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2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25화
이것 역시 욕심 부리다간 어디 부러질 위험이 큼. 현재로선 정사지간의 인물로 보임.>
다시 한 번 서찰을 유심히 살펴본 곤소우는 빠진 부분이 없자 급히 전서구를 꺼내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이상한 건 총단에 보내는 서찰은 따로 써서 하나 더 보낸 점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얼마나 재미있는 행각을 벌일지 기대가 많이 되는 인물이야. 으하하, 혈검신마라. 후후."
그만 아는 묘한 웃음이 하오문 안에 가득 감돌았다.
같은 시각, 하오문을 나선 소천악은 주루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아진 등 건달패를 만났다. 아진은 아직도 부러진 팔에 천을 칭칭 감고 있었다.
"아진, 고생 많았소. 어쩌면 나 때문에 몸이 많이 상했소이다."
뜻밖에 부드럽게 대하는 소천악을 보며 약간 당혹스런 기분으로 아진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게 다 우리네 숙명 아니겠습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초연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하는 아진을 묵묵히 쳐다보던 소천악이 전표 한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이거 얼마 안 되오만 치료비하고 쓰고 싶은 데 쓰시오. 앞으로 어떻게 살든지 마음대로 하고 말이오."
올려놓은 전표에 적힌 금액을 확인한 아진과 건달패들은 상상외의 거금에 놀라 자빠졌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당황감이 더욱 커진 아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런 거금을!"
"내 마음이 내켜서 주는 거외다. 이걸로 개과천선하라는 말도 안 하겠소. 당신들 내키는 대로 사시오. 나는 이만 광동성을 떠날 생각이오."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자 아진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아, 벌써 가시다니 서운합니다."
의례적인 인사말을 아진이 건네자 소천악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마음에 없는 소리 하다가 뒈지는 수가 있소이다. 어디서 지랄을 떠시오?"
"헉, 그게!"
심장이 멈출 듯한 공포에 휩싸인 아진을 보며 다시 부드럽게 마무리를 짓는 소천악이었다.
"알아서 사시오. 그동안 함부로 대한 거 다 이해하시오. 난 이만 갈까 하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소! 부디 목숨을 소중히 여기시오."
찬바람이 쌩하니 불며 소천악은 주루를 나서서 광동성을 떠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안 좋은 소문이 돌 여지는 미리 차단한 기분이었다. 무림공적이 안 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공연히 건방지다는 소문이 돌아 득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강호행보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성문을 나설 때 이미 소문을 들은 수비병들이 딴청을 피우며 애써 소천악과 눈을 마주치기를 피했다.
모진 놈 옆에 갔다가 괜히 피 보기 싫은 건 인지상정이었다.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는 소천악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이제 목표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지니 왠지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제1-7장 단목세가와의 인연 - 무림 십대미녀를 처음 만나다
초여름의 길은 서서히 후덥지근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시장한 기운이 느껴져 길 옆 나무 그늘에 앉아 준비해 온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날씨 탓에 쉬 상하는 만두를 먼저 먹어치울 요량이었다.
아직까지는 무엇을 먹어도 맛나는 소천악이었다. 산에서 지낼 때 요리 솜씨가 워낙 훌륭했던(?) 사제지간이었다. 덕분에 살기 위해 먹는다는 표현이 딱 알맞은 매 끼니였다. 식도락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아왔다. 산을 내려오니 보이는 음식마다 하나같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 즐거움이 있었다.
입가에 감도는 밀가루와 고기의 오묘한 감칠맛에 감탄하며 오물거리던 그의 눈에 멀리서부터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이는 게 보였다.
"이런 빌어먹을! 어떤 놈이 관도에서 이리 속도를 내 달려오는 거야?"
투덜거리며 남은 만두를 급히 먹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입에 넣는 그의 옆으로 점점 먼지구름이 다가왔다. 마지막 만두를 입에 넣자마자 먼지구름 앞으로 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십여 필의 말들이 거친 호흡을 토하면서 전력으로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맨 앞에서 달려오던 한 장정이 손을 높이 들고 말했다.
"잠깐! 여기서 쉬면서 다친 이들을 아쉬운 대로 치료하고 가자."
단 한마디에 약속이나 한 듯이 십여 필의 말이 바로 멈춰 섰다. 놀랄 만하게 잘 훈련된 무사 집단이라는 게 눈에 확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맨 먼저 말에서 내린 자는 아무래도 무리의 우두머리 같았다. 잠시 소천악을 보고 이채를 발했으나 바로 눈빛을 바꾼 그가 말했다.
"선객이 있었구려. 본인은 단목세가에 적을 두고 있는 단목기(端木杞)라고 하오이다. 잠시 옆자리를 써도 괜찮겠소이까?"
소천악은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먼지를 먹기 싫어 급하게 만두를 먹느라 볼따구니가 아프고 목이 메여왔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시오. 어차피 주인도 정해지지 않은 그늘이오만."
"고맙소이다."
짧게 사의를 표한 그의 장삼에는 선명하게 단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옷을 본 소천악의 눈이 이번엔 반대로 이채를 발했다. 그런 소천악의 꿍꿍이 속셈은 전혀 모른 채 장한은 일행에게 소리쳤다.
"어서 부상자를 그늘에 눕히고 치료해라. 시간이 얼마 없다. 어서 세가로 가야 한다."
정신없이 외치는 그의 말에 나머지 무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등허리에 검을 찬 채 움직이는 모든 무사의 옷엔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한 네 명이 급히 동료의 부축으로 그늘로 눕혀졌다. 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풍겨 오자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진 소천악이 티 안 나게 고개를 슬쩍 돌렸다.
"어서 상처 부위에 금창약을 바르고 천으로 묶어라."
소리치는 자는 단목세가 외당 소속 삼향주인 단목기였다. 삼향대를 이끌어 피의 혈로를 뚫고 적진을 관통하여 단목세가로 급히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의 지시에 삼향대원들은 서둘러 금창약을 꺼내 상처 부위에 발라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천악이 툭하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쯧쯧! 그렇게 치료하면 이 더운 날씨에 상처가 곪아 자칫하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할 텐데."
가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은 단목기의 눈에 섬광이 번쩍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얼른 소천악의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보시오, 공자. 말씀을 들으니 의술을 아시는 거 같은데 이 사람이 도움을 청해도 되겠소이까?"
"하하! 물론이오. 어찌 의술을 아는 이가 환자를 외면하겠소. 내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손을 쓰리다."
스르르 몸을 일으킨 소천악은 거침없이 누워 있는 부상자 옆에 앉았다.
"자, 환자가 잠시 고통스러워하실 테니 팔과 다리를 잡아주시오."
소천악의 말에 삼향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몸을 잡았다. 소천악은 바로 환자의 혈도를 짚어 칼날에 담긴 독기가 올라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 후 상처 부위를 거침없이 쥐어짜는 손길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극통에 환자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절로 터져나왔다.
"으악! 이 새끼가! 저리 안 가."
"조용히 안 하시오? 그럼 가만히 내버려둬서 팔 하나 싹둑 자르고 살래요? 병신으로 살고 싶으면 당신 맘대로 하시오."
차가운 소천악의 말에 더 이상 욕을 못 하고 처절한 비명만 내지르는 불쌍한 환자였다. 소천악은 외상 치료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많은 경험의 소유자였다. 그 악랄한 수련과정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다치면서 치료한 결과였다. 그의 놀림이나 치료법은 실로 눈부셨다.
다만 고통 없이 치료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그 자신이 치료한 대로 그대로 할 뿐이었다. 덕분에 환자는 지옥을 넘나드는 극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현란한 손놀림에 단목기 향주를 비롯한 삼향대원들의 입이 벌어졌다. 대충 독기를 빼낸 소천악은 터진 상처를 소독하고 금창약을 뿌렸다. 다음엔 행낭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벌어진 상처를 꿰매는데 그 빠른 손길은 환자의 비명보다 오히려 빨랐다.
불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 사람의 치료가 끝났다. 또 다른 이를 바로 돌보는 소천악의 모습에 감탄하던 단목기 향주와 대원들이 어느새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환자는 그 극악한 치료를 차마 보지 못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두려움에 손사래를 치려 했으나 소천악의 손길이 한발 빨랐다.
잠시 후 네 명의 부상자는 비명을 지르다 극악한 통증에 모두 혼절하고 말았다. 놀라운 건 치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타났다. 더운 날씨에 상처 부위가 썩어 고름이 줄줄 흘러 지독한 냄새를 풍기던 부상자들이 달라졌다. 바로 부상자 옆에 가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치료를 마치고 천천히 행낭을 챙기는 소천악에게 단목기 향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신의가 옆에 있어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이 은혜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도대체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왜 이 모양인지?"
한숨을 푹 내쉰 단목기 향주가 입을 열었다. 이미 부하들을 치료하는 모습에서 신뢰감을 느낀 그는 자초지종을 풀어놓았다.
"우리는 신의께서 아실는지 모르지만 단목세가의 외당무사들입니다. 이번에 평소 저희와 숙적이던 흑마전(黑魔殿)에서 우리 가주님이 불의의 사고로 쓰러지자 바로 기습을 감행했지요. 세가의 기둥이 부재중이라 어려운 싸움이 지속되다가 이번에 적의 조호이산지계에 속아 분하게도 이 개 향이 전멸하고 저희만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요. 이렇게 참패를 당하고 힘겹게 본가로 돌아가는 중이지요."
"허, 고민이 크시겠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부하들을 돌봐주셔서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지금은 경황이 없어 사례를 못 하는 점 양해하시고 나중에 세가에 들를 일이 있으시면 꼭 저 단목기를 찾아주시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소천악은 머리를 휙 스치는 좋은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허! 이거 의원이 되어서 어찌 이런 일을 보고 그냥 가겠소! 내 이번 기회에 평소 흠모하던 단목세가에 가서 다친 이를 치료해 보겠소이다."
소천악의 말에 얼른 반색을 한 단목기가 얼른 환영했다.
"아니, 진정이십니까? 사실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었습니다. 위험이 있어 감히 부탁드리기가 그랬는데 이리 말씀하시니 앓던 이가 쑥 빠지는 기분입니다. 하하!"
"자자, 이러지 말고 어서 갑시다. 혹시나 세가에 부상자가 있으면 치료해야지요."
"오, 역시 신의께서는."
단목기 향주가 다시금 감탄하며 소천악을 마차에 태웠다. 부상자들과 함께 탄 소천악은 피비린내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편한 맛에 아무 말 없이 앉아 갔다.
그가 별다른 의심을 안 받는 이유는 내공고수처럼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잠재력을 기본으로 하는 혈검문은 태양혈이 불거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소천악은 가끔 환자들의 상처 치료에 시간을 약간 쓸 뿐 편안하게 여행을 즐겼다. 물론 치료하러 오는 소천악을 본 환자들은 갈수록 경기 증세가 심해져 이제는 아예 손만 와도 까무러치는 경우마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