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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43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43화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천악의 목소리에 식사하던 손님들이 잔뜩 불쾌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점소이는 황당했지만 보이는 파리에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바꿔 드리죠."

 

  "얼른 바꿔 줘."

 

  사나운 소천악의 말투에 점소이는 얼른 주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거 뭐야? 아주 파리랑 소면이랑 함께 먹으란 이야기야? 이 똥파리를 먹으란 말이야!"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천악이었다. 아무리 바꿔 가도 갈수록 파리는 늘어만 갔다. 이미 소천악의 고함에 입맛을 죄다 잃은 손님들이 모두 나가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점소이가 이 일의 전모를 모를 리가 없었다. 잘못 건드린 경우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림인이 분명했다. 날카로운 안광이 그제야 보인 점소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차 하면 오늘이 자기 제삿날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얼른 소천악에게 다가간 점소이는 무릎을 꿇고 삭삭 빌었다.

 

  "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기인을 몰라뵙고 그만."

 

  가만히 쏘아보던 소천악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요절을 내고 싶다만 네놈 인생도 불쌍하고 해서 봐주마."

 

  음산한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리자 점소이는 방금 황천길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네, 정말 은혜가!"

 

  구구절절한 점소이의 말을 얼른 자르고 마무리하는 소천악이었다.

 

  "인생 똑바로 살아라. 그리고 소면 얼른 가져와라."

 

  놀라 급히 돌아간 점소이가 금방 음식을 들고 왔다. 소면과 두 가지 특선요리였다.

 

  "이게 뭐냐? 난 소면만 시켰어."

 

  "이건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공짜로 드리는 겁니다."

 

  "흐음, 좋아. 일단 먹기는 한다만 조만간에 몇 배로 갚아주마."

 

  "아이고! 그냥 드십시오."

 

  절대 사양하는 점소이를 보고 빙긋 웃으며 차려진 요리와 소면을 먹었다. 의외로 맛있는 요리를 먹고 거리로 나선 소천악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어제까지 전낭을 두드리며 다니다 오늘은 바로 거지였다. 은하전장에 다시 갈까도 생각했지만 영 켕겼다. 이미 두 달치를 쓴 주제에 다시 가불하려니 낯이 간지러웠다.

 

  당장 돈 나올 구멍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그렇다고 양소아에게 찾아가 은자 좀 달라고 하기엔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끙끙대던 소천악은 마침내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없으면 없는 대로 취직할 생각이다. 그래 봐야 끽 두 달만 버티면 다시 남부럽지 않은 사치를 즐긴다고 마음먹으니 그럭저럭 마음이 편해져 갔다.

 

 

 

 

 

  제2-3장 쟁자수로 입문

 

 

 

 

 

  급한 대로 취직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저잣거리를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사람 모집하는 공고를 찾아보았다. 아무리 눈을 돌려봐도 영 경기가 시원치 않은지 뽑는 공고가 없었다. 한동안 배회하다가 시장기가 느껴진 소천악이 길거리 만두집에 턱하니 앉아 만두를 시켰다.

 

  "이보시오, 주인장. 혹시 이 근처에서 사람 뽑는 데 없소?"

 

  "사람이오? 저기 금성표국에서 표사와 쟁자수를 구한다는데 끝났나 모르겠소."

 

  소천악의 귀가 번쩍 뜨였다. 드디어 일거리를 찾아낸 기쁨에 만두 접시가 나오자마자 입에 털어 넣고 길을 나섰다. 얼마 안 걷자 바로 금성표국이란 장원이 나왔다. 내심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찾아다녀도 없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눈뜬장님이 따로 없었다.

 

  소천악은 경비무사에게 다가섰다.

 

  "실례합니다. 사람 구한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소천악의 형색을 쳐다보던 경비무사 중 한 명이 물었다.

 

  "아, 낭인 무사인가요?"

 

  "뭐, 무사도 되고 여러 가지 합니다만."

 

  "쯧쯧, 늦으셨네요. 이미 표사는 다 모집했고 쟁자수만 몇 명 더 선발한다고 하던데."

 

  아쉬운 듯한 경비무사의 말이다. 소천악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음, 쟁자수면 어떻습니까? 들어가도 됩니까?"

 

  멀쩡한 무사가 쟁자수라도 하겠다는 말에 경비무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세히 안내하였다.

 

  "멀쩡해 보이는 데 왜 쟁자수를 하려 하지?"

 

  "몰라서 하는 소리냐? 척 봐도 삼류무사잖아. 아무래도 궁짜가 낀 거 같아. 쯧쯧! 이래서 항상 사람은 장래를 대비해야 해."

 

  등 뒤로 들려오는 따가운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들어가는 소천악이다. 자존심을 따질 처지가 아닌 형편이다. 서둘러 모집 장소로 갔다.

 

  "저, 쟁자수 모집한다는데 아직 자리 있습니까?"

 

  가만히 바라보던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 좀 쓰나?"

 

  "힘이야 뭐 남들만큼은 쓰죠."

 

  "하하, 덩치 보니 그럴 거 같네. 이번에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까지 가는 상행일세. 약 한 달 예정이야. 보수는 은자 이십 냥일세. 해보겠나?"

 

  "당연히 숙식은 제공이죠?"

 

  웃으며 묻는 소천악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총관이다. 일사천리로 쟁자수로 임명(?)된 소천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이제부터 한 달간은 굶을 우려는 없었다. 무공이 높다고 부자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쟁자수 적응 훈련을 받았다. 사실 별거 아닌 훈련이다. 막말로 힘만 쓰면 되는 일이다. 다만 표두나 표사에게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영 귀에 거슬렸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금성표국에 들어온 호남상단을 따라 출발했다.

 

  쟁자수라고 여정 내내 등에 물건을 지고 다니는 건 아니다. 평지에선 마차에 짐이 실렸다. 다만 산을 넘어갈 때 가끔 물건을 등에 지는 정도였다. 소천악은 의외로 편한 여행이 되자 느긋해진 마음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움직이는 쟁자수는 오십대 장년인이다. 이름이 사공척이라고 했다. 물론 소천악은 악천이라는 가명을 썼다. 사공척은 맨 처음 산을 오를 때 등짐을 지자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왠지 안쓰럽던 소천악이 슬쩍 그의 짐을 져준 이후로 한결 관계 개선이 쉬웠다.

 

  "여보게, 악천. 자넨 이런 일 할 사람같이 안 보이는데."

 

  "하하, 돈 떨어지면 이 꼴 나는 거지요, 뭐."

 

  미안한 듯한 사공척의 인사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소천악이다.

 

  "휴, 하긴 돈 없고 힘없으면 다 이런 막장인생인 거지."

 

  사공척이 깊은 한숨을 허공에 수놓았다. 바라보는 소천악도 그리 편한 기분은 아니었다.

 

  움직이던 표행 행렬은 산속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소천악은 가만히 나무 그늘에 앉아 묘한 신세가 된 걸 어이없는 웃음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물 항아리가 불쑥 보였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니 갓 삼십대가 된 듯한 한 표사가 물 항아리를 내밀고 서 있었다. 왼쪽 뺨에 칼자국 흉터가 선명히 보였다. 대충 봐도 꽤 거친 인생을 살아온 듯한 인물이다.

 

  "이봐, 거기 쟁자수. 저 밑 개울에 가 시원한 물이나 떠 와."

 

  그 표사가 소천악을 지목해 말하자 인상이 바로 구겨졌다. 막 발작하려는 순간 눈치 빠른 사공척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허허, 표사님. 제가 다녀오지요."

 

  사공척이 얼른 물 항아리를 집어 들고 개울로 걸어갔다. 소천악은 차마 안 내켰지만 할 수 없이 따라가고야 말았다. 사공척이 급히 말했다.

 

  "이보게, 조심하게. 방금 그놈은 흉악한 놈일세. 말이 표사지 사실 건달이나 매한가지야. 수틀리면 쟁자수를 두들겨 패서 걷지도 못하게 만드는 놈이야."

 

  "제길! 별게 다 거치적거리네."

 

  사공척은 투덜대는 소천악을 애써 달래며 물을 길어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댔다. 귀가 아픈 소천악은 아예 이번 일을 무시하기로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표사를 보자 성큼성큼 걸어가 툭 던지다시피 물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옛수. 물 드슈."

 

  "아니! 이런 건방진 놈이."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인 표사였다. 그는 오랜 낭인검사 생활 끝에 표사 일을 막 시작한 장취석이다. 옆에 함께하던 표두 하나가 말렸다.

 

  "이보게, 참아! 이럴 때마다 쟁자수를 베면 짐은 누가 들고 가나? 설마 우리가 들고 가란 건 아니겠지?"

 

  "하하, 그렇군요. 너 오늘 재수가 좋은 줄 알아라. 다음에 다시 이런 일이 있다면 네놈의 잘난 팔을 잘라주마."

 

  마치 큰 인심을 쓴다는 듯이 말하는 표사를 보자 울화통이 터져나오려는 소천악이다. 옆에서 살며시 팔을 잡아끄는 사공척이 아니었다면 머리를 수박 깨듯 부셔버릴 뻔했다.

 

  힐끗 바라보던 철무진 금성표국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찮은 쟁자수의 수모 정도는 그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사공척은 질질 끌다시피 소천악을 멀리 데려갔다.

 

  "이보게, 참아. 저놈들은 우리 쟁자수를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놈들이야. 아차 하면 산중에 이름 모를 고혼이 될 수 있어."

 

  "에이, 이런 개새끼들! 별 거지 같은 놈들이 성질 건드리네요."

 

  화가 날 대로 난 소천악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공척의 얼굴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참아야 하네. 힘없는 우리 쟁자수들이야 늘 겪는 일이라네."

 

  "에이 제길! 어서 목적지에 가서 헤어지든지 해야지."

 

  소천악은 일단 손을 대면 표사 모두를 반 죽여야 한다는 걸 잘 알았다. 더운데 몸을 움직이기도 귀찮았다. 그냥 한 번은 참기로 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이것저것 가릴 기분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인상이 구겨진 소천악을 사공척은 달래고 달래며 산길을 재촉했다. 산에서는 말이 힘들어하는 터에 쟁자수의 짐이 늘어났다. 표두와 표사는 땀을 뻘뻘 흘리는 쟁자수의 힘겨운 발길을 본 척도 안 했다. 보다 못한 소천악이 사공척에게 한마디 했다.

 

  "저 새끼들은 아주 팔자가 늘어졌네요."

 

  "휴우, 어쩌겠나. 힘없는 게 죄지."

 

  소천악은 표두나 표사에게 첫인상 자체가 아주 나빠져만 갔다. 한마디로 식충이란 인상만 받았다. 차라리 밑바닥 인생이라는 쟁자수들끼리 통하는 정이 있었다. 한 사람이 힘겨워하면 다른 이도 지친 몸으로 짐을 더 지고 산을 올랐다.

 

  거의 산 정상이 눈에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소천악은 오래전부터 숲 속에 은신해 있던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사공척을 바라보며 넌지시 일렀다.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요. 일단 뒤쪽으로 처지세요."

 

  "무슨 소리인가?"

 

  "아, 글쎄, 내 말 들어요."

 

  신경질적인 소천악의 말에 인생 오래 산 생강은 달랐다. 즉시 걸음을 늦추어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가던 쟁자수 중 눈치 빠른 자도 티 안 나게 뒤로 밀려갔다. 그때였다.

 

  "멈추어라. 감히 우리 영역을 아무 말 없이 가는 자가 누군가?"

 

  고함과 함께 수십여 명의 산적들이 숲 속에서 튀어나왔다. 일반 산적이 아닌 녹림삼십육채에 소속된 무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녹림본채에 속한 이들이 입는 녹색 무복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눈에 띄었다.

 

  금성표국주인 철무진(鐵武振)은 내심 크게 당황했다. 자신들의 전력상 어려운 싸움이 될 건 뻔했다. 절로 다급해진 그가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녹림동도 여러분! 이 철 모가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사해가 동도이거늘……."

 

  "동도는 무슨. 네놈들이 우리를 볼 때 한마디로 산적 놈이라고 수군거리는 걸 모르는 줄 아느냐?"

 

  맨 앞에 대도를 들고 있던 텁석부리 수염이 쏘아붙였다. 그는 산적패의 우두머리인 유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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