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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54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54화

 

  선발된 자는 이병두라는 학자였다. 선발기준은 단지 만만해 보이는 인상이 기준이었다. 시끄럽게 훈계할 학자는 질색인 소천악이었다. 그날부터 채용된 사부 보조 이병두였다.

 

  이병두와 이자용, 이재룡 형제간의 글공부는 시작되었다. 소천악은 옆에서 감시하는 척하며 같이 글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강호를 주유하려면 기본적인 학문 소양이 필수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소천악의 숙제량은 항상 형제의 능력보다 벅차게 내려졌다. 여전히 자정이 지나면 비명은 들려왔다. 잠시라도 틈을 주면 헛생각을 한다는 지론이었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형제는 감히 허튼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그저 하루를 넘기기에 급급한 딱한 형편이다.

 

  소천악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식이다. 글공부도 하고 혈사부에 당한 원한을 고스란히 형제에게 돌려주었다. 드디어 형제들에겐 지옥 같은 보름이 지나자 소천악은 형제를 불러 말했다.

 

  "보름 동안 수고했어요. 오늘 하루는 휴식하도록 하시게."

 

  "야아아아!"

 

  이자용과 이재룡은 해방감에 들떠 소리쳤다. 드디어 단 하루의 꿀맛 같은 휴식이다. 소천악은 피식 웃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가 완전히 전각에서 사라지자 형제는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재룡아 !우리가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수야 없지. 안 그래?"

 

  "물론이죠, 형! 어떻게 할까요?"

 

  "일단 이병두라는 사부 보조를 딱 보아하니 돈에 약한 인상이더라. 뇌물로 구워삶자."

 

  "하하! 역시 형은!"

 

  손발이 착착 맞은 형제는 소천악을 응징할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댔다. 얼마 후 의견이 일치된 형제는 음산한 미소를 교환하며 전각을 나섰다. 이자용과 이재룡은 한 건물 지하에 나타났다.

 

  "청부하겠소. 대상자는 소천악, 별호는 신의괴협이오. 청부 내용은 죽이시오."

 

  이를 뿌드득 갈며 말하는 이자용이다. 감히 자신들을 향해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니 절로 몸이 떨려왔다. 복면을 쓴 자는 아무런 감정 없이 앉아 있었다.

 

  "어려운 청부군요. 상대는 절정급의 고수요. 우리 살수들의 피해가 우려되오."

 

  "비용은 달라는 대로 주겠소."

 

  "음, 그렇다면 은자 사만 냥에 청부를 받겠소. 싫으면 돌아가시오."

 

  "헉, 사만 냥이나?"

 

  "상대는 절정고수요. 우리 특급살수들을 동원해도 얼마나 피해가 갈지 상상하기 힘드오. 실상 절정고수급은 살인청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이 세계 불문율이오. 하지만 특별히 이가장 대공자의 체면을 생각해 받아들이는 거요."

 

  협상은 없다는 단호한 말투였다. 이자용은 고민이 안 될 수 없었다. 은자 사만 냥이면 쌀이 몇 가마니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실로 엄청난 금액을 부르자 절로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다. 턱에 손을 대고 노심초사하던 이자용이 결단을 내렸다.

 

  "좋소, 드리겠소. 단 확실하게 보내주시오."

 

  "하하, 당연한 말이오. 어차피 후불인데 잘해야 은자를 받을 게 아니오?"

 

  "언제 실행할 요량이오?"

 

  "특급살수들의 동원과 그자의 습성을 파악하려면 최소한 열흘은 필요하오."

 

  "알겠소. 여기 선금으로 만 냥이오."

 

  이자용은 그동안 남겨놓은 전 재산을 내놓았다. 어차피 일만 성공하면 그까짓 은자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표를 받아 챙긴 복면인은 아무 말 없이 포권하며 사라졌다.

 

  "하하, 이제 열흘만 참으면 두 발 쭉 뻗고 잘 일만 남았다."

 

  "그러게요, 형님.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형제는 설움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지옥 같은 보름의 세월이다. 이가장의 소장주로 부러울 것 없이 살다 갑자기 당한 고통은 절로 치욕감이 들게 했다. 무사히 청부를 마친 형제는 열흘간도 편하게 지내기 위한 방책 마련에 나섰다. 이병두를 소천악 몰래 은밀하게 만났다.

 

  "이 사부,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요. 어디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감히 사부에게!"

 

  격노한 표정으로 이병두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사부에게 반말하는 놈들을 보니 어이도 없었다.

 

  "아, 그 인간! 정말 말 못 알아듣네."

 

  짜증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든 이자용은 슬쩍 칼을 휘저었다. 검날은 섬전같이 이병두의 목 앞에 머물렀다. 금방이라도 피를 보고픈 듯 검날은 시퍼런 광채를 번뜩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두려움에 떨며 이병두가 소리쳤다.

 

  "아가리 안 닥치면 바로 썰어버린다."

 

  살기 어린 이자용의 협박에 이병두의 입은 굳게 다물렸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이자용이 말을 꺼냈다.

 

  "이제부터 글공부는 대충 한다. 물론 검사도 사전에 우리와 짠 거만 물어봐야지 다른 거 물어보면 목 위에 달린 대가리가 외출할 거야. 알아서 잘 생각해 봐."

 

  "이런 일을 소천악 사부가 알면 네놈들이 무사할 성싶으냐?"

 

  "거참, 말귀 어둡네. 이봐, 이병두 사부야!"

 

  이젠 아주 아랫사람 취급하며 말하는 이자용이다. 이재룡은 옆에서 실실 웃으며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니, 이런 무례한!"

 

  "헛소리 작작 하고 잘 들어. 소천악 그 새끼는 이제 곧 떠날 놈이야. 네놈은 이곳 호남성에서 사는 놈이잖아. 잘못 보이면 아주 집안을 박살내는 수가 있어."

 

  "……."

 

  이병두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저 두 명의 개망나니의 소문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소천악의 위세를 믿고 여태껏 마음대로 한 자신의 실수가 뼈저리게 후회스러웠다. 자칫하면 집안이 쥐도 새도 모르게 멸족될 판이다. 절로 다급한 기색이 된 이병두가 급히 입을 열었다.

 

  "좋소. 시키는 대로 하겠소. 제발 우리 가족은 건드리지 마시오."

 

  "당연하지. 왜 건드리겠나? 말 잘 듣는 강아지는 우리도 예뻐해. 이제야 말이 통하네. 흐흐!"

 

  이병두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이자용은 득의에 찬 미소를 머금었다. 이병두는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저항할 힘은 전혀 없었다. 돈과 권력 앞에 약한 지식인의 속성을 드러냈다. 검날을 거둔 이자용이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병두에게 전표 하나를 꺼내주었다. 오백 냥짜리 전표였다.

 

  "이거 용돈으로 써. 말만 잘 들으면 또 하나 주지. 하하!"

 

  이병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거금이다. 이 전표만 있어도 그동안 무너진 가장의 체면이 바로 살아날 금액이었다. 바로 표정이 바뀐 이병두의 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염려 마시오, 대공자 그리고 이 공자. 내가 다 알아서 하리다."

 

  "역시 이 사부는 주제를 아는군. 흐흐!"

 

  은밀한 밀거래는 소리 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천악은 하오문 호남성 지부를 방문해 강호정세에 관한 정보를 듣고 있었다.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이병두의 글공부는 시작됐다. 늘 그랬듯이 책을 읽고 설명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물론 소천악도 옆에서 딴청 피우는 척하며 부지런히 뇌리에 담아내고 있었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공부라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자정이 되자 어김없이 숙제검사에 들어가는 이병두였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형제가 웬일로 내는 문제를 척척 말하는 게 아닌가!

 

  이병두가 감탄했다는 듯 칭찬을 늘어놓았다.

 

  "아니 이럴 수가! 이제 두 분 공자께서 글공부에 완전히 취미가 생기신 모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고맙소이다. 이 사부님! 아무래도 사부님이 열과 성을 다해 말씀해 주시니 머리에 찰싹찰싹 박힙니다."

 

  "허허, 이렇게 따라오는 걸 보니 이 사람도 보람을 느낍니다."

 

  사부와 제자 사이에 흔히 나오는 덕담이 싱그럽게 오고 갔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소천악의 감각에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박혔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놈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거의 짐작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신이다. 이렇게 술술 답할 놈들이 아니다.

 

  바로 머리를 굴리자 적당한 답이 나오면서 수수께끼가 풀려갔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저놈들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거 하나만 떠올려도 답은 바로 나왔다. 으스스한 미소가 절로 입가에 배어 나오는 소천악이다.

 

  "잠깐 멈추시오."

 

  스산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얼굴은 재미있는 일거리를 만난 표정이다. 소천악의 말이 들리자 형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목소리에 담긴 묘한 의미를 직감한 형제였다. 사력을 다한 반항이 시작되다.

 

  "소 사부님, 무슨 분부라도? 저희는 아무래도 오늘 배운 걸 복습하고 내일분 예습으로 바쁠 것 같습니다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만……."

 

  "예습도 좋고 복습도 좋은데요. 그런데 숙제검사가 왠지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뇨? 저희가 이제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뤄낸 결과입니다. 혹시 사부님은 두들겨 패는 데에만 신경 쓰시는 거 아닌지요?"

 

  날카로운 역습을 감행하는 이자용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소천악은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참, 사랑스런 제자가 하도 기특하셔서 다시 한 번 칭찬하려는데 웬 성화를 부리고 이러시나?"

 

  "사부님, 저희는 칭찬보다 독려가 필요한 놈들입니다."

 

  "알았소. 그럼 독려하는 걸로 하십니다. 잔소리 말고 어서 자리로 돌아가시오."

 

  더 이상의 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세를 뿌리는 소천악이다. 이자용과 이재룡은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다는 걸 알았다. 힘없이 자리에 앉는 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다 되어갔다. 소천악의 숙제검사는 시작되었다.

 

  소천악의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를 않았다. 묻는 족족 마치 벙어리인 양 하나도 답을 말하지 못하는 형제였다. 소천악의 눈매는 갈수록 가늘어져 갔다. 마침내 숙제검사가 끝났다.

 

  "오호, 이렇게 잘했다는 말이지요? 오늘 아주 시원하게 놀았구먼요."

 

  비꼬는 소천악의 말에 이자용과 이재룡 두 공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제 내내 고민해 만든 계략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이제는 저 악귀 같은 사부의 처분만 바라봐야 할 처지였다. 소천악의 눈이 바로 이병두에게 돌아갔다.

 

  "이병두 사부! 이 일에 대해 해명해 보시오. 만약 하나라도 거짓이 있다면 팔다리를 모조리 분질러버리겠소."

 

  서슬 시퍼런 소천악의 추궁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이병두였다. 긍정했다가는 큰일날 것 같은 생각에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요?"

 

  시치미를 떼는 이병두였다. 소천악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심사가 불편해졌다. 항상 말보다 행동이 빠른 그의 성격이 바로 나왔다. 번쩍하더니만 앉은 자리에서 신형을 날린 소천악의 발이 이병두의 복부에 정확하게 박혔다.

 

  "크아악, 이게 무슨 짓이오?"

 

  배가 온통 뒤틀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병두가 절규했다. 소천악은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주먹을 들어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얼굴이고 뭐고 도대체 가리질 않는 인정사정이라곤 전혀 없는 구타였다.

 

  주먹으로 두들기다 성이 안 풀리면 발길질로 냅다 걷어차곤 했다. 차 한 잔 천천히 마실 시간 동안 살벌한 구타는 이어졌다.

 

  이병두는 정신이 아롱아롱거렸다. 살면서 이렇게 모질게 맞아본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이렇게 맞다가는 죽겠다는 심정이 되자 사력을 다해 소천악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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