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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1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11화

혁련기. 천경전의 제 삼대주이자 구천삼공자 중 하나인 그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왔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선우상이 흑월조에 차출되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도 흑월조에 들어가려고.”

“예?”

“사실 천경전은 너무 따분해.”

장천운은 혁련기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거짓이 아니다. 정말 따분한가 보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표정이다.

“여기선 실력만이 말해줍니다. 천경전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아무 소용이 없죠.”

“그거 정말 마음에 드는군. 아버지 때문에 한 자리 한다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는데 말이야.”

“다른 곳에서의 지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혁련기는 천경전에서 수하 백 명을 거느린 대주다. 그의 입장에서는 흑월조 조장도 마음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걱정 말게. 그딴 지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는 선우상의 말을 듣고 밤새 고민했다.

대주 지위를 버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친이 노발대발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울며불며 매달려서 말리면 뭐라고 하지?

고민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동이 틀 때쯤, 모든 고민이 정리되었다.

-무사답게 살자!

가슴으로 몇 번이나 그 말을 되뇐 그는 차분하게 검을 옆구리에 차고 무화원으로 향했다.

“한번 들어오면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마음대로 이탈할 수 없습니다.”

“내가 조금 끈질긴 면이 있다네. 아마 저 친구에게 물어보면 알 거야.”

자진해서 지옥으로 뛰어들겠다는데 왜 말려?

장천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받아들이죠.”

누가 보면 혁련기가 아쉬운 사람인 듯했다.

현련기도 뒤늦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우상이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쯔쯔쯔, 전주가 자네 모습을 봤으면 주먹으로 뒤통수를 한 대 갈겼을 거네.”

‘에라이, 멍청한 놈! 뭐가 아쉬워서 사정해?’ 하면서.

 

선우상과 혁련기를 제외한 여덟 사람의 면면은 제각각이었다.

무혼단에서 온 단중낙은 폭이 좁은 검이 무기였는데 말수가 거의 없었다.

천경전의 이전은 키가 크고, 키가 큰 만큼 얼굴도 길었다.

벽혈당의 전교는 빼빼 마른데다 키도 작았고, 거경당의 육가종은 전교보다 세 배는 무거울 듯했다.

귀도당의 문등천은 평범한 외모였다. 소문으로는 칼을 뽑아야만 귀도당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절검당의 홍산산은 유일한 여인으로, 겉모습은 곱상하고 발랄했다. 그러나 절검당 무사 중 그녀를 여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찰귀검(羅刹鬼劍). 그게 그녀의 별호다.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경천단의 철상문과 광혈단의 백후는 무공이 강하고 기재가 남달라서 한때 독고태와 탕추강이 중용했다. 그런데 두 단주가 성주에게 반기를 들자 갑자기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았다.

두 사람은 그 후 술이나 마시고 근무지 이탈을 밥 먹듯 하면서 임무에 소홀했다. 그 바람에 뇌옥에도 갇히고, 궂은일이나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전령이 임시성주의 명령서를 갖고 그들을 찾아갔을 때도 철상문은 말똥을 치우고 있었다. 백후는 장작을 패는 중이었고.

 

장천운은 열 사람을 데리고 흑월조의 거처로 향했다.

앞으로 전쟁을 치르려면 동료의식이 철저해야 한다. 아마 흑월조원들과 함께 수련을 하다보면 동료애가 미치도록 끈적끈적해질 것이다.

‘문제는 혁련기인데…….’

그는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집안 아들’이다.

잘난 형에게 밀려서 천대받는 진구나, 서자의 설움을 처절하게 겪은 사공명신과는 또 다른, 진짜 잘 나가는 집안 아들.

거친 수련을 하다 잘못될 경우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른다.

‘에이, 알아서 잘 하겠지.’

 

 

47장: 흑월대(黑月隊)

 

 

흑월조에 새로 합류한 열 사람은 첫날부터 온몸으로 흑월조원들의 거친 야성을 느껴야만 했다.

사실 말이 좋아 야성이지 미친놈들의 광기라고 말하는 게 더 확실했다.

젊은 놈이나 나이 먹은 놈이나 싸우는 걸 미치도록 좋아했다.

싸우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싸워댔다.

물론 명분은 확실했다.

수련과 비무.

이 미친놈들은 죽일 듯이 도검을 휘두르면서도 절대 싸움이라고 하지 않았다.

-수련이 조금 거칠 수도 있지 뭐!

-비무가 아니면 미쳤다고 이 지랄하겠어?

-원한? 그게 뭔데? 먹는 거야?

열 사람 중 가장 강한 혁련기조차 그들의 광기에 기가 질렸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열 사람 모두 미친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혁련기도 그 미친놈들과 똑같이 놀았다.

특히 그는 사공명신과 원수인지 동료인지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싸웠다.

하루에 두 번씩 매일 싸우고도 결국은 승부를 내지 못했지만.

그런데 닷새째 되던 날이었다. 장천운이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사공명신이 말했다.

“장 조장, 이기는 사람이 대주하기로 하세.”

뒤질세라 혁련기도 찬성하고 나섰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어떻게 생각하나, 장 조장?”

그러고는 두 사람이 서로 먼저 싸워보겠다며 다투었다.

솔직히 두 사람은 대주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장천운과 한번 싸워보고 싶을 뿐.

“내가 먼저 제안했으니 비무도 내가 먼저네.”

“훗, 뒷간에 먼저 들어갔다고 해서 먼저 나오란 법은 없잖은가?”

“천경전 사람들은 예의도 모르나?”

“이봐, 사공신. 언제 예의 따지고 검을 들이댔나?”

“덩치는 태산만한 친구가 속이 좁군.”

“그래도 자네보단 낫네.”

두 사람은 으르렁거리며 계속 다투었다. 이러다가는 장천운과 싸우기 전에 두 사람이 먼저 붙을 듯했다.

싸움에 미친놈들이 어찌 그런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놓치겠는가!

한쪽에서 수련을 빙자한 개싸움에 열중해 있던 흑월조원과 은명객들이 손을 멈췄다.

몇 사람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두 사람이 신나게 싸우기만을 기다렸다.

심지어 두양양도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의 관심은 두 사람간의 승부가 아니었다. 사공명신과 혁련기가 강하긴 해도 그녀와 큰 차이는 없었다.

그녀가 궁금한 것은 장천운, 그의 진짜 실력이었다.

‘사공명신과 혁련기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때였다. 장천운이 두 사람의 말다툼을 간단하게 중지시켰다.

“싸우지 말고 둘이 함께 덤비쇼.”

“응?”

“뭐?”

으르렁거리던 사공명신과 혁련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장천운의 강함은 인정했다.

장천운은 지난 며칠 가끔씩 은명객을 상대로 해서 수련에 임했다. 사람들은 수련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개타작.

그랬다. 한여름 개도 그렇게는 안 팰 듯했다.

오죽하면 은명객을 미친놈 취급했던 사람들조차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천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들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착각이었다.

그 착각을 깨닫기까지는 반의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퍼벅! 콰아앙!

왼쪽으로 나가떨어진 사공명신이 떼굴떼굴 서너 바퀴를 구른 후에 일어났다.

창백한 안색, 이를 악물고 일어나는 그의 눈빛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보다 덩치가 큰 혁련기는 오른쪽으로 일 장 정도 붕 떠서 날아간 뒤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그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혼천수라권에 얻어맞은 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도대체 몇 대나 맞은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이제 대충 정해진 것 같은데…… 수긍하지 못하겠으면 다시 해보죠, 뭐.”

장천운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사공명신과 혁련기는 불에 댄 듯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네. 내가 졌네!”

“자네가 대주해!”

 

장천운은 그 자리에서 흑월대를 삼조로 나누었다.

일조 조장은 혁련기. 조원은 나중에 합류한 아홉 명까지 모두 열 명.

이조 조장은 사공명신. 조원은 두양양과 은명객 여섯까지 모두 여덟 명.

삼조 조장은 구산. 조원은 진구와 저두심, 오관, 유고원, 추소철, 이한, 한명후, 그리고 방호삼형제까지 총 열한 명.

그렇게 조원을 정리한 장천운은 마지막으로 흑월대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앞으로 흑월대는 소성주를 호위하면서 온갖 어려운 경우를 맞게 될 거요. 때문에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오. 만약 특별한 이유 없이 조장의 말을 무시하는 조원이 있다면, 그 조의 조원들은 특별교육을 받게 될 거요.”

다른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했다.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은명객들의 얼굴은 썩은 감을 씹은 것처럼 이지러졌다.

‘지미, 저 애새끼들의 명령을 들어야한단 말이지?’

‘조까,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씨바, 언제 한번 뒤집어엎어? 저 새끼들이라면 한번 해볼 수 있을지도…….’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연무장 쪽으로 뛰어왔다.

구천무원에 있던 진구였다.

“조장! 소성주께서 부르시네!”

 

***

 

장천운이 들어갔을 때 사마경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밝은 표정이었던 걸 생각하면 뭔가 심각한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소성주?”

사마경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서신을 장천운 앞으로 밀었다.

“신천검문의 소문주인 옥성강이 전령을 통해서 백부에게 서신을 보냈어.”

서신을 읽는 장천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서신에서 절망에 찬 분노가 절절히 느껴졌다. 구천성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왜 천은방을 공격하지 않는가!

왜 신천검문의 혈겁을 외면하고 있는가!

우리가 구천성을 위해 바친 피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거란 말인가!

내막을 잘 모르는 그들로서는 당연히 원망스러울 것이다.

“백부가 이 서찰과 함께 사람을 보냈어. 모레까지 출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서겠대.”

마음 같아서야 그랬으면 싶었다.

하지만 공손백이 대신 출정하면 구천성 무사들의 사마경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태.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무사는 어느 정도 동원할 수 있습니까?”

“장로와 호법은 열 명 정도, 그리고 무혼단과 풍혼단, 거경당, 절검당 무사를 포함해서 모두 오백 정도는 바로 출발할 수 있어.”

그 정도 무력이면 어지간한 문파는 단번에 휩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천은방이다. 호북의 삼대세력 중 하나. 무사의 숫자만 해도 이천이나 되는 대방파.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전면전이 벌어질 터. 설령 이긴다 해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총사는 뭐랍니까? 지원대에 대한 계획은 서 있답니까?”

“오백 무사가 대기하며 강호 상황에 따라서 대처할 거래.”

장천운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대규모 토벌대가 출정하면 구천성의 움직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눈에 불을 켜고 구천성을 지켜보던 자들이 모를 리 없다.

검왕문과 장강팔련은 물론, 오랫동안 때를 기다렸던 또 다른 세력들이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슬슬 고개를 쳐들 것이다.

지원무사는 결국 그들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고.

“결국 지원에 대해서는 희망이 없다고 봐야겠군요.”

굳이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도 없다.

무사 삼천 중 일천이 이미 밖으로 나가 있다. 이번 토벌대와 지원무사대까지 합하면 이천이 밖으로 나가는 셈이다.

그럼 남은 무사는 일천. 더 빼내면 총단 자체가 위험해진다. 공손백이 그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대를 보내겠는가 말이다.

“소성주, 제가 가서 총사를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우문 숙부를?”

“은명객 외에도 총사에게 숨겨놓은 힘이 제법 있을 겁니다. 말로는 없다고 합니다만.”

그 말에 사마경의 눈빛이 반짝였다.

“맞아, 전에 들은 말이 있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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