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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7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76화

 

  "하하, 고민은요. 기쁜 소식이 있어 왔습니다. 드디어 혈살막의 종적을 찾아냈습니다."

 

  안색을 싹 바꿔 말하는 남 지부장의 말에 반색을 하고 일어서는 소천악이다.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하오문의 모든 역량을 총집중해서 겨우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들의 거처를 찾아내려는 정체불명의 암중세력이 움직인다는 소식입니다."

 

  "어떤 자들이오?"

 

  호기심에 찬 소천악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 지부장이다.

 

  "아직은 모릅니다. 다만 호의를 가진 걸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무공 수위는 모두 일류를 훨씬 넘어서는 실력이라는 정보입니다. 아마 오늘 밤쯤 혈살막을 기습할 낌새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심히 듣던 소천악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그들의 정체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을 죽여달라고 청부했던 암중세력일 확률이 컸다. 일이 실패하자 살인멸구할 속셈인 것 같아 그 악랄함에 절로 치가 떨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지금 그놈들이 어디 있소이까?"

 

  "여기서 오십여 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은밀하게 숨어 있소이다. 여기 자세한 지도가 있으니 보십시오."

 

  건네주는 지도를 살펴보던 소천악의 눈이 야릇한 살기를 뿜었다. 남 지부장은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짧은 시간이지만 말로만 들었던 소천악의 실체를 보니 절로 오금이 저려왔다.

 

 

 

  지부장이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가자 소천악은 바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는 부지런히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혈살막을 멸문시킬 작정이다. 단 한 명이 살아남아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결정을 내리면 차가운 그의 본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나름대로 최선의 공격법을 찾아낸 그는 입가가 길게 말려 올라갔다. 이제 보복의 시간이다.

 

  막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며 밖에서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소천악 소협! 안에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자신을 찾는 소리에 어리둥절한 소천악이 묻자 또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주씨 아가씨가 보내서 왔습니다."

 

  "주씨 아가씨요?"

 

  어리둥절한 소천악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방 밖에서 다시 음성이 들렸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지요."

 

  방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사람은 두 명의 청의무복을 입은 무인들이었다. 단단한 몸이 옷 속으로 언뜻 느껴지는 게 무인이란 티가 철철 흘러넘쳤다. 손에 검을 든 자세에게 예리한 예기가 풍기는 모습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다.

 

  소천악을 보자 그는 가볍게 포권으로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반갑소이다. 전 황실 금위대(禁衛隊) 시위장인 좌냉추(左冷追)라 하오이다."

 

  "네! 반갑소이다. 소천악이라 하외다."

 

  생면부지의 삼십대 장한을 맞이한 소천악은 영문을 몰라 얼떨결에 마주 포권했다. 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의 염장을 지르는 말을 꺼냈다.

 

  "주청령 황녀님을 아시죠?"

 

  "헉! 황녀님."

 

  그제야 주씨 아가씨의 실체를 깨달은 소천악이 기겁을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지우기 힘든 그에게 연이어 타격은 이어졌다. 갑자기 표정이 돌변한 좌냉추가 자세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여기 황제 폐하께서 친히 내리신 칙령을 받으시오."

 

  머릿속에서 집채만 한 종이 수십 개 울리는 타격을 받은 소천악은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기분이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소천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칙령은 어떻게 받소이까?"

 

  좌냉추는 기가 막혔다. 이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도리가 없었다. 모른다는데 불경죄를 물을 수도 없고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소리치기도 뭐했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정말 모르시오?"

 

  "모르오이다. 내 산에서만 살다 세상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어 사실 아는 것이 그다지 없소이다."

 

  "험."

 

  잠시 헛기침을 한 그가 다시 말했다.

 

  "일단 오체투지를 하고 고개를 절대 들지 마시오."

 

  개구리처럼 납작 자빠지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소천악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반항했다가는 나라의 공적이 되어 일생 동안 쫓기는 생활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성질을 애써 죽이고 개구리가 되었다. 내심 구시렁거리는 그에게 목소리가 들렸다.

 

 

 

  <소천악은 짐의 칙령을 받으라.

 

  지금 즉시 황도에 와 나를 알현하도록 하라. 자세한 이야기는 와서 하도록 하고 서둘러 오기 바라노라.

 

  대당제국 황제 건성제.>

 

 

 

  소천악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건성제가 자기를 알 리가 없었다. 이는 필시 주청령 황녀와 관련된 일이라는 게 뇌리를 스쳤다.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 봐도 자신에게 유리한 일은 전혀 없을 듯했다. 속으로 후회감이 물씬 올라오며 주청령에게 인정을 베푼 자신을 자책하고 자책했다. 역시 아직은 경험부족이라는 걸 절감한 터였다. 복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인 그에게 좌냉추의 음성이 들렸다.

 

  "이제 일어나시오. 자, 바로 황도로 가야 합니다."

 

  칙령을 읽고서도 존댓말을 쓰는 좌냉추를 보며 눈빛을 번쩍이며 생각보다는 나쁜 일이 아니란 마음이 들었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천악이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습니까? 이거 평민이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칙령을 받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허허! 본관도 모르오이다. 다만 정중하게 모시라는 황제 폐하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하는 좌냉추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더욱 풀어진 소천악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건 최소한 황제를 보는 즉시 참수당할 확률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걸 의미했다.

 

  "거참! 이상합니다. 본인은 전혀 황제 폐하와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평민이온데 어찌 갑자기 절 찾으시는지?"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좌냉추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말을 들은 그는 전혀 표정에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본관도 아무 사연을 모릅니다. 자, 어서 알현할 준비를 하러 황도로 갑시다."

 

  재촉하는 그를 보며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는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가야지요. 그런데 본인이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하루만 말미를 주시면 아니 되겠소이까?"

 

  "험! 곤란한 일입니다. 감히 황제 폐하가 부르시는데 늦장을 부려 도착하면 본관도 문책을 당할 우려가 있소이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좌냉추를 보며 다급하게 말하는 소천악이다.

 

  "허! 그럼 반나절만 시간을 주시구려. 제 생명을 위협하는 무리들의 행방을 그동안 노력해서 겨우 찾았는데 이제 그냥 가면 다시 숨어버릴 우려가 있소이다. 부탁드리오."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갈등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그럼 딱 반나절만 드리겠소이다. 더 이상은 절대 안 된다는 걸 명심해 주시기 바라오."

 

  "하하, 고맙소이다. 염려 마십시오. 그 정도면 충분하오이다."

 

  마지막 남은 의심마저도 떨어버린 소천악의 얼굴은 느긋함으로 가득 차갔다. 잡아갈 의도라면 절대 승낙하지 않을 제의였다. 이로써 아직은 체포하라는 명이 아닌 게 분명했다. 막상 가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안심이었다.

 

  시간을 번 소천악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이제 밤에 기습하려던 계획은 접고 시간 내에 끝내고 돌아오려는 계산이었다.

 

  하오문에서 알려준 곳에 도착해 보니 과연 깊은 산중에 몇 개의 건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감각을 올려 유심히 살펴보니 움직이는 인물 모두 걸어 다니는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지경이다. 살수문답게 조용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밤이 깊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밤이 다가오고 어느덧 깊어가자 그는 서서히 신형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검이 언제라도 뽑혀 피를 뿌리고 싶은 열망을 안고 함께했다. 새의 깃털이 사뿐거리듯 부운낙영의 절묘한 신법을 전개하자 바람을 가르며 직선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공기 파장마저 숨을 죽인 발놀림에 아직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가 없었다 그의 목표는 초저녁부터 봐둔 곳이다. 유난히 사람들의 출입이 잦고 사방에서는 은잠한 살수들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아무래도 거기에 혈살막의 주요 인사나 막주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둠을 타고 접근하는 그의 흔적은 마치 바람처럼 어느새 정 가운데 집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귀를 세워 사방의 모든 소리를 듣고자 천리지청술을 전개한 그의 귀에 고른 숨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사방을 예리하게 쳐다보며 허점을 노리는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잠시 우측에 은잠한 한 인영이 움직이는 걸 눈치채자마자 빠르게 집 안으로 안개처럼 잠입했다.

 

  보법을 전개해 움직이는 그의 신형은 보이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른 곳에 있었다. 마침내 그는 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방 안에는 잠이 든 한 사람이 있는 듯 고른 숨소리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입술이 슬며시 벌어진 소천악은 방문을 열며 내공을 불어넣었다. 문소리에 사람이 깨는 불상사를 막으려는 의도였다.

 

  의도대로 문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열리자마자 방 안에 들어선 그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비록 깜깜한 방이지만 내공으로 안력을 북돋운 그의 시야를 벗어나긴 어려웠다.

 

  소천악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이보시오,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시겠소?"

 

  조용히 말하는 음성에도 침대 위의 인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참! 안 자는 거 다 압니다. 어서 일어나 손님 접대를 해야지요. 이거 영 예절이 없소이다그려. 천장에서 숨어서 숨소리 숨기느라 고생하는 분들도 어서 내려오시구려."

 

  그랬다.

 

  이미 소천악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자가 잠을 이루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아마 기습할 의도로 자는 척하는 수작이 뻔히 보였다.

 

  침대 위에 있는 자는 짐작대로 혈살막의 부막주인 현비량(弦飛倆)이었다. 그는 혈수쌍살의 살행이 실패했다는 정보를 들은 후 언젠가 소천악이 보복을 하기 위해 찾아오리란 걸 짐작하고 나름대로 천라지망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소천악은 결코 그의 뜻대로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느새 그 함정을 눈치채고 오히려 태연하게 말하는 대담성마저 보였다.

 

  현비량은 천천히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복장은 자는 자의 옷이 아니었다. 흑의 경장을 입고 손에 시퍼런 독광을 뿜어내는 독검을 든 전투 직전의 모습이다.

 

  "허허, 미안하오이다. 고수 앞에서 재롱을 피웠구려."

 

  "후후, 이제라도 아니 다행입니다. 어서 저기 탁자에 앉으시지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소천악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켕겼다. 아무래도 조용히 해치우기는 힘든 상태였다. 암습이 전문인 그들의 특기가 무용지물이 된 지금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내자불선이라 했소이다. 어차피 우리는 적이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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