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5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57화
철두철미한 소천악의 심계에 기가 질려가는 손두호였다.
"됐어, 가보시오. 나중에 하오문을 통하여 필요하면 연락 주지요. 물론 일을 시키면 보수는 주니 염려는 마시오. 공짜로 부려먹는 거 나도 싫어하오."
살살 눈치를 보던 손두호 살막주는 포권을 하며 말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럼 나중에 연락 주실 일 있으면 찾아뵙지요."
소천악은 입이 찢어질 듯했다. 하룻밤 사이에 거금 십만 냥이 넘는 은자가 가볍게 수중에 들어왔다.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릴 줄 몰랐던 소천악이다. 거금이 들어오자 더 이상 사부 노릇도 지겨웠다. 그렇게 행복한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소천악은 형제와 양청천을 동반하고 이간희 장주를 찾아갔다. 형제는 어젯밤 일을 이야기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다.
"장주님! 이제 자제분들이 학문에 취미를 가진 거 같습니다."
"허허,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이제 전 그만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처리할 일이 태산이라 지금 바로 떠날까 합니다."
"저런! 이렇게 갑자기 가시면……."
말은 아쉽게 들렸지만 이간희 장주는 속으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이제 천금 같은 아들놈들이 밤마다 얻어맞는 속 터지는 꼴을 안 봐도 되었다. 더욱이 개망나니이던 자식들의 개과천선한 얼굴에 부모로서 기쁨이 더해졌다. 그는 얼른 준비한 전표를 꺼내 소천악에게 주었다.
"약속보다 두 배로 넣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처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뭘 이렇게까지 주시다니! 뭐 성의이고 하니 잘 쓰겠습니다."
전혀 사양의 기미를 안 보이며 얼른 받아 챙기는 소천악이다. 이후 덕담이 간단하게 오가며 이별을 준비했다. 소천악은 일어서며 형제들에게 말했다.
"잘하시구려. 이후에 다시 불미스런 이야기가 들려오면 아주 팔다리를 꺾어 병신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만들겠소이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언제든지 시험해도 좋습니다."
소천악의 위협에 기겁을 하며 바로 대답하는 형제였다.
"무슨 말씀을. 사부님이 주신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명언을 평생 동안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이자용과 이재룡의 다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소천악이 말했다.
"오! 부디 그렇게 해주시오. 나로 하여금 제자를 병신으로 만들지 말게 해주시구려."
"헉! 염려 마십시오. 제자들 사부님의 말씀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음산한 협박을 하는 소천악에게 두손 두발 다 드는 형제였다.
"그래요. 그래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 일 년분 해약입니다. 일 년 내로 돌아와 개과천선이 확인되면 그땐 완전한 해약을 주지요. 뭐 지금 달라고 난리를 치면 당연히 안 해줄 건 잘 알죠?"
마지막까지 족쇄를 채워놓고 유유하게 이가장을 나서는 소천악이다. 수중에는 이젠 물경 이십만 냥이 훨씬 넘는 거금이 들어왔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챙긴 돈이다. 사연이야 어찌되었건 은자 모으기는 참 쉽다는 마음이었다.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서 은하전장 지부로 걸어갔다.
지부장과 앉자마자 소천악은 황금패를 면전에 내팽개쳤다. 흠칫한 남서추 지부장이 멀거니 바라보자 바로 입을 열었다.
"이거 가져가시오.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 은하전장과의 인연은 오늘로 끝이오."
뜻밖의 행동에 남 지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러시면 제가?"
"아무 말 마시오. 그리고 담대추광 장주님께 이 말을 꼭 전해주시오. 따님의 병은 아직 완치된 것이 아닌데 마지막 처방은 이제 없다고 해주시오. 첨언한다면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헉,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놀란 남 지부장이 벌떡 일어섰다. 경악스런 표정을 전혀 지우지도 못한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젊은 놈이 장주의 신임을 받아 배알이 꼴려 했던 일이 치명적으로 돌아오는 것에 당혹감이 극에 달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담씨 가문에 극히 실망했소."
찬바람이 쌩하니 불도록 몸을 돌려 지부장실을 나서는 소천악이다. 남서추 지부장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면서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아니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셔야 저도 담 장주님에게 말씀을 드릴 거 아닙니까?"
"더 이상 말 시키면 나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오. 조용히 가게 내버려두시오."
살기가 그득 담긴 소천악의 대답에 지부장은 입을 꼭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장의 일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생명만큼 중요할 리는 없다. 전장의 규칙대로 처리한 일이 이렇게 크게 확대될 줄은 꿈에도 모른 남서추의 머리는 깨질 듯 아파왔다.
담 장주의 성격을 보아할 때 자신이 무사하기는 애당초 틀린 일이다. 갈수록 어두워지는 그의 얼굴은 점점 죽은 자의 낯빛을 닮아갔다. 통쾌하게 일격을 가한 소천악은 날아갈 듯한 걸음으로 은하전장을 나섰다.
혹시나 모를 담수란의 병이 재발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완전히 세워둔 셈이다. 기왕 신의로 자리매김 할 바엔 만사는 불여튼튼이었다.
제2-6장 하오문의 위기
휘파람이 절로 나오는 소천악은 만금전장을 찾아갔다. 거기서 내민 전표에 만금전장 지부장은 거만한 자세를 바로 풀고 연신 굽실거리기 바빴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큰손님에 지부장은 간이라도 빼줄 듯이 아부를 떨었다. 역겨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소천악이 일처리를 시작했다. 십만 냥을 맡겼다는 수결 어음을 받고 나머지는 금원보와 천 냥짜리 전표로 모두 교환했다.
전 재산을 효과적으로 나눈 소천악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인사하는 지부장을 본척만척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오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보시오, 장수붕 지부장님. 장사에서 제일 유명한 장인을 불러주시오. 그리고 말 한 열 마리 죽이는 놈으로 구해 오시오."
다짜고짜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는 장수붕 지부장이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바로 조치를 취하지요."
장수붕 지부장은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소천악은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돈만 생기면 하려던 일을 바로 처리할 속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수붕 지부장과 함께 들어서는 오십대의 장한이 있다. 장사에서 수백 년간 장인 일을 대물림해 온 필진평(筆眞平)이었다.
장인답게 온몸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자리잡았다. 수염이 텁수룩한 얼굴은 고집쟁이 특유의 기질이 여실히 드러났다. 소천악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으로 그를 맞았다.
"반갑소이다. 소천악이라 하오이다. 제가 지리가 어두워 이리 모시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자신에게 예의를 다하는 자를 아무리 심술맞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싫은 기색을 내비칠 수는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허허,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손님이 부르시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그런데 어떤 걸 부탁하시려고 하시는지?"
필진평의 질문에 소천악은 웃는 낯으로 설명하였다.
"마차가 먼저 필요합니다. 어떤 무기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마차지요.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함이 중요하지요. 노숙이 많을 듯하니 잠자리도 신경 써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허어, 어려운 주문이시군요. 하지만 만들려면 굳이 못 만들 이유도 없지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필진평의 말이었다. 소천악은 기분 좋게 말을 이어갔다.
"다음은 비수입니다. 자세한 형태는 제가 준비한 걸 참고하시고 만들어주시면 고맙지요. 이건 만들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숙련된 장인만이 할 수 있다는데."
여운을 주는 소천악의 말에 바로 화를 벌컥 내는 필진평이다.
"아니, 무슨소리요? 이 중원 바닥에서 내가 포기하면 만들 자는 손가락으로 꼽아도 남을 것이오. 어디 줘보시오."
소천악의 격장지계에 그대로 넘어가는 필진평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은 미리 준비한 그림을 내놓았다.
"이건데 가능하실는지?"
질문에 대답 없이 그림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필진평의 입이 열렸다. 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다.
"크흠! 실로 어려운 주문이구려. 이건 오철이 아니면 불가능한 비수요. 다행히 우리 가문은 대대로 내려오는 오철이 조금 있소. 만들 수는 있소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게 먹히오."
"아, 가격이 얼마나?"
"음, 최소한 이 정도 수량이라면 은자 오천 냥은 받아야 하오. 이걸 만들려면 우리 공방 장인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가능한 일이오. 오철 값도 생각해야 하고."
"해주십시오. 은자는 선불로 드리지요. 마차까지 합한 가격인가요?"
"거, 무슨 소리입니까? 마차 값은 주문대로라면 칠천 냥은 되어야 하지요."
옆에서 듣던 장수붕 지부장의 안색이 변했다. 거금도 보통 거금이 아니다. 지부의 일 년 운영비가 기껏해야 천 냥이면 족한 실정이다. 거의 몇십 년치 예산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이다.
"좋소이다. 한 푼도 안 깎을 테니 잘 만들어주시오. 여기 선금으로 오천 냥이오."
시원시원하게 거래를 마치는 소천악을 보고 필진평의 얼굴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변했다. 물론 장수붕 지부장은 입을 쫙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공적인 거래를 마친 필진평은 만족스런 기분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말씀하신 건 늦어도 일주일 내로 보내드리지요."
"부탁합니다. 잘 만들어주세요."
화기애애한 거래를 마치고 소천악은 다시 장수붕 지부장을 보았다.
"지부장, 말은 어떻게 되었소?"
"아, 방금 마시장에 간 지부원이 말 장수와 함께 와 있다고 합니다."
"가봅시다. 어떤 놈이 왔는지."
성질 급하게 소천악은 얼른 지부 앞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스무 마리의 말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말 장수는 고급 말을 열 마리나 산다는 말에 직접 나타났다. 인사하는 말 장수에게 건성으로 포권한 소천악은 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그가 좋은 말을 볼 줄 알 리가 없다. 그저 아는 척하며 볼 뿐이었다.
"공자! 이 말들은 모두 서역에서 가져온 말들입니다. 강인한 지구력과 속도를 겸비한 훌륭한 놈들이지요."
어느새 옆에 따라붙은 말 장수가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훌륭해 보이긴 했다. 소천악의 눈이 장수붕 지부장을 향했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뜻을 알아챈 장수붕 지부장이 냉큼 나서서 말했다.
"좋아 보이는군요. 대충 한 필에 얼마요?"
"네, 사실 많이 받아야 하지만 열 필을 한꺼번에 사시니 한 마리당 오백 냥인데 열 마리에 사천 냥에 드리지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장수붕 지부장이 바로 대답했다.
"삼천오백 냥!"
말 장수는 갑자기 튀어나와 깎는 장수붕 지부장이 미웠지만 도리가 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이번 거래도 신속하게 끝났다. 돈을 지불하던 소천악의 눈초리가 한 필의 말에 꽂혔다. 뒤에 있던 망아지 한 마리였다. 다른 말과는 달리 오두방정을 떨면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푸르릉거리는 놈이다. 눈치 빠른 말장수가 그 낌새를 놓칠 리 없다.
"아, 저놈을 보시는군요. 저놈은 혈통은 좋은데 도무지 길들여지질 않습니다. 그저 씨받이로 키우려고 데리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