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7화
"자식, 훌륭하게 컸어. 나 혈검신마의 제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어. 으하하하하!"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며 앙천광소를 터트리는 그의 안색은 금방 떠오르는 햇살이었다.
제1-3장 그래도 배워야 한다 죽기 싫으면
이튿날 정신을 차린 소천악은 뒤돌아 앉아 있는 혈사부를 보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물론 속으로만 갈았다. 아직 죽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깨어났냐?"
"네. 혈사부님 은혜로 무사히 깨어났지요."
"어제는 좋은 교훈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함부로 까불면 묵사발 나는 거야. 명심해라!"
"……."
"이제 너도 나이가 열 살이니라. 이제부터 이 혈사부의 광세검공을 전수받아야 하느니라."
"그걸 왜 전수받아요? 그거 쓰면 바로 무림에서 공적으로 몰린다면서요?"
소천악은 볼 멘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거부했다.
"야, 이놈아! 그럼 안 배우면 어쩌겠다는 거야? 네놈이 감히 우리 혈검문을 절문시킬 요량이냐? 오냐! 오늘은 아예 사지를 몽땅 분질러주마."
살기등등한 혈사부의 표정을 본 소천악은 겁이 덜컥 났다. 저 혈사부는 한다면 하는 성격임을 모를 리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말하는 소천악의 안색은 참담했다.
"알았어요. 배울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결코 열심히 배울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저 대충 시키는 대로 하다가 말 속셈이었다.
하지만 혈검신마가 누구인가!
강호에서 굴러먹은 지 어언 육십 년이 넘은 전대의 거마였다. 그는 소천악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봤다. 묘한 실소를 머금으며 모르는 척 말했다.
"기특한 놈! 역시 넌 자질이 훌륭해. 그래야지. 힘이 모자라면 굽혀야 하는 거야. 버티다 뒈지면 너만 손해이니라."
"네, 항상 명심해요. 그 말은!"
언중유골이었다. 말에 가시를 담아 대답하는 소천악이었다. 혈사부가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말했다.
"자, 그럼 수련하기 전에 한마디 하마. 매일 목표가 있느니라. 물론 네놈이 열심히 하면 금방 이룰 수 있을 만큼만 정해주마. 이런 눈물겨운 호의를 네놈이 감히 씹는다면 매일 저녁 실력 점검 시간이 지옥이 될 것이니라."
섬뜩한 혈사부의 말에 소천악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에게는 아주 불행한 일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이 사부의 비전은 혈검구식이니라. 왕년에 이걸 썼다 하면 그냥 모든 놈들이 오줌을 질질 쌌느니라. 네놈이 영 싹수는 없으나 다시 제자를 구하기도 성가시고 해서 그냥 수제자로 하기로 했으니 잘해야 하느니라."
기회를 잡은 소천악이 재빨리 대답했다.
"어지간하면 다시 구하시지요? 정 뭐하시면 제가 산을 내려가 착한 놈으로 하나 잡아 올까요?"
"이런 싹수없는 놈!"
혈사부의 손이 번쩍하며 소천악의 머리를 강타했다.
"으, 머리야! 왜 때려요?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저보다야 착하고 순한 놈이 더 좋을 거 아니에요?"
"야, 이놈아! 우리 사문은 착한 놈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냐?"
"제길! 그럼 전 좋은 놈이에요. 그러니 전 자격이 없어요."
"좋은 놈? 흐흐흐. 살다 별 거지 깽깽이 같은 소리도 다 듣네. 네놈이 좋은 놈이면 세상 벌써 극락세상이 됐다."
"웃기지 마요. 전 좋은 놈이에요."
"새꺄! 입은 찌그러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 살다 살다 네놈 같은 놈은 못 봤다. 네 녀석이 산 밑에서 부린 행패는 관두자. 네놈이 아홉 살 때 저지른 만행은 기억나냐?"
"안 나요. 절대로!"
"당연히 안 나겠지. 네놈은 불리하면 모른다가 특기잖아. 내가 말해 주마. 네가 뱀하고 개구리 잡아다가 둘 다 묶어놓고 개구리는 공포에 떨게 하고 뱀은 입을 꿰매 삼키지도 못하게 한 거 기억나냐?"
"아뇨."
당당하게 부인하는 소천악이었다. 기억이야 생생하지만 오리발이었다.
"좋다. 그럼 이건 어떠냐? 다친 사슴 잡아다가 첫날은 치료한다고 난리치다 다음 날 바로 산 채로 구워 먹은 거 기억나냐? 어떻게 살아 있는 사슴을 장작불 위에 올려놓냐?"
혈사부는 말하면서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연히 안 나죠."
철저한 오리발로 버티는 소천악이었다. 한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혈사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좋다. 넌 혈검문의 장문 제자니라. 오늘부터 혈검구식을 배워야 한다. 목표량 미달 시 상상에 맡긴다."
근엄한 혈사부의 말에 구시렁거리는 소천악이었다.
"제길! 제자라곤 꼴랑 나 하나뿐인데 장문제자는 무슨 얼어 죽을!"
"네 이놈!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버럭 소리치는 혈사부를 보며 뜨끔한 소천악이었다. 재빨리 다시 말 돌리기 신공의 극치를 보여주는 순발력을 과시했다.
"혈사부! 근데 초대 조사님은 왜 이리 작명 감각이 없습니까? 혈검구식? 혈천신공? 이거 누가 들어도 악독한 사파란 인식이 팍팍 오잖아요. 좋은 이름 많은데요. 경천구식, 천무신공. 캬! 듣기만 해도 느낌이 팍 오잖아요?"
"이놈이 감히 조사를 모독하다니!"
말과 동시에 신형이 흐릿해진 혈사부의 발이 소천악의 옆구리를 세차게 두들겨 팼다. 쾌속한 각법은 촌각 안에 삼십여 대를 강타했다. 연달아 강타당해 방바닥을 굴러다니던 소천악이 악을 썼다.
"으악! 제가 틀린 말 했나요?"
"조용히 못 해! 그럼 네놈은 이 사부의 위명이 쟁쟁한 명호인 혈검신마도 마음에 안 드냐?"
"……."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긍정은 곧 반죽음이었다. 그제야 만족한 혈사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까불지 말고 어서 무공전수를 받을 준비를 해라."
혈사부의 강요에 결국 소천악은 비전무공을 전수받을 수밖에 없었다. 혈사부의 교육법은 독특했다.
일단 밀어붙이고 보자!
이게 유일한 교육 신조였다. 혈사부는 바로 혈검구식의 구결을 읽어 내렸다.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읽는 혈사부의 눈길에 왠지 모를 소름이 끼친 소천악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뒷목으로 스며들었다.
딱 한 번 읽었다!
소천악은 건성으로 구결을 말하는 혈사부의 얼굴만 멀뚱거리며 보다가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구결암송이 끝나자 혈사부의 나긋나긋한 말이 귀에 들려왔다.
"자, 다 외웠지? 이제 네놈이 구결을 읽어봐라."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겨우 한 번 읽어주고 무슨!"
퍽!
"쿠엑!"
번개같이 날아온 혈사부의 각법에 배를 정통으로 맞은 소천악이었다. 하늘이 아득해지는 극통에 비명마저 나오지 않았다.
"새끼가! 이게 오늘 과제였다. 외울 때까지 맞는 거야."
겨우 고통이 가라앉자 소천악이 악을 쓰며 대들었다.
"내가 초천재인 줄 아세요? 그걸 어떻게 한 번 듣고 외워요."
"가소로운 녀석! 난 사부님이 읽어줄 때 반만 듣고 나머지 구결을 알아냈다. 왜 넌 다 듣고도 못하냐? 이 멍청한 놈아."
혈사부의 말에 웃기지 말라는 표정이 역력한 채 소천악이 빈정거렸다.
"그걸 누가 믿어요? 말도 안 돼요."
"내가 믿지, 이놈아. 아, 슬프다. 제자를 패야 하는 이 사부는 가슴이 아프다."
말만 가슴 아플 뿐 두들겨 패는 손길은 흥에 겨워 리듬을 타고 두들겨 팼다. 섬전 같은 손속에 속절없이 온몸을 맞긴 소천악이 악을 썼다.
"으악! 악질 사부가 제자 죽인다!"
"응. 걱정 마라 죽이기야 하겠냐? 그저 반만 죽여줄게. 아, 이 손이 왜 이리 매운 거야. 강철 같은 내 손이 이럴 땐 원망스럽구나. 켈켈!"
혈사부의 손은 잔영이 안 보일 정도로 가공할 속도로 소천악의 전신을 빈틈없이 후려 팼다. 악을 쓰며 반항하던 소천악은 마침내 매에 지쳐 장렬하게 기절했다.
"응? 이놈이 기절을 했네. 깨워서 마저 팰까? 아니면 오늘은 이 정도에서 멈출까? 음… 바로 깨어나면 멈추고 아니면 밤이 새도록 패야 하는 걸로 하지."
음산한 혈사부의 말이 흘러나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축 늘어져 정신을 잃었던 소천악이 벌떡 일어났다.
"저 깼어요. 오늘은 이만 끝이네요. 으하하하! 커헉!"
통쾌하게 웃던 소천악의 머리에 여지없이 혈사부의 주먹이 작렬했고 비명이 화음처럼 울려 퍼졌다.
"끝 좋아한다. 네놈이 아무리 잔머리 굴려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니라."
음흉하게 웃은 혈사부는 품에서 낡은 책자 하나를 툭 던져줬다.
"옜다. 받아라. 이게 혈검구식 구결이다. 오늘이 가기 전에 다 외워라. 못 외우면 바로 고통 속에서 오늘 하루가 저물 것이야."
얼떨결에 책을 받아 든 소천악은 울고 싶었다.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었다. 손 한 뼘을 훌쩍 넘는 섬뜩한 내용에 질려갔다.
"혈사부님,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야 되지. 시간 없다. 하루는 짧으니라."
휘파람을 불며 혈사부는 방으로 들어갔다. 확 도망치고픈 소천악이었으나 그건 자살행위였다.
저 악질 사부는 자기에게 강제로 사문의 비전보약이라고 속이고 묘한 약을 먹이고 한 달에 한 번 해약을 주었다.
처음엔 설마 했다. 명색이 사부인데 하는 마음에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온갖 아부 끝에 알아낸 해진법을 가지고 탈출한 그 결과는 참혹했다. 무슨 놈의 약이 하루 종일 설사만 주야장천 하게 만들었다.
오기로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의원을 찾아갔다. 반협박으로 진맥한 결과는 어이가 없었다. 의원 생활 삼십 년 만에 처음 보는 괴이한 현상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의원이었다.
한 달 후 초죽음이 되어 겨우 산을 기어올라야 했다. 올라오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혈사부,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제자에게 독약을!"
"자식아, 이건 우리 혈검문 전통이야. 그리고 독약이라니? 보약이니라. 몸에 낀 탁기를 쭉 뽑아내는 명약이니라. 나도 사부에게 그 약을 받아먹었다."
"이건 사제지간이 아닙니다. 끄응!"
연신 푸드득거리는 엉덩이에 힘을 주며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우리 혈검문 전통이 워낙 특이하느니라. 하긴 제자를 들일 때 자질보다 인간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이런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련하시겠어요. 제길!"
"냄새난다. 문 닫고 눠라. 클클!"
그랬다. 혈검문의 제자 선택 기준은 간단했다. 독종! 딱 그거 하나였다. 인간성 이런 건 아예 관심도 없었다. 자질? 그딴 건 필요 없었다. 악바리 심성을 가장 먼저 보다 보니 제대로 된 제자를 구할 리가 만무했다. 그 제자가 제대로 된 성격일 리가 없었다. 덕분에 항상 제자는 야반도주 길을 택했다.
궁여지책으로 이런 방법을 써왔던 혈검문의 문규이자 전통(?)이었다. 자질보다는 독기 그리고 아주 훌륭한(?) 인간성이 우선인 문파였다.
게다가 일인전승을 고집했다. 혈검신마도 그 전통이 백번 맞다는 생각이었다. 누가 이 엄청난 문파에 두 명이나 제자를 둘 수 있겠는가! 그 두 명의 사부 짓을 하려면 머리 터져서 제명에 못 살 게 분명했다.
울상을 짓고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천악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멍하니 쳐다보면 글이 머리통으로 들어오는 재주가 있나 보구나. 잘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