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0화
"도대체 누가 낮과 밤을 만들어놓은 겁니까?"
처절한 소천악의 절규였다.
"별들에게 물어봐라."
역시 시큰둥한 혈사부의 말이었다.
"낮과 밤 만들어놓은 놈 보이면 아주 작살을 낼 겁니다. 뿌드득!"
섬뜩하게 이를 가는 소천악을 힐끗 쳐다보며 혈사부가 툭 하니 말을 던졌다.
"마음대로 해라. 난 아니다."
한 달이 지나 어느 정도 익숙해질 즈음 혈사부가 서 있는 소천악에게 부채질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으아, 이건 정말 너무하는 겁니다."
아예 체념조로 한탄하는 소천악에게 혈사부는 여전히 무심했다.
"너무는 무슨!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사제는 그렇게 오순도순 정(?)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가자 어느새 소천악은 몰라보리만큼 변해 있었다. 이미 어떠한 추위도 전혀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첫날 두 시진마다 운기행공하던 시절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하루 종일 가만히 서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혈사부, 이거 할 만한데요. 으하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딱 네놈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좌우간 이제 수련이 끝난 듯하구나. 오늘로 그만 하자."
"우와, 왜요? 더 하지요."
아예 시비조로 버티는 소천악을 보며 혈사부는 싱긋 웃었다.
"마음껏 떠들어라. 이제 삼 단계가 시작인데 처음부터 그따위면 별로 신상에 안 좋을 거다."
"허걱! 아닙니다. 혈사부, 제자가 어찌 감히……."
바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할 신세가 된 소천악이었다.
다음 날 혈사부가 부르자 소천악은 죽을상을 지으며 다가섰다.
"천악아, 이제 삼 단계 수련을 들어가야지."
"네, 혈사부. 해야지요.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번번이 말하지만 네놈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할 수련 빼먹는 경우는 절대 없다. 다만 성의를 보이면 가끔 참고는 하마. 따라오너라."
따라간 곳엔 커다란 화덕이 만들어져 있었다. 굵은 통나무가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그 위에 집채만 한 돌이 올려져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때렸다.
"이게 뭡니까? 설마 저보고 저 돌 위에 올라가란 소리는 아니겠지요?"
"왜 아니겠냐? 어서 올라가라. 독기만이 살길이다. 무공이란 그릇이 커야 담기는 것도 많은 법이니라. 어서 손을 움직여라."
소천악은 암담했다. 돌은 이미 달구어져 하얀 김을 줄줄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 이건 차마 못 하겠습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처분을 바란다는 듯 버티는 소천악이었다.
"못 하겠다면 내가 혈도를 찍어 던져놓는다. 그럼 아마 얼마 안 가 잘 익은 돼지구이가 될 거다."
바로 혈도를 점할 듯이 다가서는 혈사부를 보며 소천악은 악을 썼다.
"간다고요. 제길! 갑니다, 가!"
경공으로 슬쩍 올라선 바위 위는 의외로 아직은 온기 정도만 느낄 뿐 뜨겁지는 않았다. 소천악은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이 봄날이란 걸. 조금 후면 서서히 달궈진 바위는 견디기 힘든 열기를 선사할 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서히 엉덩이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혈사부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슬쩍 내려가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꾹 참았다.
잠시 후 부대 자루에 한가득 무언가를 들고 오는 혈사부가 보였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유심히 쳐다보던 소천악의 눈은 공포로 물들어갔다. 혈사부가 들고 오는 건 까만 숯이었다.
"혈사부! 설마 그 숯을 넣으시려는 건 아니죠?"
"왜 아니겠냐? 아무래도 숯이 화력이 좋거든."
"으아! 정말 혈사부는 악마입니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네놈이 역시 돌머리인 게야."
혈사부는 아무 말 없이 가져온 숯을 모조리 활활 불타는 통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에 느껴지는 열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엉덩이를 숯불구이로 만들 것 같은 열기가 점점 기승을 부렸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땀은 바위에 닿자마자 치직 소리를 내며 수증기로 날아갔다. 흘러내리는 땀이 많아지자 어느새 소천악의 몸 주위는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났다.
이미 엉덩이는 바위에 달궈져 감각 자체가 사라져 갔다. 화상으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됐다. 이제 잠시 혈천신공을 운기하여라."
부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혈사부의 목소리였다. 운기를 시작하자 바로 열기가 몸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소천악은 새삼 혈천신공의 묘용에 대해 감탄했다.
"혈사부! 정말 우리 혈검문의 신공은 대단해요."
"커험!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이 사부가 강호를 종횡하면서 혈천신공보다 나은 무공을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소림사의 대반야신공보다 나은 겁니까?"
"어디 감히 땡중파의 잡공이랑 비교를 하느냐? 에이, 괘씸한 놈."
버럭 소리치는 혈사부를 보는 소천악의 가슴이 철렁했다.
"앗! 아닙니다. 제자가 너무 신공에 감탄해 그만 망발을 했습니다."
후환이 두려운 소천악이 얼른 용서를 빌었다. 하나 용서할 리가 없는 혈사부였다.
"좋아, 이번 한 번은 특별히 용서해 주지. 그런 의미에서 운기 풀어라."
"네? 운기를 풀라니요?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
"이놈, 그럼 망발한 죄로 하루 종일 운기금지를 시켜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격노한 혈사부의 모습에 얼른 운기를 푼 소천악이었다. 잠시 후 다시 이글거리는 화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소천악의 모습은 참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이번에는 불과의 전쟁을 벌이는 소천악이었다. 밤에 운기하는 혈천신공은 엉덩이와 몸에 번진 화상을 말끔히 고쳐주었다. 고통과 치료 운기를 거듭하는 동안 무수한 낮과 밤이 지나갔다.
마침내 넉 달이 지나자 이제는 상황이 백팔십도로 변했다. 아무리 혈사부가 숯을 퍼부어도 끄떡없었다. 오히려 바위 위에 큰대자로 누워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소천악이었다. 혈사부는 만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이제 내려와라. 이 수련도 끝이다."
"야호, 우하하하! 역시 전 놀라운 자질을 가진 놈입니다. 안 그래요, 혈사부님?"
밉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훌쩍 바위에서 내려온 소천악이었다. 내려선 그의 신체는 이미 강철보다 단단한 근육투성이였다. 그 몸을 따스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혈사부였다.
"그동안 고생했다. 내 너의 노력에 탄복하여 특별히 가장 고통스럽고 차라리 죽고 싶은 수련 과정인 사 단계 수련은 잠시 보류하겠다. 이제부터 혈검구식을 익힐 준비를 하여라."
어떤 과정인지는 몰라도 두려웠던 소천악이 얼굴 가득 화색을 띠었다.
"혈사부, 고맙습니다. 역시 혈사부님은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녀석, 아부신공이 하늘에 닿았구나. 단 혈검구식 수련을 게을리할 경우 가차 없이 사 단계 수련을 시작할 생각이니 명심하고 명심하여라."
"혈사부, 그런데 꼭 이거 배워야 합니까? 무림공적 무공인데."
"그럼 넌 내 대에서 딱 이대 만에 혈검문이 절문되는 꼴을 봐야겠냐?"
"아니, 그냥 구결은 외우고 있다가 제가 꼭 제자를 만들어 전수하겠습니다."
한심하다는 듯 소천악의 말을 듣던 혈사부가 톡 쏘아붙였다.
"아주 지랄을 해요. 야, 사부가 되어서 시범은 보여야 할 것이 아니냐?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로 가르칠 거야?"
"음, 그건 그렇군요. 아, 팔자 더럽네요."
"인마, 지나온 과정을 생각해 봐라. 다 너 위해서 한 거지, 날 위해서 한 것이냐?"
혈사부의 말에 끄덕이는 소천악이었다. 비록 하루가 멀다 하고 토닥거리면서 얻어터졌지만 소천악은 놀라운 신체변화를 체험했다. 극한으로 몰아넣은 수련은 오로지 살기 위해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켰다.
그 잠재력을 날마다 혈천신공으로 흡수하였다. 이미 육신은 과거의 육신이 아니었다 마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을 갈아입은 기분이었다. 용솟음치는 거센 단전의 진기를 하루가 다르게 느꼈다. 대견한 듯이 혈사부가 입을 열었다.
"이건 정파 놈들이 쥐뿔도 모르고 떠드는 탈태환골이 아니니라. 우리 혈검문 고유의 수련법이 빚어낸 걸작이니라. 혈천신공은 내공을 쌓는 것보다 잠재력을 촉발시키는데 주력한 신공이니라. 내공이란 제아무리 많다 해도 쓰면 쓸수록 지치는 법이니라. 잠재력은 그 공능이 무한대인 거야.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이지. 이제 그 길에 네놈도 접어들었다. 계속 수련에 매진하여 이 사부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도록 해라."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런 무공이 있을 줄은……."
감탄하는 소천악을 살짝 면박 주는 혈사부였다.
"자식, 남들이 들으면 무공에 해박한 놈인 줄 알겠다. 이 신공은 조사이자 나의 사부님이 무려 백여 년에 이르는 참오 끝에 창안한 것이니라.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비법인 게지."
혈사부의 말을 들으며 소천악은 그 모질고 힘든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미리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이런 성취를 얻지도 못했으리라. 고마운 마음에 혈사부를 쳐다보았다. 혈사부는 그런 눈치를 챘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 혈검구식을 익혀야 한다. 먼저 사부가 일초부터 사초까지 초식 시연을 하마."
"아니, 왜 오초는?"
소천악의 의아한 얼굴에 잠시 겸연쩍은 미소를 지은 혈사부가 대답했다.
"음, 부끄럽다만 이 사부는 겨우 사초까지밖에 익히지 못했다. 네놈이 열심히 수련해서 꼭 구초까지 십이성 대성하여라."
"네, 걱정 마십시오. 기필코 대성해 혈사부님 앞에서 펼쳐 보이겠습니다."
자신만만한 소천악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혈사부였다.
"녀석, 말은 항상 청산유수야. 일단 보아라. 내가 느리게 초식을 시연하마."
말과 함께 검을 든 혈사부의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 되었다. 보기만 해도 태산이 누르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잘 보아라. 혈우(血雨)."
피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검에서 피어난 혈우는 삽시간에 사방 모든 방위로 퍼져나가며 반경 이 장 내를 초토화시켰다.
"혈섬(血閃)."
검끝에서 섬전 같은 혈광이 퍼져나갔다. 날카로운 예기를 뿌리는 혈광은 마주치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냈다.
"혈전(血電)."
검에서 번개가 세차게 뿜어져 나갔다. 사 장 밖의 소나무에 격중된 검초는 바로 나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혈강(血强)."
검에서 하얀 막대 같은 강기가 서리서리 뿜어져 나오며 오 장 밖의 바위를 찰나에 모래로 만들었다.
검강을 본 소천악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섬뜩한 기세가 멀리 서 있는 소천악의 팔이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초식 시연을 마친 혈사부는 조금 전의 태산 같은 기도를 감추고 다시 평소 얼굴로 돌아왔다. 소천악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수련해 온 무공도 만만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검법이었다. 감탄을 넘어 경악하는 소천악을 본 혈사부는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보아라. 이게 우리 혈검문의 비장의 검법이니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천악이 얼른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