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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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30화
330화
휘이이익!
기다란 휘파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차가운 표정으로 전진하며 살수를 펼치던 정혈단원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악에 바친 마도 무사 수백 명이 그들을 쫓아가며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죽어가는 건 결국 그들이었다.
결국 마도의 무사들조차 물러나는 그들을 쫓지 않았다.
사마신은 들어갈 때만큼이나 유유히 걸음을 옮겨서 시산혈해를 빠져나왔다.
피에 젖은 정혈단원들은 이천 구가 넘는 시신만 남겨 놓고 빠르게 혈전장을 벗어났다.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오십 명 정도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은 동료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죽음은 그림자나 같았다.
그런데 오 리쯤 멀어졌을 때였다.
사마신이 걸음을 늦추면서 오른손을 들었다.
정혈단원들도 속도를 늦추고는 전면을 바라보았다.
사람 키 높이의 풀숲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을 보던 사마신의 눈이 혈광을 번쩍였다.
“무천. 우리를 기다렸더냐?”
혁무천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맞아. 아무래도 더 놔두면 안 될 것 같거든.”
“후후후후, 네가 우릴 막을 수 있다고 보느냐?”
“물론이지.”
“무원장도 오늘로 끝이군.”
“글쎄, 너는 네 무공을 대단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그저 그럴 뿐이야.”
혁무천이 능글맞게 사마신의 감정을 건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사마신의 눈빛에서 점점 혈광이 짙어졌다.
“죽고 싶다면…… 모조리 죽여주마!”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저번에도 너와 정혈단 수백 명이 포위하고도 나를 어쩌지 못했는데 말이야.”
“거기다 나까지 구했지.”
동대안까지 기름을 끼얹었다.
순간, 사마신의 전신에서 혈광이 폭사하고, 백포가 바람도 없는데 찢어질 듯 펄럭였다.
“와하하하하! 천하에서 누가 감히 나를 막을 수 있단 말이냐! 무천, 네놈의 사지를 자르고, 심장을 꺼내 씹어주마!”
그때였다.
“어린놈이 마에 물들어서 제정신이 아니군. 내가 먼저 네놈을 상대해주마.”
철명군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사마신은 혈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철명군을 보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는 철명군이 무천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봤던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문득 그의 기억 저편에 있던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맞아, 그대였군. 제남에서 한밤에 무천과 대결을 벌였던 자.”
“의외군. 나를 알다니.”
“크크크크, 그대가 누구든 상관없다. 결국은 오늘 죽을 테니까!”
사마신이 살심 가득한 웃음을 흘리면서 검을 뽑았다.
철명군도 말없이 검을 잡았다.
혁무천이 사마신에 대해서 왜 그리 신경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천하에 혁무천 외에도 자신의 피를 긴장감으로 뜨겁게 달구는 자가 있을 줄이야.
후우우웅.
검을 든 철명군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운이 천천히 휘돌았다.
사마신도 철명군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가공할 기운이 피어났다.
쏴아아아아.
대지의 수풀이 가루가 되면서 사방으로 밀려났다.
스윽,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사마신이 먼저 선공에 나섰다.
거리라고 해봐야 삼 장 정도. 혈광에 휩싸인 그는 일보에 거리를 이 장이나 좁히며 철명군을 향해 검을 뻗었다.
철명군도 거의 동시에 검을 뻗어서 마주쳐갔다.
콰르릉!
검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뇌성이 울렸다.
쿠구궁!
두 사람 사이의 대지가 들썩이고, 기파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회오리쳤다.
철명군과 사마신은 일검을 겨룬 후 뒤로 이 장씩 물러섰다가 재차 서로를 향해 검을 떨쳤다.
한편, 혁무천은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짧게 명령을 내렸다.
“사마신은 철 노사와 나에게 맡겨놓고 정혈단을 정리하시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원장 쪽의 고수들이 정혈단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디 오늘 누가 죽는가 해보자!”
“덤벼! 살귀 새끼들아!”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은 섬서에서 자존심이 상했던 이정과 전교였다. 마용청과 호광 등이 뒤따라서 움직였다.
장대산도 장봉을 움켜쥔 채 쿵쿵거리며 내달렸고, 철호도 바늘을 따라가는 실처럼 함께 달려갔다.
공격에 나선 사람은 비룡단의 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좌측에서는 밀소림의 제자들이 입을 꾹 다문 채 결연한 표정으로 내달렸고, 우측에서는 비천의 고수들이 중리안을 필두로 신형을 날렸다.
밀소림의 제자들은 자비 대신 살심을 담아서 공격에 나섰다. 오늘만큼은 보리수 아래의 부처께서도 눈을 감아주시리라!
설령 살생으로 인해 지옥에 간다한들 무엇이 두려울까.
하나를 죽이면 수십 명의 목숨이 살아날 터인데.
비천의 고수들도 자신들이 품고 있던 모든 무공을 드러냈다.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듯.
칠백 대 오백.
양측 모두가 최하 일류 수준의 고수들이었다.
절정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이 많은 만큼 싸움의 양상도 달랐다.
땅거죽이 폭죽처럼 터지고,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검기 도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사방에서 검강이 솟구치며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철명군과 사마신의 대결을 지켜보기만 했다.
다른 자들은 모두 놓쳐도 사마신만큼은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만약 철명군이 사마신을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이 나서야만 한다.
아직까지는 어느 쪽으로도 승부가 기울지 않은 채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수들의 싸움은 언제 어느 때 승부가 결정 날지 몰랐다.
그런데 그때, 정혈단원 중 십여 명이 우회해서 혁무천의 뒤쪽으로 달려왔다.
혁무천의 뒤쪽에는 동대안과 은설, 자화미, 자경산, 목량이 서 있었다.
그들은 혁무천이 싸움에 뛰어들지 말라고 했기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혈단원들이 달려오자 검을 빼들고 맞섰다.
은설이 먼저 차가운 표정으로 검을 뻗었다.
젊은 여인이 앞을 막고 공격하자, 정혈단원 중 하나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흐흐흐, 계집이 겁도 없구나!”
은설은 제일 먼저 그자를 공격했다.
그녀의 검에서 검강지기가 쭉 뻗어나갔다.
정혈단원은 대경해서 다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은설이 손목을 틀자, 검첨의 방향이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상대의 몸을 스쳐갔다.
서걱.
목이 반쯤 잘린 정혈단원은 괴이한 형태로 머리가 꺾인 채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 순간, 다른 정혈단원 둘이 은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중 삼십 대 초반의 장한 하나가 노성을 내지르며 검을 뻗었다.
“계집! 네년의 목도 쳐주마!”
은설도 마주 검을 뻗어갔다.
쩌저저정!
검기의 파편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정혈단의 조장인 장한은 보기보다 훨씬 강한 은설의 공격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렸다.
쉬아악! 서걱!
어느새 날아든 혁무천이 그의 목을 쳐버린 것이다.
“어디서 설아에게 욕을 해?”
그때였다.
“아악! 무 공자! 나도 좀 도와줘요!”
정혈단원 하나를 상대하고 있던 자화미가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혁무천이 버럭 소리쳤다.
“경산, 뭐해! 네가 도와줘!”
자경산은 그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동생의 실력은 일류 수준이어서 정혈단원에게 쉽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당할 것 같았으면 자신이 먼저 나섰을 것이다.
자화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위험해서가 아니라, 혁무천에게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일 뿐.
아마 자신이 나선다면, 두고두고 핀잔을 들을 게 뻔했다.
그런데 그때,
“자 소저! 위험하오!”
목량이 몸을 날려서 정혈단원의 앞을 막아섰다.
최근 열심히 수련한 덕에 목량의 실력도 제법 늘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은 정혈단원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쩌저정! 떠덩!
빠르게 이삼 초 공방을 벌인 목량은 상대의 허점을 노렸다.
하지만 정파의 제자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정혈단원은 쉽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악문 목량은 한 발 내딛으며 좀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검이 스치면서 가슴과 어깨가 갈라졌다.
‘크읍!’
목량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마주 검을 뻗었다.
비록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그가 노리던 바였다.
다행히 그의 모험이 성공한 듯 검이 정혈단원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목량 역시 검이 스쳐간 가슴과 어깨가 금방 붉게 물들었다..
“이 바보!”
자화미가 버럭 소리치고는, 목량의 검에 옆구리가 뚫린 정혈단원을 공격했다.
그보다 먼저 자경산이 검을 휘둘러서 정혈단원의 한쪽 팔을 잘라버렸다.
뒤이어 자화미의 검이 심장을 꿰뚫었다.
퍽!
정혈단을 발로 차낸 자화미가 목량을 돌아다보았다.
“자, 자 소저…… 괜찮소?”
목량이 고통을 참으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막 한소리 하려던 자화미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눈치 빠른 그녀는 며칠 전부터 목량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목량에게 마음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며칠 내내 친절을 베푸는 목량을 냉랭하게 대했는데…….
목량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가슴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처음 느껴본 이상한 감정에 입술을 잘근 깨문 그녀는 몸을 돌렸다.
‘바보 멍청이! 다치기는 지가 다쳤으면서 왜 내 걱정을 해?’
그러게 그딴 실력으로 왜 뛰어들어서…….
목량을 째려본 자화미가 툭 쏘아붙였다.
“저쪽에서 상처나 치료해요! 나서지 말고.”
목량은 그 말만으로도 아픔이 가시는 듯했다.
“깊은 상처는 아니니 걱정 마시고, 뒤로 물러나 있으시오.”
“누, 누가 당신 걱정해서 그런 줄 알아요?”
순간적으로 자화미가 말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짐짓 눈을 치켜뜨고 목량을 째려보았다.
“그 실력으로는 도움이 안 되니까 물러나 있으라고요!”
“아, 알았소.”
목량은 대답하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자화미가 자신에게 그런 말이라도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항상 차갑게 째려보기만 했는데…….
바로 그때, 사마신과 철명군이 싸우는 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과광!
자화미와 목량을 슬쩍 곁눈질 하던 혁무천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사마신과 철명군이 싸우는 곳에서 대지가 폭발한 듯 흙더미가 솟구쳤다.
그 사이로, 물러서는 두 사람이 보였다.
물러선 거리는 비슷했다.
그런데 여전히 차가운 사마신과 달리 철명군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무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마신은 한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땅을 박차고 날아가며 검을 뻗었다.
후우우웅!
그가 뻗은 검에서 휘황하게 느껴질 정도의 붉은 혈광이 쭉 뻗어나갔다.
철명군도 마주 몸을 날리면서 검을 뻗어 작은 원을 빠르게 그렸다.
혈광이 작은 원에 휘말려서 함께 휘돌았다.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뒤이어 압축된 두 사람의 기운이 폭발했다.
쾅!
또 다시 두 사람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마신이 이 장을 날아간 뒤 내려선 반면, 철명군은 삼 장을 날아간 다음에도 두 걸음을 더 물러섰다.
안색이 창백해진 철명군은 이를 악다물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이토록 맥없이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무섭구나.”
그 순간, 사마신이 끝장을 내겠다는 듯 허공으로 솟구쳤다.
검을 머리 위로 쳐든 그는 십 장 허공에서 철명군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와하하하! 이제 끝이다!”
철명군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몸을 날렸다.
“어림없다, 이놈!”
두 사람의 절대무쌍한 기운이 허공 삼 장 높이에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