

 

  문이 열리고 좌냉추를 따라 들어간 방은 호화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벽은 물론 걷는 바닥도 모두 운남에서만 나는 최고급 대리석들로 온갖 조각을 한 채여서 밟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옆에서 나는 목소리에 목덜미가 서늘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좌냉추가 온몸을 던지며 오체투지하며 인사하자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소천악도 할 수 없이 옆에 부복하며 소리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미천한 평민이 황제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그 짧은 순간에 소천악은 이미 건성제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황제는 이제 막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얼굴에 나름대로 위엄을 갖춘 얼굴이었다. 잔뜩 힘을 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렀다.

 

  "모두 고개를 들라."

 

  "네, 황제 폐하."

 

  조심스럽게 대답한 좌냉추는 고개를 감히 들지도 못하고 마냥 부복한 채 석고상이 되었다. 반면 소천악은 건성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고개를 들고 황제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쑥스러움을 감추기 힘든 처지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건성제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바로 악관필 대장군이 흐뭇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대장군이 묘한 눈길로 쏘아보자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친 그는 말문이 꽉 막히고야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은 당혹감을 지우기 힘들게 만들었다.

 

  건성제는 내심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으로 찬찬히 소천악을 살펴보았다. 얼굴이나 형색을 보아하니 영 배워먹지 못한 티가 철철 흘렀다. 아무리 봐도 명문가문의 자손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런 자를 하나밖에 없는 자기 동생 주청령이 적극 추천했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가 않았다. 쓸데없는 자를 보느라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한 듯해 은근히 열불이 천장만장 치솟았다. 하지만 대장군 악관필의 조언을 생각하고 마음을 눌렀다. 악관필의 말은 허투루 들을 말은 결코 아니란 걸 모를 그가 아니다.

 

  황제는 황제였다.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소천악이란 자가 분명한가?"

 

  "그렇습니다, 폐하!"

 

  건성제의 눈이 바로 매섭게 독사눈으로 돌변하며 좌냉추에게 말했다.

 

  "자네는 물러가라 "

 

  "네, 폐하!"

 

  감히 토도 달지 못하고 좌냉추가 물러가자 건성제는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네가 주청령 황녀가 추천한 신의괴협 소천악이라는 자가 분명히 맞는가?"

 

  "그러하옵니다. 황감하게도 추천을 받아 몸둘 바를 모르겠사오나 제 별호가 맞사옵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이가 갈려왔다. 인정을 베푼 게 이리 다가올 줄을 짐작하지 못했다. 여인의 감미로운 유혹에 넘어가면 좋은 결과가 없다는 조언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만인지상의 위엄 어린 질문에도 소천악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 굴강한 기상을 처음부터 드러냈다. 이렇게 하는 게 이 일을 피하는 데 전혀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는 그였다.

 

  하나 왠지 사내대장부로 꿀리기 싫다는 고집이 불쑥 치밀어 강하게 대답했다. 거절한다고 편하게 풀릴 일이 아니란 것도 작용했다. 주청령이 마음먹고 하는 일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도 익히 알았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로서도 물러날 곳이 없었다.

 

  "과연 풍기는 기상이 대단하구나. 내 너에게 명을 내리고자 이렇게 불렀느니라."

 

  "황공하옵니다만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천한 평민이 알아듣지 못하겠나이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번개같이 돌아간 소천악의 머리는 오히려 건성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아무리 황제라 하나 아무 데서나 할 말이 아니었다. 사방에 호위무사가 깔려 있는데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눈에 횃불을 달고 매섭게 쳐다보던 건성제는 더 이상 질문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입장이 되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남자 대 남자로서 소천악의 자세가 마음에 흡족하게 다가왔다.

 

  "좋다. 아무래도 독대를 해야 할 거 같구나."

 

  "폐하 뜻대로 하시옵소서. 미천한 평민이 어이 거역하겠사옵니까."

 

  왠지 비꼬는 말투로 서슴없이 대답하는 소천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건성제가 천장에 대고 외쳤다.

 

  "밀위들은 듣거라. 이제 독대할 것이니 모두 물러가라."

 

  "폐하! 저자는 아직 정확한 의도가 파악되지 않은 위험인물입니다. 그런 점을 알고서야 어찌 폐하를 두고 우리가 물러가겠나이까?"

 

  잠시 후 들려오는 조용한 목소리였다. 물론 소천악의 감각에는 이미 모든 밀위의 위치가 모조리 간파되어 있었다.

 

  "너희들은 걱정 마라. 짐의 곁에는 대장군이 계시다. 감히 대장군의 무위를 의심하는가?"

 

  "하오나 폐하! 저자는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밀위장의 걱정스런 말에 대장군이 말을 받았다.

 

  "염려 말거라. 나 악관필이 있는 한 아무도 폐하께 해를 끼치지 못한다."

 

  "……."

 

  악관필의 장담이 이어지자 밀위장은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피식 웃던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저기 좌측 대들보 위에 계신 분이시군요. 염려 마십시오. 저도 백성일진대 어찌 감히 황제 폐하를 위해하겠나이까?"

 

  "헉!"

 

  놀란 소리가 대들보 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절정의 은신술로 육합전성을 이용해 위치를 알기 힘들게 한 자신의 무공에 내심 자부심을 가진 밀위장이다. 자존심이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참담함마저 들었다. 더불어 한 번에 자신을 알아차린 소천악에게 더욱 경계심을 일으켰다. 그가 막 발작하려는 순간 건성제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물러가라. 이건 황명이니라."

 

  "존명! 황명을 받자와 물러갑니다."

 

  딱 한 마디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소리 없이 건성제를 호위하던 이십여 명의 은잠위가 방 밖으로 물러갔다.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든 소천악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수많은 변명거리를 만들고 각색한 그가 호락호락 손을 들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려 슬슬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막 청산유수로 말을 털어내려는 순간 건성제의 조용한 음성이 들렸다.

 

  "대장군! 모두 물러났는가?"

 

  "네, 폐하.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호위대장까지 오십여 장 밖으로 물러갔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악관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성제였다.

 

  "그래! 다행이군."

 

  건성제와 대장군은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를 한동안 이어나갔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 꼴이 된 소천악은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소곤거리며 말을 나누던 건성제가 소천악을 돌아보았다.

 

  "이리 와 앉으라."

 

  "네, 폐하."

 

  거역하고 자시고 할 분위기가 아님을 깨달은 소천악은 얼른 건성제 옆에 마련된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황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환이 닥쳐온다는 느낌이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차 하면 역적으로 몰려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하는 위기를 맞이하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 배경에는 수틀리면 도망간다는 속셈도 숨어 있었다. 그제야 다시 눈을 돌린 건성제가 소천악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주 황녀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아주 뛰어난 무공을 지닌 인재라 하더군."

 

  "과찬이십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운 정도입니다."

 

  "허허! 황제를 속이려 하는가? 이미 다 알아보았다. 불타는 협의심을 지닌 강호무림의 떠오르는 샛별이라 하더군."

 

  "뭐, 샛별씩이나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소천악의 내심은 뒤죽박죽이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건성제의 얼굴은 요지부동이다.

 

  "그 말을 들은 짐이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으니 토 달지 말고 따르기 바란다. 너에게 이제부터 천축으로 가는 사신단을 호송하는 중책을 맡기려 한다. 이번 일은 대식국과 천축 각국과의 협상 외에도 상단을 운용하여 국가재정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짐의 원대한 뜻이니라."

 

  뚱딴지같은 명에 소천악은 펄쩍 뛰었다.

 

  "아니, 호송이라뇨? 전 태어난 이후 그런 일을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당연히 아무런 경험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찌 그 대임을 무사히 치러내겠습니까?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주시옵소서."

 

  "황제의 명은 하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잔소리 말고 따르지 않으면 대역죄인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아니, 이런……."

 

  황당한 명에 절로 당황한 소천악이 우물쭈물거릴 때 결정타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로 내리는 명이다. 천축으로 갔다 오는 길에 목여국에 몰래 들어가 그 왕자를 납치해 오거라."

 

  "아니, 왕자를요?"

 

  갈수록 황당한 명에 어이가 없어지는 소천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성제다.

 

  "그렇다.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왕자니라. 목여국이 사사건건 짐에게 반기를 들어 골치 아프게 하고 있느니라. 군사를 보내 징치하려 해도 워낙 멀어 어려움이 따르고 있느니라. 이번 참에 왕자를 잡아와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생각이니라. 알겠느냐?"

 

  추호도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건성제의 말을 들은 소천악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아이를 납치한다는 건 마음에 안 들었다. 이 점은 그가 정의심에 불타서 내린 결론이 아니다.

 

  납치가 어려운 게 아니라 혹여 이 일이 강호에 널리 퍼지게 되면 천하의 미녀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생각이 미치니 아찔했다. 평생을 두고 어린애 납치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다. 그런 소문이 난 자신을 어떤 여인이 좋아할까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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