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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3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38화

 

  "무슨 말이오?"

 

  귀를 기울이며 경청 준비를 마친 소천악이었다.

 

  "여자에게 아름답다고 말하지 마시오. 대신 당신 같은 여자는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말하시오. 그러면 첫 단추가 아주 쉽게 풀릴 것이오."

 

  "오호! 역시 색마 분이시라 뭔가가 달라도 다르시오."

 

  소천악은 감탄하면서 배움의 자세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이 태도에 금제당한 처지라는 것도 망각한 채 미혼색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인간에게 하나의 혀와 두 개의 귀가 있는 건 지껄이기보다는 두 배 더 들으란 소리요. 여자에게 많이 떠들게 하고 열심히 듣는 척하시오."

 

  "그건 또 왜요?"

 

  "답답한 소리 마시오. 여자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법이라오."

 

  배우면 배울수록 그전의 자신이 왜 멧돼지라 불렸는지 뼈저리게 실감하였다. 이런 신세계가 숨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천악이 이를 악물고 배움에 정진하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떠오르는 색마계의 신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름이 갈수록 깊어가고 배움도 하루가 다르게 깊어갔다. 이윽고 한 달의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배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놀라운 성취욕에 한 달 내내 입이 부르터라 앵무새처럼 지껄이던 미혼색마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하오. 이 정도면 가히 절정의 경지에 이른 풍류공자로 손색이 없을 것이오."

 

  "이제 다 배운 것이오?"

 

  "물론이오. 내가 아는 건 모두 다 전수해 주었소. 남은 건 이제 실전뿐이오. 이제 약속대로 날 풀어주시오."

 

  지겨움을 꾹 참고 열심히 가르친 미혼색마가 말하자 소천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가르칠 게 이젠 정말 없는 거요?"

 

  곰곰이 생각하던 미혼색마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이상은 아는 게 없소."

 

  "좋소이다. 이제 풀어드리지요. 아주 편안하실 게요."

 

  소천악은 미혼색마에게 다가가 기혈을 풀어주는 척하다가 갑자기 손속을 돌려 사혈을 순식간에 찍어갔다. 깜짝 놀란 미혼색마가 몸을 비틀었으나 뱀처럼 영활하게 휘어 들어온 소천악의 손속을 피할 순 없었다.

 

  "컥! 이런 비겁한! 약속을 어기는 것인가?"

 

  저주의 독기를 줄줄 뿜으며 말하는 미혼색마였다.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차디찼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오!"

 

  "왜 이런 짓을?"

 

  분통한 듯 외치는 미혼색마를 향해 소천악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한심한 분이시네요! 죽은 자는 약속을 어겼다고 말씀하지 못하는 법이지요. 그리고 귀하를 죽이는 이유는 두 가지라오. 첫째 귀하가 혹시나 나에게 색마술을 전수하셨다고 떠드시고 다니시는 걸 막아야지요. 안 그래요?"

 

  "이런 후안무치한 놈!"

 

  이를 부득부득 가는 미혼색마의 얼굴엔 이미 죽음이 짙게 드리워져 갔다.

 

  "원래 얼굴이 조금 두껍소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막말로 귀하가 내가 노리는 미녀를 먼저 손대시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소이까? 귀하라면 남이 떠먹은 밥 먹고 싶겠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게 상책이지요."

 

  "이런 간악한 놈!"

 

  "너무 억울해하시지는 마시오. 내가 이제부터 줄줄이 색마 분들을 귀하가 간 저승에 보내주지요. 사이좋게 모여서 이야기나 하시도록 해드리겠소. 이제 그만 가보시구려. 뭐 그리 애착이 많으셔서 안 돌아가시려고 발버둥을 치시는 게요?"

 

  스산하게 말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미혼색마는 통한의 심정으로 외쳤다.

 

  "이놈! 두고 보자. 네놈의 말로도 결코… 컥!"

 

  마지막 말을 채 못 잇고 미혼색마는 숨을 거두었다. 얼마나 억울한지 눈도 제대로 못 감고 죽었다. 바라보던 소천악이 피식 웃었다.

 

  "귀하의 저주에 죽을 정도라면 아예 이 강호에 발도 안 내밀었소. 하나의 이(利)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하나의 해(害)를 제거하는 것이 낫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오."

 

  싸늘하게 비웃으며 소천악은 서찰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미혼색마의 비리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흥! 이 양반이 하북팽가의 낭자를 겁탈해 쫓겨 다니셨군. 당연히 보내드려야지. 크하하!"

 

  소천악은 시체를 대충 부대자루에 넣어 들고 성내로 다시 들어갔다. 물어물어 허름한 장의사를 찾아간 그가 말했다.

 

  "이 시체 잘 방부처리해서 보름 후 하북팽가로 보내주시오. 발송인은 소천악이라고 써서 전달해 주시기를 바라오."

 

  허름한 부대자루에 담긴 시신을 가져온 소천악을 보고 장의사가 수상쩍은 시선으로 물었다.

 

  "아니 웬 시신이오?"

 

  "유명한 색마 시신이오. 미혼색마란 놈이오. 보내주면 하북팽가에서 섭섭지 않게 보상해 줄 거요. 명심하실 건 보름 후에 도착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소문이 먼저 퍼질 걸 우려한 소천악의 심계는 치밀했다. 일거양득을 노리는 수였다. 배울 건 다 배우고 혈사부의 전철을 피하기 위해 일단 협명을 쌓아놓을 필요를 느꼈다.

 

  장의사가 요구하는 비용을 은자로 준 소천악은 다음 대상을 찾아 움직였다. 이미 행적이 드러나 있던 색마들은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소천악의 손아귀에 잡힌 후 미혼색마와 같이 달콤한 유혹에 홀랑 넘어갔다.

 

  그들은 자신의 밑천을 송두리째 뺏긴 채 하나둘씩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갔다.

 

  한 달이 지나자 이미 서찰에 적힌 네 명의 색마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단 한 명! 극락색마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들었지만 언젠가 잡으리라는 다짐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색마들이 하나씩 이승을 떠날수록 소천악의 실력도 쑥쑥 자라났다. 한마디로 청출어람하는 새로운 색마의 출현이었다.

 

 

 

  며칠 간격으로 일제히 표국을 통해 전해진 시신과 발신자를 보고 강호 여러 곳이 떠들썩했다.

 

  금지옥엽을 잃고 시름에 잠겼던 문파나 세가들이 그 원수의 시신을 보고 가만둘 리가 없었다. 색마들의 시신은 죽어서도 토막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서서히 강호에 소문이 나돌았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은 색마들을 전문적으로 응징하는 새로운 협사의 출현에 정파는 열광했다. 절정고수급에 이른 색마들을 모조리 해치운 이름이 점점 드높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소문에는 광동성에서 흑사방을 단신으로 해치운 일과 단목세가에서 사파의 절정고수인 흑마전주를 물리친 사건까지 거론되었다.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난 협객으로 부각되는 소천악이었다.

 

  무공만 강한 것이 아니다. 단목세가에서 중상자를 가볍게 치료한 일과 천하에 내로라하던 의원들이 두 손 든 은하전장주의 딸마저 치료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한마디로 의술과 무공을 겸비한 절세기재로 평가되었다.

 

  인간성마저 좋았다. 색마에게 걸린 상금을 모두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써달라는 그의 서찰 내용이 공개되자 더욱 칭송은 높아만 갔다. 사실 소천악은 이미 배가 불러 그까짓 상금 정도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대충 휘갈긴 서찰이었다.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고 있었으니 세상 참 불공평했다.

 

  어느덧 정파무림에선 그를 별호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신의괴협! 그리고 검사권생(주먹은 살고 검은 죽는다.)!

 

  놀라운 의술과 괴팍한 심성을 지녔다 하여 불리게 된 별호였다. 강호초출치고는 유례없이 빠르게 얻은 별호였다.

 

 

 

 

 

  제2-2장 팔자에 없는 협객이 되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일에 만족한 소천악이었다. 이미 그는 떠오르는 강호의 신성으로 부각되었다.

 

  기회란 찾아오지 않으면 만들면 된다는 그의 신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내심 쾌재를 부르던 그는 객잔 특실에 머물고 있었다. 색마들로부터 전수받은 술법등을 집중적으로 수련하였다.

 

  칠 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수련을 한 그는 이미 멧돼지가 아니었다. 왜 취향이가 자신에게 비웃음을 날렸는지 배움을 통해 절실히 깨달아갔다. 혈사부와의 무공수련과는 전혀 기분 자체가 달랐다. 배우는 기쁨이 존재하고 실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무공이란 만족감이 들었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색마들이 전해준 명언(?)과 비술을 어느 정도 익힌 소천악은 자신만만했다. 이제는 그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준이라고 자화자찬까지 할 지경이었다.

 

  한동안 객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그가 모처럼 객잔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고 귀빈석인 삼층 창가에 앉아 특선요리와 명주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그의 시선 정면에 다섯 명의 청춘남녀가 자리잡고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남 삼녀로 구성된 일행이었다.

 

  "가가! 이번 물난리가 대단하다 하던데요?"

 

  "그런가 봐. 수많은 백성들이 집과 밭을 잃고 거리로 나앉고 있다고 하더군."

 

  "큰일이군요."

 

  수심에 찬 여인의 말에 한 남자가 대답했다.

 

  "안 그래도 강호 십대미인이라는 수어화 양소아(梁素雅)소저가 이미 현장에 가서 도와준다고 하더군."

 

  "어머! 역시 고운 심성대로 하시는군요."

 

  대화를 슬며시 엿듣던 소천악의 귀가 번뜩했다. 십대미인이 왔다는 소리는 정말로 반가운 소리였다. 안 그래도 서찰을 보니 모두 까마득히 멀리 살고 있어 심사가 불편하였던 터였다. 바로 술자리를 접고 부리나케 하오문을 찾았다.

 

  "양 지부장! 혹시 양소아 소저가 온 곳을 알고 있소?"

 

  "아, 소 소협! 안 그래도 찾아뵈려고 했소이다. 지금 양소아 소저가 양주에 있다는 정보입니다. 여기 그 주변에 있는 인물과 성격 등을 기록한 서찰입니다. 더구나 강호제일신의란 백의신의(白衣神醫)께서도 오셨다는 정보입니다."

 

  부리나케 가져온 서찰을 보고 흡족한 기분이 든 소천악이 공치사를 시작했다.

 

  "오! 역시 지부장이 이제는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구려. 고맙소. 여기 정보비 천 냥이오."

 

  "헉, 천 냥!"

 

  경악한 양원저 지부장이 벌떡 일어날 뻔했다. 가까스로 놀란 마음을 억제한 그는 광동성에서 보낸 전서구 내용을 떠올렸다. 역시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정확한 정보였다. 앞에 선 인간은 아무리 잣대를 들이대도 도무지 대책이 안 서는 인간임은 확실했다.

 

  "자! 그럼 전 이만 가보겠소."

 

  거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소천악이다.

 

  "소 소협! 부디 훌륭한 청춘사업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뒤에서 양원저가 소리치는 걸 실웃음으로 넘겼다. 남들이 자신을 파악할 수 없다면 이미 반은 이기고 들어간다는 혈사부의 경험을 십분 발휘했다. 자신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시키기 전략이다.

 

  객잔으로 돌아가 계산을 마친 소천악은 한혈마를 타고 양소아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가자 하늘이 거메지면서 비가 억수처럼 내리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옆으로 본 강물은 이미 흙탕물로 변하여 언제라도 둑을 넘을 기세였다. 사나운 물결이 도도하게 흐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부지런히 달려가는 소천악의 눈에 표지판이 보였다.

 

  양주 이십 리.

 

  거의 다 온 걸 안 소천악은 서서히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작전을 짤 시간이 필요했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본 서찰 내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신창양가의 가주의 외동딸인 양소아였다. 당연히 세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란 보석같이 귀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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