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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4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49화

 

  "어허! 저런 변이 있나요?"

 

  별로 안타깝지도 않으면서 진지하게 한숨을 내쉬는 소천악의 흉계에 바로 넘어가는 매향이었다.

 

  "전 재산을 다 잃고 설상가상으로 빚을 진 상행이라 빚더미에 올라섰지요. 채권자의 독촉이 빗발쳐 괴로워하는 걸 차마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길로 나선 거지요. 잘하면 빚도 갚고 그럭저럭 생활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좋아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매향이었다. 열심히 듣던 소천악은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혈사부로부터 들었던 서역과의 교역은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란 이야기가 먼저 생각이 났다. 다음으론 은자를 늘릴 묘안이 떠올랐다. 생각이 결정되자 바로 입을 연 소천악이었다.

 

  "더 좋은 삶이 있으시다면 그리하겠소?"

 

  "네? 무슨 소리? 사람이면 당연히 좋은 삶을 찾아가는 거 아닌가요?"

 

  "좋소. 일단 집으로 가십니다. 당신 기적은 바로 빼주겠소. 당신 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소."

 

  뚱딴지같은 말에 놀랄 틈이 매향에게는 없었다. 바로 총관을 부른 소천악이 말했다.

 

  "이 아이를 기적에서 빼주는 데 얼마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매향이는 우리 기루에서 보물로 키우려고 하는 아이라 곤란합니다."

 

  난색을 표하는 총관을 바라보던 소천악은 좋게 말해서는 힘들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루에서는 매향이를 이용해 많은 은자를 벌 속셈이 훤히 보였다. 생각을 정리한 후 넌지시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난 소천악이라 하오. 강호에서 신의괴협이라고도 불린다 들었소."

 

  "헉, 신의괴협!"

 

  놀란 총관이 바짝 얼었다. 이미 여기에도 그의 별호는 통하고 있었다. 그의 성격에 대한 소문을 들은 총관은 약간은 미심쩍은 표정이 역력했다. 말이 필요 없이 소천악의 손이 요리상으로 향하자 푸스스 하는 연기와 함께 요리상 일부가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내심 경악한 총관은 다시 한 번 소천악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보고 틀림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판단은 빨라야 했다. 소문대로라면 불같은 성질을 가진 자에게 대항해 봐야 보는 건 피밖에 없었다. 흑마전을 홀로 막아낸 절정고수를 감당할 힘이 일개 기루에 있을 리가 만무했다.

 

  "곤란한 청이오나 소협의 체면을 생각해서 들어드리지요. 칠백 냥만 내십시오!"

 

  체념한 총관이 나지막이 말하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천악이었다.

 

  "좋소! 주긴 주는데 만약 나중에 나에게 바가지를 씌운 걸 알게 되면 그 대가는 총관의 목이라는 걸 명심하시오. 지금 칠백 냥이라고 했소?"

 

  "컥! 아닙니다. 제가 잠시 착각을! 오백 냥만 주시면 됩니다."

 

  놀라 목을 쓰다듬는 총관이 얼른 수정한 금액을 말했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소천악이 오백 냥을 전표로 주고 매향에게 말했다.

 

  "자, 이제 가십니다. 당신 집으로!"

 

  "아? 네."

 

  어안이 벙벙한 매향이는 무엇에 홀린 듯 집으로 향했다. 기루를 나서는 그들의 발길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 안 가 매향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이었다. 바라본 곳은 차마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천막집이었다.

 

  "집이 누추해서……."

 

  소천악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매향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빙긋 미소로 무안함을 감춰준 채 집으로 들어간 소천악은 얼마 후 매향의 부친인 온유상을 만났다. 가볍게 수인사를 마친 소천악과 매향의 아버지는 깊은 대화를 한동안 나누었다. 그의 심성을 어느 정도 파악한 소천악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딱 잘라 말씀드리겠소! 다시 은자가 있다면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겠소?"

 

  갑작스런 말에 잠시 당황하던 온유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할 수는 있소. 단 든든한 호위 무사가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오."

 

  "좋소. 그럼 은자는 내가 대고 호위 무사는 흑마전의 혈조무적 율금무 방주를 찾아가면 해결될 것이오. 이젠 할 수 있소?"

 

  온유상의 눈빛이 갑자기 살아났다.

 

  "말대로라면 할 수 있소. 아니 자신 있소. 흑마전이라면 가능하다고 보오."

 

  "그럼 하시오. 여기 전표가 있소. 몇만 냥은 족히 넘을 거요."

 

  망설임 없이 거금을 내놓는 배포에 질린 온유상이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뭘 믿고 이런 거액을 주시는 거요?"

 

  "하하, 따님의 눈을 믿었소이다. 자식에게 믿음을 주는 아버지는 그리 흔한 분이 아니지요."

 

  "어험."

 

  어색한 헛기침을 하는 온유상을 보며 소천악이 말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하오문을 찾아가시오. 가서 소천악이 보냈다고 하면 괄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쪽으로 연락하여 일을 추진하시지요. 이윤은 알아서 주시기 바라오이다."

 

  "허허! 정말 놀라운 배포이구려. 좋소이다. 이 온유상, 다시 한 번 해보겠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온유상의 눈은 어느새 젖어들었다. 소천악은 말을 마치고 지체 없이 일어서서 나왔다.

 

  "저, 잠시만요."

 

  부르는 매향이의 목소리에 소천악은 차갑게 대꾸했다.

 

  "일이 잘되기를 비시오. 잘못된다면 정말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싸늘한 말에 주춤하던 매향이가 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전 이제 매향이가 아니고 온옥진이랍니다."

 

  "후후! 온 소저, 행운을 빌겠소.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소천악은 허둥지둥 집을 나와 거리로 바삐 걸어갔다. 그는 자신에게 세뇌시키고 있었다. 온옥진이 가여워서 한 게 아니고 투자한 거라 되뇌었다. 또한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부러워서가 아니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중얼거리며 걷다 보니 머리를 때리며 떠오른 생각에 소리치고 말았다.

 

  "이런 젠장! 또 다 퍼주고 말았네."

 

  그랬다. 양소아에 이어 온옥진에게도 전 재산을 몽땅 주고 말았다. 부지런히 주머니를 뒤져보니 그래도 처박힌 이십 냥 정도의 은자가 달랑 거리고 나왔다. 지금은 몇만 냥보다 귀한 이십 냥이었다. 실실 웃으며 객잔을 잡아 들어간 소천악은 모처럼 달게 잠을 이뤘다.

 

 

 

 

 

  제2-5장 글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튿날 일어나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선 소천악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사실 강호 십대미인을 만나러 다니면서 은자 몇 푼은 궁짜가 끼어 청춘사업에 영 문제가 많아 보였다. 거리를 휘적휘적 걸으며 구인 벽보를 하나씩 읽어봤다. 입에 맞는 떡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살펴보던 소천악의 눈이 번쩍했다. 벽보에 붙은 내용이 그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글 선생 구함.

 

  16세 남자 쌍둥이를 가르칠 스승을 구합니다.

 

  천자문과 약간의 호신술을 아는 사부님이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숙식 제공에 녹봉은 월 은자 천 냥입니다. 많은 훌륭한 사부님의 지원을 바랍니다.

 

  이가장주 이간희〉

 

 

 

  소천악이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벽보를 읽어 내려갈 때였다. 지나던 한 사람이 그를 보고 한마디를 하였다.

 

  "쯧쯧! 또 시작이군. 좌우간 저 집은 골치야, 골치!"

 

  "아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보아하니 문무겸전의 사부를 구하는 거 같은데."

 

  이상하다는 질문에 객손은 소천악의 위아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객지인이슈?"

 

  "그렇습니다만."

 

  "그러니 그런 말을 하지. 좌우간 혹시나 저기 갈 생각이면 단념하시구려. 벌써 삼 개월 새에 일곱 명이 실려 갔다오."

 

  "실려 가다니요?"

 

  의아한 소천악의 반문에 그 사람은 손사래를 쳤다.

 

  "어이구, 설명하기도 귀찮소. 무조건 신경 쓰지 마시구려. 은자에 혹했다가는 아주 경치는 일이 생길 거요."

 

  "그런데 이가장이 부자입니까?"

 

  "이가장? 허, 정말 세상 물정 모르시는구먼. 거기는 가진 게 돈뿐이란 소문이 온 천지에 짜하거늘. 오죽하면 돈가장이라 하겠소? 그것도 모르시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십대의 남자가 떠나갔다. 눈을 번쩍하던 소천악은 결심을 굳힌 듯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 이가장을 찾아갔다. 입구부터 보통 부자가 아니라는 듯 은자로 처 바른 티가 줄줄 흐르는 집이다. 장원을 둘러싼 벽조차 각종 조각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 범상치 않은 부자 티를 사방에 흩뿌렸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 무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얼른 반색을 하며 장주 집무실로 안내해 주었다. 지나친 과잉친절에 의혹감이 들었지만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사실 이간희 장주의 엄명이었다. 찾아오는 사부 후보생에게 절대 결례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이간희 장주는 이미 소천악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가 장사 땅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움직이는 데마다 사람을 부려 벽보를 붙였다. 무려 열 장을 붙여서야 겨우 소천악의 눈에 띄었으니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도 장난이 아니었다. 장주 집무실 앞에 선 경비 무사가 말했다.

 

  "장주님, 지금 소장주님들을 가르치겠다고 오신 분이 계십니다."

 

  "오! 얼른 모시고 들어오게. 아니야, 내가 나감세."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오십대의 남자가 보였다.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남자는 이가장의 장주인 이간희이다.

 

  "어서 오십시오. 자자, 안으로 일단 들어가시지요."

 

  소천악의 옷깃을 잡아끌며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는 이간희이다.

 

  "아, 네네. 그러시지요."

 

  얼떨결에 방으로 들어간 소천악이다. 이간희 장주는 시녀를 불러 차를 가져오라 한 후 소천악에게 말했다. 너무 어려 보이는 게 마음에 약간 걸린 이간희였다.

 

  "방을 보고 오신 건가요?"

 

  "그렇소이다. 아드님의 스승을 구한다 해서."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무공은 어느 정도 하시는지?"

 

  대뜸 글보다 무공을 묻는 이간희 장주였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장사꾼 특유의 말투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마음 없이 말하는 소천악이다.

 

  "그저 이 한 몸 지킬 정도는 합니다."

 

  "아, 그거 다행입니다. 척 보기에도 한무공하실 거 같네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이간희이다.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소천악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글공부 선생을 구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물론 구하지요."

 

  "글공부 스승을 구하는데 왜 무공은 물어보시는 겁니까? 당연히 학문 실력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험험. 다 지내다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우선 계약부터 하시지요. 그러면 바로 설명해 드리지요."

 

  무언가 서두르는 기색이었지만 조건이 좋은 탓에 아무 생각 없이 계약서에 서명한 소천악이었다. 계약이 끝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간희 장주가 설명을 시작했다.

 

  "계약에 있다시피 기본이 한 달입니다. 몸이 아주 상하거나 부러지기 전에는 해약이 절대 불가합니다."

 

  "거참, 이상한 일이네요. 글 선생 구하는데 웬 부러진다는 말이 나오는지?"

 

  이간희 장주는 방바닥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차마 안 나오는 말을 꺼냈다.

 

  "이제 와서 무엇을 속이겠소이까! 실은 제가 늦둥이로 아들 둘을 얻었습니다. 너무 귀한 자손이라 애지중지하다 보니 이게 문제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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