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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7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79화

 

  황도인 장안이 가까워지자 소천악은 몰래 따라오던 종천리에게 전음을 날렸다.

 

  [종 막주님! 이제 황궁에 가야 하니 그동안 거처하실 곳을 마련하면 제가 찾아가지요.]

 

  [그러지요.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당금황제인 건성제는 듣자하니 성정이 불같다 들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제 몸 하나 건사할 정도는 됩니다.]

 

  단호한 소천악의 말에 종천리는 왠지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황궁이 있는 장안성에 도착한 소천악은 새삼 그 크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처음 왔을 땐 밤에 와 어둠에 가린 황궁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낮에 보니 사방 십여 리를 둘러싼 담벽에 가려진 거대한 황궁이다. 정문 앞에 다가서자 좌냉추를 알아본 위사들이 급급히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시위장님을 뵙습니다."

 

  "그래, 수고한다. 어서 문을 열어라."

 

  감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문을 여는 모습에 시위장이란 위치가 꽤나 높은 줄 이제야 알아차린 소천악이다. 황궁에 들어서자 좌냉추가 말했다.

 

  "이제 주청령 황녀 마마에게 먼저 가야 합니다."

 

  "아니, 황제 폐하께서 부르신 게 아닌가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소천악은 내심 주청령 황녀는 다시는 보고픈 마음이 없었다. 뭐 좋은 인연이라고 보고 싶겠는가!

 

  만나봐야 어색한 얼굴이 될 게 너무도 뻔한 처지다.

 

  "황녀 마마께서 꼭 먼저 할 말이 있으시다는 전갈입니다. 자, 가시지요."

 

  "아, 네. 그러지요."

 

  마지못해 뒤를 따르는 소천악의 발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흡사했다. 얼마 안 가자 익히 기억이 나는 전각 앞에 도달해 경비무사의 검색에 응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섰다.

 

  접견실에는 주청령이 서릿발 같은 기세로 소천악을 쏘아보았다. 얼른 인사 먼저 하며 선수를 치는 소천악이다.

 

  "존귀하신 황녀 마마를 강호의 이름 없는 무부가 뵙습니다."

 

  "흥! 이름이 없기는. 강호무림에 신의괴협 하면 모르는 이가 드물거늘."

 

  아니나 다를까 싸늘한 대꾸가 바로 소천악의 귀를 어지럽혔다. 아무래도 조용히 넘어가긴 어렵다는 느낌이 든 소천악이다.

 

  "제가 조금의 이름을 얻었다 하나 어찌 감히 황녀 마마에게 그 이름을 자랑하겠습니까? 황공무지로소입니다."

 

  혀에 꿀을 바른 듯 유연하게 대답하는 소천악을 보며 주청령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좋다. 오늘 너를 부른 것은 나라에서 네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이다."

 

  "네? 나라에서 절 필요로 한다는 말입니까? 검밖에 휘두를 줄 모르는 이 무식한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 무식한 검이 필요하다."

 

  거두절미하고 단번에 잘라대는 주청령의 기세에 내심 뜨끔한 소천악이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건성제보다는 주청령의 심중이 크게 반영된 일이란 직감이 머리를 때렸다.

 

  "아니, 황녀 마마! 저 같은 무인이 어디에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황공하오나 저는 할 일이 많아 황궁 일에 개입할 시간이 도무지 나질 않습니다.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완곡한 거절의 말을 건네는 소천악을 보며 주청령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안 하겠다고? 그럼 할 수 없지. 대신 저번에 네가 황도를 떠나기 전날 저지른 일을 대명천하에 밝히도록 하지."

 

  태연한 그녀의 말에 곰곰이 날짜를 곱던 소천악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전날이라면 대장군가에서 사고친 날이란 게 불현 듯 머리를 스쳤다.

 

  "아니, 그게……."

 

  자기 입으로 그 일이란 말을 차마 못 하고 눈치를 보는 소천악에게 매정한 일갈이 쏟아졌다

 

  "맞다. 그날 새벽에 저지른 일 말이다. 왜 기억이 안 나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겠다."

 

  고소하다는 듯 말하는 주청령의 말에 얼굴 가득 낭패한 기색이 드러났다.

 

  "이런 제길!"

 

  "뭣이라?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아닙니다. 그저 혼잣말입니다."

 

  "그래? 왠지 욕 같은 말이구나. 좌우간 할 것이냐, 아니면 그날 일을 까발리는 걸 두고 볼 테냐?"

 

  궁지에 몰아넣고 채찍질하는 주청령을 보자니 속에서 열불이 치미는 소천악이다. 내심 그날 확 일 저질러버릴걸 하는 야릇한 후회감마저 들었다. 한동안 고심하던 소천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승낙하기 전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을 아니 들어주시면 차라리 그냥 까발리십시오."

 

  당차게 대응하는 소천악을 보며 주청령은 가슴이 서늘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조건 타령하는 저자의 뱃심이 놀라웠다.

 

  "좋다, 말해 보라."

 

  "첫째, 이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다시 그 일을 구실로 저를 구속하려 한다면 저도 어떻게 나갈지 모릅니다."

 

  "헉!"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주청령이다. 저 말에 숨겨진 뜻을 모를 리 없는 그녀였다. 예상외로 소천악이 강단 있게 나오자 황녀이기 전에 수치를 당한 여심이 불안감을 느꼈다. 하나 곧 새파란 독기를 뿜어내며 소천악을 쏘아보았다. 물론 그런다고 기죽을 소천악은 당연히 아니었다. 암중에서 두 사람은 피 튀기는 모략과 절충의 혈전이 벌어졌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좋다. 들어주마!"

 

  "알겠습니다. 그 외의 세부조건은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 요구를 드릴 거 같습니다."

 

  "호호, 대단한 배짱이구나. 좋다, 나머지 이야기는 황제 폐하께서 하실 것이다. 이야기가 끝난 거 같으니 나가보아라."

 

  "그러지요. 부디 다음엔 좀더 즐거운 자리에서 뵙기를 희망합니다."

 

  말에 칼을 담아 툭하니 던진 소천악이 깊게 읍을 하고 물러갔다. 말하며 뿜어내는 기세는 연약한 여인이 쉽게 받아낼 기운이 아니다. 주청령은 내심 괜히 건드린 게 아닌가 하는 작은 후회감이 일었지만 이내 잊어버리며 태연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한참을 걸어서야 황제가 있다는 전각 앞에 도착했다. 걷는 동안 주위에서 살을 벨 듯한 살벌한 기세를 무수히 느낀 소천악이다. 황궁이란 말이 새삼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소천악 소협! 여기가 황제 폐하가 계시는 전각이오. 일단 들어서면 황제를 대하는 예를 취해야 하오."

 

  "어떤 예인가요?"

 

  "오체투지하고 황제 폐하 만만세를 세 번 외치시면 되오."

 

  딱딱하게 말하는 좌냉추를 보며 내심 불만에 가득 찬 소천악이다.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심심하면 개구리가 되라는 말에 영 심기가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저항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새외로 도망가 살 생각이 없는 한 건성제와 적대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진배없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만 했다.

 

  전각문을 지키던 위사들이 좌냉추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선 좌냉추와 소천악 두 사람은 건성제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건성제가 있는 방 앞에 오자 소천악은 등골이 서늘한 살기를 느꼈다.

 

  사방에서 은신한 황제 비밀 호위무사들이 내뿜는 기세는 그의 온몸을 옥조이며 파고들었다. 내심 기분은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절차로 생각하고 체념했다.

 

  사실 기세보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소천악은 성격대로 금방 기분을 바꾸었다. 수틀리면 도주하리라는 속셈을 품자 콩알만 하게 조여든 가슴이 다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별별 생각에 빠진 소천악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께 소천악 소협을 모시고 왔다고 말하시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금의무복을 한 무사 네 명이 서 있었다. 사전에 언질을 받은 듯 그들은 잠시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일체의 무기휴대는 금지요. 모든 무기를 반납하시오."

 

  "알겠소이다. 여기 검이오."

 

  소천악은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황제를 알현하는데 무기를 들고 가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품지도 않았다 소천악이 죽검을 맡기자 금의무사는 정떨어지게 뚝뚝 끊어지는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몸수색을 해야겠소. 팔을 드시오."

 

  별다른 마찰 없이 소천악이 팔을 들자 말 그대로 철두철미하게 수색해 들어갔다. 뒤지던 금의무사가 요상한 병 하나를 찾아내 살펴보다 물었다.

 

  "이게 무엇이오?"

 

  난감했다. 그 병 안에는 색마를 죽이고 얻은 미혼약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은 소천악은 아차 하는 심정이었다.

 

  "별거 아니요. 그거 몸이 피곤할 때 마시면 피로가 풀리는 보약이요."

 

  엉겁결에 둘러치는 말에 의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않던 금의무사가 말했다.

 

  "좋소. 그럼 먹어보시오."

 

  "헉! 여기서 먹으라고요?"

 

  깜짝 놀라 소천악이 말하자 금의무사들은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사방을 포위해 들어왔다.

 

  "어서 먹어보시오. 보약이라는데 왜 마시는 걸 회피하시오? 혹시?"

 

  의심에 찬 음성에 소천악은 실로 난감했다. 우물쭈물하는 그를 본 금의무사들은 눈빛을 빛내며 검에 손을 댔다.

 

  검에 간 손을 본 소천악의 눈이 갑자기 흉광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본능적으로 살기를 온몸에서 풍겨내자 금위무사들은 전신을 억눌러오는 강한 중압감에 절로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소천악이 차갑게 말했다.

 

  "이보십시오, 무사님들! 전 제 눈앞에서 검을 뽑아 든 자를 용서해 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이는 사나이로 맹세한 일이오이다. 부탁하건대 검에 간 손을 내려놔 주시오."

 

  "네 이놈! 감히 황제 폐하를 시해할 독약을 가지고 들어가려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가까스로 기력을 회복한 금의무사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소천악은 기가 막혀도 한참 막혔다.

 

  "거참, 의심도 많으신 분이군요. 좋소이다. 여기서 말하기는 그러니 잠시 저와 은밀하게 밀담을 나누시지요."

 

  부드럽게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아직도 의심을 지우지 않은 자는 다름 아닌 황제호위대장인 공이추(孔伊錐)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세도를 지닌 그의 표정은 위압감을 물씬 풍겼다.

 

  "왜 여기서 말을 못 하는가?"

 

  "거참 딱딱하십니다. 남모를 고충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고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요. 자! 이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드리지요."

 

  소천악의 꼬드김에 공이추는 영 안 내키는 발걸음으로 걸으며 시큰둥한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이십여 장을 벗어난 곳에 이른 소천악은 뚱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공이추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처음의 의심스러운 얼굴은 오간 데 없고 이제는 잔뜩 호기심 어린 얼굴로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바짝 곤두세웠다.

 

  "그러니까 이 약이 그런 효능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이미 중원천지에서 수없는 약효를 입증받은 영약이지요."

 

  "허, 영약은 영약일세. 하지만 내가 명색이 황제 폐하 호위대장으로 어찌 말만 듣고 넘어가겠는가. 어디 한 알을 줘보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태연하게 말하는 공이추의 말에는 진한 욕망이 잠들어 있었다.

 

  "어쩌시려고요?"

 

  "일단 약에 대해 사실인지 아닌지 판가름을 해야지."

 

  소천악은 이미 설명을 마친 후라 별다른 생각 없이 약을 건네주었다. 아이 손톱만 한 환약을 본 공이추는 신기한 듯 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관찰했다. 마침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아주 작은 양을 떼어 입에 날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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