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5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50화
"무슨 문제가?"
"한마디로 천방지축에 대책 없는 놈들이지요. 하도 사고를 쳐서 잠시 무당파에 보냈습니다. 인간 되라고 보냈더니 돌아온 모습이… 에휴!"
"돌아온 모습이 어때서요?"
슬슬 호기심이 동한 소천악이 묻자 이간희 장주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마디로 악귀에게 칼을 쥐어준 꼴이 되었지요."
대충 사태를 짐작한 소천악이다. 이간희 장주를 보아하니 더 이상 별다른 대책이 없어 글공부라도 시켜볼 요량인 것 같았다. 물론 그 자식들이 호락호락 아비의 소망을 들어줄 리라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소천악이 비로소 사태 파악이 되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개망나니가 된 쌍둥이 아들에게 글공부를 시켜달라는 이야기였다. 소천악의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피어올랐다. 왠지 어디서 많이 본 일 같았다.
자신이 어렸을 때와 비슷한 경우를 당하니 호기심이 극도로 발동했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였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소천악이 대충 넘어갈 리가 없었다. 바로 협상에 돌입하였다.
"거참, 고민이 많겠소이다. 장주님!"
자기 고민을 깊이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소천악을 보니 이간희 장주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말도 마십시오. 저놈들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삼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가업이 내 대에 폭삭 망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들어보니 뭐 앞으로의 이가장 상황이 불을 보듯 뻔하네요."
"휴우, 어쩝니까? 미우나 고우나 자식인데. 그렇다고 패 죽일 수도 없고. 그저 이제는 저놈들이 글이라도 제대로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이라도 읽어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것만 면하게 하는 걸로 만족하렵니다."
한순간에 바로 초췌한 안색으로 변하는 이간희 장주를 보며 넌지시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소천악이다.
"그런데 장주님, 만약에 그런 자제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개과천선(改過遷善)해 새사람이 된다면 어떨까요?"
유혹의 덫은 달콤했다. 이간희 장주의 눈빛이 번쩍거리며 살아났다.
"아니, 소협! 과연 그게 가능합니까?"
"후후, 물론입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허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음… 소협! 실은 그놈들이 무공에 관해서는 타고난 자질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무당파에 속가제자로 가서 단 사 년 만에 속가제자를 모조리 휘하에 거느리겠습니까?"
우려 서린 말에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소천악이었다.
"으하하, 더욱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고로 상대가 세야 더욱 도전정신이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자신만만한 소천악의 태도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이간희 장주였다. 하나 결코 손해 보지 않을 제안이다. 막말로 밑져야 본전이다. 장사꾼으로 잔뼈가 굵은 이간희 장주가 바로 주판알을 굴리자 이미 결론이 났다.
"좋습니다. 만약 소협이 이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제가 은자 오천 냥을 드리지요."
"어허, 이거 무슨 소리입니까? 오천 냥이라뇨? 고작 이가장을 천년만년 지켜주는 대가가 오천 냥짜리밖에 안 된다는 소리입니까? 이거 실망입니다."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던 소천악이 미련 없이 일어섰다. 금방이라도 떠날 듯한 그의 태도에 당황한 이간희 장주가 다급히 말했다.
"아니, 소협. 오해 마시고."
"오해는 무슨 오해입니까? 이런 큰일을 쪼잔하게 처리하는 걸 보면 그 인물의 그릇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저 이만."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몸을 돌리는 소천악이다. 이간희 장주는 오랜 장사 경험으로 이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바로 뛰어가 소천악의 앞을 막고 포권을 하였다.
"죄송하오이다. 이 사람이 잠시 대인을 몰라보고 일단 다시 앉아서 이야기를 좀더 나누지요."
가만히 쳐다보던 소천악이 마주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역시 대인이시구려. 좋소이다."
성큼 다시 자리에 앉는 소천악이다.
"자,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대인께서는 우리 아들놈 인간 만들기에 얼마를 바라십니까?"
조심스런 이간희 장주의 질문에 생각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대답하는 소천악이다.
"참 어려운 일이 분명하지요. 이런 특수한 교육은 사실 부르는 게 값입니다. 하지만 저는 양심껏 받겠습니다."
"역시 대인이시군요. 그러니까 얼마를?"
"저렴하게 오만 냥에 하지요."
"컥, 오만 냥?"
경악한 이간희 장주였다. 지나가던 개 이름도 아닌데 서슴없이 부르는 엄청난 액수에 질려갔다. 바라보는 소천악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절대 후불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장차 이가장을 짊어지고 갈 새싹인 소장주들의 앞날을 밝혀주는 중요한 교육비입니다. 겨우 오만 냥인데 그거 아끼다가 전 재산 말아먹는 수가 있습니다."
이간희 장주는 엄청난 액수에 질렸다가 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사실 성공만 한다면 그깟 오만 냥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전 재산을 날리는 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좋소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단 분명한 건 후불이란 겁니다."
"물론이오. 후불이지요. 자, 계약서를 다시 씁시다. 매사는 정확한 게 좋으니까요."
두 사람은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 손도장을 콱 찍었다. 계약서를 잘 갈무리한 소천악이 말했다.
"자, 이제 자제분 교육은 제가 책임집니다. 이후 자제분이 변화할 때까지 글공부하는 곳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고 제가 하는 행동을 말릴 생각일랑 접으십시오. 철저하고도 정확한 교육을 위해선 일단 타인의 손이 타면 안 됩니다."
가만히 바라보던 이간희 장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나도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봐서 어느 정도 사람은 볼 줄 안다고 장담하오. 사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계약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걸 조만간 알게 될 것이오. 자, 그럼 이제부터 자제분 교육에 들어가겠소."
"잘 부탁합니다."
걱정스런 얼굴로 마중하는 이간희 장주에게 아무 염려 말라는 미소를 보인 후 바로 방을 나서는 소천악이다. 물론 밖에는 이미 하인이 그를 안내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는 소천악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아참, 이 장주님. 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하는 법입니다. 식사는 가능한 최고로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시오. 황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차려드리겠소. 교육만 확실히 시켜주시오."
믿음직한 말을 남기고 사라져 가는 소천악이다. 이간희 장주는 머리에 손을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 손해가 없는 계약이다. 잘되면 오만 냥이란 금액이 약간 아깝기는 해도 이가장의 앞날을 생각해서 별 문제가 없다. 설령 실패한다손 치더라도 시간만 손해지 나가는 물질적인 피해는 아예 없다.
실패해도 아무런 금전적인 손해가 없다는 판단이 들자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훌륭한 계약이라는 결론이 나자 흐뭇한 마음으로 장주 집무실로 향하는 이간희 장주였다.
한편 하인과 함께 장원 내를 걷던 소천악이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이가장의 소 공자 이름이 뭐요?"
"쌍둥이인데 대공자는 이자용이라 하지요. 동생은 이재룡입니다."
하인은 말하면서도 안됐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냈다. 이들 형제의 악명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갔다.
"도대체 품행이 어떻소?"
"아이고, 그걸 저에게 물어보시면 어쩝니까? 말이 새면 전 바로 쫓겨납니다."
두려운 듯 사방을 둘러보며 말하는 하인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갔다.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하고 묵묵히 장원 내 풍경을 살펴보는 걸로 만족했다. 중원에서 알아주는 거부답게 엄청난 규모의 장원이다.
거의 황궁에 버금갈 화려함이다. 물론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그 내부 장식은 황궁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운남의 대리석으로 치장한 바닥하며 각 전각마다 조각된 석상은 예사 장인의 솜씨가 아니다. 물론 그걸 알아볼 시야를 갖춘 소천악은 당연히 아니다.
하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삼 층으로 된 전각이다.
"여기입니다. 두 분 소공자님이 계시는 곳이."
말하는 하인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두려움에 떠는 게 역력했다. 가히 짐작이 갔다. 얼마나 행패를 부렸으면 집안 식솔들이 이렇게 벌벌 떨지 안 봐도 훤히 보였다.
"수고했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 보십시오."
"아니 소개를 안해드려도 될까요?"
"하하, 그분들이나 나나 입이 달려 있는데 소개는 무슨 소개입니까? 괜찮아요. 어서 가서 일이나 보세요."
소천악의 말에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얼른 사라지는 하인이다. 가만히 전각을 살펴보던 소천악은 기가 막혔다. 다른 전각과는 달리 가까이에서 본 건물은 가관이다.
창문마다 문짝이 없거나 군데군데 부서져 있다. 들어가는 문도 항상 발로 열었는지 여기저기 움푹 파여 있었다. 혀를 차며 들어선 전각은 조금 전에 대판 싸움이 난 것처럼 초토화되어 있다. 도대체가 성한 집기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침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니 입구부터 술 냄새가 진동했다. 바닥에 여기저기 어지럽게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묘한 미소가 절로 소천악의 입가에 떠올랐다. 갑자기 가슴에서 생기가 물밀듯이 올라오는 기분이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앞둔 악동의 얼굴이 된 소천악이 빠르게 앞서 말해 준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확 하고 풍겨 오는 술 냄새가 제일 먼저 반겼다. 침대 위에는 두 명의 건장한 소년이 코를 드르렁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입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도무지 십대 소년이라고 보기엔 황당한 모습이다. 큰대자로 퍼져 이불도 팽개친 채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소천악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어이가 없을 장면이었지만 그에게는 별로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모두 기상하시지요!"
발로 배를 툭툭 차며 소천악이 조용히 말했다. 배를 건드리는 불쾌감에 인상을 북 쓰며 두 소년은 얼른 돌아누웠다. 피식 웃은 소천악은 이불을 확 걷었다. 속내의만 입고 자던 두 소년들이 인상을 북 쓰면서 일어났다. 십대 같지 않은 덩치에 태양혈이 불룩한 게 보통사람이라면 바로 주눅이 들 정도였다. 소년들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누구야?"
"나? 공자님들 사부라고 할 수 있죠."
"아, 사부면 사부지 왜 이 시간에 난리야?"
"소공자님들 성격 시원시원하시네. 어서 일어나 세수라도 하셔야지요. 상견례는 해야지요."
두 놈은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했다.
"야! 처음인데 한 번은 따라주자."
"그래 이번 사부는 꽁생원이 아닌 거 같으니. 좋아, 해주지 뭐."
마치 큰 인심이라도 쓰는 양 둘은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 소천악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고양이 세수를 하고 돌아온 두 형제는 가만히 소천악을 노려보았다. 그들 나름대로의 기선제압이었다. 기세를 뿌리며 쳐다보는 그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