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1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11화
311화
“자넨 참 이상한 사람이야.”
“제가 이상하다고요? 흐음, 뭐 가끔 설아에게도 그런 소릴 듣긴 합니다만, 막상 군사께서 그리 말하니 기분이 정말 이상하군요.”
“어쩌면 내 인생에서 의형을 만난 걸 제외하면, 자네를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일 거네.”
“저를 만난 걸 행운이라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사실 저도 군사와 만나서 큰 이득을 얻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지요.”
“큰 이득?”
“대정맹이 섬서 강호를 접수했으니 앞으로 거래가 더 많아질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건 그렇군.”
“그리고 제가 상가장과 함께 서역과의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도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빚을 갚으려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나.”
서역 교역을 망설이지 않고 추진한 이유 중에는 대정맹과의 관계도 고려되었다.
섬서를 대정맹이 장악하게 된 이상 최소한 섬서에서 상가장을 건드릴 자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이사명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나도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네만.”
“말씀하시지요.”
“나는 의형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때가 되면 빚을 갚아줄 생각이야. 그때도 자네가 도와주었으면 하네.”
“다행이군요.”
“뭐가 말인가?”
“그 상대가 저희 거래처가 아닌 게 말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장안을 출발한 지 사흘 후.
낙양에 도착한 혁무천은 방성에서 벌어진 싸움 소식을 접했다.
정은맹과 귀천교, 철혈마련이 방성에서 한바탕 붙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칠백 명이 넘는 무사들이 쫓고 쫓기며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전멸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겨우 십여 명.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정은맹 무사들이 귀천교와 철혈마련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정혈단이 나타나서 적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수를 펼쳤다고 했다.
결국 정은맹과 귀천교, 철혈마련은 무사 삼천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싸움을 멈추었다.
혁무천은 낙양에 하루 더 머무르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다음 날 아침 곧장 무원장으로 향했다.
복우산 혈전 때만 해도 주 전력이 남아 있던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된 싸움으로 주 전력마저 소모되고 있는 판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복우산 혈전 때보다 피해가 작으니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귀천교나 철혈마련이 피부로 느끼는 충격은 그때보다 더 클 수밖에.
더구나 마황궁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곧 들을 터. 그들도 이제는 전력을 다 끌어낼 것이다
결국, 전면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말이었다.
***
쾅!
한 뼘 두께의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잘게 부서지며 주저앉았다.
“이 개새끼들!”
우문척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욕을 퍼부었다.
눈에서는 광기에 가까운 붉은 광채가 번뜩였다.
놈들에게 당한 것이 벌써 두 번째다.
더구나 이번에는 일천오백 무사 중 팔백을 잃었다.
천하를 노리는 그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혈단. 이제는 악사광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잡아서 찢어죽을 거다!”
우문척이 이를 갈면서 광기에 가까운 눈빛을 번뜩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대공자.”
홱, 고개를 돌린 우문척이 들어온 자를 노려보았다.
사십 대 중반의 중년인. 철혈마령대 대주 역귀산이었다.
“무슨 일이오?”
“련주님께서 이천 정예를 이끌고 총단을 나서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요? 아버님이 나오셨다고?”
“현재 속도라면 모레쯤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
철혈마제 우문강천이 직접 나섰다는 건 그만큼 현 상황을 안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우문척에 대한 철저한 신임이 무너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귀천교 역시 대장로인 악전웅 장로가 교주의 명을 받고 나선 걸 보면, 아무래도 련주님께서 귀천교와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문척은 그 말을 뜨고 감정을 누른 후 눈을 가늘게 좁혔다.
철혈마련과 귀천교의 주력이 나섰다면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뜻.
아직 무너진 신임을 회복할 기회는 남아 있었다.
아니, 신임만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진정한 철혈마련의 후계자임을 보여주리라!
‘할 수 없지. 최후의 대적을 만났을 때 쓰려 했던 힘을 개방하는 수밖에!’
***
이틀 후. 우문강천이 철혈마련 정예 이천 무사를 이끌고 서평에 도착했다.
장로와 고위 간부들이 늘어선 대전 안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우문척도 입을 꾹 닫은 채, 상석에 앉아 있는 우문강천을 바라보았다.
우문강천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문척을 보며 혀를 찼다.
“쯔쯔쯔, 꼴 하고는.”
“죄송합니다, 아버님.”
“세상이 네 생각처럼 쉽지 않지?”
우문척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책임을 지고 철혈마련 무사들을 지휘했지 않은가.
그런데 두 번에 걸쳐서 일천 명 이상의 피해를 입었으니 뭐라 할 건가.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뒤로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제가 너무 안이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습니다. 선봉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우문척이 강한 어조로 말하자, 한쪽에 서 있던 우문양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이번만큼은 선봉에 자신이 서고 싶었다. 그런데 부친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은 이번에도 뒤로 처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문강천이 말했다.
“자신 있느냐?”
“예, 아버님.”
“이번에도 문제가 생기면, 너에 대한 후계자 자리도 다시 생각하게 될 거다. 그래도 선봉에 서겠느냐?”
우문척은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맡겨 주십시오.”
탁, 탁, 탁.
우문강천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반개한 채 의자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서 있던 고위간부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철혈마원에서 쉽게 움직이지 않던 고수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이 우문강천의 결정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선봉이 누구냐에 따라서 작전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우문강천이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치던 행동을 멈추고 말했다.
“좋다. 한 번 더 맡기마. 마원의 철혈마단이 너를 도울 것이니 놈들에게 철혈마련의 위엄을 보여줘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우문척이 힘차게 대답한 반면, 우문양은 이를 악물었다.
‘또 형에게 밀리는군.’
게다가 마원의 철혈마단조차 지휘권을 형에게 넘겼다.
이를 악다문 그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
중원에 혈풍의 회오리가 서서히 휘돌기 시작할 때쯤 무원장에도 변화가 일었다.
강호는 이제 무원장을 단순한 상인집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의 다툼에서 팔대마세의 자존심을 꺾었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섬서에서 마황성과 싸운 일도 알려진 터였다.
비록 평문에서의 사건만 알려졌지만.
-야율호가 무원장 장주와 장주의 여동생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무원장주 무천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와중에 마황성 무사 오백이 무원장 무사들에게 죽었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강호에서 무원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정맹에게 마황궁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강호를 강타하는 바람에 야율호의 죽음이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무원장에 도착한 혁무천은 철혈마제 우문강천이 직접 나섰다는 보고를 받고 이현과 백리양에게 명령을 내렸다.
“곧 강호의 판도를 가를 피바람이 휘몰아칠 거다. 만반의 준비를 해놓도록 해라.”
혼돈천하, 대격전의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현도 돌아가는 형세를 모르지 않았다.
“무원장 인근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인데,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손해 보는 일이야?”
“장기적으로는 손해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땅이란 게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어서…….”
혁무천도 이제는 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이현의 말을 듣고 매입한 장원과 그 일대의 땅값이 배 가까이 오른 상태였다.
“필요한 만큼 써.”
“알겠습니다, 장주.”
이후 이현은 중원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장원을 연결해서 오행의 체계를 갖추겠다며 땅을 사들였다.
이현은 그 일을 위해서 은자 백만 냥이라는 거금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오행을 이루는 다섯 개의 장원 사이에 있는 대부분의 땅과 건물들을 사들인 것이다.
그로써 무원장에 속한 권역만 해도 삼십만 평이나 되었다.
혁무천은 은자 백만 냥이 팔일 만에 빠져나간 걸 보고 입맛만 다셨을 뿐 막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원장에 몰려든 무사들의 숫자만 해도 이천 명이 넘었다.
천하 곳곳에서 사들이는 물건만 해도 하루에 마차 수십 대 분이 들어왔다.
어차피 창고도 있어야 하고, 무사들이 생활할 수 있는 편의시설도 있어야 했다.
시일이 흐르면 땅값도 오를 것 같고.
일단 무원장의 오장을 하나로 연결한 이현은 조직 또한 새롭게 정립했다.
서원장의 밀소림과 중원장의 비천은 예외로 하고 무사대를 모두 십당 오대로 나누었다.
각기 백여 명으로 이루어진 십당은 표행에 대한 호위를 맡았는데,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간편하게 숫자로 정했다.
십당의 당주는 일당주인 송비를 비롯해서 일도마혼(一刀魔魂) 나등산, 화천수(火天手) 오명극 등 최소한 절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오대는 각 대 이백 명씩 무원오장에 각 일대씩을 두었다.
이천 명이 넘는 무사들이 오장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자 강호의 그 어떤 세력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력이 되었다.
게다가 무원장에는 비천과 밀소림의 고수들이 있었다.
한편, 무원장 개편을 이현에게 맡겨 놓은 혁무천은 한유림의 수련을 봐주었다.
열여섯 살이 된 한유림은 수련에 열중해서 이제는 제법 한 사람 몫을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한유림을 전장이나 다름없는 강호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전장에 나갈 정도가 되려면 아직은 더 여물어야 했다.
본인은 생각이 조금 달랐지만.
“대형, 저도 이제는 대형을 따라다니면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아직은 안 된다. 지금보다 배는 더 강해져야 겨우 네 한 몸 지킬 수 있다.”
“…….”
한유림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하지만 혁무천은 단호했다.
“난 네가 가문을 일으키기도 전에 죽는 걸 원치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대형.”
“대신 너에게 천구지학 외에 신법 하나를 가르쳐주마. 제대로 익히면 너보다 강한 사람의 공격에서도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다.”
혁무천의 그 말을 듣고서야 한유림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천구지학이 뛰어난 상승무공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격력이 뛰어난 대신 신법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감사합니다, 대형!”
“근데 배우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다. 환무신법은 미치지 않고서는 익힐 수 없는 신법이거든.”
“그럼 저도 미쳐보죠 뭐.”
“좋아! 그럼 내일부터 환무신법을 가르쳐주마.”
그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요?”
은설이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며 입술을 삐죽였다.
“유림이만 동생이고 저는 뭐 동생 아닌가요? 왜 사람 차별해요?”
아무래도 요 며칠 한유림의 수련만 봐주었더니 삐진 듯했다.
“그럼 너도 함께 배워.”
“정말요?”
“싫으면 말고.”
“무슨 소리예요! 저도 배울 거예요. 고마워요, 오빠. 호호호호.”
언제 삐쳤냐는 듯 은설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 조금 걱정이 되었다.
환무신법을 가르쳐주는 건 어려울 것 없었다. 문제는, 환무신법의 기초만 배우려 해도 바닥을 수천 번 굴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힘들다고 투덜거리지나 않을지…….
‘뭐, 지가 먼저 배우고 싶다고 했으니 나를 원망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