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6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60화
"문주, 준비하시오. 지금 백여 장 밖에서 별로 인간성 안 좋은 무림고수들이 다가오고 있소."
"드디어 시작이군요."
야무지게 다문 조난향 하오문주와 하오문 고수들이었다. 최후의 일인까지 사생결단하려는 의지가 단연 돋보였다. 소천악은 가만히 쳐다보다 툭하니 말을 건넸다.
"조 문주님! 오늘 저놈들을 모조리 땅에 묻어버리면 뭐 특별포상 같은 건 없소?"
전혀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말을 하는 소천악이었다. 어이없는 조난향이 톡 쏘아붙였다.
"이 판국에도 포상 타령인가요?"
"아, 사실 나야 하오문도도 아니고 뭔가 의욕을 북돋을 건수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오?"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소천악의 말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조난향이었다.
"일단 이기기만 해봐요.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요."
"제길입니다! 사람은 항상 보면 화장실 갈 때하고 올 때가 다르던데요."
"뭐라고욧!"
두 사람이 토닥거리는 사이에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속속 폐찰에 내려섰다. 가벼운 발소리만 들리는 경공술을 보여주는 무인들이었다. 그제야 적을 알아차린 하오문 고수들의 얼굴에 동요가 일어났다. 용기 하나만을 가지고 싸우기엔 벅찬 상대였다. 한 복면인이 앞으로 쑥 나섰다.
"조 문주, 생각은 해보셨소이까? 이거 데리고 온 분들을 보아하니 말로는 힘들 성싶은데 아무래도 훈계가 필요한 듯하군요. 허허!"
비꼬는 말투에 바로 발끈하는 조난향이었다.
"닥치세요! 우리 하오문은 아직 힘에 굴복한 역사가 없어요."
"허허, 역사라! 그거야 우리가 만들면 되는 거지."
약간 화가 난 듯 벌써 반말 투의 말이 복면인에게서 튀어나왔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은 자기가 나설 차례임을 알았다.
"이보슈! 얼굴 더러운 양반님네들!"
"뭐? 얼굴 더러운 양반?"
"아, 얼굴이 더러우시니 헝겊쪼가리 덮어쓰고 나타난 거 아니오?"
천연덕스러운 소천악의 말이었다.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조난향이 킥 하고 웃고 말았다. 복면인은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주름살을 세우는 게 느껴졌다. 싸늘한 말투가 복면 속에서 나왔다.
"너는 웬 놈이냐?"
"그러는 너는 어떤 분이시오?"
같은 식으로 대답하는 소천악이었다. 복면인이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네놈은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성싶구나. 뭐 하느냐! 일단 저놈을 황천길로 보내라."
"네, 조장님!"
살짝 고개를 숙여 대답한 십여 명의 복면인이 검을 들고 소천악을 향해 다가섰다. 그때였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소천악의 양손이 섬전같이 빛을 발했다. 아니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비도가 섬광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한 번이 아니었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다시 한 번 섬광이 번뜩였다.
"헉, 기습이다. 막아라!"
복면인들은 깜짝 놀라 얼른 검으로 다가서는 비도를 쳐 내려갔다.
챙! 챙! 챙!
놀랍게도 빠르게 움직인 검에 비도가 모조리 막히는 듯했다. 일류를 넘어선 고수들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비도는 한수 위였다. 검에 부딪친 비도는 검을 토막내며 전진을 계속했다. 경력이 비바람처럼 세차게 복면인들에게 몰려갔다. 비도에 실린 내력은 공기를 찢어대는 굉음을 내며 복면인들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피해라! 예사로운 비도가 아니… 크헉!"
요란한 비명이 복면인들 사이에서 울려 나왔다. 비도에 가슴과 목을 관통당한 복면인들이 비틀거리며 쓰러져 고개를 떨궜다. 삽시간에 십여 명의 복면인 중 불과 네 명이 살아남았다. 하나 불행은 항상 쌍쌍으로 달려왔다. 시간 차를 두고 다시 날아온 비도를 본 복면인들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삶의 욕구에 분분히 신형을 날렸다. 나름대로 최대한으로 펼친 경신법이었다. 하지만 비도가 한발 빨랐다.
"크아악! 아악!"
거의 동시에 네 번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후 똑바로 서 있는 복면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숨 몇 번 쉴 사이도 없이 십여 명의 복면인이 숨을 거뒀다. 가볍게 복면인들을 처리하는 소천악이었다. 그 싸움을 놀라움으로 바라보던 조난향과 하오문 고수들이었다.
특히 조난향은 생각보다 고강한 소천악의 무위에 내심 깜짝 놀랐다. 강하다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장이라 불리는 복면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한 그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비겁한 놈! 비도로 상대하다니."
복면인의 외침에 소천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참, 웃기는 분들이네요. 여러분들은 긴 검으로 오고 저야 조그만 검으로 상대하는데 누가 더 비겁하나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열이 뻗친 복면인들이다. 여전히 태연한 소천악의 입이 스산하게 열렸다.
"떠들지 마시고 자, 또 받아보시구려. 이번엔 조금 더 난이도가 심하니 신경 쓰시구려."
소천악의 손이 섬전같이 허리춤을 스치며 비도가 다시 날았다. 내공을 담은 비도는 시퍼런 광망을 서리서리 밤공기를 가르며 가공할 속도로 복면인들을 노렸다.
"모두 피해랏!"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복면인 하나가 소리쳤다. 숨 한 번 채 쉬기도 전에 벌써 코앞으로 닥쳐온 비도에 복면인들은 기겁을 하며 신형을 분분히 날렸다. 가까스로 비도가 향하는 방향에서 비켜난 복면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여러분들이 피하면 비도는 빗나갈 줄 아나요?"
차갑게 냉소를 머금은 채 소천악의 손이 무수한 장영을 그리며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 동작에 따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비도가 제각기 방향을 틀어 복면인들을 노려갔다.
"으억! 비도가 살아 움직인… 크아악!"
한 복면인이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가슴에 비도가 박혀 피를 토하고 죽어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방향을 바꿔 날아간 비도는 길게 포물선을 그렸다. 삽시간에 비도는 차가운 광채를 번뜩이며 대부분의 복면인들의 몸에 사정없이 박혔다.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나왔다.
삽시간에 이십여 명이 넘는 복면인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갔다.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복면인들도 크고 작은 상처를 안 입은 자가 드물었다.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검을 손에 든 소천악이었다.
"이젠 같이 검으로 해보자는 거지요? 그렇게 검 타령 하시는데 안 따라주면 서운하실까 봐 특별히 이번에는 검으로 해주지요."
싸늘하게 말한 그는 이미 신형을 비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아라! 모두 포위해라."
"포위는 아무에게나 써먹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지요."
서서히 내력을 실은 검에서는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복면인들은 살기를 내뿜으며 소천악의 전신을 상중하로 나누어 치밀하게 검날을 들이밀었다. 번뜩이는 검에는 아지랑이 같은 검기가 서려왔다.
포위합격에 많은 수련을 한 자들이란 게 확연히 드러났다.
"아! 조심해요."
안타까운 조난향 하오문주의 외침이 들렸다. 소천악은 피식 웃으며 벼락같이 초식을 변화시켰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폭풍으로 밀려갔다. 마주치는 모든 걸 파괴하고픈 폭풍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복면인 사이를 스치듯 지나갔다.
"크아악! 안 돼!"
"악마의 검법이다. 아악!"
포위한 복면인 사이에서 거친 비명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이미 자비심이라곤 찾기 힘든 소천악이었다. 마치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이 전부인 양 복면인 사이를 파고들었다. 사력을 다한 그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지만 풍혼검법의 위력은 그들의 한계를 넘어선 절세검법이었다.
소천악의 옷이 피로 물들어갔다. 사방에서 피보라가 일며 복면인들이 수수깡처럼 피를 토하고 쓰러져 갔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바라보던 조장이란 복면인은 도무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껴갔다. 더 이상 싸움은 전멸이란 생각이 들자 이를 악물고 노기를 참았다. 그의 목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모두 후퇴하라!"
두려움에 떨던 복면인들은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급히 몸을 돌려 산속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던 소천악은 복면인들이 후퇴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검을 내렸다. 이미 그의 몸과 옷은 혈의로 변해 있었다. 피식 웃는 그의 얼굴은 지옥에서 갓 나온 악마의 형상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장내에는 한 명도 살아 있는 복면인이 없었다. 다만 이미 숨이 멈춰 쓰러진 복면인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조난향은 기쁘다기보다는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소천악의 무서운 무공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오고 갔던 정보와는 천양지차였다. 숨겨진 무공은 강호무림의 초절정고수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시종 차가운 안색으로 복면인들을 제거하는 손속은 노련한 노강호보다 더 잔혹했다.
그와의 적대는 곧 하오문의 위기란 생각이 들었다. 조난향도 역시 일문의 문주였다. 놀란 내심을 감추고 소천악에게 다가섰다.
"소 소협!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음성이 들리자 슬쩍 돌아본 소천악의 입매가 가늘어졌다.
"편하게 하시오. 나와 약속했던 일들만 잘 처리해 주면 되는 일이오."
"그 점은 제가 책임지고 해드리지요. 이런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조난향 하오문주를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날리는 소천악이었다.
"나는 감사보다 원하는 정보가 일각이라도 빨리 내 손안에 들어오기를 바라오. 아, 그리고 그 전서구라는 거 한 마리만 빌려주시오. 거, 요긴하게 쓸데가 많을 것 같소."
뜻밖의 요구에 잠시 망설이던 조난향 하오문주가 쾌히 승낙했다.
"음, 아무나 줄 수 없는 거지만 하오문의 은인이니 한 마리 주지요."
"고맙소. 잘 쓰겠소."
담담한 소천악의 음성이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게 마음 아픈 게 아니다. 다만 복면인들의 무공이나 정체를 볼 때 성가신 일에 끼어든 게 분명한 느낌이다. 강호주유에 파리 떼처럼 달라붙을까 그 점이 우려될 뿐이다.
조난향은 전율스러웠다. 수많은 사람을 베어놓은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했다. 그 냉혈의 피가 차츰 두려워졌다. 애써 용기를 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하하! 색향이라는 항주에 왔는데 당연히 기루 순방을 다녀야지요. 여기서는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는데 뜻대로 될는지……."
조난향은 열불이 치밀었다. 자기도 여자인데 그 면전에서 뻔뻔하게 이야기를 하는 저 무심함에 절로 약이 올랐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여자 앞에서 화류계를 간다는 말이 나오나요?"
가만히 듣던 소천악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문주와 내가 무슨 사이라고 그런 말을 못 하겠소? 남자가 풍류를 즐기겠다는데 왜 외간 여자가 시비를 걸고 난리요?"
소천악의 반문에 말문이 턱 막힌 조난향이었다. 도무지 체면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철면피였다.
"아, 미안해요. 풍류남아의 길을 방해해서."
"음, 다음부터는 조심하시오. 그리고 물 좋은 기루를 소개나 시켜주시오. 피를 봤더니 영 찜찜한 게 좋은 곳에 가야 풀릴 듯하오."
"흥! 그런 건 우리 하오문에서 마당발을 소개해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