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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3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37화

 

  미안한 표정의 담대추광을 보자니 내심 찔린 소천악이 얼른 대답했다.

 

  "하하, 괘념치 마세요. 다 하늘의 뜻인 게지요. 자, 그럼 이만 소생은 물러갑니다. 대부인과 담수란 소저에게 대신 안부 전해주십시오."

 

  "아, 그리고 우리 아들놈이 신의께 드리라고 한혈마를 준비해 놓았으니 가지고 가십시오. 먼 길 다니시려면 필요하실 겁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다. 안 그래도 호시탐탐 가져갈 꿍심을 품었던 터였다.

 

  "아니! 이런 고마운 일이!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내심 희희낙락한 소천악이다. 정말 욕심이 나는 놈이었는데 저절로 손에 들어온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머리를 살짝 숙여 작별인사를 한 그가 서둘러 은하전장을 나섰다. 혹시나 담수란이 나타나 생떼를 부릴까 심히 걱정되어 정문을 나서자마자 급히 말을 몰아 사라져 갔다.

 

  뒤늦게 소천악이 떠난 걸 안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소공자는 아쉬운 빛이 역력했다. 하나 담수란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이 자식이, 몰래 도망을 가? 어디 두고 보자."

 

  이를 뽀드득 가는 담수란이었다. 그녀를 보며 영문을 모르는 대부인과 남매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동안 쳐다보았다. 담수란은 조금만 더 기력을 차렸다면 당장 쫓아가고픈 심정이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이미 알았다.

 

  그가 치료 중에 조그마하게 중얼거린 소리를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한 마디도 빠짐없이 똑똑히 기억했다. 게다가 여자의 육감은 무서웠다. 치료 중에 흑심을 품고 여기저기를 만진 소천악의 비행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차마 수치스러워 아무에게도 말은 못 했지만 이미 가슴속에 한을 품은 그녀였다. 차가운 비수를 가슴에 담은 그녀의 저주는 멀쩡한 소천악의 귀를 심한 간지러움증으로 괴롭혔다. 한혈마를 탄 소천악은 부지런히 호남성으로 향했다. 명마답게 말은 장거리 여정에도 끄떡없이 버텨나갔다.

 

  "허, 이놈 정말 물건이네. 이렇게 달리고도 멀쩡하니."

 

  새삼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현재로선 금패보다 이 마필이 더 소중한 기분이다.

 

  삼 일 동안 풍진노숙을 감행하며 달린 탓에 저 멀리 벌써 호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성안에 들어서자 보기 드문 명마를 이끌고 나타난 소천악에게 많은 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낯간지러웠지만 모조리 무시한 채 삼 층으로 된 고급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아직 밤이 되기엔 약간 시간이 남아 다시 한 번 색마에 대한 정보 분석에 들어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을 요약하니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미혼색마(迷魂色魔)!

 

  절정의 섭혼술을 익힌 자. 맘에 드는 여인을 보면 섭혼술을 시전해 정절을 갈취하는 악행으로 유명한 자. 무공은 삼초의 검식을 익혀 일류와 절정의 사이에 있는 고수. 흑마전주와 싸우면 약 오초지적으로 판단됨.

 

 

 

  자세히도 적은 양원저 지부장이었다. 소천악의 비위를 맞추고자 피눈물 나게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배어나왔다. 그 세밀함에 감탄한 소천악이 중얼거렸다.

 

  "음, 정말 애썼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냥을 주는 게 아니었군. 적어도 다섯 냥은 줘야 했어."

 

  지부장이 들으면 고래고래 악을 쓸 말을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이 정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하오문의 정성은 피눈물 그 자체였다. 은자로 환산하면 물경 오백 냥은 족히 든 터였다.

 

  그는 절정고수급인 미혼색마를 아무런 소란 없이 잡으려는 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기습하는 방법이 제일 무난했다. 정도를 걷는다는 심정은 그의 안중에 아예 없었다. 서찰 내의 행적을 유심히 분석하면서 가장 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사전에 한적한 집 하나를 빌려두는 용의주도함마저 보였다. 마침내 모든 일을 정리한 소천악은 방을 나섰다.

 

  미혼색마가 자주 들락거리는 기루로 발길을 옮겼다. 기루에 다다르자 주위를 면밀히 살피고 적당한 곳을 택해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식경이 넘도록 쓸데없는 한량들만 들락거릴 뿐 미혼색마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겨운 마음에 막 포기하려는 찰나 드디어 인상착의가 비슷한 이가 정문을 향해 나타났다. 그는 나름대로 귀빈인 듯 보였다. 경비무사의 인사를 받으며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기루 안으로 들어갔다.

 

  소천악의 안광이 순간 섬뜩한 광채를 발했다. 그는 바로 행동에 들어가 인기척이 없는 담을 신법을 펼쳐 슬쩍 넘었다. 기루 안에 들어서자 주변을 예리하게 살폈다. 바로 보이는 울창한 나뭇잎이 우거진 커다란 고목 안으로 스며들었다.

 

  자리를 잡자 기루 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였다. 다행히 여름 날씨라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어 한결 수고를 덜어주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방을 샅샅이 뒤져 가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우뚝 멈췄다.

 

  미혼색마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양 겨드랑이에 기녀 둘을 차고 아주 세월 좋게 풍류를 즐기는 듯 보였다.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술잔을 연거푸 비워댔다. 기녀들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그의 눈에 들고자 안간힘을 쓰는 게 한눈에 보였다. 은자가 아닌 다른 걸 갈망하는 기녀의 눈빛을 보고 소천악은 씁쓸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뇌리에 떠오르는 두 단어 때문이었다.

 

  멧돼지! 그리고 토끼!

 

  내심 이를 갈며 미혼색마의 한 동작도 소홀함이 없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지루한 시간이 계속 흘렀다.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 오자 술자리는 파장을 맞이했다. 미혼색마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 기녀를 골라 침상으로 향했다.

 

  물론 소천악도 자리를 옮겨 그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시간이 지나자 기녀와의 흥건한 밤을 보내고 막 곯아떨어진 미혼색마를 향해 소리 없이 접근해 가는 소천악이었다. 발걸음을 죽이고 다가서는 그는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인 양 흔적 없이 방으로 스며들었다.

 

  만족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는 한 쌍을 보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같은 남자로서 비애마저 느껴졌다. 애써 속마음을 삭이고 침대로 다가섰다. 거리가 좁혀지자 섬전같이 금나수(擒拏手)를 시전했다. 미혼색마는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서려는 순간 바로 수혈을 짚여 정신을 잃었다. 고수답지 않게 허무하게 제압된 일이다. 소천악은 옆에 있는 기녀도 제압한 후 비로소 다시 몸을 세웠다.

 

  벌거숭이인 미혼색마를 바라보다 이불을 확 들추었다. 그를 이불 안에 던져놓고 돌돌 말아 창문으로 훌쩍 날아갔다. 알몸뚱이를 아침부터 타인에게 보일 기녀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을 옆에 끼고도 전혀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그의 신법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지붕을 타고 날아간 그는 마련한 집 안으로 스며들듯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그는 거칠게 이불을 방바닥에 팽개친 후 복면을 벗었다. 만일을 대비한 치밀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벌거숭이인 채 늘어진 미혼색마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의 나신은 그다지 볼거리가 아니었다. 다가선 소천악은 그의 단전을 폐쇄한 후 수혈을 풀어주었다.

 

 

 

  정신을 차린 미혼색마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적응하려 무진 애를 썼다. 이미 단전은 폐쇄된 걸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소천악을 보자 첫눈에 무림인이란 직감이 왔다. 침착하자고 다짐하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왜 이러시는가? 기방에 출입한 게 무슨 죄라고!"

 

  미혼색마의 항변에 탁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소천악이 대꾸했다.

 

  "그건 절대 죄가 아니지요. 단 귀공이 미혼색마라는 게 죄지요."

 

  "헉! 그걸 어떻게?"

 

  안색이 바로 파랗게 질리는 미혼색마였다.

 

  "다 아는 수가 있지요. 내가 조건을 하나 제시하지요. 그냥 죽으실 겁니까? 아님 내가 원하는 걸 알려주고 살 길을 찾으시렵니까?"

 

  "사람이면 당연히 살 길을 찾는 법이오. 그래, 무슨 조건이오?"

 

  당연한 대답이 미혼색마에게서 흘러나왔다. 만족한 얼굴로 소천악이 말했다.

 

  "딱 하나요. 귀공이 여자 잘 다룬다고 강호에 대명이 자자하더군요. 그 비법을 내게 전해준다면 살려드리지요."

 

  "그게 정말이오?"

 

  어이없는 요구에 미혼색마는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속고만 살았소이까? 그리고 귀공이 이 지경에서 뭐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그냥 좋은 말 할 때 시키는 대로 알려주시고 사시는 게 신상에 좋아 보입니다만."

 

  잠시 고민하던 미혼색마는 이내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걸 깨달고 힘없이 말했다.

 

  "좋소. 가르쳐주겠소. 대신 약속은 꼭 지키시오."

 

  "당연하지요. 단 귀공이 빼먹고 숨기는 비법이 있다면 문제가 달라지지요. 그때는 결단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명심하시길 바라오."

 

  "뭐 귀중한 거라고 감추겠소. 필요하다면 다 말해 주리다."

 

  체념한 듯 편하게 말하는 미혼색마였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소천악이다.

 

  "그런 마음가짐이시라면 나도 만족합니다. 단 일단 무공은 폐쇄시키겠소이다. 다 배우고 나면 당연히 기혈을 풀어 무공을 되찾게 해주겠소."

 

  별다른 반박을 할 거리가 없는 미혼색마는 순순히 수긍하는 얼굴이었다.

 

  "좋소. 나도 답답하니 하루라도 빨리 알려주겠소."

 

  말을 꺼낸 미혼색마는 곧바로 자신의 비전비급을 품에서 꺼냈다.

 

  미혼색마술!

 

  제목부터 오묘한 방중술의 묘미가 철철 풍겨 나오는 비급이었다. 그는 비급을 펼쳐놓고 자세한 설명에 들어갔다.

 

  "이 비급은 세상 여자의 약점을 철저히 파고드는 데부터 시작하오. 여자들은 흔히 첫눈에는 남자의 용모나 재력을 보게 되어 있소. 아주 당연한 반응이오. 이 점에서 벗어나는 여자는 그리 흔치 않소."

 

  "음, 그럴듯하오. 계속하시오."

 

  "하나 시간이 지나면 여자들은 다른 점에 시선을 돌리게 되어 있소. 바로 방중술이라는 절대불가결의 관문이라오."

 

  "그런 비결이? 하하, 좋소이다. 얼른 말해 주시구려."

 

  "이런 비기를 배우려 하시다니 역시 공자는 멋진 풍류남아요."

 

  서로 자화자찬하며 한 사람은 가르치고 한 사람은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소천악은 미혼색마의 아주 자상한 가르침을 경청하며 하나하나 터득해 나갔다. 실로 놀라운 세계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엔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색마술이 점점 흥미를 끌게 만들었다. 미혼색마의 첫마디가 터졌다.

 

  "자고로 여자란 일단 접수하면 순한 양이 되는 법이오. 마음에 들면 일단 자빠뜨리시오. 그럼 일은 반 이상 끝난 거요."

 

  "아니던데? 취향이는 몇 번을 자빠뜨려도 안 되던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소천악이 의심스러운 어조로 되묻자 미혼색마가 얼른 말했다.

 

  "취향이가 누구요?"

 

  "아, 광동성에서 유명한 천국제일루라는 기루의 기녀요."

 

  기녀란 말에 바로 이마가 좁혀지며 반박하는 미혼색마였다.

 

  "아, 이런! 기녀는 이미 손이 타도 심하게 탄 여자요. 그들은 이미 여자가 아니오. 내가 말하는 건 처녀 즉 아직 남자의 손을 안 탄 여자들을 말하는 거요."

 

  "아, 그렇구려. 손 안 탄 처녀라?"

 

  무언가를 느낀 듯 소천악이 깊은 생각에 빠질 무렵 미혼색마의 교육(?)은 계속되었다.

 

  "우선 이 말을 기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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