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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84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8화

“어어이이, 돌 굴러간다.”

“조심해!”

장천운은 반사적으로 한 손을 놓고 몸을 틀었다.

돌덩이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그의 아래에 아무도 없어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장천운은 절벽에 매달린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위쪽, 백리우진과 함께 올라가던 자가 씩 웃는 게 보였다.

왼쪽 볼에 긴 흉터가 있는 소년, 육호 단수인이라는 자였다.

“미안하다. 고의는 아니니까 이해해.”

미안해하는 놈이 웃어?

‘개자식, 오늘의 빚은 가슴에 칼로 새겨두마.’

 

***

 

구천성에서는 기운을 북돋는 약초를 달여서 수련생들에게 물처럼 마시게 했다. 영약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효과가 제법 괜찮아서 내공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내공의 기초가 약한 장천운에게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그는 약도 열심히 먹고 수련도 열심히 했다.

다른 사람이 열 근짜리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차면 자신은 열두 근짜리를 찼다. 남들이 계곡을 열 바퀴 돌면 자신은 서너 바퀴 더 돌았다.

아마 그 약이 없었다면 기초수련을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자 드디어 초식 수련이 시작되었다.

다른 이들은 일차수련에 필요한 무공을 가볍게 여기고 대충 수련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마치 절세비급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에 불을 켜고 익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강련곡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문의, 사문의 무공을 정식으로 익힌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는 어렸을 적 삼류무사였던 아버지에게 배운 것과 건달 세계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무공을 눈대중으로 훔쳐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 차이를 좁히려면 남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구천성에서는 기본 무공지만, 밖에 나가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일류무공이었다.

구천성의 대표적인 심법 중 하나인 삼원심법(三元心法).

벼락처럼 빠르다는 섬전검법(閃電劍法).

귀신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귀운신법(鬼運身法).

단번에 칠권을 쳐내서 상대의 칠대요혈을 점한다는 칠성비권(七星飛拳).

그는 일단 그 네 가지 무공에 전념했다.

 

***

 

초식을 수련하기 시작한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이봐, 십팔호.”

장천운이 칠성비권의 투로를 따라 열심히 손발을 휘두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목소리로 봐서는 성질이 괴팍한 일호 교관, 유진생 같았다.

장천운은 그가 짜증을 내기 전에 재빨리 돌아서며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교관님.”

“손발 놀리는 거 보니까 박투 좀 해본 모양이군.”

한마디로 쌈 좀 해본 것 같다는 뜻.

물론 많이 해봤다. 살기 위해서.

하지만 겸손하게 말했다.

“조금 해봤습니다. 뒷골목에서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죠.”

“어때, 나하고 한번 해볼까? 물론 공력은 쓰지 않으마.”

이게 지금 무슨 수작?

느낌이 안 좋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일. 장천운은 일단 거부의사를 밝혔다.

“제가 어떻게 교관님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사밀령 사령주의 이마에서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이 겸손 떨긴.”

입술을 비틀며 말하는 유진생의 눈빛에 언뜻 묘한 웃음이 번졌다.

‘수상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장천운은 잔뜩 경계하면서 자신을 최대한 낮추었다.

파양마권(波陽魔拳) 유진생. 그는 주먹 하나로 절정고수에 오른 자였다. 자존심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거야 운이 좋았을 뿐이죠. 저 같은 흑도의 애송이가 어떻게 사령주님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유진생은 포기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혹시 알아? 운이 좋으면 나도 이길지. 그럼 시작해볼까?”

손가락을 우두둑 꺾은 그는 장천운을 향해 다가갔다.

장천운은 난감한 표정으로 좌우를 슬쩍 둘러보았다.

교관과 수련생들은 대부분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듯 구경만 했다.

일조 수련생들조차 흥미진진한 듯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유고원만이 조금은 걱정스런 눈빛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조 여자수련생 중 하나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에 주근깨가 점점이 박힌 그 소녀는 십사호였다. 며칠 전 절벽을 오르다가 미끄러졌을 때 장천운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소녀.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둘은 있군.’

그 중에 여자도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때 우측에 서있는 삼조원들 속에서 백리우진이 언뜻 비웃음을 짓는 게 보였다.

왠지 느낌이 싸했다. 마치 뭔가를 아는 눈치.

하지만 장천운은 그에게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유진생이 일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가 본능적으로 한발을 뒤로 빼자, 유진생이 튕기듯이 앞으로 몸을 날리며 주먹을 뻗었다.

“시작해볼까?”

장천운은 몸을 틀면서 상대의 공세를 피했다.

박투술의 대가인 유진생의 공격은 빠르고 강했다.

아무리 공력을 싣지 않았다 해도 번개처럼 빠른 그의 주먹질은 장천운의 현 능력으로는 막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유진생의 팔다리는 쇠몽둥이처럼 단단해서 공격을 막아도 팔이 얼얼했다.

결국 다섯 번째 주먹에 어깨를 격타당한 장천운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유진생이 그쯤에서 멈출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가했다.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소나기처럼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냈다. 유진생의 주먹이 가볍게 스치듯 두어 번 더 그의 몸을 두들겼다.

어려움에 처한 상태에서도 장천운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점이 유진생을 더 자극했다.

“훗, 제법이군. 언제든 무릎을 꿇고 빌어라. 그럼 멈출 테니까.”

 

맞고 구르고, 또 맞고 구르고, 일어나면 또 맞고…….

온몸이 욱신거리고, 뱃속에서 신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비릿한 액체가 넘어올 것 같았다.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유진생의 공격을 막아냈다.

시간이 지나자 충격이 쌓여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는 다섯 번 중 두 번도 막기 힘들 정도.

퍽!

끝내 유진생의 발길질이 정통으로 복부에 틀어박혔다.

뒤로 튕겨나가서 바닥을 세 바퀴나 구른 장천운은 몸을 잘게 떨면서 겨우 일어났다.

‘제길, 더럽게 아프네.’

유진생이 자신을 패는 이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안달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봐야 당신은 내 무릎을 꿇릴 수 없어!’

어차피 유진생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죽지만 않는다면 몇 대 더 맞는 것쯤 상관없었다.

남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에게 무릎을 꺾느니 차라리 맞는 것이 나았다.

그 순간, 유진생이 독한 눈빛을 번뜩이며 주먹을 뻗었다.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장천운이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장난처럼 벌인 비무지만, 수련생과 교관들이 보는 앞에서 이게 무슨 창피란 말인가?

자존심이 상한 그는 주먹에 힘을 실었다.

공력이 실리지 않았다 해도 자칫하면 뼈나 내장이 크게 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분노가 이성을 삼켜버렸다.

장천운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감각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비스듬하게 튼 그는 두 손을 뻗으면서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원을 그렸다.

자신이 왜 그런 동작을 펼쳤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그런 수법을 익힌 적이 없다는 것이다.

좌수가 먼저 유진생의 주먹을 교묘하게 걸어서 바깥으로 걷어냈다. 동시에 칼날처럼 세운 우수가 실낱같은 빈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퍽!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장천운이 펼친 수도의 위력은 크지 않았다.

다만 격중된 부위가 목이라는 게 문제였다.

“꺽.”

유진생이 단발의 신음을 토하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장천운도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서서 거리를 벌렸다. 그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을 움켜쥐고 장천운을 노려보는 유진생의 눈빛에서 독기가 번들거렸다.

“이…… 기시끼가.”

목을 가격당한 충격 때문인지 발음이 괴이했다.

분노한 그는 공력을 일부 끌어올려서 두 주먹에 집중시켰다. 그 정도 공력만으로도 저 건방진 놈의 창자를 터트려버릴 수 있으리라.

그때였다. 양태악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며 앞으로 나섰다.

“이제 그만하시죠, 유 교관.”

“야태아, 너으…… 상과하지 마.”

“총사께서 아시면 문제가 커집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이 정도만 해도 일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습니다.”

유진생은 씩씩거리며 공력을 풀었다.

그도 총사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거짓말로는 총사를 속일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목울대를 얻어맞는 바람에 발끈하긴 했지만, 사실 그도 이런 일로 수련생을 죽일 만큼 그렇게 악한 성격은 아니었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장천운을 슬쩍 째려본 그는 홱 몸을 돌렸다.

장천운은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차갑게 번뜩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백리우진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백리우진은 이미 등을 돌린 상태여서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백리우진, 만약 네가 관련된 일이라면 이제부터 꿈자리가 사나울 거다. 내가 좀 질긴 놈이거든?’

 

 

4장: 첫 번째 각성(覺醒)

 

 

유진생과의 박투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장천운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비록 형편없이 두들겨 맞았지만, 끝까지 버티며 마지막 한방을 날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장천운은 그 일을 후회했다.

유진생이 죽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끝까지 버텼다. 그런데 유진생이 분노에 이성을 잃고 독수를 쓰려고 했다. 아마 양태악이 말리지 않았다면 죽거나 병신이 되었을지 몰랐다.

생각할수록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그런 자와 자존심 싸움을 하겠다고 목숨을 걸다니.

‘쓸데없는 오기를 부렸어. 차라리 한 대 더 맞고 쓰러지는 게 나았는데…….’

이제 유진생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으로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보나마나 강련곡에서의 생활이 한층 고달파질 터. 입안이 씁쓸했다.

‘근데 내가 그때 쓴 수법이 뭐지?’

유진생의 목을 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휘둘렀다.

정말 멋진 초식이었다. 하지만 다시 해보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형(形)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밤. 장천운이 유고원에게 주근깨소녀에 대해서 물었다.

“십사호는 어떤 애야?”

유고원이 눈빛을 반짝였다.

“십사호 연송하? 왜, 관심 있어?”

“관심은? 내가 두들겨 맞을 때 불쌍한 눈으로 쳐다봐서 물어본 거야.”

“그 애가 이조 계집애들 중에서 제일 순해. 마음씨도 좋고. 그런데 못생겨서 인기는 없지.”

연송하가 못생겼다는 말에 장천운이 유고원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쯔쯔쯔, 여자 보는 눈이 그거 밖에 안 되냐? 아마 삼년 정도 지나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걸?’

어릴 때부터 홍구로에서 지낸 그는 숱한 소녀들의 마법 같은 변신을 지켜보았다.

어린 소녀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인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구미호가 재주를 넘어서 사람으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변화무쌍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아는 장천운이 봤을 때, 류화 다음으로 뛰어난 소녀가 바로 주근깨 소녀 연송하였다. 특히 몸매는 류화보다도 더 뛰어나게 성장할 듯했다.

뭐, 그 점 때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삼조장이 교관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조용히 있던 구산이 그 말에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유 교관을 사주했을 거라고 보는 거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나를 보던 눈빛이 마음에 걸려서. 단순히 즐기는 눈빛이 아니었거든.”

구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은연중 일조와 삼조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특히 조장들의 마음은 더 심했다.

구산은 백리우진을 이겨서 최고의 성적으로 강련곡을 나가고 싶었다.

‘그놈에게 질 순 없어!’

출세가 꼭 성적순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점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십팔호, 사호는 속이 워낙 음험해서 쉽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 그를 상대하려면 조심해야 할 거다.”

“거꾸로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오관이 핀잔을 주듯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장천운은 까칠한 그의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제는 그도 오관이 왜 그렇게 모난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말단무사의 아들이면서도 자질이 뛰어나다보니 질시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을 그런 아이들에게 당하고만 살았다면 독기가 몸에 베인 것도 당연했다.

‘나도 쉬운 상대는 아니야. 너희들은 모를 거다. 무창 사람들이 왜 나를 귀호라고 불렀는지.’

그때 그의 눈동자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빛을 볼 수 없었다. 그 의미는 더더욱 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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