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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1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12화

장천운은 곧장 비령각으로 가서 우문각을 만났다. 혼자 사는 이유를 물은 이후 처음이었다.

그날, 우문각은 정말로 장천운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설마 그 질문이 그렇게 큰 충격을 줄 줄이야!

‘누가 머리 색깔 때문에 장가도 못 갔다는 걸 알았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 때문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여인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곁으로 다가오지 않다 보니 그를 좋아하고 자시고 할 여인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압적으로 여인을 취하고 싶지도 않았고.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젊을 때만 해도 그는 잘 생긴 데다, 언젠가는 천생연분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거기다 꿈도 있었다.

결국 그는 여인과 자식을 뒤로 미루고 꿈을 좇아서 사마중천과 함께 천하를 종횡했다.

그가 구천성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되돌아봤을 때는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대가로 세월을 잃은 것이다.

그 후에는 구천성 내의 암류와 싸우느라 또 몇 년을 보냈다. 그 바람에 혼인은 항상 뒷전이었다.

성주가 죽은 후에야 생각도 못했고.

그에게는 나름대로 아픈(?) 과거였다.

그런데 장천운이 속상한 과거를 건드렸으니 어찌 곱게 보였겠는가.

“어쩐 일이냐?”

목소리가 칼칼하다.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나 보다.

“천은방에 보낸 사자는 언제쯤 돌아옵니까?”

“글쎄다. 지금쯤 돌아올 때가 됐는데 조금 늦군. 그런데 그걸 알아보려고 온 것 같진 않다만.”

하여간 눈치는 귀신이다.

“대령주가 출정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틀 후까지 출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군요.”

“이틀 후?”

“천은방에 보낸 사자의 귀환이 생각보다 늦어지다 보니, 소성주께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흐으음…….”

우문각이 콧소리를 내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 일은 자신을 다그쳐야 맞다. 그럼에도 소성주를 몰아붙이는 것은 그녀를 압박하기 위함일 것이다.

“늦어도 이틀 후에는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만약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요?”

장천운이 빤히 바라보며 묻자, 우문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무슨 뜻이냐?”

“증거가 없어서 말을 아꼈습니다만, 이번 일은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이상한 점? 천은방이 신천검문을 공격한 일이 이상하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상식이 계속 어긋나면 그것은 상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은방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고, 사자의 귀환이 늦어지는 것도 이미 예상에서 어긋났습니다.”

“강호에서 그 정도 일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상황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연이은 우연은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다, 그런 뜻.

그 말을 못 알아들을 우문각이 아니다.

“설마…… 대령주가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 거라 보는 거냐?”

“아직은 모릅니다. 사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저보다 총사께서 먼저 눈치 채셨어야 옳죠.”

“나까지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장천운이 잠시 말을 멈추고 우문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총사, 이번 일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저와 총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십니까?”

“차이? 뭐냐?”

“총사는 오랫동안 구천성에 계셔서 모든 것을 구천성의 눈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물이 덜 들어서 제삼자의 눈으로 볼 수가 있죠.”

“보는 관점이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자꾸 눈에 띕니다.”

“말해봐라. 뭐가 이상하더냐?”

“장례가 끝나는 날 천은방이 신천검문을 공격한 것도 이상하고, 강호의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겨울에 공격한 것도 이상하고,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 하루 만에 신천검문이 몰살당한 것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죠.”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군.”

우문각 역시 말만 안 했을 뿐 의문을 품고 있던 일이다. 다만 장천운의 말대로 구천성 사람이기에 그 의문을 냉정하게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 뿐.

“하나만 묻죠. 미리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천은방이 신천검문을 하루 만에 몰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순간적으로 우문각의 눈에서 한광이 번쩍였다 사라졌다. 뒤이어 나직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음, 준비라…… 그렇군, 너무 간단한 걸 간과했어.”

천은방에서 신천검문까지 이틀거리다. 자파의 무사가 당한 걸 아무리 빨리 알았다 해도 이틀 만에 전격적인 공격을 할 수는 없다.

당할 거라는 걸 알고 미리 공격을 준비해놓지 않았다면 말이다.

시간의 모순.

그것 역시 자신은 따져보지도 않았다. 이틀의 거리를 이틀에 갔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면 금방 모순을 파악했을 텐데.

“결국 그들이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다면, 자파 무사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일 수밖에 없죠.”

허탈감이 들 정도로 단순한 이유다.

문제는 그 이유가 모든 의문을 풀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왜 그 말을 이제야 하느냐?”

“말씀을 드렸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쩌면 더 나빠졌을 수도 있고요.”

우문각은 쓴웃음을 지었다.

장천운의 말대로다. 아마 의문을 제기했다면 공손백 측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을 의심한다며 장천운을 거세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심지어 사마경까지 곤란해졌을지 모른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때는 바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만.”

“그렇습니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뭐냐?”

“사밀령의 지휘권한을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우문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풀썩 웃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사밀령이야 소성주께서 임시성주가 되셨으니 언제든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어차피 구천성의 모든 무인들은 성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사밀령뿐만 아니라 비령각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웬 지휘권한?

하지만 장천운은 우문각을 무심한 표정으로 직시했다.

“단순한 지휘 권한을 달라는 게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우문각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너……?”

사밀령은 자신이 만들었다. 겉으로는 구천성의 수많은 조직처럼 성주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최우선적으로 자신의 명령에 따랐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뿐. 그런데 어떻게 저놈이 알게 된 걸까?

“다른 사람을 의심할 것 없습니다. 소성주께서 그러시더군요. 사밀령은 총사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소성주가 그랬다고?”

“가끔은 전대 성주님의 명령도 듣지 않을 때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표 나지 않게 행동해서 모르실 거라 생각하셨을지 몰라도, 전대 성주께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셨다고 합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우문각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눈꺼풀이 보일 듯 말 듯 잘게 떨렸다.

결국 속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성주였단 말인가?

‘그럼 혹시 그 일도……?’

성주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급사하는 바람에 영원히 말할 수 없게 된 이야기가.

어쩌면 그 일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성주, 당신이라는 사람은 끝까지 나를 왜소하게 만드는구려.’

우문각의 입가에 씁쓸한 자조의 미소가 걸렸다.

장천운은 차갑게 느껴지는 눈으로 그를 보며 허리를 세웠다.

“평상시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거든요.”

“그래도 허락하지 않겠다면?”

“후회하실 겁니다.”

순간, 스산한 기운이 방안을 옥죄이며 밀려들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가공할 압력이었다.

그 압력은 모두 다섯 줄기. 목표는 장천운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문각을 쳐다보는 장천운의 표정은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전의 저로 생각하셨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셔야 할 겁니다.”

“많이 광오해졌군.”

“그래도 될 만큼 강해졌거든요.”

우문각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싫지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짜증이 나는지도 몰랐다.

혼내고 싶을 때는 혼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일지 않으니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까.

“내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저를 원망하지 마십쇼.”

장천운은 구륜심법으로 무형기를 일으켰다.

스스스스스.

그를 중심으로 해서 무형의 기운이 반경 다섯 자의 원을 그리며 천천히 휘돌았다.

그저 천천히 돌 뿐이다. 그런데도 우문각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잘못 움직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독룡처럼 튀어 올라서 그의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절정고수인 자신이 숨조차 쉴 수 없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기운이지?

자신이 아는 한 결코 구천성의 무공은 아니다.

‘빌어먹을 놈! 한번 져주면 안 되나?’

짜증이 난 우문각이 버럭 소리쳤다.

“좋아, 넘겨주마! 됐냐?”

그제야 장천운이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그의 몸 주위에서 휘돌던 무형기가 그의 몸짓과 함께 흩어졌다.

“고맙습니다, 각주. 앞으로 은밀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질 텐데, 현재로선 사밀령이 가장 효율적일 것 같아서 부탁드린 겁니다.”

“설마…… 사령주에게 복수하려는 건 아니지?”

“그 정도로 속 좁은 놈 아닙니다.”

사실 복수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죽은 흑월회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래도 일단은 없다는 듯 말했다.

“끄응, 내가 어쩌다 너 같은 놈을 끌고 와서…….”

“나중에는 잘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썩을, 그 동안 주둥이만 갈고 닦았나 보군.”

장천운은 빙그레 웃으며 일어났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듣고 가라.”

“말씀해 보시지요.”

“조금 전의 의문은 당분간 네 가슴 속에 묻어둬라.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행동으로 증명해.”

장천운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우문각이 주문한 뜻을 아는 것이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죠.”

 

우문각은 장천운이 나간 후 차를 벌컥벌컥 비우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사밀령을 너무 쉽게 내준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총사.”

조용히 서 있던 정유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우문각은 고개를 저었다.

“시험하려 했다면 비령위 중 두엇은 본보기로 팔다리를 박살냈을 거다. 어쩌면 죽였을지도 모르고.”

천장에서 무형의 기가 출렁거렸다. 비령위들이 우문각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가 보다.

아마도 자존심이 상했겠지.

정유도 믿기가 힘들었다.

“총사, 설마……?”

“장천운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다른 사람처럼 말을 앞세우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그가 작정하면 전부 죽일 수도 있어.”

“아무리 그래도…….”

정유가 평소와 달리 우문각의 말에 계속 토를 달다 급히 멈췄다.

주군의 판단은 무조건 옳아야 한다. 토를 단다는 건 의심한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우문각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믿기가 힘들거늘 어찌 정유가 놈의 무서움을 알까.

“그놈, 정말 강해졌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공손백과 나극도 놈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을지 몰라.”

“예?”

공손백은 과거 구천대공자로 불렸을 때부터 천하제일을 다투던 고수 중 하나였다. 나극이야 그 당시 이미 마도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절대고수였고.

장천운의 실력이 그런 두 사람과 대등할지 모른다?

믿을 수 없었다.

우문각은 굳이 정유를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훗, 좌우간 일이 재미있게 흐르는군.”

“그가 그렇게 강하면 더더욱 사밀령을 내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정유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했다.

우문각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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