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4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46화
이제는 색마들에게 열심히 배운 기술을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기루에 들어선 소천악은 항상 외치던 대로 특급을 불러댔다. 간이라도 빼줄 듯한 총관과 기녀의 환대를 받으며 술자리를 즐겼다. 아직까지 비파 연주를 좋아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비파 타는 기녀는 또다시 실신지경으로 실려 갔다. 딱 그 기녀 하나만 불행한 일이었다. 다른 기녀들은 펑펑 내던지는 은자 세례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호남성에서의 첫날 밤은 지나갔다.
이튿날 소천악은 몰라보게 달라진 기녀의 모습에 경악했다. 얼굴이 발그스레해진 채 아침을 맞이한 기녀는 마치 서방님을 대하듯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은자가 아닌 남자의 매력에 녹아난 기색이 확연했다. 소천악은 기쁨이 차올랐다.
거드름을 피우며 거하게 낮에 잠을 잔 그는 밤이 되자 어김없이 어제와 같은 술판을 벌였다. 물론 기녀는 바뀌었다. 첫날 밤을 보낸 기녀의 따가운 눈총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색마의 기술에 신뢰를 가진 소천악이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자부할 만한 실력의 보유자였다.
자부심에 며칠을 보내다 보니 열심히 일해 철무진 표국주로부터 받은 육백여 냥의 은자가 바닥이었다. 놀라운 소비력이었다.
남들은 몇 년을 벌어야 모으는 은자를 며칠 내에 날려먹은 소천악이었다. 이제는 나갈 시간이었다. 기루는 항상 사람보다 은자를 사랑하는 곳이었다. 돈이 없는 소천악은 구박을 받기 전에 얼른 빠져나왔다.
또다시 주머니엔 은자 몇 냥이 달랑거리는 처지였다. 아무리 자제하려 해도 은자 탕진에는 대책이 없었다. 그놈의 '기분대로'가 문제였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가 소천악의 기본 생각이었다.
한참을 장고하며 고민하던 그는 편하게 은하전장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은하전장 호남성 북국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패를 보이고 간단한 절차를 거쳐 분국장을 만났다.
"반갑소이다. 이 패를 아시지요?"
황금패를 내밀자 분국장인 남서추는 유심히 들여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지요! 담 총장주님의 신패지요?"
"아시니 말하기가 훨 편하네요! 한 오천 냥만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소천악의 말에 바로 난색을 표하는 남서추였다.
"그건 곤란합니다. 이미 이번 달 사용량을 다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 달이 지나야 오천 냥을 드릴 수 있습니다."
"거참, 빡빡하게 하시지 말고 그냥 편하게 주시구려!"
"저희 호남분국 규칙으로는 곤란합니다!"
일언지하에 자르는 남서추였다. 사실 황금패의 위력은 은하전장의 일개 분국장이 거부할 권위가 아니었다. 말만 하면 바로 줘야 했다. 담대추광 본장 장주의 신뢰라는 패였다. 하지만 남서추는 젊은 놈이 거액을 달라는 데 배알이 꼴렸다. 보통 사람은 평생을 벌어도 모으기가 힘든 오천 냥의 가치였다.
그걸 말 몇 마디로 편하게 달라는 소천악을 보자 자신과 대비되어 울화통이 치밀었다. 거절 이유는 단지 그뿐이었다. 아직 이 금패의 내력을 모르는 터였다. 그저 아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 정도로만 생각했다. 소천악은 거절은 생각도 못했다. 더욱이 어려운 발걸음을 해 부탁까지 했는데도 거절당하자 화가 치밀었다.
"좋소! 마음대로 하시오!"
버럭 소리치며 바로 일어서는 소천악이었다. 당황한 남서추가 말리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어느새 분국장 집무실을 나서 성큼성큼 사라져 갔다.
"거참, 성질도 급한 놈이네!"
혀를 차던 남서추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총관을 불러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았다. 총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머리에 현기증이 확 일어나며 절로 혀가 바짝 말라붙었다. 담수란을 고쳐준 신의에게 준 패란 말에 버럭 소리를 치고 말았다.
"왜 그런 이야기를 아직까지 안 한 거야?"
"분국장님! 이 전서 내용은 불과 일각 전에 본장에서 알려온 겁니다!"
"이런 제길, 어서 방금 나간 공자를 찾아라! 어서!"
경악한 남서추의 불호령에 은하전장 호남성 사람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이 잡듯이 뒤져도 소천악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들이 저잣거리를 들쑤시고 다니자 소천악의 이름은 하나둘씩 정보를 취급하는 이의 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제2-4장 사채(私債) 평정
한편 거리로 나온 소천악은 분기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이런 싹수없는 것들! 겨우 돈 오천 냥에 이런 대우를 해? 에이, 더러운 놈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그는 한동안 거리를 배회하다가 희한한 벽보를 바라보게 되었다.
〈급전 대출합니다.
은자가 필요하신 분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담보가 있으신 분 특별 우대합니다.
자격이 되시는 분, 바로 앞에서 은자를 드립니다.
싸고 안전한 대출이 여러분을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남대출 배상〉
읽던 소천악의 눈이 번쩍했다. 이런 것이 있다니!
미소를 지으며 들어가려던 그는 멈칫했다. 아무런 조건도 담보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챘다. 그림의 떡이란 생각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돌아섰다.
아깝다는 생각에 궁리하던 중 갑자기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잘만 하면 통할 것 같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건물 안으로 쑥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항상 친절과 신용으로 대하는 호남대출입니다!"
말쑥한 차림의 삼십대 남자가 웃으며 반겼다. 한결 마음이 놓인 소천악이 대답했다.
"은자 좀 빌리러 왔소이다!"
"잘 오셨습니다! 자, 이리로 와서 자세한 상담을 해보시지요! 저는 대출담당 민석주라고 합니다."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은 소천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담보대출을 할까 하는데."
"오, 담보대출이라! 좋은 일이죠. 그래, 얼마나 쓰시려고 하시는지요?"
가만히 날짜 계산을 마친 소천악이 대답했다.
"먼저 묻겠소! 40일간 쓰고 이자까지 포함해서 오천 냥을 갚으려면 도대체 얼마를 빌려야 하오?"
상상외의 거액을 부르자 민석주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큰돈이 필요하시군요! 그 정도는 신용대출이 불가능합니다. 무슨 담보라도 있어야 가능하지요."
"자, 담보는 이거요."
소천악은 담대추광이 준 황금패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바라보던 민석주가 바로 대답했다.
"순금 패군요. 물론 금이니 담보는 됩니다만 이 정도로는 기껏해야 은자 백 냥이 다입니다."
"하하, 금값은 그 정도일지는 몰라도 이건 은하전장에서 한 달에 오천 냥씩을 준다는 패이지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민석주가 패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꼼꼼히 살펴보던 그가 눈빛을 야릇하게 빛내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조금 더 알아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소천악의 승낙이 떨어지자 민석주는 바로 한 사람을 불러 귓속말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 다시 웃는 낯으로 소천악에게 말했다.
"저희는 신속 정확이 생명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바로 결과가 나오니 일단 용정차나 한 잔 하시지요. 차맛이 아주 훌륭한 겁니다!"
"오호, 그래요? 그럼 한 잔 주시지요!"
민석주는 차를 권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조금도 초조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 소천악이었다. 어느 정도 확신이 든 그는 더욱 친절하게 대했다. 마련된 용정차를 한 모금 마신 소천악이었다. 혀끝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향긋한 차 내음에 탄성을 내뱉었다.
"차 맛이 훌륭하오이다."
"하하, 칭찬해 주시니 이거 대접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소이다."
편안한 대화 분위기가 일각 정도 지속되었다. 이윽고 나갔던 남자가 들어와 말했다.
"총관님, 잠시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에게 말하는 민석주였다.
"어허, 이거 참! 손님, 잠시만 자리를……."
"그러시오!"
민석주는 포권으로 인사하며 방을 나갔다. 일단 방을 벗어난 민석주의 얼굴은 인자한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교활한 눈빛을 뿜어냈다.
"어떻게 됐어?"
"틀림없습니다. 은하전장에 아는 이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이거 대박입니다. 일 년 동안 월 오천 냥씩을 무조건 보증한다는 담대추광 본장주가 준 패랍니다."
"으흐흐, 간만에 대어가 걸렸구나! 알았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민석주가 얼른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공자,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느새 민석주의 입에선 공자란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리 기분 나쁜 호칭이 아니기에 소천악은 태연히 대꾸했다.
"아니, 뭐 불과 반각 정도인데. 괜찮소?"
"대출을 환영합니다. 자, 얼마가 필요하신지요?"
"대출이 가능하다면 꽉꽉 채워주시오. 단 40일 후에 오천 냥으로 갚는다는 조건이오!"
"알겠습니다, 공자. 자, 계산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민석주는 주판을 들고 부지런히 계산에 들어갔다. 그의 현란한 주판 실력에 찬탄을 금치 못하며 멍하니 바라보는 소천악이었다. 이윽고 계산이 끝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공자, 아실는지 모르나 저희는 복복리 개념입니다."
"복복리가 뭐요?"
의아한 소천악의 질문에 나름대로 친절하게 대답하는 민석주였다.
"아! 이자가 이자를 부른다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제때 이자를 안 갚으면 이자가 또 새끼를 쳐 이자가 늘어나게 되죠."
어지러운 계산법을 설명할 기세인 민석주였다. 골치가 아파 온 소천악이 얼른 말을 가로채며 대꾸했다.
"성가신 소리 마시고 얼른 말이나 하시오. 도대체 얼마를 준다는 이야기요?"
"네, 삼천 냥을 쓰시고 40일 후에 오천 냥을 주시면 됩니다."
"우라지게 비싸구려! 이자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소천악이었다. 민석주는 정색을 하며 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공자! 무슨 말씀을 다른 대부업자들은 이천팔백 냥밖에 안 줍니다. 우리는 아주 양심적으로 거래하는 겁니다."
조금 속이야 쓰렸지만 소천악은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처지였다. 무일푼보다야 삼천 냥이 있는 게 백번 나았다.
"좋소! 어서 돈을 주시오!"
"하하, 그러지요. 일단 계약서를 쓰시면 바로 드리지요."
"그러시오."
그 후 민석주가 작성한 계약서를 건성으로 읽어본 소천악은 시키는 대로 수결을 했다. 수결하느라 손바닥에 먹이 묻어 영 기분이 찝찝한 소천악이었다.
약속대로 민석주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삼천 냥을 건네주었다. 전표로 이천오백 냥하고 금원보로 오백 냥이었다.
"잘 쓰겠소! 그럼 40일 후에 봅시다!"
일단 주머니가 두둑해진 소천악이 미소를 지으며 포권했다. 민석주도 마주 포권하며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소천악이 호남대출 건물을 떠나자 민석주의 입가가 슬며시 좁혀지며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저놈이 돈을 다 쓸 때까지 잘 감시하면서 보고해라."
"네, 지부장님!"
"흐흐! 간만에 대어가 걸렸어!"
스산하게 웃는 민석주의 시선은 계약서로 향해 있었다.
한편 소천악은 새로 생각한 방법을 실천할 마음에 부풀어 있었다. 나름대로 화려해 보이는 객잔에 숙소를 정했다. 최고급 숙식으로 하고 40일치 숙식비를 선불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