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75화 (완결)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75화 (완결)
275화. 새 시대를 맞아 각자가 살아가는 법
평화로운 새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자리에서 꽃을 피웠다.
우선 무영삼귀의 경우, 세 사람은 각각 뿔뿔이 흩어졌다.
천강이 자신을 따라다니지 말고 각자 가족을 꾸리고 살라며 오목골에서 내쫓았기 때문이다.
무림맹과 마교가 전례 없는 화합을 이루고 있는 이 시점에, 그들이 굳이 천산에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중원 각지로 흩어져 가정을 일구었다. 종종 날아드는 서신을 볼 때면 매우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암룡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했다.
그녀 또한 천강에게 쫓겨 가정을 만들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사천에 있을 시절 홍루에서 그녀는 인기가 좋았고, 중원을 여행하던 중 그곳에 우연히 들렀다가 졸지에 잡히게 되었다고 했다.
복수를 완료한 이후 암룡은 그저 천강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따르고 있을 뿐이었던 터라, 그렇게 그녀는 홍루의 여인들과 지내게 되었다.
날아오는 서신 내용을 보면 꽤 즐겁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새 가족을 얻어 그런 것이겠지.'
천강이 두 개의 서신을 접어 한쪽에 올려둔다. 조금 있자, 마인 하나가 튀어와 보고했다.
"어르신!"
"어. 뭔 일이야?"
"금나한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천강에게 천잠사를 건네주고 사라지는 배달원.
'아, 새끼. 그만 보내도 된다니깐.'
아귀 주제에 정이 이리 많아서…….
농사를 지으면 꼭 이렇게 일정량을 보내온다.
그래도 녀석은 요새 꽤 잘나갔다. 무저갱에서 천잠사 농사를 짓던 억중은 기어이 자연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이내 그 땅을 넓혀 그곳에 큰 농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 결실이 제법 괜찮은지, 명계뿐만 아니라 선계에도 종종 올려 보내 교역을 할 정도라고.
천잠사를 펼치자 그 안에는 복숭아 하나가 들어있었다. 선계에서 가져온 귀한 것이리라.
"……다들 잘 나가네."
천강이 잠시 복숭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잠사와 함께 챙기고 집을 나섰다. 오목골을 나서길 잠시, 이내 저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여인과 마주쳤다.
"응? 천강, 어디가?"
"아, 잠깐 누굴 좀 만나러. 이거 받아."
천강이 던지는 복숭아를 받아드는 천수향.
"어? 이거 천도야?"
"맞아. 억중이가 또 보내왔더라."
"오오. 그래? 걔 참 쓸 만하네? 사람보다 더 나은 것 같아, 됨됨이가."
천수향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는 오목골로 올라간다. 그러다 그녀가 홱 몸을 돌리더니 천강에게 손짓했다.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알겠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하산하는 천강.
그에게 사람들이 예를 갖춘다.
"흑살마신님, 좋은 정오입니다!"
"흑살마신님, 강녕하셨습니까."
"흑살마신님!"
"흑살……."
일일이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주며 천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웬 희한한 소문이 돈 뒤로, 천산에는 마인들 뿐만 아니라 사방천지에서 모여든 무림인들로 인해 온통 북적거렸던 것이다.
명계와 선계로 통하는 문이 천산에 있다나 뭐라나.
'대체 그걸 어떻게 안 거지?'
그런데 더 아리송한 건, 그 출처가 천강 본인의 입이라는 것이었다.
'희한하네. 내가 그 대화를 나눈 건 사자왕인데, 녀석은 아니라 하고.'
그때 있던 다른 두 녀석에게 물어보려 해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추궁할 수도 없다.
"젠장. 대체 어떤 놈인지."
천강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천산 밑자락 강가에 다다랐다. 그곳에 다다르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생명체가 물 위로 슥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흑사였다.
"여어. 잘 지냈어?"
끄덕끄덕.
"표정을 보니 잔뜩 들뜬 게 오늘이 마지막인가 보구만?"
흑사가 그렇다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천강이 검은 안개에서 절굿공이와 절구를 꺼내 들었다.
일전에 흑사는 승천 직전에 천강에게 내기를 빼앗겨, 그게 한없이 미뤄진 전적이 있었다.
그것이 미안해 천강이 주기적으로 영약을 만들어 주었고, 그렇게 이제 승천 직전에 다다르게 된 흑사였다.
쿠구구구구.
절굿공이로 힘껏 후려치자 절구 안으로 덩그러니 생겨난 영약. 그것을 탁 던지자, 흑사가 냉큼 집어먹는다.
그리고 곧 돌연 사방으로 바람이 일며 상승기류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른하늘 위로 돌연 검은 먹구름이 몰리고, 뱅글뱅글 돌며 빛과 함께 구름이 우렛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에 따라 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조금씩 조금씩 주위의 모든 걸 빨아들이며 주위 강물조차 빨아올려 하늘 위로 쏘아 보내는 광풍은 이내 거대한 영물 흑사까지 들어 올렸다.
천강이 재빨리 녀석의 코 위에 올라타 툭 물건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것은 이내 휘리릭 날아가, 앞발과 여의주 사이로 꼬옥 틀어박혔다.
"잘 가고. 이건 노잣돈으로 쓰고. 그거 요새 선계에서 비싸게 거래된다니까, 너무 싸게 넘기진 말고."
끠잉-
흑사가 눈망울을 그렁그렁 매단다.
이렇게 착한 인간을 처음 만났을 땐 왜 잡아먹으려 했는지.
"자, 그럼 얼른 가라. 바람 꺼지겠다."
천강이 녀석의 콧등 위에서 뛰어내리고, 곧 흑사가 소용돌이를 타고 하늘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 하늘이 개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밝은 빛이 지상에 내려앉았다.
"……다 가는구나, 다 가."
흑사가 사라진 곳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는 천강. 문득 백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 하늘의 큰 관심을 받는 이를 죽인 자여. 그대는 그 사실을 알고도, 살생을 자제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저버렸다.
두 번째 선택에 대한 대가. 하늘이 천강에게 내린 벌은 이러했다.
- 흑살마신 천강 그대에게 선계 출입 금지를 명하노라.
선계 출입 금지.
즉, 우화등선을 금지당한 것이다. 뭐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화타도 천 년 넘게 못 하고 있지 않았던가?
같은 이유는 아니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형벌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건 예측이 가능했다.
그에 씁쓸함을 갖고 고개를 숙이는 그때 백호가 천강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 그러나 그 선택이 다른 이들의 평안과 안위를 위했다는 걸 참작해, 그 기한을 일천 년으로 한다.
일천 년간의 우화등선 금지.
그에 천강이 이리 흑사가 사라진 곳을 가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천강이 찬찬히 발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아직 형벌이 끝나기엔 너무도 많은 세월이 남아 있었다.
***
'근데 문제네.'
아까 내려올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집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천도복숭아를 오늘 건네주는 게 아니었나.'
조심조심 오목골 결계를 지나자마자 집 주위를 살피는 천강.
그런데 그때 천수향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천강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야. 어디가?"
"어. 방금 애들한테 연락이 왔는데, 잠깐 아이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네."
"그래?"
"응. 그래서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그러니 집 잘 지키고 있어."
오오오. 갑자기 없던 힘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천강이 어서 다녀오라며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결계 밖으로 향하다가 그 모습을 본 천수향이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고 천강에게 검지를 향했다.
"천강. 나 갔다 올 테니까, 청소랑 집 안 정리 다 해놔. 빨래도. 그리고 안 쓰는 신병이기들은 한쪽으로 좀 빼놓고! 김도 매고, 나무들 해충 정리도 좀 하고."
"……."
약 일각(一刻)가량 해야 할 일을 산더미처럼 주고 사라지는 여인.
그러나 천강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자연경에게 까짓거 반나절이면 충분하기에.
후다닥 숙제를 다 끝내고는 결계 밖으로 나선다. 오늘부터 자유라는 사실에 천강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뭔가가 재미가 없다.
밑에 애들은 다 제 살림 꾸리러 갔고, 좀 같이 놀만한 연배의 사람들은 천강의 가르침을 받아 이미 선계로 올라가 버렸고.
낚시도 50년 넘게 하니까 재미가 없고, 좀 싸울 만한 상대 없나 둘러봐도 있을 리가 만무했다. 자연경의 괴물딱지와 누가 싸워?
종종 너무 답답하면 신수들하고 한판 하는데, 걔들도 요샌 바쁘다며 안 놀아주는 실정이었다.
'심심해. 개 심심해.'
그놈의 선계 출입 금지 진짜…….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리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천강의 눈이 반으로 접혔다.
'마음에 안 들어. 앞으로 팔백오십 년을 더 대기해야 한다고?'
뭐 진짜 할 것 없나?
아아악! 맨바닥을 뒹굴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천강! 그때 천강의 머릿속에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오호라?"
***
"진악아. 그럼 잘 부탁한다."
천강이 천진악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진악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천강과 그 뒤 천산의 보고를 돌아보았다.
무림의 모든 일이 끝난 뒤, 사학 노인은 천강에게 이곳을 넘겨주었다.
그의 정체는 신교의 초대 교주인 검마였는데, 무제(武帝)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무제의 제자 중 신선의 반열에 오르는 이가 나타날 때까지 이승에 있기로 그는 약조를 했다.
그러다 천강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마침내 그토록 염원하던 우화등선을 하게 된 그였다.
그래도 누군가는 선계로 가는 문을 관리해야 하는바…… 할 일이 없는 천강이 잠시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물려줄 때가 되었다.
"야. 원래는 천산의 주인인 천 씨가 대대로 이곳을 지켜왔어. 그러니 너에게로 가는 게 맞지. 더구나 교주 딱지도 막 떼서 너 할 일도 없잖아?"
"그, 그렇지만!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본래 인생이란 그런 거야. 아무런 조짐도 없이 책임질 일이 쑥쑥 튀어나오는 거지."
잠시 천수향과 애들을 떠올린 천강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진악이 한숨을 탁 내쉬고는 천강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젠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천강이 천산에서 제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천산의 보고를 관리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때려치웠으니 돌연 궁금증이 일었던 것.
"아아. 있어. 신세계를 보러 가보려고."
"신세계요? 아직 체험 안 해본 것도 있습니까?"
"뭐 그렇지?"
천강이 천진악에게 손을 흔들고는 천산을 내려갔다. 그런 천강이 향한 곳은, 뜨거운 열기가 자욱한 무저갱 최하단이었다.
천강이 추혼살개과 그 동료에게 인사를 한다.
"여어. 둘 다 간만이야."
"하핫. 간만일세. 무탈한가?"
"나야 뭐…… 탈 날 일이 없으니 늘 평안하지. 그건 그렇고, 못 본 사이에 신수가 훤해지셨구만."
두 저승사자는 이전의 칙칙했던 때와는 달리 복식이 꽤 화려해졌다.
아마 그날 이후로 초고속 승진을 한 까닭이겠지.
그들이 하하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아무렴 자네만 할까."
"나?"
"아주 가는 곳마다 늘 듣는다네. 아주 신성화 되어 있더군."
황궁에 홀로 들어가 황제와 담판을 나누고, 이후 아이들을 구출해 빠져나온 강호의 영웅.
그의 이야기는 중원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듣는 전설 그 자체였다.
그러나 천강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러면 뭐 해. 아직도 집에서 잡혀 사는구만."
두 저승사자가 작게 웃었다. 그들은 천강의 매서운 시선에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웬일로 우릴 보자 했나?"
"저기 말이야."
천강이 두 저승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닥속닥거렸다.
천강의 이야기를 들은 두 저승사자가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황당하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뭐어어어?"
그로부터 일각(一刻) 후, 명계로 향하는 길.
안개와 어둠이 자욱이 깔린 저 밑바닥을 바라보며 천강이 묻는다.
"그러니까 여기로 떨어지면 다른 세계로 이동된다고?"
"그렇다더군. 혹자는 이 밑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 있어, 한 번 떨어지면 평생 빠져나오지 못한다고도 하고."
선임이나 상관, 대왕들에게 물어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뭐 미로라고 해봤자, 기약 없이 팔백 년간 선계에 올라가길 바라는 것보다야 이 밑이 더 재미있겠지. 혹여나 그 이상 갇혀있게 되면 선계 출입 금지를 내린 하늘에게 역으로 크게 한 방 먹일 수도 있고."
"……진짜로 내려가 보게?"
"어어. 이곳엔 더는 재미있는 게 없어서 말이야."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추혼살개와 그 동료.
"세상에 미친놈들은 많이 봤지만, 자네 같은 이는 또 처음이구만."
"여어. 고마워. 자네 덕분에 내가 오래 사네."
천강이 심호흡을 하고는 팔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 위로 보랏빛 검이 스르륵 생성되었다.
'혹시 모르니 안전을 위해 신물(神物)을 소환해 놓고.'
그렇게 떨어지기 전 한마디.
"그럼 인연이 닿으면 또 보자고. 만약 날 누군가 찾거든 모른 척 좀 해주고."
"알겠네. 맞다. 자네 부인이 찾으면 뭐라 할까?"
천강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먼저 선계로 올라간 것 같다고 해주게."
천수향은 진즉에 선계에 올라갈 수 있었으나, 애들이 걱정된다며 아직까지 미루고 있었다.
이러면 아마 적당히 애들이랑 놀다가 우화등선할 것이다.
"그럼 난 이만 가네!"
천강이 어둠과 안개가 자욱한 그 너머로 똑 떨어져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어둠이 크게 일렁이고, 이내 고요함이 그곳에 잔잔히 맴돌았다.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두 저승사자가 가볍게 예를 갖추고는 명계로 사라졌다.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