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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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32화
332화
정은맹도, 대정맹도, 마도연합도 설마 상황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보다 피칠갑이 되어 쓰러져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정도, 협도, 마도 다 필요 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도검을 휘둘렀다.
결국 대혈전은 어스름이 짙어진 후에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양측 무사들은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분노? 복수? 강호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딴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사들의 머릿속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만 남았다.
“물러서라!”
“후퇴!”
누군가의 입에서 후퇴 명령이 터져 나오자,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양측은 이십 리 거리를 두고 물러나서 진영을 차렸다.
부상자들이 많아서 더 이상 후퇴할 수도 없었다.
양측의 피해는 경상자를 제외하고도 사망자만 일만 명이 넘었다.
이전의 싸움에서 당한 피해까지 생각하면 근 이만 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죽은 셈이었다.
그것도 정예고수들이!
승리도 패배도 없이 막대한 피해만 남은 결과에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충격은 천하를 주도하고 있던 마도 쪽이 더 컸다.
냉정히 따져보면, 팔대마세 중 네 곳이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 며칠 사이에.
게다가 귀천교 대장로 악전웅 등 절정고수 이상의 간부들 역시 절반은 줄어든 상태였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정은맹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결국 남의 일일 뿐.
쾅!
“그 혈귀 새끼들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모조리 까마귀밥을 만들어버렸을 텐데……!”
우문강천이 발을 구르며 분노를 쏟아냈다.
만마성과 마천문의 무사들이 합류하면서 전황이 급격하게 우세로 돌아섰었다.
그런데 때맞춰서 정혈단이 나타나는 바람에 우세한 점이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놈들에게 이천에 이르는 무사를 잃었지 않은가 말이다.
만마성주 천양묵도 아쉬움이 큰 듯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
“그 많은 자들이 움직였는데, 행적도 파악을 못한 게 실수요. 안 그렇소, 우문 형?”
우문강천은 책망하는 말을 듣고도 반박하지 못했다.
정혈단이 나타난 곳은 자신들의 뒤였다. 결국 자신들이 그들의 움직임을 놓쳤다는 말. 입이 열 개여도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정보망이 너무 취약했소. 이제라도 정보수집에 만전을 기하는 게 좋겠소.”
그때 막사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뜻밖의 보고를 올렸다.
“련주! 십 리 남쪽에서 정혈단원으로 보이는 자들의 시신 이백 수십 구가 발견되었다 합니다!”
보고를 받은 우문강천이 눈을 치켜떴다.
“뭐야? 확실하더냐?!”
“예, 련주! 정혈단 놈들이 분명합니다!”
보고를 올린 간부는 확신을 갖고 말했지만, 우문강천은 물론 다른 간부들도 믿어지지 않았다.
우문강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도대체 그놈들이 왜 그곳에 죽어 있단 말이냐?”
“무원장과 싸운 것 같습니다!”
“무원장?”
막사 안의 모든 간부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우문척만큼은 눈빛을 차갑게 빛냈다.
“아마 사실일 겁니다.”
사람들이 이번에는 우문척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제는 각 세력의 수뇌부들 누구도 우문척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 싸움의 결과로 인해서 부친인 우문강천에 못지않을 만큼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천양묵이 눈을 좁히고 물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사진에 있던 무원장 무사들이 북상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당금 천하에서 무천과 무원장이 아니라면, 정혈단에 그런 피해를 입힐 만한 곳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기가 질린 듯 표정에 그늘이 졌다.
우문척도 그 점을 뒤늦게 인지하고 아차 했다.
확신을 심어주려고 한 말이, 결국 무원장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띄워준 셈이 된 것이다.
‘젠장. 무천 좋은 일만 시켰군.’
그때 우문강천이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동안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소. 안타깝게도 팔대마세라는 이름조차도 유명무실한 지경이 되었소. 해서 하는 말이오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정은맹과 대정맹 놈들을 무너뜨릴 때까지만이라도 정식으로 마도연맹을 만드는 게 어떻겠소?”
“마도연맹?”
천양묵이 눈을 치켜떴다.
“그렇소. 분하지만, 이제는 놈들을 인정하고 일관된 체계로 상대할 필요가 있소.”
어깨가 축 처진 마도 세력의 수뇌부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한다고 해서 사실이 거짓이 될 수는 없었다.
정은맹과 대정맹은 자신들이 단숨에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을 만큼 강했다.
특히 마도는 각 세력이 따로 움직인 반면, 정파는 사이가 좋든 나쁘든 정은맹과 대정맹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나는 찬성하오!”
천양묵이 먼저 찬성을 표명했다.
우문강천은 의외라 생각한 듯 흠칫하며 천양묵을 바라보았다.
“고맙소, 성주.”
“정파 놈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뭘 못하겠소?”
그 말에 공손두가 힘을 보탰다.
“저 역시 마천문의 대표로 련주님과 성주님 의견에 찬성합니다.”
눈치를 보던 사도맹과 패왕문의 대표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연맹주는 우문 련주가 맡아주시오.”
천양묵이 다시 한 번 뜻밖의 말을 했다.
당연히 경쟁에 나설 거라 생각했던 그가 주장 자리를 순순히 우문강천에게 양보한 것이다.
천양묵이 그렇게 나오니 다른 마도 세력의 수뇌부들은 이견을 내놓을 수조차 없었다.
우문강천은 천양묵을 향해 포권의 예를 취했다.
“부끄럽지만 성주의 마음을 받아들이겠소이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나 마도의 맹주가 되었다.
이번에 자신이 직접 나선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정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나 만끽할 수 있으리라.
“시간을 끌면 놈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오. 맹주께선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천양묵이 물었다.
우문강천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옳으신 말씀이오. 어차피 피해를 본 것은 우리나 저쪽이나 마찬가지요. 중요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지외다. 날이 새면 다시 저들을 공격할 생각이오.”
“공격 선봉에 련주의 아들인 우문척과 마천문의 공손두, 귀천교의 악사광을 세우면 어떨까 싶은데, 련주의 의견은 어떠시오?”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그 세 사람이었다.
팔대마세의 주인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엄청난 무위는 모두를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그게 좋겠소.”
우문강천도 천양묵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우문척과 공손두를 보며 말했다.
“들었느냐? 내일 공격진은 셋으로 나눌 것이다. 너희들이 선봉에 서라.”
“예, 아버님!”
“알겠습니다, 련주!”
우문척과 공손두, 악사광은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이제 세상은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정혈단과 무원장의 싸움에 대한 보고가 들어간 곳은 마도연합만이 아니었다.
신도명산 역시 그 보고를 받고 경악했다.
“무원장에 정혈단이 당했다고?”
“예, 맹주. 사진에 있던 놈들이 움직여서 정혈단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로 인해 정혈단원 이백 수십 명이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신도명산의 짙은 눈썹 아래에서 눈빛이 흔들렸다.
정혈단의 무서움은 마도연합의 이천무사가 그들에게 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정혈단을 오백 무사로 공격해서 승리한 거나 다름없는 결과를 얻어냈다지 않는가 말이다.
‘제길, 결국 그놈들이 문제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정혈단원들이 비록 마공으로 인해 살기가 짙다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정파의 제자들 아닌가.
그들 덕분에 이번에도 위기를 벗어났다.
그런데 피해가 크다면 다음 싸움에서는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경계를 철저히 하고 순찰을 강화해라! 놈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기회라 생각하고 공격해올지도 모른다!”
“예, 맹주!”
신도명산은 보고를 올린 무사가 나가자, 주금화를 바라보았다.
“내일 놈들이 또 공격해올 가능성이 크오. 그렇다면 백마곡의 살귀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늘 밤밖에 없다는 말이오.”
주금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미 지시를 내렸네.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지.”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와 달리 굳어 있었다.
정혈단이 당한 것은 그로서도 의외였다.
무원장이 강한 것은 알지만, 정혈단이 밀릴 정도일 줄이야.
‘무천이란 놈이 문제군.’
정혈단이 힘을 쓰지 못하면 자신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내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나?’
주금화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은은한 자광(紫光)이 일렁거렸다.
“대정맹에 사람을 보내게. 아마 그들도 마다하지 않을 거네.”
그의 말에 신도명산이 입술 끝을 비틀었다.
“좋은 생각이시오.”
***
사진으로 돌아온 혁무천도 속속 전해지는 보고를 받았다.
옆에서 보고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설마 상황이 그리 될 거라 생각하고 정혈단이 마도의 뒤를 노렸단 말인가?”
철명군의 말에 혁무천이 고개를 느릿느릿 끄덕였다.
“힘의 균형을 맞추어서 양측 모두 최대한 피해가 나게끔 한 것 같습니다.”
어느 한쪽의 힘이 확실하게 강하면 한쪽의 피해만 커진다. 하지만 힘이 비슷하면 양쪽 다 큰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내일 다시 싸울 것 같은데…….”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거지요. 물러서는 순간 영광은 사라지고, 최하 수십 년은 밀릴 테니까요. 최악의 경우에는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고.”
“후우,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셈이군.”
“…….”
둘러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그런 뜻이 담긴 시선이었다.
똑, 똑, 똑…….
혁무천은 눈을 반개한 채 탁자 위를 검지로 톡톡 쳤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혁무천이 반개한 눈을 뜨고, 탁자를 치던 손짓을 멈췄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혁무천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제가 지금…… 탁자를 몇 번 쳤는지 아시는 분?”
“…….”
“설마 지금…….”
“장난하자는 건……?”
혁무천을 바라보던 눈빛이 흉흉(?)해지자, 은설이 눈치를 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말씀은, 앞으로의 상황이 안개 속 같다는 건가요?”
“뭐, 그런 뜻도 있지.”
혁무천은 순순히 인정하고는, 몇 마디 덧붙였다.
“아무도 앞날을 모르는 상태에서 싸움이 벌어질 거요. 그럴 때는 작은 변수 하나가 전체 전황을 뒤흔들 수 있지요. 가령 날이 새기 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든가…….”
듣고만 있던 은설의 눈이 커졌다.
“혹시 그 사람……?”
혁무천을 죽이기 위해 왔던 자가 있었다.
실력이 만만치 않은 그자는 살수였다.
그런 살수가 밤에 누군가를 죽이려 한다면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신도명산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도 쪽을 흔들려고 할 거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속을 알 수 없는 자가 있어.”
혁무천은 주금화를 떠올렸다.
아직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저 그가 바로 남황궁의 주인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마저도 아직은 예상일 뿐이었다. 공식적으로 정은맹과 남황궁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니까.
“어쩌면……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