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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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9화
“이제…… 거의 다…… 오신 것 같습니다, 소성주.”
뒤쪽에 고요히 서 있던 장천운이 느릿하게 말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너울처럼 울렸다.
그가 말을 마칠 즈음, 핏기가 사라졌던 사마경의 얼굴이 편해졌다.
공손백과 나극, 독고태 등은 장천운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
우문각과 혁련광, 오종, 안동교 등 그의 능력을 가늠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쓴웃음만 지었고, 몇몇 사람은 언뜻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지웠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장천운이 음파로 사마경을 향한 무형의 압력을 해소했다는 걸.
사람들의 눈이 장천운에게로 향하자, 사마경이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섰다.
어깨를 편 그녀가 말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아마 오기 전에, 천은방이 신천검문을 공격했다는 말을 들으셨을 거예요.”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다시 분노와 살기로 바뀌었다.
“들었소이다, 소성주. 참으로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혁련광이 노기를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인 듯 분기를 억누르는 표정이 역력했다.
직접적으로 분노를 발산하는 사람도 있었다.
거경당주인 일검붕산(一劍崩山) 황대광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천은방이 호북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우리외다! 그런데 감히 본 성의 지부를 치다니! 호경담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몇 사람이 그 말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참으로 욕심이 끝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그냥 놔둬서는 안 됩니다, 소성주!”
은근슬쩍 천은방을 위해서 변론하는 자도 있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런 일을 벌인 것 아니겠소이까?”
“호 방주가 욕심은 많지만 무작정 본 성에 검을 들이댈 자는 아니외다. 자세히 조사해보는 게 우선일 것 같소이다 그려.”
“조사는 무슨 조사를 한단 말이오? 신천검문의 무사 삼백이 넘게 죽었다고 하지 않소이까!”
“어허! 그렇다고 당장 호경담을 때려잡을 수도 없는 일 아니오?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더니 금방이라도 말다툼으로 번질 듯했다.
“모두 조용히 하고 앉아주세요!”
사마경이 간부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손을 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분노와 살기가 뒤범벅되면서 급작스럽게 험악해진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몇 사람은 더욱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자는 게 왜 잘못된 생각이란 말이오!”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려! 그럼 내가 천은방의 간자라도 된단 말인가!”
“누가 간자라 했소이까!”
몇 사람은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말상대를 노려보았다.
험악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즈음, 공손백이 일어나며 손을 들었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소성주께서 조용히 하시라잖소!”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웅성거림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마치 공손백과 사마경이 지닌 무게감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장내가 다시 조용해지자, 공손백이 사마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소성주의 의견을 말씀해보시게. 어떻게 하면 좋겠나?”
“천은방의 호 방주가 신천검문을 공격한 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잡아와서 죄를 묻고 싶어요. 하나 제 의견을 말하기 전에, 본 성의 가장 큰 어른이신 대장로의 생각부터 듣고 싶군요.”
공손백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가 찰나에 사라졌다.
구천성의 가장 큰 어른!
그 말로서 대장로 나극이 서열 이위라는 걸 공표한 거나 다름없었다.
“옳으신 생각이네. 대장로, 의견을 말씀해보시구려.”
나극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호경담을 잘 안다. 호경담은 무작정 이런 일을 벌일 만큼 간이 큰 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극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짐작하기에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먼저 호경담의 진의를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 소성주. 신천검문을 무너뜨린 것이 그의 뜻인지, 아니면 그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인지 알아봐야 할 것이야. 전쟁은 그 다음에 해도 충분하네.”
현재로서는 전쟁을 늦추는 것 정도가 나극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전쟁이 늦춰진 동안 공손백을 견제할 방법만 찾아낸다면 열세를 뒤집지 못할 것도 없다.
말없이 고개만 두어 번 주억거린 사마경이 공손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령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받고도 공손백은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
“대장로 말씀대로 호경담의 진심을 먼저 알아보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네.”
왠지 반대의 의미가 짙은 말투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손백이 바로 말을 이었다.
“하나 본 성은 지난 이 년 동안 검왕문과 장강팔련을 비롯한 몇몇 문파에게 시달림을 받았지. 그런 마당에 이번 일마저 대충 넘어간다면, 십이지부는 물론이고 타 문파들 역시 본 성을 우습게 볼 거네.”
“그럼 대령주께선 당장 저들을 치자는 건가요?”
“일벌백계!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지. 이번 기회에 우리 구천성의 힘을 보여주어서, 강호의 동도들에게 구천성이 왜 구천성인가를 알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네.”
사마경의 백옥 같은 미간 사이에 가느다란 주름이 그어졌다.
복수는 당연하다. 내부에 늑대와 독사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전력을 이끌고 달려가서 천은방에 죄를 물었을 것이다.
“당장 천은방을 치려면 적지 않은 무사들을 보내야 하는데, 자칫하면 검왕문과 장강팔련만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에 대한 방비책은 있나요?”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네.”
“물론 그렇죠. 하지만 한순간의 감정적인 판단으로 서두르다가는 자칫 애꿎은 성의 무사들만 잃을 수도 있어요. 왜,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잖아요?”
공손백은 잠시 입을 닫고 사마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말을 멈춘 것은 기껏해야 열을 셀 시간에 불과했다.
그 짧은 시간 구천대전이 진공상태처럼 느껴졌다.
바라보던 자들은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때 공손백의 입에서 그 어느 때보다 무심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기이한 울림을 동반한 채 흘러나왔다.
“소성주, 이미 신천검문의 무사 삼백이 죽었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당하를 시뻘겋게 뒤덮었고…… 찢기고…… 갈라진 몸뚱이는 이미 까마귀밥이 되었을 거네. 사정이 그러하거늘, 공격을 망설일 이유가 뭐 있단 말인가!”
공손백이 강렬한 어조로 말을 맺고 사마경의 두 눈을 직시했다.
말을 끝마쳤음에도 목소리의 여운이 구천대전을 울리며 무사의 심장마저 뒤흔들었다.
격동한 간부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맞습니다, 소성주! 당장 천은방을 쓸어버려서 신천검문 무사들의 원혼을 위로해줍시다!”
“구천성의 힘을 보여줘야 하오, 소성주!”
“구천성 성주로서 위엄을 보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바로 그때, 공손백이 방점을 찍었다.
“소성주가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나서겠네!”
쾅!
그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쳤다.
“이 공손백이 나서서! 천하에 구천성의 위엄을 보여주겠어!”
간부들은 자신의 심장을 두들겨 맞은 듯 숨을 멈추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심지어 혁련광을 비롯해서 사마경을 따르던 간부들조차도.
언제 그랬냐는 듯 대전 안이 고요해졌다.
‘이런……!’
장천운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손백, 참으로 무서운 자다.
이제껏 자신은 공손백을 잘못 평가했다.
그가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강한 무공을 지녔기 때문도, 높은 지위에 올랐기 때문도 아니었다.
무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말재주야말로 그가 지닌 가장 무서운 능력이었다.
‘제기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예상보다 더 강하군. 소성주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겠는데?’
문제는 자신이 함부로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거다.
무작정 나섰다가는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사마경을 돕기는커녕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호위무사, 어려울 때마다 호위무사의 신세나 지는 성주.
그 소문이 퍼지면 사마경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젠장!
우문각도 표정이 굳어 있었다.
‘곤란하게 됐군.’
이번만큼은 그도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었다.
무사들의 심장이 대운사의 커다란 북처럼 울렸다. 저 전율의 격동을 무슨 말로 가라앉힐 수 있단 말인가.
‘전에도 그랬지. 공손백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말 몇 마디로 무사의 가슴을 울렸어.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과거에도 수많은 무사들이 사마중천보다는 공손백을 더 따랐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지닌 무공의 고강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우문각은 착잡한 마음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소성주, 이겨내야 하오!’
우문각만 보는 게 아니었다. 구천대전을 가득 메운 간부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절정고수 팔십여 명의 격동에 찬 눈빛이다.
무의식중에 뿜어져 나온 기운이 그 눈빛에 실려 있다. 사마경이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기운이!
태산조차 으스러뜨릴 기세가 온몸을 짓누르자, 손가락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움켜쥔 그녀의 두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어깨에 힘을 주고 도도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쳐든 턱도 내려가지 않도록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파리해진 입술마저 잘게 떨렸다.
쿵!
공손백이 발을 들어서 대전의 바닥을 굴렀다.
거대한 구천대전이 웅웅거리며 울렸다.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햇살을 받은 먼지가 황금빛 가루가 되어서 안개눈처럼 흩날린다.
“결정을 내려주시오, 성주! 어찌하실 것이오!”
눈을 부릅뜬 공손백이 사마경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간부들의 눈빛도 그에게 전염된 듯 더욱 강해졌다.
“말씀해주시오, 소성주!”
“왜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 거요!”
“소성주께선 신천검문 무사들의 원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소이까!”
“못 하시겠으면 대령주께 전권을 주시구려!”
사마경의 몸이 흔들렸다.
파리해진 입술을 세차게 깨무는 바람에 입안이 비릿했다.
그 모습을 본 장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안 돼.’
자신이 당하더라도 사마경은 지켜야 한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비웃음의 대상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는 공손백을 예의주시하며 무형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때 백리호가 득의한 마음을 억누르고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차라리 그게 질녀에게도 나을 것 같구나. 어떠냐? 모든 것을 대령주께 맡기는 것이?”
장천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동시에 사마경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혼신을 다해서 버텨봤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장천운은 무형의 기운을 앞으로 밀어내서 사마경을 받쳤다.
그는 사마경이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다른 사람, 특히 공손백이 나서기 전에 백리호를 향해 다그치듯 말했다.
“전주, 말씀이 과하십니다! 이곳은 공식적인 자리이고, 소성주께선 임시라 하나 성주의 임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성주께 무례를 범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사이 무형기가 사마경을 감쌌다. 기울어진 사마경의 몸이 똑바로 섰다.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확연히 약해지면서 그녀의 표정도 미세하나마 편해졌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챈 공손백은 싸늘한 눈빛으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죽일 놈! 다 된 밥에 콧물을 빠뜨리다니.’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뭐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백리호가 그의 속도 모르고 눈을 치켜뜨며 냉랭히 받아쳤다.
“네놈이 나설 자리가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