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6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61화
"얼른 소개해 주시오. 바로 갈 생각이오."
여자 앞에서 태연히 기루를 거론한 소천악이 미워지기 시작한 조난향이었다. 홧김에 얼른 한 하오문도를 소개했다. 소천악은 그를 데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정도는 가볍게 묵살했다.
길을 안내하는 하오문도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잘못하면 자신도 한칼에 유명을 달리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나름대로 빨리 움직인 탓에 얼마 안 가 마치 궁전 같은 기루 앞에 도착했다.
"항주에서 제일 유명한 기루지요. 중원 땅의 미인만이 아니고 저 멀리 서역 미인도 있다고 합니다."
하오문도의 설명에 호기심 어린 표정을 숨기지도 않는 소천악이 물었다.
"오호, 서역 미인이라! 거, 머리카락이 금색인 여자들을 말하는 거지요?"
"그렇다고 합니다. 워낙 숨겨놔서 저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수고했소. 이거 가다가 술이나 한잔하시오."
소천악은 품에서 은자 이십 냥을 꺼내주었다. 하오문도는 거액에 놀라 받으면서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이렇게 큰돈을!"
"하하, 저기 들어가면 푼돈이오. 어차피 날릴 돈이니 이거 아낄 리가 있겠소?"
호탕하게 말하는 소천악이다. 바라보는 하오문도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 깔려 있었다. 그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아쉬운 마음으로 몸을 돌렸다. 소천악은 거침없이 정문으로 걸었다. 정문 경비 무사가 그를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다.
"공자, 풍류를 느끼러 오신 겁니까?"
"물론이오. 어서 안내하시오."
"환영합니다. 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여태까지의 기루와는 다른 접대에 약간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바로 무시했다. 그런 골치 아픈 일에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무사는 바로 총관에게 안내했다. 총관은 사십대의 풍채 당당한 인물이었다. 소천악을 대할 때 마치 단골고객을 접대하듯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 보아하니 당연히 특급을 원하시겠군요."
"역시 총관께서는 사람 볼 줄 아시는 듯하오."
"허허! 별말씀을!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요. 어서 저를 따라오시지요."
총관을 따라간 소천악은 펼쳐진 주안상을 놓고 살인의 기억을 한 잔 술에 털어버렸다. 사실 살인이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을 살려줄 아량은 전혀 없었다. 내가 살아야 세상이 있다는 그의 주관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살인의 피로를 술과 음악으로 푸는 건 어느새 그의 일상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을 술독에 빠져 지냈다. 매일 기루를 바꾸면서 지낸 시간이었다. 기루 순례를 마친 소천악은 나름대로 기녀에 대해 주관을 정립했다. 기녀란 말 그대로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옮겨 다니는 여인이다. 아무리 명기라 해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에 꺾여 일반 기녀와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된다.
기녀와의 인연은 여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자신도 즐거우면 최상의 배려이다. 아무런 상처도 주고받을 일이 없다. 아무리 사랑 타령을 한다 해도 결국은 은자로 시작된 인연이다. 은자가 없다면 다시 볼 일도 없는 사이로 돌변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진정한 풍류공자로 거듭날 일만 남았다. 호쾌한 마음으로 기루를 나선 소천악이다. 발걸음은 가볍게 하오문 총단으로 향했다. 부탁한 정보를 가지고 다시 중원 순례길에 나설 요량이었다. 더 정확히는 십대미녀를 만나볼 요량이다.
하오문에 이르자 정문 경비 무사로부터 시작해 모든 이의 정중한 인사를 받았다.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소홀할 이는 없었다. 다시 조난향 하오문주와 자리를 같이했다. 조난향 문주는 뼈가 실린 첫마디를 던졌다.
"그래, 그동안 뼈가 삭고 살이 문드러지는 뜨거운 밤을 보냈나요?"
"보다시피 멀쩡하오. 뭐, 기녀들이 그럴지는 몰라도 객쩍은 소리 그만 하고 정보나 주시오. 갈 길이 바쁘오."
천연덕스러운 소천악의 응수였다. 조난향 문주의 눈에는 어느새 하오문의 은인이라기보다는 불쾌한 벌레로 보이는 소천악이었다. 그녀는 준비된 서찰을 탁자 위로 밀어주었다.
"보시다시피 팔대미녀에 대한 자료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준비되었어요. 이미 만난 양소아에 대해서는 굳이 조사 안 해도 되죠?"
계산해 보던 소천악은 한 명이 비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한 명은 왜?"
"정보를 읽어보면 알 겁니다. 설마 우리 하오문이 씨몰살당하길 바란다면 다시 청부하세요."
가만히 전에 들었던 정보를 생각해 보자 하오문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고개를 끄덕이던 소천악이 다음 질문을 꺼냈다.
"좋소. 색마에 대해서는?"
"중원 삼대색마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어놓았어요. 그들의 행적은 아직 알 수가 없지만 조만간에 그 마각을 드러내리라 봐요."
"어떻게 장담하오?"
조난향 하오문주의 호언장담에 의문이 든 소천악의 반문을 단칼에 대답하는 그녀였다.
"주정뱅이가 주점을 못 넘어가듯 그들이 제 버릇 개 주겠어요? 분명히 가까운 시일 내에 나타날 거예요."
"하긴, 개가 똥을 참지 그놈들이 그걸 참겠소이까? 으하하하!"
가가대소를 보이는 소천악이다. 바라보는 조난향은 색마란 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도대체 얼마 전에 폐찰에서 보여준 그 호기로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심술이 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조난향 문주가 싸늘하게 쏘아댔다.
"앞날이 참 험하기도 하시네요."
"무슨 말이오?"
"천하미녀들은 죄다 한가락 하는 집안의 자손이지요. 게다가 색마들은 하나같이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자들이지요. 한마디로 고생문이 훤하네요."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짐작하지 못할 소천악이 아니었다.
"거야 당연한 일이잖소? 힘있는 놈이 미녀를 차지하다 보니 당연히 미녀들의 집이 막강한 거요. 색마들은 안 죽고 살려니 당연히 무공이 강한 거지요. 그걸 다 헤쳐 나가는 게 사나이의 낭만이라는 거요. 으하하!"
나름대로 논리 정연한 소천악의 반박이었다. 마땅히 반박할 근거가 없는 조난향 하오문주가 말을 돌렸다.
"왜 소 소협은 그런 막강한 무공을 가지고 강호정의를 위해 힘을 쓸 생각은 안 하시죠? 미녀 꽁무니나 따라다니다가 인생 끝내시려 하는 건가요?"
"강호정의? 거참, 지나가던 길손 말없이 뺨 때리는 소리군요. 그리고 오늘의 정의가 내일의 정의란 법이 어디 있소?"
"아니, 그런!"
궤변에 조난향이 어이없어하자 소천악은 자신의 주관을 뚜렷히 피력하였다.
"정의도 세월이 가면 다 변하는 법이라오. 그저 자기 이익을 위해 정의랍시고 만들어놓은 거지. 거, 다 알고 보면 속 구린 놈 농간이오."
갑자기 소천악의 입에서 심오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음……."
조난향도 바로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화두였다. 새초롬한 얼굴로 말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려 고민하는 게 면사를 통해서도 훤히 보였다. 당혹스러워하는 조난향을 보며 내심 쾌재를 부르는 소천악이다. 사실 이 말은 혈사부가 술에 취해 넋두리로 한 말을 그대로 표절한 대사였다.
강호를 풍미하던 절대고수의 수십 년 경험이 녹아든 말이었다. 아무리 조난향이 머리가 좋다 해도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서서히 소천악의 입가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무슨 명문정파의 후손도 아니고 정의를 수호하긴 뭘 수호하오? 설령 그리된다면 내 자식도 허울 좋은 협행에 발목 잡혀 개고생을 해야 하오. 차마 아비로서 그 짓은 못 시키지요."
"하아."
엽기적인 소천악의 대답에 더 이상 설득할 기력을 잃은 조난향이었다.
"그럼 소 소협은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인가요?"
"말했듯이 천하제일미녀를 찾아 결혼함이 제일 목적이오. 물론 강호를 유유히 여행 다니면서 내 마음이 가는 데로 움직일 생각이오."
"결국 강호의 정의를 위해 싸우실 생각은 전혀 없는 거네요?"
드디어 소천악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잔뜩 불쾌한 기색으로 차갑게 대꾸했다. 화가 난 그의 말투는 당연히 반말로 거칠게 튀어나왔다.
"강호정의? 기녀는 그렇다 치고 소매치기와 도둑 그리고 건달들의 문파가 정의를 말하나요? 그럼 소매치기당한 사람과 도둑맞은 이가 보기엔 하오문이 정의인가요? 세상은 자기 기준으로 보면 다 정의롭게 보이지요. 같잖은 말씀일랑 하지 마시지요."
하오문을 깔아뭉개는 말에 조난향 문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당신은 왜 우리 하오문을 도와준 거죠?"
"도와준 게 아니지요. 거래였지요."
태연한 말에 이가 갈리는 조난향이 거칠게 소리쳤다.
"두고 봐요. 내 당신의 입에서 기필코 다른 말이 나오도록 해주죠."
"더 이상 떠들지 마시오. 여기서 한 치만 더 선을 넘어가면 오늘부로 하오문 총단은 잿더미로 변한다는 걸 명심해요. 난 결코 허언을 하지 않아요."
음산한 소천악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 박힌 조난향이었다. 더 이상 비위를 건드리면 바로 실행할 듯한 기세에 온몸이 움츠러졌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가는 그녀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네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복면 무리를 보니 쉽게 단념할 기세가 아니더이다. 나라면 얼른 총단을 비밀장소로 옮겨 안위를 도모할 거란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만."
차갑게 충고한 소천악이었다.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한 조난향이 빽 소리쳤다.
"흥! 상관하지 말아요. 우리가 알아서 할 겁니다."
"상관이야 안 하지요. 다만 내가 아는 이들이 단체로 몰살당하면 조의금이 단체로 나가니 그게 걱정이지요. 으하하하!"
싸늘한 비웃음을 던지며 소천악은 하오문을 아무 미련 없이 떠나갔다. 뒤에서는 두 눈에 독을 품고 새파란 광채를 쏘아대는 조난향이 있었다. 아무리 쏘아본다고 눈 깜짝할 소천악이 아니었다.
제2-7장 얽혀드는 은원
하오문을 나선 소천악은 먼저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종남파(綜南派)로 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가깝기도 했지만 여정상 제일 먼저 가는 게 편했다.
여정을 정한 그는 즉시 낭인시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지리에 능하고 경험 많은 무사가 필요했다. 거친 용역 무사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강자존의 세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접수대에 앉아 있는 육십 대의 노인에게 다가섰다.
"낭인 무사를 좀 고용하고 싶소이다만!"
노인은 가만히 소천악을 살펴보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꽤나 하는 모양인데 웬 낭인 무사를 찾는 게요?"
"하하, 필요하니까 구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마차를 몰 줄 알고 강호 지리에 밝은 자로 두 명만 부탁하오. 여러 가지 경험이 풍부한 자라면 더욱 좋소이다."
구인 조건을 가만히 듣던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흠, 쉽고도 어려운 조건이구려. 마차를 모는 건 다 하오만 지리에 밝고 경험이 풍부하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있는 자들이오. 아무래도 고용 가격이 비싸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