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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5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58화

 

  "흐음, 그래요?"

 

  설명을 듣던 소천악은 점점 더 그놈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기회를 잡은 말 장수의 현란한 혀놀림이 시작됐다.

 

  "정 사고 싶으시다면 특별히 은자 삼백 냥에 팔지요. 어차피 씨받이 하려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요."

 

  "좋소이다. 저놈까지 사는 걸로 하지요."

 

  가볍게 거래를 마치고 소천악은 장수붕 지부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고생했소. 이번 거래는 상당한 도움이 됐소. 여기 정보비로 오백 냥이오."

 

  "헉! 겨우 이걸로 이리 많이 주시면."

 

  "거, 말이 많으시오. 정보비 책정은 내가 하오."

 

  시큰둥한 반응에 얼른 전표를 받아 챙긴 장수붕 지부장이었다. 그제야 빙긋 웃으며 소천악의 입이 열렸다.

 

  "거래란 건 말이오, 서로가 만족해야 정말 좋은 거래라고 생각하오. 사실 지부장이 아니었음 난 그대로 부른 가격에 샀을 거요. 그러니 차익은 당연히 하오문의 것이오. 장인 건까지 포함해야 하지만 그러면 또 내가 불만이니 이게 딱 좋은 거래요."

 

  "아… 네."

 

  해괴한 논리로 말하는 소리에 장수붕 지부장은 얼이 다 빠질 지경이다. 도대체가 상식이라는 게 통하는 인물이 아니다.

 

  "자, 그럼 지부장님! 전 객잔에 가서 물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요. 말은 지부에 당분간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말은 잘 보살펴 주지요."

 

  장수붕 지부장과 헤어져 객잔에 방을 잡은 소천악이다. 수중에 은자도 충분하니 왠지 느긋해지는 기분이다. 이가장에서 한몫 잡은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혈사부에게 당했던 설움을 그대로 돌려준 맛이 근사했다.

 

  비수는 꼭 필요했다. 강호에서 지내다 보니 성가신 일이 많아질 조짐이다. 성격 탓에 사소한 시비가 잦아지면 그때마다 검을 뽑기가 성가셨다. 일종의 게으름이다. 비도술을 써먹을 생각이다.

 

  천수비도술(千手飛刀術)은 그가 생각해도 훌륭한 수법이다. 쾌속한 손놀림으로 뿌려대는 비도는 어지간한 호신강기 정도는 한 번에 찢어발길 위력이다. 두께가 한 자가 넘는 바윗돌도 가루로 만드는 절세수법이다.

 

  방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수비도술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갑자기 섬전같이 움직였다. 그러다 다시 조용히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하루 종일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소천악은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오로지 손의 감각만을 느끼려 의식을 집중할 뿐이다.

 

  할수록 재미를 느낀 그는 아예 식사를 방으로 주문했다. 어린애처럼 즐거운 일을 찾은 기쁨에 젖어 수련에 매진했다. 남들이 보면 지겨운 짓을 왜 하냐고 손가락질을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성취감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장작 패기에서 얻은 깨달음이 여기서도 발현되었다. 그가 뿌리는 손속은 언제부터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쾌속함을 보였다. 찰나에 무려 수십 차례나 손이 움직이는 눈부신 수법이었다.

 

  천수비도술에 빠져 헤매는 소천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공삼매경에 빠졌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손님! 장수붕이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점소이의 말에 어느새 결가부좌를 풀고 탁자 앞에 앉은 소천악이 대답했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방 안에 들어온 장 지부장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갑자기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하하! 살다 보면 다 그런 거지요. 자자,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 보시지요."

 

  소천악은 여유를 부리며 장 지부장을 대했다. 부탁한 걸 다 들어준 그를 박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실은 하오문 총단에서 급한 서찰이 왔습니다. 총단에 급박한 일이 생겨 신의괴협께 보여드리라는 문주님의 지시입니다."

 

  "음, 일단 줘보시오. 무슨 내용인지 보기라도 합시다."

 

  썩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서찰을 받아 읽었다. 하오문주가 직접 쓴 글은 어려움을 당해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다 읽은 소천악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미안하오. 나는 강호의 은원에 별로 끼어들고 싶지가 않소. 그저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오. 이 점을 양해해 주시오."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소천악이다. 장수붕은 이미 그런 답변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물론 그런 마음인 줄 압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이번 청을 들어주시면……."

 

  잠시 말을 멈추는 장수붕이었다. 소천악은 가만히 듣다가 말이 더 안 나오자 성격대로 독촉에 들어갔다.

 

  "어서 이야기를 더 해보시오."

 

  "하하, 하지요. 우리 하오문에서 아직 만나시지 않은 천하 십대미녀의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드리지요. 하다못해 속옷색깔까지 알려주겠습니다."

 

  "오호, 그런… 흠!"

 

  차츰 마음이 기우는 듯한 소천악이었다. 하지만 딱 잘라 말하지는 않았다. 사실 귀찮았다. 서찰을 보니 예사로운 놈들이 아니란 직감에 괜히 끼었다가 시끄러워지면 자기만 손해란 생각에 결정을 미뤘다. 그 눈치를 챈 장수붕이 마지막 수단을 썼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신의괴협께서 강호를 주유하시다가 금전적으로 어려우면 장기간 저리로 대출하겠다는 문주님의 말씀입니다."

 

  "장기 저리 대출? 지금 농담하시는 거요? 내가 사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웬 대출 타령이오? 집어치워요. 안 들은 걸로 하겠소."

 

  버럭 성질을 내는 소천악을 보고 아차 한 장수붕이었다. 하오문주의 지시는 이게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영입하라는 말이었다. 하오문에 불타는 충성심을 가진 장수붕이 문의 이익을 위해 말을 살짝 바꾼 일이다.

 

  결과가 너무 안 좋았다. 이제 수습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힘들게 머리를 굴린 장수붕이 말을 이었다.

 

  "소 소협, 이러지 마시고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비록 문주님은 그리 지시했습니다만 제가 다시 건의를 드려 조건을 바꿨습니다."

 

  "어떻게요?"

 

  이제는 아예 성가시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소천악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축객령이 떨어질 판이다. 장수붕은 다급히 말을 꺼냈다.

 

  "일을 마치시면 은자 십만 냥을 드리지요. 물론 일시불입니다."

 

  "미안하지만 나 돈 많소. 있는 것도 쓰기가 영 벅찬 판이오."

 

  "중원 삼대색마의 정보도 드리지요."

 

  소천악의 고개가 홱 돌아왔다. 눈에 안광이 번뜩이며 급히 말했다.

 

  "지금 삼대색마라 했소? 분명히?"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소천악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좋소. 하오문주의 제의를 받겠소. 조건은 십대미녀에 관해서는 한 달 내로 주시오. 은자는 하오문에 도착하는 즉시 그리고 삼대색마에 대해서는 석 달의 기간을 주겠소. 할 수 있겠소?"

 

  안 된다고 하면 바로 나가라 할 판이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 장수붕이 급히 대답했다.

 

  "따르지요."

 

  "거래 성사요. 마차가 완성되는 대로 가겠소."

 

  "마차는 오늘 중에 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길, 쉴 틈을 안 주는군요. 마차가 오는 대로 가는 걸로 하죠."

 

  "문주님과 문도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환하게 얼굴이 피어 사의를 표하는 장수붕이었다. 내심 용궁 갔다 살아 온 기분이었다. 소천악은 찝찝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했다. 편하게 살고 싶은데 줄줄이 엮이는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었다.

 

  장수붕의 독촉에 질린 필진평은 약속 날보다 하루 빠르게 마차와 비도를 만들어냈다. 소천악은 등 떠밀려 떠나는 신세로 변하고야 말았다. 마차 문을 열자 육포 등 식량이 바리바리 준비되어 있었다. 다 장수붕의 날랜 손놀림이었다.

 

  "거참, 동작도 빠르시오. 도대체가 빠져나갈 틈을 안 주시는군요."

 

  어이없이 마차에 올라타며 소천악이 투덜거렸다. 장수붕은 일단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를 손 모아 기다리겠습니다."

 

  "뭐, 결과야 당연히 좋겠지요. 그럼 이만 가볼까 하오."

 

  마차에 오르자 이미 준비된 하오문도 하나가 마부석에서 채찍을 휘둘렀다. 길을 모르는 소천악을 염려한 장수붕이 어느새 마부까지 구해놓았다.

 

  장사를 떠난 마차는 도대체가 쉴 줄을 모르고 달렸다. 오직 말이 지쳐 쉴 때가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꾹꾹 참던 소천악이 마침내 발작했다.

 

  "좀 천천히 갑시다. 이거 경치 구경은커녕 밥도 먹다가 체하겠소. 먹을 만하면 출발하니, 나원!"

 

  "죄송합니다. 지부장님께서 서둘러 가야 한다고 워낙 강조하셔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죄하는 하오문도인 하기주에게 더 이상 추궁하기가 어려웠다. 죽이기 전에는 전혀 늦출 기색이 아니었다.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가 하오문 총단이 있는 목적지였다. 거기까지는 강서성(江西省)을 지나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남창(南昌)을 지날 무렵 소천악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거세게 달린 지도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하오문도를 패 죽이고 싶은 심정이 하루에도 열두 번이었지만 무림공적이라는 딱지가 눈앞에 아른거려 참고 또 참았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하기주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의 입은 얼른 열렸다.

 

  "신의괴협님! 항주하면 중원제일의 색향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별볼일없는 데보다는 거기가 좋을 거란 소인의 마음이지요."

 

  "오호 중원제일의 색향이오?"

 

  구미가 당긴다는 듯 소천악의 눈이 커져갔다.

 

  "유명하지요. 각 성의 미녀들이 전부 모이는 곳이지요. 제가 또 미리 좋은 곳을 다 알아놓았다는 거 아닙니까!"

 

  "으하하하! 역시 남자의 향기는 남자가 안다고 역시 멋진 분이시군요."

 

  금세 기분이 풀어진 소천악이 연신 대소를 터뜨렸다. 그제야 안심한 하기주였다. 소천악의 변덕스러운 기분 변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살 떨리는 그였다. 아무리 안심하려 해도 마음이 안 놓이는 동반자였다.

 

  그 후 꼬박 보름을 달려 항주에 도착한 두 사람이었다. 마차의 화려함에 길 가던 중인들이 모두 놀라 쳐다보았다. 중인들은 어느 고관대작의 행차인 줄 알고 고개를 숙이는 촌극마저 펼쳐냈다.

 

  마차는 무조건 달려 하오문 총단에 들어섰다. 이미 통고한 듯 정문 경비 무사는 문을 활짝 열고 마차를 맞이했다. 장원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마차를 탄 소천악이었다. 나름대로 배려하는 하오문에 대해 조금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뀌었다.

 

  마차가 선 곳은 장원 중심부에 있는 문주 집무실이었다. 회의장과 함께 있어 여느 건물보다는 배 이상 큰 규모였다. 마차에서 내린 소천악은 바로 문주에게 안내되었다. 방에 들어서자 소천악은 잠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문주는 면사를 쓴 여인이었다. 여인이 문주라는 사실이 약간 놀라웠으나 바로 신경을 지워버렸다. 누가 문주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터였다. 오히려 반가웠다. 냄새나는 남자보다는 향긋한 입내음을 풍기는 여자와의 밀담이 더 즐거운 소천악이었다.

 

  "반가워요, 소 소협! 전 하오문을 책임지고 있는 문주 조난향(趙蘭香)이라고 해요."

 

  "반갑소이다. 내 이름이야 당연히 아실 테지요?"

 

  "물론이죠. 광동성과 호남성을 뒤집어놓은 별호를 모를 리가 없죠. 신의괴협이란 이름은 이제 중원의 관심사가 된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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