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5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51화
"인상 많이 쓰면 이마에 주름 생겨요. 쓸데없는 짓 말고 와서 앉아요."
자신들의 기세를 편하게 받아내는 소천악을 이채를 띠고 바라보는 형제였다. 불량스럽게 다가온 형제는 의자를 돌려 앉았다. 의자에 턱을 괴고 이자용이 호기심 서린 어투로 말했다.
"이번 사부는 한가락 하나 보네."
"소공자님들 정도는 하지요."
담담한 소천악의 말에 가만히 바라보던 형제 중 이자용이 크게 웃었다.
"으하하! 농담도 할 줄 알고. 좋았어, 맘에 들었어. 사부, 우리 잘해보자."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이자용이었다. 소천악은 어이가 없었지만 마주 잡아줬다. 순간 손에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이자용이 내력을 넣어 시험하는 게 느껴졌다. 싱긋 미소를 지은 소천악은 딱 맞설 내력만 주입해 버텨나갔다.
이자용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약이란 영약을 죄다 먹고 자란 자신이었다. 더구나 무당파에 가 은자로 처발라 태청단도 한 알 얻어먹었다. 덕분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내공을 소유한 터였다.
새로 온 사부를 제압하려다가 장애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바로 작전을 바꾸는 이자용이었다. 얼른 내력을 거두자 소천악도 거두는 게 느껴졌다.
"으하하! 역시 이번 사부는 성격이 맞겠어. 사부, 술은 좀 해?"
"술이라……. 그거 좋은 거지요."
"오호, 그럼 기녀는?"
"열 여자 싫다 하는 남자는 없는 거지요."
시원시원한 대답이 나오자 이자용의 입가에 미소가 스르르 돋아났다.
"역시 첫인상 그대로 호탕한 사부네. 사부! 마음에 딱 들었어. 환영식을 해야지. 이제 슬슬 기루에 한번 가자!"
"오, 기루라! 그래, 좋은 데가 있나요?"
구미가 당긴다는 듯 넌지시 장단을 맞추자 이자용은 크게 웃었다.
"하하! 따라만 오슈. 오늘 아주 사부를 죽여주는 데로 보내주지."
"그래. 내가 제자 복이 있네요."
"그걸 말이라고 하슈? 우리 같은 제자 만나기가 어디 쉬운 줄 아슈? 이거 다 사부 복이오."
"맞아요. 내 복이지요."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는 은근히 뼈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미처 그 마수를 깨닫지 못한 두 형제는 신이 나 떠들어댔다.
"하하! 이번 사부는 화통해서 맘에 쏙 드네. 앞으로 오래오래 같이 지내자고. 내 말만 잘 들으면 기루가 문제야? 한밑천 톡톡히 잡게 해주지."
이젠 아주 소천악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은 애완동물 취급하는 두 형제였다. 말만 사부였지 존대하는 기색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천하는 말없이 미소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소천악과 두 제자는 보무당당하게 기루로 향했다. 입구부터 최고귀빈 대우를 받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17세라고 보기엔 어이없는 광경이다. 술자리에선 더욱 가관이다. 웬만한 풍류한량은 이름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노는 자세가 아주 잡혀 있었다. 술잔을 비우면서 소천악은 조금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기루를 출입해야 저런 여유가 나오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다시 한 번 배움의 길이 멀고도 험함을 느끼고야 말았다.
"으하하, 우리 사부도 보통내기가 아니네. 자, 사부, 한잔 받아."
술에 취해 시선이 몽롱한 채 술잔을 한 손으로 턱하니 권하는 둘째 공자 이재룡이다. 순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소천악의 이마가 찌푸려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좋소! 제자님들 한잔 줘보시게."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받아 마시는 소천악이다. 술이 떡이 된 이재룡은 술잔이 넘치도록 따랐다. 그것도 한 손으로 불손하기 그지없는 자세였다. 갈수록 소천악의 내심에 무언가가 차올랐다.
풍류를 즐기다 못해 난장판이 된 술판이 끝나고 모두들 알아서 흩어졌다. 함부로 몸을 굴리지 않을 생각인 소천악이 사양했지만 기녀가 막무가내였다. 남자로서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못 이기는 척 끌려갔다.
이튿날 아침 소천악은 침상 위에 앉아 흐뭇함에 젖어들었다. 그의 입가에는 환희와 만족감이 어우러진 밝은 미소가 줄곧 자리했다. 오늘 아침의 기녀와의 대화를 수십 번 떠올리고 있다.
"가가, 정말 놀라워요. 소첩 정말!"
얼굴이 발그레한 기녀의 교태 어린 말에 뿌듯함이 자리했다.
"하하! 뭘 이 정도 가지고 소란스럽게."
"가가, 어디 사시는지요? 소첩이 찾아뵈어도 될까요?"
기녀의 눈에 떠오른 건 가식적인 접대용 말이 아닌 게 바로 드러났다.
"하하! 내가 일간에 시간 내서 찾아오마."
"꼭 오셔야 해요. 소첩이 날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베개를 끌어안고 기다리겠어요."
소천악은 눈물 날 것 같은 기분을 겨우 참았다. 멧돼지와 토끼란 오명에서 벗어난 게 수차례에 걸쳐 확연히 느껴졌다. 꼭 기녀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왠지 다른 밤을 지낸 느낌, 그게 정확했다.
소천악은 잠시 이런 길을 열어준 색마들을 향해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가진 모든 재주를 다 전수해 준 성의를 생각해서 살려줬어야 했나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결과는 같았으리란 판단이다.
기루에서 돌아온 소천악은 학업을 배우는 방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형제가 전각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입구에 앉아 있는 소천악을 보고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어이, 사부. 어제 좋았어? 죽였지?"
"까불지 마시고 이리 오시지요. 놀 때 놀아도 공부할 때는 해야지요."
엄숙하게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형제는 기도 안 찬다는 듯 바라보았다.
"사부, 오늘 뭘 잘못 먹었어? 왜 이래?"
"더 이상 싹수없이 굴면 후회할 겁니다. 어서 이리 오는 게 신상에 좋을 듯하오."
싸늘하게 외치는 소천악의 말에 형제의 인상이 구겨졌다.
"사부,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이자용과 이재룡 형제였다. 소천악은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앞으로 말끝에 님 자가 빠지는 분들은 뼈가 시리도록 반성하게 될 것이오."
"나참! 어이가 없어서. 이건 뭐 놀자는 거야 뭐야? 야! 사부 돌았냐?"
두 형제의 눈빛이 바로 사나워졌다. 무당파 속가제자 중에 무공으로 수위를 달리던 형제들이다. 강호에서 무당파의 입지를 생각할 때 가히 짐작이 가는 무공수준이다. 거의 일류고수를 넘보는 경지에 이른 두 형제였다.
눈빛으로 소천악을 제압하려는 듯 그들은 안광을 번뜩이며 노려보았다. 하지만 정작 두려움에 떨어야 할 소천악은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소공자님들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일 것 같구려. 미리 경고 하나 하지요. 주먹으로 덤비면 삼 일 침대 신세, 검을 들면 중상으로 모시겠소. 알아서 덤비시오. 원래는 검은 사망인데 특별히 봐주는 겁니다."
"이런 어이없는 놈. 감히 우리를 뭐로 보고."
"뭐로 보긴요? 철이라곤 약에 쓰려도 도무지 없는 개망나니로 보지요."
형제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어느새 둘은 소천악의 앞과 뒤를 막아서며 태극권을 펼칠 기본자세를 갖추었다.
"네놈이 사부라 불러주니 기고만장했구나. 건방진 놈, 우리가 호의를 베풀 때 받을 일이지."
"까불지 마시고 덤비시려면 어서 오시구려."
여전히 시큰둥한 소천악이었다. 분기를 참지 못한 형제가 서서히 보법을 전개했다. 팔괘의 선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태극권이었다. 나름대로 무재가 있던지 형제의 움직임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담담한 안색으로 그들을 쳐다보는 소천악이었다. 형제는 양 팔꿈치를 허리 옆에 붙이고, 양다리를 평행으로 해서 허리를 낮춘 상태에서 바로 전사(纏絲)라고 불리는 비틀기 동작을 많이 사용했다. 축적된 내공으로 경력을 몇 배로 증가시키면서 공격했다. 단전에서 만들어져 허리를 통해 각 곳에 전달된 경력에, 팔이나 다리에서 허리에 이르는 부위에 회전력을 가함으로서 상당한 위력을 보였다.
소천악은 시선을 수평으로 맞춰 평형감각을 극대화시켰다. 순간 벼락같이 형제의 손발이 사방에서 짓쳐왔다. 소천악은 팔꿈치와 무릎으로 수십 차례의 권과 각을 막아냈다.
퍽! 퍽!
팔과 다리가 수도 없이 부딪쳤다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소천악은 형제의 진신실력을 시험하는 차원이었다. 부드러운 호선과 섬전 같은 직선공격이 밀려왔다. 소천악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모든 공격을 간결한 방어동작으로 막아냈다.
"헉헉, 역시 한가락 하는군."
이자용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그 말에 스산한 미소로 대답하는 소천악이었다.
"이제 그만 해야지요. 공부하시려면 시간도 별로 없소이다."
말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켜 오른발을 팽그르르 돌려 축을 잡은 후 왼발을 이용해 두 형제의 회음혈을 강타했다. 눈 깜박할 틈도 없이 밀려온 섬전 같은 각법에 형제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크아악!"
처절한 두 마디 비명이 들리며 형제는 바로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남자의 급소를 강타한 소천악의 매정한 발차기였다. 머리가 텅 비는 엄청난 고통이 형제에게 밀려왔다. 아무런 표정 없이 형제의 고통을 바라보던 소천악이 말했다.
"엄살 피우지 마시지요. 알 안 터졌소."
나지막이 말하는 음성에 담긴 살기를 느낀 형제들이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봤다는 걸 인정했다. 저 사부란 놈은 일류고수를 훨씬 뛰어넘은 절정고수급이었다.
시간이 일각 정도 지나자 그나마 국부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약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소천악은 고통에 지쳐 헐떡거리는 두 형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걸음걸음이 두 사람에겐 저승사자의 발걸음이었다.
"간단하게 시작하지요. 일단은 처음이니까."
싱긋 웃으며 소천악의 두 손은 벼락같이 두 사람의 혈을 짚어갔다. 찰나에 이미 분근착골의 고문이 시작됐다. 제멋대로 근육이 비틀리고 뼈가 움직이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고통이 형제에게 엄습했다.
"으아악! 네놈이 감히!"
치가 떨리는 고통이 시작되자 이자용이 먼저 악을 썼다. 뒤를 이어 이재룡이 독기를 뿜었다.
"네 이놈! 네가 이러고도 성할 성싶으냐?"
"소공자님들! 두 분들 코가 당장 석 자인데 왜 남 걱정은 하고 난리시오?"
코를 후비며 태연하게 말하는 소천악이다. 그 고통이 가면 갈수록 어떤지는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온몸을 비틀며 악을 쓰던 두 형제가 서서히 고통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아픔은 죽어도 말하기 싫은 비참한 소리를 내뱉게 하였다.
"살려줘!"
"소공자님들이 아직도 입이 짧네요. 내가 소공자님들 친구로 보이시오? 조금 더 굴러보셔야 정신을 차릴 듯하오이다."
아예 고개를 돌리고 책 하나를 꺼내 들고 읽는 소천악이다. 두 형제는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저 인간은 도대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였다. 고통은 순간순간 의식마저 혼미하게 만들었다. 이러다가 그냥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치밀었다.
"크악! 이러다 우리가 죽으면 네놈도 죽은 목숨이야. 우리 아버님이 네놈을 가만둘 성싶으냐?"
저주를 퍼붓는 이자용을 힐긋 보고 소천악이 사악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