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9화
"네, 두목. 흐흐, 이놈의 자식. 오늘 혼 좀 나봐라."
열 명의 건달패는 어깨의 근육을 꿈틀거리며 다가섰다. 아무리 봐도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건달패가 분명했다. 소천악은 순간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어귀에서 또래끼리 주먹질하던 생각이 떠오르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왠지 무공을 모르는 건달에게 무공으로 이긴다는 건 비겁하게 느껴졌다.
"좋아. 여러분들이 주먹이면 저도 주먹으로 하겠소이다. 어둠의 법칙대로 한판 뜹시다."
호기롭게 외친 소천악은 이미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사나이끼리의 주먹승부에 매력을 느낀 아쌀한 기분이었다. 건달패는 일단 덩치 하나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무얼 먹었는지 산더미 만한 덩치를 실룩거리며 소천악의 주위를 뺑 돌아 포위했다.
"아가야! 이쯤에서 재롱 그만두고 형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그냥 봐주마!"
나름대로 무게를 실어 말하는 건달패에게 코웃음을 날리는 소천악이었다.
"싫소이다. 그냥 형들이 뭔가 보여주시구려."
"이놈의 자식이 곱게 말하면 영 들어먹질 않네."
건달패 중 한 명이 손으로 소천악을 잡아왔다. 슬쩍 비켜 피하며 주먹을 면상에 꽂았다. 주먹에 걸리는 촉감이 죽였다.
"크윽!"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건달이 손으로 감싸다 피가 흐르는 걸 보고 광분했다.
"이 새끼가! 좋게 해주려니까 감히."
건달패가 일제히 덤볐다. 그때부터 완전히 개싸움이었다. 주먹으로 치고받으며 비명이 여기저기서 울렸다.
"만만한 놈이 아니야. 모두 덮쳐라."
건달패의 외침에 소천악도 포위망에 갇혀 얼굴을 한 대 맞았다. 땅 하는 통증이 뇌리에서 종처럼 들려왔다. 주먹을 날리면 발이 옆구리로 날아왔다.
"어쭈, 한주먹하시는데요?"
옆구리에서 느껴오는 통증에 빙긋 웃으며 소천악이 말했다. 치고받는 혈전이 한동안 지속됐다. 건달패의 주먹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혈사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소천악의 맷집 하나만큼은 세상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무공수련으로 단련된 소천악의 주먹은 매서웠다.
건달들은 두 대째를 맞고는 제대로 서서 견디는 이가 없었다. 이윽고 열 명의 건달패가 신음을 흘리며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소천악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얼굴이 약간 부어 있었고 옆구리에 은은한 통증이 맴돌았다. 십여 년 만의 막싸움은 그에게 시원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이미 흥이 동한 소천악이 얼이 나간 두목을 불렀다.
"어이구! 두목님, 뭐 하시나? 소림사 무공 좀 보십시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하는 소천악은 이미 건달패 그 자체였다. 주먹질을 하다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느껴졌다.
"새끼, 한주먹하는구나. 어쩐지 큰소리를 치더라니."
"두목님이 뭘 잘 모르는 모양인데요. 두주먹하오이다. 잘 보시구려. 손이 두 개잖소?"
"이 쌍놈의 새끼가! 입만 살아서."
"주먹도 있소이다. 얼른 오시오. 기다리다 해 떨어지겠소이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아진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자세를 잡았다. 다리를 벌리고 손가락을 구부려 노려보는 자세는 어김없는 소림사의 백발나한권 기수식이었다. 소천악은 픽 웃음이 나왔다. 왠지 어설픈 그 자세에서는 전혀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천악은 왼손에 금원보를 담은 상자를 옮겨 들고 주먹을 쥔채 건들거렸다.
"어이구, 개걸레 두목님! 어서 덤비시오. 백팔나한권 펼치는 거 기다리다 날 새겠소이다."
"이놈의 새끼! 오늘 아주 초상을 내주마! 얍! 백발나한권."
주먹을 쥔 채 달려오는 아진의 얼굴에는 깊은 살기가 배어나왔다. 턱을 노리고 날아오는 주먹은 나름대로 매서운 권풍을 뿌렸다. 일반 사람이라면 바로 한 방에 날아갈 위력이었다.
"아쭈, 어디서 보기는 본 모양이구려. 거참! 자세 하나만큼은 소림사 장문인 급이시오. 참으로 대단하시오."
실실 비아냥거리며 얼굴을 노리고 직선으로 뻗어오는 주먹을 슬쩍 비켜 막았다. 십여 년 간의 무공수련으로 단련된 그의 손은 이미 흉기였다.
따악! 우지직!
주먹끼리 마주치는 소리와 함께 아진은 오른손이 쇠뭉치에 부딪친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으악! 내 팔!"
오른 팔을 부여잡고 고통에 떨며 뒤로 물러서는 아진이었다. 내공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마주친 소천악도 약간 뻐근한 충격이 밀려왔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사나이의 박력이라는 주먹질에 나름대로 희열을 느낀 소천악이 흥에 겨워 소리쳤다.
"어이구, 건달두목님! 비명만 지르지 말고 얼른 다시 오시오. 발도 남았잖소? 이번엔 발차기로 해보시구려. 백팔나한권이 영 시원치 않소이다. 이번에는 백발나한각을 보여주시오."
실실 웃으며 약 올리는 소천악을 보며 아진은 이를 갈았다.
"이놈, 후회하지 말아라. 이 어르신이 정말로 소림무공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
아진의 손놀림이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과 손이 교차하며 어지러운 환영이 시야를 가려왔다. 아진의 공격은 팔과 무릎을 상호 결합하여 권법을 구사했다. 손이 앞서고 눈이 따르며 몸이 따르고 보법이 따라왔다. 나름대로 흉내는 내는 기세였다.
"오호! 이건 그래도 쓸 만하오이다."
차갑게 비웃으며 소천악의 손이 번뜩이며 막아갔다. 분혼마의 분혼마권이었다. 물론 내공 없이 순전히 힘으로만 전개해 나갔다. 다가서는 아진의 권을 몸으로 흘려 어깨로 받아갔다. 기겁한 아진이 고개를 숙이자 이번엔 무릎이 치켜 올라갔다. 발악적으로 아진이 손을 올렸다.
퍽! 퍽!
아진의 턱이 무릎에 받쳐 거센 충격이 머리를 덮쳐왔다. 소천악은 정신없이 휘둘러오는 아진의 권을 팔꿈치로 막았다.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아진이 쓰러졌다. 그의 턱은 이미 탈골돼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땅을 뒹구는 그를 보며 소천악은 개운한 아침 운동을 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진을 보던 소천악이 서서히 다가섰다. 이미 건달패들은 두려움에 질려 꼼짝도 못하는 처지였다.
아진의 턱을 잡은 소천악이 음산하게 뇌까렸다.
"조금 아플 거요. 다 자업자득이니 참아보시구려."
소천악의 손이 섬전처럼 움직이며 아진의 턱을 세차게 좌우로 돌렸다.
뿌드드득
"컥."
짤막한 비명이 아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느새 탈골된 턱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주먹패를 죽이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었던 소천악이었다. 고통이 약간 사그라진 아진은 감당 못 할 상대를 건드린 후회감이 밀려왔다. 어쩐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해 하루 쉬고픈 마음이었다. 그놈의 은자 유혹에 걸려 이 꼴이 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런 뒤죽박죽인 마음이었다.
그의 귀에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목님! 솔직히 이야기해 보시구려. 소림사에서 배우긴 배운 거요? 거짓말하면 아주 묻어버릴 거니 알아서 잘 대답해 주시오."
"그게, 저……."
차마 말을 못 하고 주춤거리는 아진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부하들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입장이었다. 기다리던 소천악이 지루한 듯 쏘아댔다.
"안 되겠군요! 일단 손 좀 보고 다시 합시다."
소천악은 가타부타 말 없이 아진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얼굴을 집중적으로 패다 점차 복부를 강타하는 손길에 아진은 비명을 질렀다. 온몸을 쇠뭉치로 맞는 격심한 고통이 엄습했다.
"잠깐만요. 이야기할게요!"
"꼭 보면 두목님 같은 놈이 있어요! 맞아야 진실이 나오는 이거 아주 나쁜 버릇입니다. 몸 버리고 마음 상하지요. 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잠시 망설이던 아진이 체념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실은 어려서 살던 우리 집이 소림사 밑에 있습니다. 거기서 다니던 스님들에게 한두 수씩 귀엽다는 이유로 몇 번 호신술을 배운 게 답니다."
"그런데 왜 소림무공이라고 사기쳤어요?"
"이 바닥이 원래 그래서 안 그러면 밑에서 치고 오는 놈에게 잡아먹힙니다."
어렵게 어렵게 실토하는 아진을 보며 소천악이 다시 물었다.
"왜 이 짓 하냐 물어봐도 되나요?"
"우리 같은 놈이 할 게 뭐 있나요? 그저 힘쓰는 거만 할 줄 아니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살지요."
더 이상 묻기도 귀찮은 소천악이 말했다.
"여러분들 이리 온 거 도박장에서 시킨 거지요?"
"네, 장삼추 총관이 넌지시 귀띔한 겁니다."
"그 총관 새끼님! 아주 문제가 많네. 앞장서시오, 다시 도박장으로 가야겠소이다."
퉁퉁 부은 건달패를 이끌고 다시 도박장에 들어선 소천악이었다. 장삼추 총관은 얼핏 뒤를 보다 안색이 급변했다. 소천악 뒤에 한참을 신나게 얻어맞은 형색을 하고 있는 아진 등 건달패를 보고는 아예 얼굴이 똥빛으로 변했다.
바로 사태를 파악한 그에게 소천악이 넌지시 이야기했다. 물론 한 손으로 팔목을 지그시 눌러대고 있었다.
"이봐요, 장삼추 총관님! 잠시 나랑 이야기 좀 할 일이 있지요? 시끄럽기 전에 조용한 데로 안내해 주시오. 뭐 팔목이 두 개니까 하나 정도 부러지고 이야기해도 저야 좋습니다만."
팔목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신음을 삼키며 얼른 대답하는 장삼추 총관이었다. 밀려오는 압박은 조금만 허튼짓을 하면 바로 실행할 움직임이었다.
"네, 이리로 오십시오!"
장삼추 총관은 얼른 소천악을 밀실로 안내했다. 자리에 편하게 앉은 소천악과 서서 눈치만 살살 보는 장삼추 총관이었다.
"잘못했지요?"
다짜고짜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잠시 변명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리는 장삼추 총관이었다.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허공을 가른 소천악의 왼발이 턱주가리를 강타했다.
"켁, 어헉!"
바로 턱이 돌아간 장삼추 총관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턱이 부서지는 극통이 밀려왔다.
"총관 새끼님! 잔머리를 굴리시기는 얼른 못 일어나요? 아주 밟아버리기 전에 일어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금방이라도 때려죽일 듯한 기세를 보이는 소천악이었다. 말로 될 상황이 아니란 걸 느낀 장삼추 총관은 얼른 일어나 포권하며 사정했다.
"공자, 제가 감히 태산을 몰라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네, 모르면 그럴 수 있지요. 대신 손해배상은 확실히 해야 하는 건 아시나요?"
"물론입죠. 제가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그런데 얼마나 필요하신지?"
"아직도 잔머리를 굴리시네! 알아서 가져오셔도 되는데……."
잠시 말을 끊는 소천악이었다.
"……?"
"만약 액수가 내 생각보다 작으면 심히 심기가 불편해질 거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면 기본으로 이 도박장은 바로 폐허가 되겠지요. 아쉽지만 총관님 목숨도 명년 오늘이 기일이 될 거라는 아픈 느낌이 뇌리를 갑자기 스칩니다."
"헉, 안 됩니다. 제발 액수를 말씀해 주십시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삼추 총관이 애걸복걸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 눈 하나 깜짝거릴 소천악이 아니었다.
"시간 없어요. 얼른 준비해 오시구려. 늦어지면 연체료가 붙어요. 피 같은 시간 낭비한 손해배상이 추가로 계산되니 알아서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 오겠습니다,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