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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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36화
336화
“그리고…… 자파의 피해를 수습하시는 동안, 저희 무원장을 이용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드리겠습니다.”
“…….”
그제야 각 세력의 수장들은 오늘의 협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곳이 무원장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들의 세력을 제대로 수습하려면 최소한 일 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터.
중원에서 그들 정도의 대세력을 감당할 수 있는 상가는 천화상단과 무원장 뿐이다.
황하 이남에는 무원장 뿐이고.
‘뭐 저런 놈이……!’
‘기가 막히는군.’
‘이 판국에…….’
오죽하면 신뇌라 불리는 이사명조차 혀를 내둘렀다.
‘허어……. 어이가 없군.’
마도연합과 정은맹, 대정맹은 각기 오 리의 거리를 물러났다.
그런 후에야 각 세력의 수장들이 다시 만났다.
협정을 맺기로 했으니 그에 대한 서명을 해야 했다.
사람들이 또 한 번 놀란 것은, 무천이 그에 대한 준비조차 미리 해놓았다는 것이다.
목량은 장대산과 함께, 원을 그리고 서 있는 사람들의 중심으로 나가서 섰다. 그러고는 품에서 종이와 먹물, 붓을 꺼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목량도 입맛이 쓴 사람 중 하나였다.
갑자기 새벽에 불러서 종이와 먹물과 붓을 준비하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 위해 준비하라고 했던 것이었다.
“목량, 내가 아까 했던 말을 적어라.”
“예, 대형.”
장대산이 앉아서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그가 함께 나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의 넓은 등을 탁자(?)로 삼기 위해서.
목량은 핏줄이 터질까 염려될 정도의 사나운 눈빛을 받으며 붓을 놀렸다.
글자 한 자만 잘못 써도 머리가 터질지 몰랐다.
다행히 그는 기억하고 있던 말을 모두 적을 수 있었다.
“다 적었습니다, 대형.”
목량이 말하자, 무천이 제일 먼저 목량 옆으로 가서 붓을 들고 자신의 이름을 적은 다음 수결을 했다.
뒤이어 천양묵, 우문강천, 신도명산, 악사광, 이사명이 나와서 수결을 했다.
무천은 모든 사람이 수결을 하자, 종이를 반듯하게 접었다.
“사실 모두가 한자리에서 말을 들었으니 이 협정서는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이 좋겠지요.”
무천은 담담히 말하면서 협정서를 품에 넣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 협정서는 무원장이 보관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하를 뒤흔들 협정이 맺어졌다.
그 바람에 마도연맹은 탄생하자마자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져 온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무천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마신. 이제는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
강호의 수많은 무사들이 남양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쟁이 계속 되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남양에서 죽어갔을지 몰랐다.
자신의 형제들, 제자들, 동료들이 무슨 죄로 정마전쟁에 휘말려서 죽어가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전쟁이 끝났단다.
정파와 마도의 주요 세력들이 불가침협정을 맺었단다.
명분이 없이는 상대를 공격하지 않기로.
기간은 십 년.
그 이후에는 어찌될지 몰라도, 십 년 후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전쟁 중단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어이가 없군.”
복우산 서쪽 만장곡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던 사마신은 감탄 반, 분노 반, 괴이한 감정으로 피식 웃었다.
갑자기 전쟁이 끝났다.
정은맹과 대정맹, 마도의 팔대마세 중 네 곳의 대표자들이 협정서에 서명을 했다고 한다.
이제 목적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늘.
정파든 마도든, 무공을 익혔답시고 거들먹거리며 피를 뿌리는 쓰레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려 했거늘!
“무천, 역시 나의 숙적답구나. 결국 너를 죽여야만 정혈의 세상을 이룰 수 있단 말이겠지.”
사마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서있는 조장들을 바라보았다.
조장 여덟 명이 늘어서 있다.
모두가 초절정경지 이상의 상승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
그들 중 허운을 비롯한 세 사람은 절대경지에 올라선 상태다. 사대천마와 일대 일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조금도 걱정할 것 없다. 정파세력이든 마도든 이번 전쟁에서 전력의 오 할 이상을 잃었다. 그만큼 우리가 활동하기 편해졌다.”
“무천이 문젭니다.”
허운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이제는 무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와 중원무림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치를 생각이다. 물론 그 전에 제대로 된 분위기를 만들어놓아야겠지.”
사마신이 말하고는 입술 끝을 비틀며 사이한 미소를 지었다.
“먼저 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도맹부터 처리한다.”
***
신도명산은 상당한 결과를 얻었음에도 결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정은맹의 권역만 따지자면 큰 불만은 없었다.
당분간은 마도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방 천리 내에서 세력을 키울 수도 있으니 그 점 역시 만족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백마곡의 살귀들이 왜 복귀하지 않는 것 같소?”
그가 주금화에게 물었다.
주금화 역시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나도 그게 의문이네. 갑자기 모습을 감추다니…….”
“설마 마도 놈들에게 당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랬다면 저번 싸움에서 마도 놈들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챘을 거네.”
“하긴…….”
살귀들의 힘이 필요해서 찾는 것이 아니었다.
정은맹이 그들을 뒤에서 움직였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들에게 당한 문파의 제자들이 반발을 할지 몰랐다.
그러니 그들을 완벽하게 굴복시키든가, 아니면 깨끗이 청소해서 후환을 남겨두지 않아야만 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대정맹은 어떻게 할 건가? 아무래도 정은맹에 검을 들이댈 것 같은데.”
“흥! 놈들이 오면, 이곳이 놈들의 무덤이 될 거요.”
주금화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은맹이 비록 이번 남양대회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나 대정맹의 힘만으로는 정은맹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가 있을 때 이야기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던 주금화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아무래도 그놈을 한번 만나봐야겠어.’
***
강호사에 유래가 없던 불가침협정이 맺어진 지 열흘이 지났다.
무천이 돌아온 후 무원장은 전보다 더욱 바빠졌다.
다른 상가가 전쟁물자를 사들일 때, 무원장은 전쟁물자를 팔고 일반적인 물품을 사들였다.
그런데 전쟁이 갑자기 끝나자 전쟁물자의 가격이 폭락했다.
무천은 지시를 내려서 가격이 폭락한 전쟁물자를 다시 사들이게 했다.
한쪽에서는 물자를 무차별적으로 사들이고, 한쪽에서는 대세력의 피해 복구를 위한 물자가 빠져나가니 당연히 바쁠 수밖에.
그런데 무천의 방에서는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단 말이지?”
“예, 장주.”
무천은 능우의 대답을 듣고는, 능우 옆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중년인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이한 얼굴이었다.
길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는데, 기이하게도 고개를 돌리면 그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천은 전에 이미 경험한 적이 있어서 의아해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기로, 능가는 목을 내놓을지언정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들었소. 곡주의 약속 역시 그리 알아도 되겠소?”
능우의 부친이자 백마곡의 곡주인 능호는 솔직히 오늘 만남이 반갑지 않았다.
아마 아들놈의 목숨이 걸린 일만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이제 이십 대로 보이는 놈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자식처럼 새파란 놈 밑으로 들어가야 하다니.
물론 상하관계가 아닌, 삼 년짜리 계약관계이긴 하지만, 결국은 그게 그거였다.
계약기간 동안은 무천이라는 젊은 놈의 명령을 들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백마곡의 후계자인 아들이 약속을 했다 하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천이란 놈 말대로, 능가는 약속을 목숨보다 중요시했다.
“당연히 우리는 한번 한 약속을 어기지 않소. 그리고 우아가 한 약속이니 지킬 거요.”
“좋소. 그럼 나 역시 무원장과 내 이름을 걸고, 삼 년 후에 백마곡의 중원 총단 구축을 도와주도록 하겠소.”
“고맙소. 그런데 우아가 우리 능가의 가훈까지 말했을 줄은 몰랐소.”
능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아버지. 그 말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장주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그거야…… 저도 모르죠.”
능호는 능우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곧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들이 가끔 말썽을 피우긴 해도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어릴 때 한 번 거짓말을 해서 죽기 직전까지 팬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맞아죽을 때 맞아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능우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
그럼 무천은 어떻게 능가의 가훈을 알게 된 걸까?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목에 작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은근히 찜찜했다.
무천이 능호 부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오래 전에 언뜻 들은 적이 있어서 말해본 것뿐이오.”
그네야 능호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럼 그렇지, 우리 우아가 거짓말 했을 리 없어.’
천하제일살수였던 능호도 결국은 아버지였다.
“거처로 장원 하나를 내줄 테니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시오.”
“알겠소, 장주.”
“아! 혹시…… 귀환살법은 완성되었소?”
무천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순간, 능호가 서리가 내릴 것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능우를 노려보았다.
능우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저었다.
“저 정말 아닙니다. 제가 왜 그걸 말해요?”
“정말이냐?”
“그렇다니까요!”
능우가 강력하게 부정하자, 능호의 시선이 다시 무천에게로 향했다.
조금 전과 달리 차갑기 이를 데 없는 눈빛이었다.
“그에 대해서 말씀해주셔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소만.”
하지만 무천은 대답 대신 느긋한 태도로 다시 물었다.
“아직 귀환살법의 구법을 완성하지 못했나 보군.”
능호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살수로서의 부동심을 익힌 그조차도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장주가 그걸……?”
아들이 말을 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아들도 알지 못하니까.
아들은 물론, 백마곡 제자들 모두 귀환살법이 팔법까지만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거 역시 들었소, 사부님께.”
“…….”
“백살귀환 능환이 귀환살법의 구법 초입에 들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능호의 부동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는 눈뿐만 아니라 몸까지 거세게 떨렸다.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요?”
“나중에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거요.”
무천은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입술로 찻잔을 가져가다가 멈칫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백마곡과 나 사이에 인연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소. 오늘은 그 정도만 아시오.”
말을 마친 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능호와 백마곡은 절대 불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이야 당연히 지킬 것이고.
‘사마신의 목에 걸 낚시 바늘 하나를 만들었군. 운이 좋았어.’
***
열이틀 째 되던 날.
우문척이 우문강천과 함께 십여 명의 호위를 거느리고 무원장을 찾아왔다.
의외였다. 우문척이라면 몰라도, 우문강천이 무원장까지 직접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