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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0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4화

아직도 어깨가 그대로 드러난 상태다. 어깨뿐만이 아니다. 봉긋한 가슴마저 반쯤 드러나 있다.

말 그대로 상처만 싸맨 것이다.

사마경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킥킥거리며 웃었다.

“크크크, 또 봤어.”

‘어휴, 정말…….’

연송하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급히 사마경의 옷을 입혀주었다.

“다 됐습니다, 소성주.”

“수고했어. 그만 가서 쉬어.”

“예, 소성주.”

장천운은 사마경에게 옷을 입혀주고 물러서는 연송하를 바라보았다.

연송하가 그를 살짝 째려보며 전음을 보냈다.

[정말 다 봤어요?]

[다 보긴 뭘 다 봐? 물속에 있었다니까. 그리고 속옷도 입고 있었어.]

[그래도 물에 젖어서 다 보였을 거 아니에요?]

[다는 안 보였어.]

[흥! 보긴 봤단 말이네요.]

연송하가 눈을 흘기고는 방을 나갔다.

장천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사마경을 쳐다보았다.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습니까?”

“내가 뭘?”

“송하가 삐져서 어깨가 축 처졌잖습니까.”

“뭘 모르네. 송하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

“강하긴 뭐가 강해요.”

“하여간 천운은 여자를 너무 몰라.”

사마경이 연송하 편을 드는 장천운을 보며 입술을 삐죽이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과 달리 그녀의 표정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정말 팔색조 같은 변화였다.

“천운, 암습자들이 본 성의 적이라면 왜 나를 죽이려고 했을 것 같아? 내가 죽으면 오히려 구천성의 무력이 백부를 중심으로 뭉칠 텐데.”

“내부와 결탁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르죠.”

“그럼 내부에 그들과 결탁한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네?”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대장로 쪽일까?”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권력을 나눠 갖기에는 욕심이 너무 많은 자들입니다.”

“그럼 누굴까?”

“그게 누구든,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다면 곧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할 겁니다.”

“빨리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어. 그래야 오늘 당한 빚을 갚아주지.”

장천운은 슬쩍 사마경을 쳐다보았다.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맑았지만 아름다운 봉목에는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44장: 죽은 자가 남긴 것

 

 

비령각 구석의 작은 건물 안.

좁은 방안에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은 여섯 개의 커다란 촛불이 타올랐다.

대낮처럼 밝아진 방안의 나무탁자 위에는 두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팔이 잘린 시신과 심장이 뚫리고 목이 반쯤 잘린 시신. 호법전에서 가져온 암습자의 시신이었다.

세 사람이 그 시신을 살펴보는 중이었는데, 우문각과 정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쉰 살 정도로 보이는 중년 무사였다.

“어떤 자들이라고 생각하시오?”

우문각이 시신을 보며 물었다.

시신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을 세심하게 살피던 자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크긴 했지만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서 마른 인상이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눈은 칼날처럼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가 바로 첩밀각의 각주로 정보를 총괄하는 홍사등이었다.

“얼굴만으로는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소.”

첩밀각에는 강호 무사 수천 명의 얼굴을 그린 초상이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무사들의 초상도 천 장이 넘는다.

절정고수라면 칠팔 할의 얼굴이 구천성 첩밀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홍사등은 그 얼굴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두 암습자는 얼굴에 특징이 거의 없어서 그와 비슷한 얼굴이 최소한 백 명은 될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자의 손에 철엽수(鐵葉手)라는 무공을 익힐 때의 특징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마도의 고수는 아닌 것 같소.”

홍사등이 말하며 심장이 뚫린 시신의 손날을 가리켰다.

나무껍질처럼 단단한 손날에 빗살무늬가 촘촘히 나있었다.

“철엽수?”

우문각이 눈살을 찌푸렸다.

철엽수는 천수산장(千秀山莊)의 무공이다. 그리고 천수산장은 소림의 속가에서 출발한 문파로, 구문팔가를 제외한 정도문파의 대문파 중 하나다.

“그럼 정파에서 암살자를 파견했다는 건가? 이해할 수가 없구려.”

정파는 구천성에서 내분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은가. 굳이 소성주를 죽일 이유가 없다.

“누군가가 정파를 꼬드겼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총사?”

정유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문각은 그보다 더 깊은 뭔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그들이?’

“좀 더 자세히 조사하려면 이삼일 걸릴 것 같소. 어떻게 하실 거요, 총사?”

홍사등은 우문각의 명을 기다렸다.

첩밀각이 비록 비령각과 함께 이각으로 불리긴 하나, 실질적으로는 사밀령과 함께 총사 우문각의 명령에 따랐다.

우문각이 총사다 보니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 내면에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우문각은 떠오른 생각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걸려도 철저히 조사해야 하오. 홍 각주가 수고해주시오.”

“알겠소이다.”

둥! 둥!

기다렸다는 듯 멀리서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또 한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문각은 고개를 들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검은 하늘만큼이나 깊어졌다.

암습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파천회. 그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

 

시간이 흐르자 어둠도 더 버티지 못하고 밀려났다.

마침내 원단의 아침이 밝아온 것이다.

그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쪽빛이었다. 바람이 차갑긴 해도 나쁜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것처럼 상쾌한 날씨.

하지만 구천성 무사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소천전을 바라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밤에 호법전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인네들조차 아침을 지으며 지난밤에 벌어진 일을 놓고 내기를 벌였다. 그러다 대판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아침식사 준비가 늦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구천성에 손님으로 온 강호인사들도 숨을 죽이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공손백의 성주 취임을 축하하러 왔던 그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었다.

소성주가 나타난 것으로도 모자라서 호법 두 사람이 살해당하다니.

그뿐이 아니다. 소문으로는 소성주조차 암습을 받아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번 일이 어디까지 확장될까?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 때문에 불안해하는 와중에도 몇몇 사람은 은근한 기대감을 품고서 아침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아침에 예정된 연회는 간단한 식사로 대체되었다.

태상호법을 비롯해서 호법 둘이 죽었거늘 연회는 무슨 연회!

연회는커녕 장례식을 치러야 할 판이다.

그러다 보니 강호인사들과 구천성 간부들이 모두 모여서 진행된 구천대전의 아침식사는 경건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상석에 앉은 공손백과 사마경, 나극 등의 식사모습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변했다.

그들이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수저만 움직이자,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대화를 최대한 자제했다.

워낙 고요하다 보니 무덤 속에서 식사를 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딸각.

사마경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고의로 소리가 크게 나도록 내려놓긴 했지만, 아주 큰 소리라고 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대전 안이 너무나 조용해서 접시를 때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느닷없이 고요가 깨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마경에게로 향했다.

사마경은 식사를 위해서 면사를 벗은 상태였다.

면사로 가려진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면사를 벗은 모습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일부 몇 명은 입에서 음식이 흘러내리는 것도 잊고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음식을 넘기기가 힘들군요.”

사마경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입술을 천으로 닦아냈다.

하얀 천으로 붉은 입술을 닦는 그 모습은 가히 유혹의 절정이었다.

몇 사람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간밤에 태상호법과 공 호법이 살해당하고 소성주마저 부상을 입으셨는데, 이렇게 태연히 식사를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소이다, 소성주.”

혁련광이 나직하게 말하며 사마경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십여 명이 더 수저를 내려놓았다. 나머지 사람들 중에서도 반 정도는 눈치를 봤다.

사마경도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맞잡고 혁련광을 향해 예를 취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어제 대회의 결과에 따라서 제가 임시성주를 맡게 되었어요. 나이 어린 제가 임시성주로서 일을 해나가다 보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거예요. 혁련 전주께서 많이 도와주길 바라겠어요.”

“힘닿는 데까지 도우리다!”

은연중 임시성주라는 지위를 만인 앞에 공표한 셈이다.

공손백은 갑작스런 사마경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암울한 분위기로 인해서 토를 달기도 애매했다.

‘교활해진 거냐, 아니면 겁이 없어진 거냐.’

그의 눈빛이 짧은 순간 두어 번 변했다.

사마경은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군웅들을 향해 말했다.

“다른 분들은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식사를 마치세요. 저는 차나 한 잔 더 마셔야겠어요.”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그녀의 모습에 군웅들은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설렜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마음이 초조해진 사람은 공손백과 독고태였다.

‘내가 너무 저 아이를 가볍게 생각했나?’

‘빌어먹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군.’

그때 군웅들 중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큰소리로 물었다.

“소성주! 태상호법을 살해한 범인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소이까?”

사십대 중반의 나이, 텁수룩한 수염만 봐도 괄괄한 성격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자. 그는 절검당 당주 손득환이었다.

사마경이 고개를 들고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율검당에서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확인해 볼 것이니, 손 당주께선 너무 걱정 마시고 맡은 일에 충실해 주세요.”

“알겠소이다, 소성주!”

“다른 분들도 어제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으면 해요.”

“당연히 도와야지요!”

“걱정 마시구려, 소성주!”

“언제든 말씀만 하시오. 힘이 닿는 대로 도우리다.”

너도 나도 돕겠다며 나섰다. 개중에는 공손백 쪽 장로마저 있었다.

공손백은 이마를 찌푸렸다.

상황이 그의 뜻과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일이 이상하게 되었군.’

짜증이 나긴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임시성주가 된 순간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래서 어젯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마경의 손발을 쳐내고 기를 꺾으려 했던 것 아닌가.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이 모양이 되고 말았지만.

‘좋아, 일단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사마경. 하지만 이제부터 더욱 힘든 가시밭길을 걷게 될 거다.’

공손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머지 간부들은 땡감을 씹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들고 있던 떡을 강아지에게 뺏긴 아이처럼.

개중에는 불만 가득한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 자도 있었고, 속마음을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입맛만 다시는 자도 있었다.

사마경의 뒤쪽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장천운은 그 모습을 하나하나 뇌리에 새겼다.

사마경의 말에 호응을 보인 자들의 숫자는 전체 인원 중 삼 할 정도다. 그나마도 강호인사 서너 명과 기회주의자 같은 자가 대여섯 명 끼어 있으니 실제로는 삼 할이 안 된다는 뜻.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그래도 생각보단 많아.’

그때 속으로 이를 간 공손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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