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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4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48화

 

  네 명의 무인들은 모두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져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처절한 신음을 실내에 울렸다. 그 소리도 한순간이었다. 이내 온몸을 부르르 떨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잠잠해졌다. 이미 그들에게는 어떠한 생명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소천악의 시선은 민석주를 향해 차가운 빛을 흘렸다.

 

  민석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부의 일류고수 네 명이 아! 소리도 못 지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갔다. 그나마 권을 쓴 한 명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한 실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안목을 탓해야 했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철저히 무림인과의 연계는 피해왔다. 자칫하면 이 사업을 말아먹을 우려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태양혈을 유심히 관찰한 후에야 일을 추진했다. 그 방법은 여태껏 훌륭하게 성공해 왔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나고 말았다.

 

  "이보시오! 이리로 빨리 오시지요!"

 

  음산한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리자 민석주는 소름이 돋아났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체념 어린 얼굴로 다가서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강호의 고인을 몰라본 죄! 죽어도 마땅합니다!"

 

  "암, 죽어야지요! 감히 내게 검을 들이대시고 살기를 바란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요."

 

  차갑게 들리는 소천악의 말에 민석주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광동성에서부터 들려온 소문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이 떠오르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신의괴협이 아니십니까?"

 

  "어, 맞는데요. 지부장님이 날 알아요?"

 

  대답을 들은 민석주는 아찔했다. 조용히 잠자는 호랑이 똥꼬에 쇠꼬챙이를 찌른 자신이었다.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얼른 말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소천악에 대한 정보를 기억해 냈다. 바로 방바닥에 엎드리며 통사정을 늘어놓았다.

 

  "죽여주십시오. 감히 소협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어떠한 손해배상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소천악의 눈이 반짝 이채를 발했다.

 

  "오호! 어떠한 손해배상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있는 걸 다 털어서라도 배상해야지요."

 

  겨우 삶의 끈을 잡은 민석주의 발버둥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본 소천악은 비위 뒤틀리면 가차 없이 자신의 목을 가르고 사라질 인물이 확실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소천악의 입에 알지 못할 미소가 머물렀다.

 

  "좋소이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벽에 방을 써 붙이시지요!"

 

  "네… 무슨 방을?"

 

  "당신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 모두 오시라고 써 붙이시지요. 그 사람들이 몰려오면 피해액을 그대로 변상해 줘야지요."

 

  "헉! 그런!"

 

  "하기 싫으시면 바로 죽든지 알아서 하시지요."

 

  다시 살기를 드러내며 다가서는 소천악을 보며 질겁한 민석주가 말했다.

 

  "아닙니다! 바로 하겠습니다. 하고말고요!"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방이 붙자 처음엔 의심쩍어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용기를 낸 한 사람이 들어갔다 얼마 후 은자를 들고 나오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는 사람마다 그동안 억울하게 당한 일을 보상받았다. 그들은 민석주 뒤에 서 있는 소천악이 한 일인 줄 바로 알아챘다.

 

  "아이고, 은공이이시여! 정말 고맙습니다. 성함이라도?"

 

  "하하, 소천악이라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악질 대부업체에 오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부디 복 받으시길!"

 

  손이 발이 되도록 고마움을 표시하며 한두 명씩 감격에 겨워 다녀갔다. 자정이 다가올 무렵 소문을 듣고 온 마지막 사람을 끝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민석주는 가슴에서 피눈물이 솟아올랐다. 몇 년간 온갖 욕을 얻어먹으면서 모았던 재산이 술술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는 건 가슴 저리는 아픔이었다. 그런 그에게 소천악은 다시 한 번 충격을 던져주었다.

 

  "자! 이제 우리 사이의 거래를 해야지요. 손해배상 말이오!"

 

  민석주는 저 뻔뻔한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오로지 마음뿐이었다 막상 그랬다가는 바로 자살행위였다. 그 즉시 자신은 목 없는 시체가 될 건 뻔했다.

 

  "해야지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힘없이 말하는 민석주에게 차가운 말을 들이대는 소천악이었다.

 

  "있는 거 다 줘야지요. 얼마는 뭐가 얼마입니까? 다 내놓으시지요. 아님 목숨을 주시든가!"

 

  협상은 없다는 듯 단호한 말에 기가 질려가는 민석주였다. 소문 그대로 악종이었다. 완전히 기둥뿌리까지 집어삼키려는 심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에 어떠한 반항도 헛된 꿈이었다. 힘없이 주섬주섬 전표와 은자를 꺼내주는 민석주였다. 혹시나 숨긴 돈이 나오면 바로 죽인다는 협박에 감출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은자 몇 푼에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었다. 탈탈 털어 다 주자 소천악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하나 더 있잖아요?"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억울한 듯 하소연하는 민석주를 바라보며 바로 옆에다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있어요. 이봐요! 거기 서 있는 분, 이리 와보시지요!"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얼굴흉터를 부르는 소천악이었다. 그는 찔끔해서 얼른 다가왔다. 저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몸으로 느낀 얼굴흉터였다.

 

  "당신, 지금 가서 다른 대부업자를 데려오시구려. 시간은 일각! 늦으면 당신 목은 땅바닥에 굴러다닐 겁니다."

 

  미처 대답할 틈도 없이 얼굴흉터는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어기면 분명히 자기가 죽는 건 사실이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눈부시게 움직여 일각도 되기 전에 막 자려던 한 대부업자를 거의 끌고 오다시피 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당신은 가셔도 좋소이다."

 

  "감사합니다, 소협!"

 

  얼굴흉터는 거듭 사의를 표하며 바람같이 사라졌다. 다시는 이쪽으로는 아예 발도 디딜 생각이 없었다. 소천악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는 그를 보며 피식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시작하자고요. 이보시오, 이 건물 담보로 최대한 빌려줄 은자가 얼마요?"

 

  "크어헉!"

 

  민석주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저 인간은 자기보다 더한 독종이란 걸 새삼 느꼈다. 새로 온 대부업자는 민석주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민석주 대인의 허락이 있는 건지요?"

 

  소천악의 고개가 바로 끄덕였다. 그를 본 민석주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맞소! 내가 하는 것이오!"

 

  "좋소이다. 그렇다면 이 건물 담보로 은자 팔천 냥을 드리지요. 그런데 혹시 토지는 담보할 거 아닌가요?"

 

  이건 동업자가 아니었다. 약점을 알아차린 그는 소천악에게 넌지시 정보를 제공했다. 물론 사양할 소천악이 아니었다.

 

  "다 해주시오. 모조리!"

 

  민석주가 숨겨놓은 모든 땅이 낱낱이 담보로 제공되었다. 땅은 엄청나게 많았다. 모두 삼만 오천 냥에 담보로 제공되었다. 당연히 소천악은 전표로 받아 챙겼다.

 

  "자, 좋은 거래였소. 이제 그만 난 가보겠소!"

 

  "같이 가지지요, 공자!"

 

  자다가 횡재를 한 사채업자는 소천악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껴안고 춤이라도 추고픈 심정이었다. 늘 민석주에게 눌려 만년 업계 이인자 소리만 듣다가 그의 몰락을 바라보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두 사람은 정답게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민석주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육시랄 놈! 내가 이렇게 무너질 성싶으냐? 어디 두고 보자!"

 

  한 남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메아리치는 밤이었다. 달은 그저 무심히 민석주의 발악을 지켜만 볼 뿐이다.

 

 

 

  소천악은 든든해진 주머니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기루로 향했다. 강호란 곳은 은자 벌기가 너무 쉬운 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강호가 좋아지는 그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은자가 황제였다. 설설 기는 총관에게 퍽퍽 집어 주며 말했다.

 

  "비파 잘 타는 기녀 둘하고 명기 하나 넣어주시게. 그저 술자리 대화 상대만 되면 고맙겠소."

 

  "네, 염려 마십시오! 안 그래도 죽이는 기녀 하나가 새로 왔습니다!"

 

  "오호, 그래요? 어서 보내주시오!"

 

  아주 정감 있는 대화가 오고 간 후 특실에 자리잡은 소천악에게 비파 연주 기녀가 들어와 연주를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기녀가 나타났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이 보였다. 인사를 하고 소천악 옆에 쭈삣거리며 앉았다. 찰싹 달라붙는 여느 기녀와 달리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술을 따르는 손도 가늘게 떨려왔다. 이상한 느낌이 든 소천악이 물었다.

 

  "왜 그리 떠는 것이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이 처음이라서 그만!"

 

  소천악의 눈이 불을 튀겼다.

 

  '처음이란 말은 곧?'

 

  바로 자세를 잡으며 꼬실 준비를 갖춘 상태로 돌변했다. 기녀는 누가 봐도 처음 나온 게 분명했다. 총관이 받은 은자 값을 한 게 분명했다. 단골도 아닌 소천악에게 크게 선심을 쓴 셈이었다. 보아하니 글줄깨나 읽은 티가 났다.

 

  소천악은 강호에 나와 필요에 따라 피나게 연습한 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가 외우는 몇 안 되는 시구절이었다.

 

 

 

  가로 보면 고개 모로 보면 산봉우리 멀고 가깝고 높고 낮아 저마다 다르구나 노산의 참 모습 모르는 것은 오직 몸이 이 산속에 갇힌 탓이어라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自在此山中

 

 

 

  소동파(蘇東坡)의 <여산>으로 주옥같은 명시였다. 외로운 마음을 비유하는 말에 매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시 마음을 추스린 그녀가 담담하게 답시를 외웠다.

 

 

 

  밤하늘에 총총한 저 별빛 부처가 우연히 보고 망상을 더했어라 저 산을 내려올 길 올라갈 길 하나뿐 중생을 건진단다. 건질 중생 하나 없다

 

 

 

  耿耿靑天夜夜星 瞿曇一見長無明 下山路是上山路 欲度衆生無衆生

 

 

 

  역시 소동파의 명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소천악이 알지 못하는 시였다. 그렇다고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

 

  "하하, 역시 내 눈이 정확하구려. 예사롭지 않은 기녀라 보았거늘!"

 

  "송구합니다. 공자의 귀를 어지럽히지나 않았나 두렵사옵니다!"

 

  "이런 겸손까지. 하하, 오늘 유난히 술맛이 나는군요. 어서 따르시게!"

 

  한동안 글 이야기를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동안 비파를 연주하는 기녀는 서로 교대해 가며 고단한 손가락과 열심히 씨름하고 있었다. 소천악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매향이라는 기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일개 기녀로 보기엔 단정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보면 양소아와 흡사한 여인이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소천악이 슬며시 운을 띄웠다.

 

  "매향이 자네는 아무리 봐도 이쪽에 올 여인이 아니신데 무슨 사연이신가?"

 

  매향이란 기녀는 한참을 망설였다. 소천악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평소의 그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다만 색마의 교육대로만 움직였다. 일각이 훨씬 지났을 무렵 매향이의 입이 정말 어렵게 열렸다.

 

  "저희 아버님은 중원과 서역을 오가며 소금 등을 파는 대상인이었지요. 규모로 보면 중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작년에 아버님이 크게 상단을 꾸려 교역을 하게 되었지요.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마적 떼에게 걸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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