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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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3화
"닥쳐라 혈검신마! 네놈이 저지른 죄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다. 여기가 어디라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아주 젊은 놈에 이어 늙은 놈도 지랄을 하는구나. 그럼 네놈이라면 정파란 허울 좋은 껍데기를 쓴 놈이 비겁하게 함정을 만드는 건 되냐? 그렇게 치졸한 짓을 해놓고 정의 타령이나 하는 네 얼굴이 부끄럽지 않냐?"
"닥쳐라. 어디서 되지도 않는 거짓말로 현혹하려 하느냐!"
현천자는 속으론 찔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소리쳤다. 어이가 없는 혈검신마의 스산한 음성이 울려나왔다.
"좋아, 오늘 아주 박살을 내주마. 네놈들이 힘으로 정의를 만든다면 나도 힘으로 보여주마. 강호란 힘이 곧 정의란 걸 확실히 느끼게 해주마. 내가 무서워서 이리 도망 다니는 줄 아느냐? 네놈들이 감히 나 혈검신마 알기를 뒤뜰의 잡초로 여기는 모양인데. 오냐! 보여주마. 나 혈검신마의 진짜 면모를!"
격노한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시게 빛나는 혈기에 어느새 회색 무복이 붉게 물들어갔다. 현천자의 안색이 급변했다.
"모두 조심해라. 대마두의 절기 혈검구식이다."
현천자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앞으로 다가섰다. 뒤에서 바라보던 각 정파의 장로도 급급히 검을 손에 들고 나섰다.
이미 크게 살기가 동한 혈검신마의 신위는 수많은 고수들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던져주었다. 거기에는 정파 장로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장로들도 잔뜩 긴장한 채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혈검신마의 손에 들린 검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늦었어. 이제부터 피의 축제가 열리는 거야. 감히 나 혈검신마를 겁박하는 놈들은 오늘 따끔한 교훈을 얻을 것이야."
이미 크게 살기가 동한 그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당파 제자들은 오행검진(五行劍陣)을 펼쳐 양의검법(兩儀劍法)을 시전하라."
현천자가 이미 오행검진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외쳤다. 무당 제자들은 신속히 오행의 각 방위를 점하고 양의검법 기수식을 시전했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검을 세운 무당 제자들의 얼굴은 비장감으로 물들었다.
"화산파 제자들은 육합검법(六合劍法)을 전개하라."
뒤를 이어 화산파 장로인 육선 진인의 외침도 동시에 들렸다.
"존명! 모두 육합검진을 개진하라!"
화산파의 독문검법인 육합을 이용한 검진이 전개되자 혈검신마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 외에 명문대파의 고수들이 일제히 포위망을 만들었다. 천라지망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포위합격이었다. 졸지에 천지를 짓누르는 압박을 받는 혈검신마였다. 하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신형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네놈들에게 당할 내가 아니다. 받아랏! 혈검일식 혈우천하(血雨天下). 핏빛의 비는 세상을 적시운다."
혈검신마의 검에서 핏빛 비가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섬전 같은 쾌검식이었다. 검의 발도와 동시에 검기가 사방으로 쭉 퍼져나갔다. 검은 빠른 속도로 상대가 손쓸 새도 없이 상대의 급소를 찔러갔다. 먼저 무당의 오행검진과 충돌한 핏빛 비는 거센 검풍을 일으키며 검진을 파고들었다. 무당 제자들이 이를 악물고 펼친 양의검법 사이로 검날이 번뜩이며 피보라가 몰아쳤다.
"으악, 막아라! 마두가 좌측을 노린다."
두 명의 무당 제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며 소리쳤다.
"목(木)의 자리가 빈다. 어서 채워라!"
오행검진이 순간 흔들렸으나 바로 들리는 현천자의 지시에 빈 방위를 채운 고수들에 의해 다시 검진이 안정을 되찾았다. 무당 제자들은 눈에 독기를 품고 양의검법으로 합공했다. 동료의 죽음에 이미 눈이 뒤집힌 그들이었다.
"막긴 뭘 막아? 감히 토끼 새끼들이 떼로 몰려와 핍박한다고 겁먹을 호랑이 봤느냐!"
살소를 머금으며 무당 제자들을 핍박했다. 내공이 담긴 검끼리의 격돌은 연속되는 폭음을 내며 정신없이 돌아갔다. 검진의 위력으로 내공의 불리를 극복하며 버텨내는 무당 제자들이었다. 섬전 같은 쾌검은 시도 때도 없이 무당 제자의 요혈을 위협했다. 막 한 제자가 찔리려는 순간 검진의 다른 제자의 검이 막아갔다.
일각이 흐를 동안 호각의 팽팽한 접전이었다. 무당파 고수들은 벌써 여섯 명이 땅에 쓰러졌다. 하지만 빈자리를 금방 메우고 인해전술로 다시 달려들었다. 짜증이 난 그가 오성으로 펼치던 검법을 칠성으로 올렸다.
"이놈들이 봐주니까 아주 겁을 잃었군. 오냐! 이제부터 지옥은 열렸다."
내공을 높여 펼쳐낸 혈검일식 혈우였다. 핏빛 비는 아까와는 달리 가공할 속도로 오행검진을 파고들었다.
"조심해라! 노마가 발악한다."
현천자가 놀라 외치며 전위로 변환해 양의검법을 극성으로 시전했다. 시퍼런 검기가 혈검신마를 노리고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버릇없는 놈! 발악이라니? 다음부터는 이리 말하거라. '신위를 발휘하시는구나.'"
혈검신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오행검진의 맨 앞에 있는 무당 제자를 덮쳤다.
콰콰쾅!
폭음이 들리며 혈우천하가 폭풍우로 덮친 오행검진은 순간 와해됐다.
"커헉! 마두의 무공이 너무…….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피의 복수를……!"
무당파 고수 네 명이 원독에 찬 시선을 허공에 흩뿌리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하늘이 다 생각이 있어 이러는 거다. 겉만 하얀 새끼들아!"
혈검신마는 흔들린 검진을 노리고 연속적으로 절초를 시전했다. 검날에 서린 혈기는 이미 진을 파훼당한 무당고수들의 목숨을 여지없이 하나씩 거둬갔다.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오행검진이 무너지는 망신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현천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때였다.
"무당은 뒤로 물러나시오. 화산이 선봉에 섭니다."
화산파 장로가 외치자 육합검진으로 진세를 만든 화산파 고수 오십여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미 살계를 연 혈검신마는 밀려오는 화산파 고수에게 혈검일식을 연달아 시전했다.
"날 건드리는 자, 여태껏 조용히 보내본 적이 없다."
차갑게 외치며 육합검진을 향해 검을 날렸다. 가공할 쾌검이 화산파 고수를 덮쳤다. 기세와 기세, 검과 검이 사납게 충돌했다. 맨 앞에 섰던 화산파 고수들이 짧은 시간 차로 쓰러져 가며 외쳤다.
"컥! 피해라, 저주의 검법이다."
"저주? 자식아,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싹수없는 놈들. 바로 해탈해 주는 검법이다."
혈검신마는 퉁명스럽게 비아냥거리며 검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살검은 움직일 때마다 한 사람의 피를 검날에 흠뻑 머금어갔다. 화산의 고수들은 죽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으로 쓰러져 갔다. 공격할 기회를 노리며 뒤에서 지켜보던 정파 고수들이 외쳤다.
"모두 합공하라! 마두는 혼자다. 기필코 죽여라. 동도의 원한을 갚자."
"와! 죽여라!"
뒤에서 포위망을 형성했던 명문대파 고수들이 일제히 혈검신마의 목을 노리고 검과 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오너라! 이 치사한 정파 새끼들."
서늘한 안광을 빛내며 혈검신마는 검초를 변화시켰다. 혈검일식에 변을 넣어 다변하자 검은 현란하게 변화하며 사방에 혈광이 충천했다. 베고 또 베었다. 이미 혈검신마가 지나온 길엔 수십여 명이 핏물에 잠겨 죽어 있었다.
독이 잔뜩 오른 정파무림인들은 차륜전(車輪戰)도 마다 않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혈검신마의 무공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일대일로는 상대할 수 없었다.
상대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비록 많은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필승을 하려는 약간은 치사한 전법이었다. 비겁하다고 하여 정파에서도 어지간하면 기피하는 방법이 버젓이 자행되는 장면이었다. 강호도의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으, 지겨운 놈들!"
중얼거리던 혈검신마는 죽이면서도 지겨움을 느꼈다. 죽여도 죽여도 달려드는 정파고수들에게 골치가 아파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단지 정의라는 미명하에 덧없이 소중한 목숨을 불길에 몸을 날리는 불나방처럼 던지는 그들이 한심스러웠다. 게다가 젊은 그들의 얼굴에 줄줄 흐르는 영웅 심리를 읽자 맥이 풀려갔다.
사실 죽이는 것도 어느 정도지 수백 명을 깡그리 죽이려니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생각 끝에 결심을 굳힌 그가 행동에 들어갔다.
"에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럽다. 더러워."
구시렁거리며 혈검신마는 포위망 한 군데에 드디어 혈검이식 혈섬을 전개했다. 붉은 핏줄기 같은 검세가 뻗어나갔다. 일식 혈우와는 달리 사방을 압도하는 거대한 혈선이 길게 뻗었다.
"모두 피해랏! 저주의 혈검이식이다."
놀라 외치는 현천자의 장소성에 근처에 있던 무당 제자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피했다. 다행히 검초에 살기가 없어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이 허둥대는 동안 잠시 포위망에 허점이 보였다. 그 틈을 타 혈검신마가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야, 이놈들아! 내 더러워서 강호를 떠나고 만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에잇, 튀!"
허공에 뜬 상태로 거칠게 침을 뱉고 외친 혈검신마였다.
"잡아라. 저놈이 도망간다. 제자도 죽여야 한다. 살려두면 정파의 크나큰 우환거리가 된다. 죽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야 한다!"
정파무림인들은 고함을 지르며 혈검신마가 몸을 날린 쪽으로 분분히 신형을 날렸다. 혈검신마는 싸늘하게 비웃음을 날리며 신형을 더욱 폭사시켰다. 직선으로 쭉 뻗어 가는 신법은 한마디로 가공지세였다. 한 줄기 빗살로 화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놓치면 안 된다! 이번에 놓치면 정파무림은 크나큰 우환을 달고 살아야 한다. 무조건 죽여라!"
핏발 선 현천자의 고함이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정파고수들은 죽을힘을 다해 신법을 전개해 혈검신마를 쫓았다. 하지만 그의 신법은 현천자 등 정파고수들이 잡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진 모습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현천자였다.
"뿌드득, 혈검신마 네 이놈! 네놈이 숨을 곳은 천하가 넓다 해도 아무 데도 없다. 그리고 제자란 놈! 네놈 등허리에 크게 박힌 점을 내 분명히 보았다."
독기 서린 그의 말투만이 산에 메아리쳤다.
가까스로 추격을 뿌리친 혈검신마는 산을 타고 빠르게 남하했다.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서 움직이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광동성(廣東省)에서 한참 구석에 있는 뢰주(雷州)에 있는 산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두 노소는 며칠을 걸어 나란히 산속 깊이 들어갔다. 깊은 산을 한참 들어가자 만장절벽이 턱 길을 막았다. 깎아지른 절벽은 앞을 모두 막고 서 있었다. 절벽 쪽으로 장휘경이 거침없이 다가가자 답답해진 소천악이 물었다.
"앞에 절벽인데요?"
"알아, 자식아! 절벽이라고 다 절벽이 아닌 걸 오늘 확실히 보여주마."
의기양양한 장휘경이 막 발을 넣으려다 멈췄다.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기억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는 그를 보다 못해 옆에서 한마디 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다 말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본 장휘경이었다. 대뜸 인상을 구기며 차마 입에 담긴 힘든 욕을 마구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