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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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1화
321화
“성주와 나눈 이야기를 알고 싶네만.”
훅, 치고 들어오는 천조익의 말에 혁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좀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비밀로 지켜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말입니다.”
“대략적인 거라도 알고 싶네만.”
“이해해 주십시오. 제 마음대로 밝힐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
솔직히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혁무천은 은근슬쩍 천조익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자 천조익의 눈매에서 분노가 일었다.
“어허! 누가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봤나? 대략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만 알고 싶은 거네.”
“그걸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혁무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다시 포권을 취했다.
“그것 때문이라면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는 것 같군요.”
천조익은 이를 악문 채 혁무천을 노려보다가, 꾹 참고 말을 돌렸다.
“좋아, 그럼 대장로는 무슨 일로 만났나? 그분과 나눈 이야기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그냥 오랜만에 뵈어서 차 한 잔 마셨을 뿐입니다.”
“언제부터 대장로와 그런 사이가 되었는지 모르겠군.”
“사람 관계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친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건가?”
천조익이 탁자 위에 올린 손에 힘을 주며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혁무천도 마주 바라보았다.
“훗, 젊은 친구가 꽉 막혔군.”
혈마전주 덕원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혁무천의 시선도 그에게로 향했다.
“막힌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시면 전주님들을 만날 때 유의하지요.”
“정말 모르나? 그럼 만마성에서 성주와 대장로의 힘은 별 것 아니라는 말을 해도 안 믿겠군.”
혁무천은 바로 답하지 않고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말해보게.”
“실망이 크실 텐데요?”
“말해보라니까!”
천조익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용히 앉아 있던 덕원의 눈빛도 번뜩였다.
그제야 혁무천이 말했다.
“대장로께서 그러시더군요.”
“뭐라고……?”
“요즘 만마성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이해하라고. 미꾸라지들이 만마의 호수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다고 말입니다.”
뭐, 천두공이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뜻은 비슷했다.
천조익은 혁무천의 말뜻을 바로 알아듣고 눈을 치켜떴다.
“이……!”
“그래서, 설마 천하의 만마성이 미꾸라지 몇 마리 때문에 흙탕물이 되겠냐고 말했지요.”
혁무천은 말을 마치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탕!
천조익이 탁자를 치며 몸을 반쯤 일으키고,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혁무천을 으르렁거렸다.
“네놈이 감히 우리를 욕보일 심산인 게로구나!”
혁무천은 그리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 미꾸라지가 전주셨습니까?
“…….”
“아니라면 굳이 화를 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천조익은 자신이 그 미꾸라지라고 수긍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열이 뻗쳤다.
“네놈이 이름 좀 얻었다고 겁이 없구나.”
혁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냉소를 지었다.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는 분들이군.”
혈마전주 덕원도 일어나서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의 근원은 무천이란 놈이었다.
뭐가 저리 자신만만하단 말인가.
아무리 성주와 대장로를 믿는다 해도 지나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덕원과 달리 천조익은 혁무천의 말에 인내의 끈이 뚝 끊어졌다.
“뭐야? 네놈이 감히!”
쾅!
그는 잡고 있던 탁자를 손바닥으로 세차게 후려쳤다.
두껍고 커다란 탁자가 붕 뜨더니 혁무천을 덮쳤다.
혁무천은 우수를 들어서 탁자를 잡았다.
무게만 해도 백 근은 나갈 탁자가 그의 손에 잡힌 채 허공에 떠있는데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성주와 대장로께서 왜 근심이신지 알 것 같군. 나이 드신 분들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니 만마성이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지.”
냉랭한 혁무천의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좌우에 조용히 서 있던 두 호위무사가 그를 향해 몸을 날리며 검을 뽑았다.
“건방진 놈!”
“어디서 감히 전주님께 망발이냐!”
혁무천은 잡고 있던 탁자를 부채 휘두르듯 좌우로 휘둘렀다.
부웅! 붕!
퍼벅!
달려들던 호위무사들이 부채에 얻어맞은 파리처럼 날아갔다.
콰앙!
혁무천은 호위무사들을 날려버린 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천조익의 감정을 긁었다.
“찍어서 먹어봐야 맛을 알 것 같다면 할 수 없지요.”
발끈한 천조익이 튕기듯 몸을 날리며 두 손을 뻗었다.
“이놈!”
손가락이 독수리 발톱처럼 구부러진 양손에서 시퍼런 기운이 일렁였다.
그가 자랑하는 천살마조(天殺魔爪)였다.
혁무천은 천조익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광천장으로 마주쳐갔다.
철판조차 찢어버리는 천살마조가 혁무천의 손바닥을 찍어갔다.
찰나 간 천조익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도 순간뿐, 천조익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쾅!
폭음이 울리더니,
“흐읍.”
얼굴이 일그러진 천조익이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혈마전주 덕원이 혈마장을 펼치며 혁무천의 측면을 공격했다.
거리가 기껏해야 이 장 안팎. 공격을 시작하고 눈 깜짝할 순간에 덕원의 핏빛 장력이 혁무천의 좌측을 덮쳤다.
마도의 인물답게 일말의 인정도 없는 공격이었다.
상대가 죽는다 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가 깃든 공격.
혁무천은 덕원의 공세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냉소를 지은 채 몸을 틀었다.
덕원의 입가에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때 혁무천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눈앞에 커다란 손바닥이 보였다.
덕원은 눈을 치켜뜨며 혈마장의 방향을 틀어서 마주쳐갔다.
떠덩!
덕원은 손바닥에서 시작된 충격이 가슴까지 밀려들자 이를 악물고 거리를 벌렸다.
울컥!
가슴에서 찡한 느낌이 들더니 뭔가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이, 이런 강함이라니…….’
연이은 두 고수의 공격을 차단한 혁무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천조익과 덕원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곳에 오면서부터 작정하고 온 터였다. 기를 꺾을 때는 단숨에 꺾어야 하는 법.
“제가 그랬지요. 아직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시는 것 같다고. 아무래도 나이가 드시니 판단력이 떨어지나 보군.”
천조익과 덕원은 이를 악문 채 혁무천을 노려보기만 했다.
단 일수 일장의 격돌이었지만 혁무천의 강함을 아는 알기에는 충분했다.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니 소문보다 더 강한 듯했다.
그때,
고오오오오.
혁무천의 전신에서 막강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그를 중심으로 휘돌았다.
“그동안의 명성을 믿고 티격태격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시는 것 같은데, 내가 알려드리지. 당신들이 지금 얼마나 웃긴 짓을 하고 있는지.”
혁무천을 중심으로 휘돌던 기운이 점점 반경을 키워나가면서 모든 것을 부쉈다.
스스스스스스.
탁자도 가루가 되어서 주저앉고, 의자도 먼지처럼 부서졌다.
천조익과 덕원은 눈을 부릅뜨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혁무천이 우수를 들자, 그의 우수 장심에서 회오리 같은 기운이 퍼져 나갔다.
해쓱하게 질린 천조익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멈추게!”
“어차피 이곳에 있는 몇 명 죽는다 해도 만마성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거요.”
혁무천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쌍장을 두 사람에게 뻗었다.
천주익과 덕원은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조심하게!”
덕원이 악을 쓰듯 외치고 뒤로 물러섰다.
천조익도 한발 늦게 뒤로 몸을 날렸다.
혁무천의 장력이 그런 두 사람에게 밀려갔다.
천조익과 덕원은 전력을 다해서 혁무천의 장력에 맞섰다.
콰르르릉, 콰과광!
뇌성벽력이 떨어진 듯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읍!”
“커헉!”
정신없이 뒤로 밀려난 천조익과 덕원은 다급히 중심을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스르르릉.
혁무천이 검을 뽑고 있었다.
“똘똘 뭉쳐서 힘을 합쳐도 만마성의 영광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거늘, 역천을 꿈꾸다니!”
“머, 멈추게!”
“잠깐!”
천조익과 덕원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합창하듯 소리쳤다.
혁무천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말이야!”
가가가각.
혁무천이 늘어뜨린 천망검 검첨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바닥을 스치자 청석으로 된 바닥이 깊게 파였다.
츠츠츠츠츠츠.
혁무천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듯 휘도는 기운 역시 청석을 파 들어가며 둥근 원을 그렸다.
이대로 가면 방 안의 모든 것이 그 기운에 휘말려서 부서질 것 같았다.
천조익과 덕원은 그 가공할 광경을 보고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혁무천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황급히 말했다.
“우, 우리도 성주에게 반할 생각은 없네!”
“그래, 그러니 차분히 이야기 하세!”
혁무천은 검을 들다 말고 멈칫했다.
“그 말, 정말이오?”
“다, 당연하지.”
“물론이네.”
“성주님의 말씀에 따르겠다는 말,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소?”
“…….”
천조익과 덕원은 서로를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혁무천의 검이 다시 올라갔다. 넘실거리는 강기의 기운이 서서히 용인지 뱀인지 모를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싫다면…….”
“매, 맹세하겠네!”
“그, 그럼! 맹세할 수 있지!”
그때였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말, 잊지 마라! 내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
대장로 천두공이었다.
혁무천이 검마전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안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혁무천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리자,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화들짝 놀라서 대답한 천조익과 덕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필이면 대장로가 그 말을 듣다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혁무천은 검을 거두고 천두공을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두 분도 만마성의 결속에 깊은 관심이 있더군요. 앞으로 두 분이 적극적으로 성주님을 도와드리겠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언제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천조익과 덕원은 속이 끓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만 가시지요.”
밖에는 검마전과 혈마전의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전각 안에서 나오는 천두공과 혁무천을 보고 눈치를 봤다.
두 사람은 그들 사이를 지나서 검마전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냥 확, 팔다리를 부러뜨리시지 그러셨소?”
천두공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혁무천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아마 당분간은 성주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성주께 말씀드리고, 적당한 때에 전주를 바꾸시지요.”
“흐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이다.”
***
다음 날 아침.
천양묵은 혁무천을 불렀다. 사야는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에 좀 시끄러웠나 보더군.”
그도 이미 전날 저녁에 벌어진 소동을 알고 있었다.
“그랬습니까? 저는 화광이 만나고 돌아가서 쉬느라 몰랐습니다.”
천양묵은 혁무천을 빤히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자넨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남들은 조금만 공을 세워도 내세우느라 바쁘다. 그런데 혁무천은 만성으로 앓던 이를 단숨에 빼주고도 누가 그랬냐는 투였다.
“화광이의 얼굴도 전보다 밝아졌더군.”
“다행이군요. 의기소침해서 풀죽어 지내면 보기가 싫었을 텐데 말입니다.”
“고맙네.”
천하의 만마존 천양묵의 입에서 진심이 담긴 인사말이 나왔다.
혁무천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짓고는 담담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