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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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5화
325화
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두 사람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세찬 피바람이 불어댈지도 모른다.
‘혁 시주가 마를 떨쳐낸 것만으로도 고맙지 아니한가.’
눈을 감은 그는 나직이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
원공과 무곡진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철우를 바라보았다.
***
비양에서 사진까지는 백오십 리 정도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한 혁무천 일행은 미시 말쯤 사진에 도착했다.
일차로 이동한 인원은 백여 명. 거처가 확보되는 대로 나머지 사백 명도 옮겨올 계획이었다.
새벽에 미리 선발대로 떠난 무원장 무사들이 사진에서 가장 큰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혁무천 일행의 거처를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혁무천 일행이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풍마루주 마호걸이 소식을 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오늘은 무사들을 불러들여서 전력을 집결시키고 있다 하오.”
풍마문도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풍마루주 마호걸이 직접 나서서 이십여 명의 정보원을 지휘했다.
그의 말에 혁무천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럼 곧 다시 붙겠군.”
“그럴 것 같소.”
“대정맹은 아직도 낙양에 있소?”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 했던 마호걸은 즉시 대답했다.
“이천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밤을 이용해서 노산까지 내려왔소.”
“이천이라…… 그럼 지금쯤은 더 될 수도 있겠군.”
사진에서 노산까지 사백 리.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서 소식을 전해도 하루는 걸린다.
그 시간이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밤을 이용했다는 건 목적을 갖고 움직였다는 뜻.
“그럴지도 모르오.”
혁무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호걸에게 말했다.
“대정맹에 사람을 보내서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려주시오.”
마호걸이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
말뜻을 짐작한 듯 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
혁무천이 사진에 도착한 다음 날.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리면서 다섯 갈래의 파도가 서쪽으로 밀려갔다.
각각 이천에 이르는 무사들로 형성된 무리에서 뻗친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자, 날아가던 새들이 놀라서 황급히 도망쳤다.
마도연합은 구천에 이르는 전력을 다섯으로 나누었다.
철혈마련과 귀천교는 단독으로 일대와 이대를 이루고, 사도맹과 패왕문이 삼대와 사대를 지휘했다.
그리고 구마맹이 중심이 된 마도십문의 무사와 중소 마도문파 무사들이 마지막 오대를 이루었다.
그들은 오 리 간격을 두고 전진했다.
팔일 전에 벌어진 대혈전에서 인원수로 밀고 들어갔던 때를 생각하면 그나마 체계적인 공격대형이었다.
정은맹 측에서도 시시각각 마도연합의 움직임을 보고받고 대응했다.
그들 역시 다섯 개의 무리로 나누어서 무사들을 동진시켰다.
병장기를 찬 무사들이 일이천 명씩 무리를 지어 움직이니 남양 외곽의 일반 양민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예 집에 틀어박혀서 문을 잠그고 피바람이 잦아들기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날 오시 초,
마침내 지평선만이 보이는 광야 곳곳에서 악을 쓰며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남양의 대평원은 몸을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어차피 서로 모습을 드러낸 상태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계책은 통하지도 않았다.
철혈마련 쪽은 우문양이 철혈사령대를 이끌고 선봉에 나섰다.
달려가는 무사들의 무기가 햇빛을 반사시키자 마치 은빛 파도가 출렁거리며 서로를 향해 밀려가는 듯했다.
“정파 위선자 놈들의 목을 쳐라!”
“마도 놈들을 죽여라!”
“죽여!”
“사지를 잘라버려!”
양측의 간부들이 수하를 독려하는 목소리가 뒤엉켜서 울렸다.
시뻘건 핏물은 누런 대지를 붉게 물들였고, 빠르게 늘어가는 시신이 붉은 대지를 서서히 덮어갔다.
전체적인 전황은 마도연합 쪽이 조금이나마 유리했다.
싸움이 시작된 지 한 시진이 지나자 유불리가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서 승패를 확실하게 가를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정은맹이 밀리고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 역시 변수가 생기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을 만큼 차이가 크지 않았다.
마도연합을 지휘하는 우문강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정은맹을 몰아붙였다.
신시가 되자 정은맹 쪽에서 장대에 매단 깃발이 흔들렸다.
둥둥둥둥!
북소리도 빠르게 울렸다.
정은맹 무사들은 방어에 치중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반면 마도연합 무사들은 함성과 욕설을 내지르며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우문강천도 진기를 실어서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어떤 음흉한 짓을 할지 모른다! 침착하게 놈들을 쫓아라!”
옷자락이 피로 범벅된 우문양이 철혈사령대를 이끌고 다시 전면에 나섰다.
그렇게 정은맹이 십 리쯤 물러섰을 때였다.
마도연합의 북쪽에 있는 사대와 오대 뒤쪽으로 일단의 무리가 파도처럼 밀려갔다.
각각 일천오백여 명. 살아남은 마도연합의 사대와 오대에 비해서도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
“대정맹이다! 대정맹 놈들이 뒤에서 공격하고 있다!”
마도연합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말대로 마도연합의 후위를 공격한 무리는 대정맹이었다.
또 다시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사명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 상황을 지휘했다.
정은맹의 행사가 얄미웠지만 지금 당장은 마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물러난 거였나?”
그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그게 아니라면 정은맹이 운 좋게 적절한 시기에 후퇴를 했다는 말이었다.
“신호를 보내라! 일각 정도 밀어붙이고 후퇴하라고 해! 우리가 마도연합의 공격을 전부 떠안을 필요는 없다!”
“예! 총군사!”
우문강천은 사대와 오대 쪽의 상황을 보고 받고도 냉정하게 상황을 지휘했다.
“척이 네가 철혈마령대를 이끌고 사대를 지원해라! 그리고 이대와 삼대의 주장에게 각각 이백 명씩 차출해서 오대를 지원하라고 전해!”
우문척은 보조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예, 알겠습니다.”
정은맹은 마도연합의 사대와 오대 후위에 대정맹이 나타났다는 걸 알고는 후퇴를 멈추고 반격을 시도했다.
또다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마도연합도 뒤쪽의 대정맹을 신경 쓰느라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은맹과의 싸움은 방어에 치중하고, 퇴로를 막고 있는 대정맹과의 싸움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하지만 대정맹이 갑자기 후퇴를 시작하자, 즉시 전면의 정은맹을 향해 검을 틀었다.
우문척도 대정맹 무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걸 보고 즉시 철혈마령대의 공격방향을 틀었다.
“대정맹이 후퇴한다! 철혈마령대는 전면의 정은맹 놈들을 쳐라!”
대정맹에게 후위를 얻어맞으면서 분노가 천 장 높이로 쌓인 마도무사들은 축적된 분노를 정은맹에게 쏟아냈다.
밀고 밀리는 싸움 와중에 수천 명이 죽어갔다.
봄의 대지는 십 리에 걸쳐서 시뻘건 혈화가 피어난 상태였다.
들꽃의 향긋한 화향 대신 피비린내 진동하는 혈향만이 가득했다.
유시 무렵, 지칠 대로 지친 정은맹과 마도연합은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물러나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대정맹도 마도연합의 북쪽 삼십 리 지점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며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이제는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었다.
약세를 보이며 물러서는 순간 천하의 판도가 바뀔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스름이 혼돈의 대지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아 대지에 널린 시신과 시뻘건 피를 덮었다.
***
“빌어먹을!”
우문강천은 짜증을 내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의 앞에 서 있던 마도의 수장들도 표정이 무거웠다.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승리도 자신했다.
피해야 보겠지만, 설마 자신들이 정파 따위에 지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정파 놈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끈질겼다.
거기다 감시하고 있던 대정맹 놈들마저 감시의 눈을 피해서 내려와서 뒤통수를 쳤다.
우문강천은 분노를 씹으며 한쪽을 향해 다그쳤다.
“우문홍! 누가 대정맹에 대한 감시를 맡고 있었느냐?!”
우문홍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마안당이 맡고 있습니다.”
“도대체 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기에 놈들이 움직인 것을 몰랐단 말이냐?!”
“…….”
“눈이 있어도 쓸모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냐? 마안당주 기도강의 눈알 하나를 빼서 책임을 물어라!”
우문홍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예, 련주!”
여차하면 자신이 눈알을 빼야 할지도 몰랐다.
“당장 목을 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할 거다!”
냉랭히 명을 내린 우문강천이 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천교와 사도맹, 패왕문 등 마도 문파의 수뇌부가 침중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 없소. 전열이 정비되는 대로 다시 놈들을 칠 것이니, 나설 수 있는 무사를 파악해주시오!”
각 문파의 수뇌부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디서 기어 나오는지 정파 놈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싸움이 길어져 봐야 좋을 것 없었다.
***
혁무천은 사진의 은명객잔에 머물며 전쟁터에 가지 않았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욕망의 피가 흥건한 진흙탕에 스스로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그는 객잔에서 시시각각 전해오는 보고만 받았다.
반 시진 간격으로 전해지는 소식만 받아 봐도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날 저녁.
피풍의를 두른 삼십여 명이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뚫고 사진으로 들어섰다.
대로를 오가던 무원장 무사 셋이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숫자만 해도 삼십 명이 넘고, 몸에서 흐르는 기세는 호랑이조차 꼬리를 말게 할 정도로 거센 자들이었다.
하지만 무원장 무사들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앞을 막아섰다.
이후 몇 마디 말이 오가더니, 무원장 무사들이 삼십여 명의 일행을 은명객잔으로 안내했다.
은명객잔의 별채에 있던 혁무천은 들어서는 사람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어서 오십시오, 군사. 직접 나서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별채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 중 중년인이 마주 포권을 취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보니 기분이 색다르군.”
“저는 여기까지 날아드는 혈향에 코가 씰룩거리는데, 군사께서는 피비린내를 즐기시나 봅니다. 그런 줄 미리 알았으면 제가 수향 쪽으로 갈 걸 그랬습니다. 그곳의 피비린내는 코가 막힐 정도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혁무천의 말에 이사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피비린내는 나도 싫다네. 사실 그래서 자네를 만난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 온 거지.”
“여기 서서 밤 새실 것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혁무천은 웃으면서 이사명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간 혁무천은 이사명과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이사명이 자리에 앉자마자 혁무천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서기로…… 마음먹으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