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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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12화
312화
혁무천이 후회를 하기까지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환무신법 기초수련을 시작했다.
먼저 구결을 익히게 하고 기본자세와 자세변환에 대한 시범을 보여줬다. 그 모습을 볼 때만 해도 환상적인 신법이라면서 은설과 한유림 둘 모두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구경하는 것과 본인들이 직접 연습하는 것은 너무 큰 차이가 났다.
발이 꼬여서 꼬꾸라지고, 몸을 틀다가 넘어져서 떼구르르 굴렀다.
초절정 경지에 들어선 은설도 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다.
막상 땅바닥을 구른 은설은 별 불만이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자세가 잡히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혁무천이 애가 닳았다.
괜히 가르쳐준다고 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는 은설이 넘어질 때마다 흠칫거렸다.
‘저, 저…….’
그러다 제대로 자세를 잡으면 한숨을 쉬며 표정을 풀었다.
그나마 수련장이어서 다른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누군가가 봤다면 팔불출이라며 한소리 했을지도 몰랐다.
“와아, 되게 어렵네요.”
은설이 소매로 땀을 닦으며 고개를 내둘렀다.
“힘들면 설아 너는 하지 마라.”
혁무천이 걱정해서 그리 말했지만 은설은 절대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힘들다고 포기하면 아무 것도 못 배운다구요.”
그때였다.
“대형!”
목량이 수련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왠지 굳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
“서평에 있던 철혈마련과 귀천교가 서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움직임 때문이라면 목량이 저리 급하게 달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전면전이 시작되는가?
“다른 쪽은?”
“사도맹도 황하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개방에서 긴급으로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패왕문 무사로 보이는 자들 수백 명이 황하를 건너서 개봉성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팔대마세 중 네 곳이 움직였다.
만마성과 마천문도 곧 움직일 것이다.
그뿐이랴, 마도십문도 호시탐탐 세를 키울 기회를 노릴 것이고, 숨죽이고 있던 정파들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회의를 소집해라.”
“예, 대형.”
회의에는 삼십여 명이 모였다.
이현과 백리양, 목량은 물론이고, 송비가 이끄는 십당과 각 장원의 오대 대주들. 그 외 동대안과 은설, 이정과 전교가 자리했고, 비천은 철명군과 중리안이, 밀소림에서는 운정과 운룡이 참여했다.
거기다 무원장의 상행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오대행수까지.
넓은 대전에 사람들이 들어차자, 먼저 목량이 현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굳이 자세하니 알릴 것도 없었다.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목량의 설명이 끝나자, 이현이 혁무천을 보며 물었다.
“장주, 관여하실 겁니까?”
모두의 시선이 혁무천에게 집중되었다.
무원장은 분명히 상인집단이다.
하지만 이곳의 누구도, 천하의 강호세력들도 무원장을 단순한 상인집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금 강호에서 가장 큰 변수로 등장한 무원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강호 판도가 달라질 판이었다.
“나는 무원장을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을 생각이 없다.”
혁무천은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
몇 사람의 얼굴에는 안도의 표정이, 몇 사람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도 없다. 결국은 우리 무원장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혁무천이 덧붙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말을 멈춘 혁무천은 좌중의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나직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느 누구든, 우리 무원장, 아니 구룡상단을 건드린다면 단호하게 처리할 거다. 천하에 그렇게 알려라. 우리 무원장과 구룡상단의 상행을 방해하는 자들은 상대가 누구든 무원장의 적이 될 거라고.”
어쩌면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전율이 일었다.
특히 상인의 대표인 행수들은 눈이 찡할 정도로 격한 감정이 일었다.
당금 강호에서 어떤 상인이 강호세력에게 그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백년 간 천하제일상단이라 불린 천화상단조차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었다.
“예, 장주. 그런데 금룡장도 포함되는 이야기인지요?”
이현이 대답하고 다시 물었다.
금룡장은 정은맹의 주력이 머물고 있는 남양에 있지 않은가. 당장의 현실만 해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당연히 금룡장도 구주 중 하나 아닌가. 만약 금룡장이 피해를 본다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낼 것이다. 그에 대해서도 남양에 소문을 내라.”
“예, 알겠습니다, 장주.”
“그리고 빠른 대응을 위해서 내가 직접 비양으로 갈 거다.”
전황이 무원장까지 전해지려면 아무리 빨라도 하루는 걸렸다.
반면 비양은 남양과 무원장 중간 지점이었다.
그곳에서라면 정은맹과 마도의 싸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혁무천의 생각과는 다른 의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대안이 혁무천을 째려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설마 싸움구경을 하기 위해 가려는 건……?”
“동 형은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좋소.”
“무슨 소리! 내가 가야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적의 정체를 알아내지.”
동대안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혁무천도 그 점은 인정했다.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의 얼굴에 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천하를 뒤져봐도 동대안밖에 없을 것이다.
“이현, 인원은 오백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내일 아침에 출발할 것이니 준비해 놓도록.”
“예, 장주.”
이후 세세한 지시가 이어졌다.
이현과 목량이 현 강호의 상황을 분석하고 백리양은 상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말이 이어질수록 열기가 뜨거워졌다.
***
무원장에서 논의가 뜨거워질 때, 철혈마련 무사들이 방성 서쪽 팔십 리 지점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귀천교 무리는 그보다 북쪽으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신향을 빠르게 스쳐가는 중이었다.
정은맹에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남양과 방성의 중간지점인 수향에 무사들을 집결시킨 정은맹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밤이면 방성에 도착할 겁니다, 맹주.”
신도명산은 보고를 듣고 냉소를 지었다.
“총단의 무사들은 어디쯤 내려왔느냐?”
“지금쯤 운양을 통과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제때 도착하겠군.”
만가장에 남겨 놓은 무사들이 내려오고 있다. 운양에서 방성까지는 백리 거리. 그들만 제때 도착한다면 철혈마련과 귀천교에 한방 크게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신도명산은 고개를 돌려 주금화를 바라보았다.
“왕야, 이번 싸움만 승리한다면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겁니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길 바라네.”
주금화는 담담히 대답하고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사마가의 어린놈이 제대로 일만 처리해준다면…….’
***
수향에 도착한 철혈마련과 귀천교의 주력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정은맹을 공격했다.
철혈마련에서는 예정대로 우문척이 선봉에 섰고, 귀천교에서는 악사광이 나섰다.
바람을 등지고 내달린 무사들은 정은맹 무사들이 구축한 진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은맹에서는 오천 무사가 나서서 그들의 공격에 맞섰다.
그때부터 혈풍이 휘몰아쳤다.
철혈마령대를 이끌고 선봉에 선 우문척은 정은맹의 수뇌부 중 한 사람을 상대했다.
그의 상대는 사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석자 장검을 사용하는 중년인은 우문척에게 밀리지 않고 맞섰는데, 우문척이 절대 경지에 들어선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문척은 오십여 초를 상대한 후에야 상대의 정체를 눈치 채고 냉소를 지었다.
콰과광!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쿵쿵거리며 뒤로 다섯 걸음 물러선 우문척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훗! 황산검호가 팔대마세의 주인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고수라더니, 빈말은 아니었군.”
중년인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문척을 노려보며 검을 중단으로 들어올렸다.
황산검호(黃山劍豪) 능화문.
정파의 고수 삼성, 오절, 칠웅 중 칠웅에 속해 있으며, 무위만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알려진 고수가 그였다.
그는 황산에 칩거한 후 세상에 안 나온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신도명산의 초청을 받고 천기회에 몸담은 터였다.
“우문척이라 했던가? 마도 놈이 제법이구나.”
“후후후, 오늘 이후로 칠웅이 육웅이 될 거다. 본 공자의 손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우문척은 조소를 지으며 검을 뻗었다.
가슴 높이에서 뻗은 그의 검첨을 타고 광폭한 검강의 기세가 폭주했다.
“네놈의 목이나 조심해라!”
능화문이 한소리 내지르고는 땅을 박차고 우문척을 향해 날아갔다.
우문척 역시 몸을 날리며 능화문을 향해 검을 뻗었다.
바로 그때, 우문척에게서 기이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막 우문척을 공격하려던 능화문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느낌이 그의 기운이 움직이는 걸 억압했다.
비록 그 순간은 흠칫한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고수들 간의 격전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럴 거라 예상한 듯 우문척은 능화문이 움찔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실낱같은 틈을 비집고 종잇장처럼 얇은 검강이 파고들었다.
쩌정! 서걱!
능화문이 다급히 빈틈을 인지하고 검을 틀었지만 완벽히 막지는 못했다.
그 바람에 우문척의 검강이 그의 왼쪽 팔을 반쯤 자르고 지나갔다.
“크읍!”
옆으로 몸을 튼 그는 신음을 삼키고 급히 거리를 벌였다.
우문척은 그를 추적하며 검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천기회 고수 둘이 양쪽에서 날아들며 그를 공격했다.
‘제기랄!’
아쉬움을 접은 우문척은 검을 돌려서 천기회 고수를 상대했다.
그 사이 능화문은 거리를 이십 장 까지 벌린 다음 뒤로 빠졌다. 그 와중에도 그의 왼쪽 팔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문강천은 오 리 정도 떨어진 언덕 위에서 뒷짐을 진 채 전황을 주시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반 시진째 이어졌다.
혈전이 혼돈으로 빠져들면서 피가 강처럼 흘렀다.
전체적인 전황은 철혈마련과 귀천교 쪽이 유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은맹이 점점 뒤로 밀렸다.
그럼에도 우문강천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파 놈들 따위를 상대하면서 반 시진 동안 승부를 내지 못하다니!
그나마 위안이라면, 우문척이 황산검호 능화문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냉정하면 좋으련만.’
그런데 그때, 북쪽의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자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몇 백에 불과한 듯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숫자가 늘어나더니 근 이천여 명에 달했다.
여주의 만가장에서 출발한 무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홍!”
우문강천이 부르자, 우문홍이 곧바로 대답했다.
“예, 련주.”
“철혈사령대를 북쪽으로 돌려라! 철혈귀령도 보내고!”
“알겠습니다, 련주!”
신도명산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무사들을 보고 표정이 펴졌다.
“드디어 왔군.”
그도 전세가 밀리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믿는 바가 있었기에 무사들을 독려해서 버텼다.
그런데 마침내 총단의 무사들이 도착했다.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검을 뽑아든 그는 저 멀리 서 있는 우문강천을 향해 소리쳤다.
“우문강천! 그대는 나와 싸워보자!”
공력이 실린 그의 목소리가 비명과 악다구니 사이를 뚫고 우문강천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커다란 철혈도를 빼든 우문강천이 마주 소리쳤다.
“와하하하! 얼마든지 와라, 신도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