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7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72화
272화. 난 지지 않아
사(死).
죽음을 의미하는 글자 사(死).
무제(武帝)는 왜 달랑 이 한 글자만 적어 놓았을까. 어떻게 써야 하는지, 혹은 그 효과가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어놓으면 좋았을 걸 왜 그리하였을까.
무제는 신선이다. 그는 미래를 볼 줄 안다. 이걸 미리 준비한 걸 보면, 분명 날 만나는 걸 예측하였을 것이다.
근데 왜…….
- 제가 과연 그것을 시간 안에 이룰지 모르겠습니다.
- 뭐 못하면 별수 없지 않느냐. 죽어서 깨닫는 수밖에.
무제(武帝)와의 대화들이 속속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 경기가 어느 때 제일 재미있는지 아느냐?
- 그 실력이 비등비등할 때죠.
- 그래. 하늘이 주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와의 문답이 하나씩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 죄송합니다.
- 아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포기를 하지 않고 도전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하늘이 정한 싸움은 반드시 일어난다. 다만 그다음 미래를 모를 뿐.
하지만 포기를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게 되어 있다.
'무진이 때처럼.'
천강이 검은 안개에서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사(死).
- 소년, 왜 그러고 있는 건가요?
- 뭐 하는 것이냐?
무기를 뺏긴 이후 천강에게서 투지가 사라지자, 신병이기들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천강은 대답 대신 침을 조용히 빼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팔에 찔렀다.
- 소년!
- 무슨?!
큿. 침을 맞은 부위가 따끔거린다.
만독불침에 다다른 천강조차도, 무려 독 중 가히 최강이라 불리는 무형지독조차 해독해내는 천강의 신체라도, 독을 견디지 못해 크게 비명을 질러댔다.
'실수한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천강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믿었다.
이 독 자체는 승패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을. 또한 애초에 내구성이 한계에 다다른 이 침은 싸움으로 쓰기엔 매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이건 상대에게 쓰라고 준 게 아냐. 나 자신에게 쓰라고 준 거지.'
천강이 한 차례 비틀거리다 몸을 바로 세웠다. 따끔거리는 통증에 피부가 곤두서고 정신이 예민해진다.
가볍게 이는 바람에 털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느껴지고, 그것들이 모두 통증으로 다가온다.
찰나의 순간임에도 일각(一刻)처럼 느껴지는 기분.
"뭘 맞은 거지?"
"아아. 별것 아냐. 네놈도 스스로 몸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이기고자 용을 쓰는데, 나라고 몸을 아낄 수 있나. 최선을 다해야지."
"하하핫.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럼 다시 싸움을 시작해보자!"
태감이 천강에게 달려들었다. 매서운 연격이 천강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그것들을 피하는 천강의 몸은 위태위태했다. 그러나 천강의 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착 가라앉아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과연! 조금 전 맞은 게 뭔지는 몰라도 다르긴 다르구나!"
그도 그럴 게, 천강의 움직임이 태감을 완벽히 앞서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 속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작게 이는 바람에도 그 감각이 통증으로 고스란히 다가온 탓이다.
그래도 대자연의 기운이 속속들이 움직이는 게 선히 느껴졌다. 마치 천강 그 자신이 자연과 하나라도 된 것처럼.
'그런데 왜 난 아직도 현경인 거지? 왜?'
선계에서 무제가 보여주었던 신위가 떠오른다. 그저 시선을 준 것만으로도 나무를 베고, 비를 내리고 했던.
왠지 그게 가능할 것 같으나, 시도해본즉 천강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 사이 태감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큿."
천강이 양손을 모아 그 팔을 둘러 잡았다. 응당 잡으려 하면 피해야 할 것이나 태감은 그러지 않았다.
흡공을 쓰는 순간에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팽팽히 맞서는 기운. 천강의 눈이 부릅떠졌다.
"너……!"
"왜? 놀랍나?"
천강과 태감 사이로 큰 폭발이 일었다. 두 사람은 공터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밀려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태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탁탁 털며 말했다.
"참으로 신비한 무공이야. 모든 무학의 반대로 흐르는 내기 운용이라니. 몇 번 따라 해 보려 해도 그러지를 못하겠더군."
그럴 것이다. 북명신공은 다른 심법을 하나라도 익힌 자는 절대 익힐 수 없는 무공.
전생의 천강 또한 비급서를 찾은 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 부분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름 사용할 수 있게 개량을 해보았는데, 무진인가 하는 꼬맹이가 그러더군. 네놈이 쓰던 것과 다르다고. 그래서 좀 더 그럴듯하게 바꿔보았다. 어떤가? 좀 비슷한가?"
젠장. 천강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그걸 그대로 따라 하는 능력을 지닌 주제에, 그걸 자유자재로 개량까지 가능하다니.
이런 천재적인 재능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분명 급조로 만들었으니 틈은 있을 터.'
천강과 태감이 서로를 향해 내달려 다시금 부딪쳤다. 둘은 서로의 손바닥을 맞잡고는 내기 싸움에 돌입했다.
서로의 기를 빼앗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리는 두 사람. 그때 천강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북명신공에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기의 흐름.
일반적인 무학과는 반대로 흐르는 그 흐름 덕분에, 북명신공은 그저 내기 운용만 해도 상대의 기운을 물 흐르듯 넘겨받을 수 있다.
이것은 북명신공에 처음 당해본 이들이라면 어찌 대응하지도 못한 채 그 내기를 다 빼앗길 만큼 너무도 강력한 무기였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다른 하나지.'
바로 그 흡수한 내기를 하나로 만드는 융화작업.
그 어떤 내기라도…… 마치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내린 비라도 바다에 모이면 그저 바닷물이 되듯, 북명신공은 모든 기운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완벽히 작동해야 비로소 북명신공이 완성되는 것이다.
'천부적인 능력으로 첫 번째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두 번째는 불가능해.'
천강은 태감이 이종진기 문제에 돌입할 것을 직감했다. 그에 연기를 했다. 조금씩 내기를 뺏기는 척.
"하하핫! 어떠냐. 어둠이 네 머리 위를 덮는 게 서서히 보이느냐!"
천강이 주는 내기를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는 태감.
'계속 먹어라. 그게 독인 걸 알아챌 즈음에는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흡성대법의 마지막 후예로서 이종진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천강이었다. 어느 정도에 다다르면 한계에 봉착하는지도.
충분히 때가 무르익어 태감이 눈치챌 때쯤, 줄곧 줄다리기를 하던 천강이 확 내기를 열어주었다.
그러자 신이 나 날뛰던 태감의 얼굴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큿. 이 무슨……. 대체 왜?!"
천강의 손을 꽉 쥐고는 놓지 않던 태감이 돌연 그 손을 뿌리치고는 비틀거린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몸을 잡아 뜯으려는 것처럼 그 가슴팍을 사정없이 긁어대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
"네 욕심이 결국 널 자멸하게 만드는구만. 그러니 적당히 하지 그랬어. 꼭 그리 탐을 내야 했나?"
"크아악. 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절대로오오오!"
태감이 입으로 피를 토해냈다. 과거 천강이 이종진기 문제가 터져 죽을 때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천강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럼 잘 가라고."
"으아아아아!"
고함과 함께 내력을 강하게 발산하는 태감. 그런데 돌연 믿기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무슨?!"
태감의 이종진기 문제가 해결이 되고 만 것이다.
- 한 번 특정한 기를 머금으면, 다른 종류의 기들은 일체 차단하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과거 대장군의 수족 장각으로부터 들은 말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몸 곳곳에 자리한 운철이 천강의 기운을 신체 밖으로 밀어낸 모양이었다.
목과 이마로 덩굴줄기마냥 잔뜩 올라왔던 혈관들이 하나둘 가라앉고, 태감이 이를 환히 드러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방금은 정말 죽을 뻔했어. 근데 이걸로 확실해지지 않았나? 하늘은 내가 승리하길 원한다는 걸? 그리고……!"
태감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그 신형이 이내 천강의 왼편 뒤 사각에서 나타나 천강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하늘은 네놈이 죽기를 원한다는 것도 말이다!"
천강이 바닥을 일곱 번 굴러 낙법을 취했다. 입가에서 후두둑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는데, 태감이 심검(心劍)을 사용하면서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된 것이었다.
"대체 뭘 하는 것이냐! 이게 네 전부냔 말이다? 하하하핫!"
태감의 권격이 천강에게 무자비하게 날아들었다.
폭풍우 속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듯,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일격들 속에서 천강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공격을 예측해 급소를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곧 그것도 한계를 맞이하고. 태감의 발차기에 천강이 낙법도 취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굴러 나가떨어졌다.
흔들거리는 시야를 머리를 흔들어 다잡는다. 아이들의 울먹거리는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네가 준비한 건 모두 다 파훼됐다. 너는 이곳에서 나에게 패배할 것이고, 너와 나의 싸움을 기다리고 있을 무림맹과 마교 본대에는 20만 대군을 추가로 파견해 놓았다."
"……."
"신선환과 황실에 관련된 소문은 금세 묻힐 것이다. 민중이란 힘에 굴복하는 존재며, 역사란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니까."
태감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 마라. 네놈이 죽고 얼마 안 있어 그들 또한 네 뒤를 따를 것이니."
쿨럭쿨럭. 피를 한 움큼 쏟아낸 천강이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는 일어났다. 심호흡을 하며 속을 진정시킨 천강이 태감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게……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냐?"
"뭐?"
"무림을 힘으로 찍어 멸하고. 중원의 주민들 또한 힘으로 찍어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고. 그것이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냔 말이다."
"그럼 원하기에 그리하는 것이지, 왜 그걸 묻는 것이지?"
"이상해서 그렇지. 이상해서. 무림은 은원관계 때문에 그렇다 쳐도, 일반 주민들까지 확대하니 이상해서. 혹……."
천강이 태감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네 목표를 잃어버린 건 아니냐? 권력과 힘에 취해, 네가 어릴 적 품은 뜻을 잃어버린 건 아니냐?"
그 한마디에 태감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 얼굴이 이내 악귀처럼 변했다.
때론 사람은 정곡을 찔리면 화를 낸다. 지금 태감이 그러했다.
"무슨 개소리더냐아아아!"
태감의 발이 천강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울컥 피가 허공을 흩뿌리고 천강의 신형이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태감은 쓰러진 천강을 향해 사정없이 발로 찼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에 불과했다.
"네놈이 뭘 안다고 씨불이는 것이냐! 뭘! 안다고!"
일각(一刻)에 가까운 시간 동안 쉼 없이 이루어지는 발길질. 어느덧 황실 공터 한쪽으로는 붉은 피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피의 주인은 마치 아직 멀었다는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감이 발이 그 몸통을 후려친다. 나자빠진 사내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
태감의 주먹이 그 얼굴을 때린다. 사내가 피를 한 차례 쏟아내고는 일어나, 어기적거리며 태감에게 다가온다.
그 모습에 태감이 신경질적으로 밀쳐내며 소리쳤다.
"이쯤이면 너와 나의 수준 차이가 극명히 드러났을 터!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이냐! 왜!"
그러나 계속 일어나는 천강.
쓰러지고 몸이 너덜너덜해져도 계속 일어나는 그 모습에, 아이들이 눈을 감았다. 동창 세력들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고, 황군은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가만 눈에 담았다.
누가 봐도 질 수밖에 없는 싸움.
이미 승패가 갈린 결투.
그러나 천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강의 눈앞으로 과거의 기억이 선히 떠올랐다.
'그때. 한순간이라도 무진이 죽었을 거라 생각해 포기했다면, 진짜로 죽었을 거다.'
단 한 순간이라도 무진이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했다면, 무진은 절대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진은 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강이 비척거리며 태감에게 다가갔다. 그 눈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그득했다.
'난 지지 않아. 절대로. 내가 본 미래에서 나는 승자였어.'
타타닷- 천강이 태감에게 달려들어 그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태감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뿐, 머리를 원위치시키며 태감이 천강의 턱에 힘껏 주먹을 쳐올렸다.
"바퀴벌레 같은 자식. 이제 그만 죽어라!"
붕 뜨는 감각이 몸을 지배한다.
한차례 어지럽게 움직이던 시야가 위아래로 흔들거리다 이내 찬찬히 선명해진다.
그러고 들어온 모습은 하늘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그래. 이맘때쯤이면 하늘은 이렇게 높고 푸르렀지.'
낚시하러 다니기 좋은 계절.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스승님과 시간을 낭비하는 게 어찌 그리 좋았던지.
오늘따라 낚시가 당긴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원 없이 할 생각이었는데.
근데 죽을 때가 되자 만사가 귀찮아졌다.
어깨와 두 다리를 무겁게 만들던 것들도 다 사라지고, 마치 몸이 솜털처럼 돼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것이 죽음이란 것이었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생전엔 조금씩은 다를지 몰라도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그리고 그걸 피할 수 없는 때, 그걸 사람들은 천명이라 부른다.
이번이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거라 그럴까. 천강에겐 두려움 따윈 조금도 없었다.
그저 시원하다는 감정이 온몸을 쓸듯 지나갔다. 어쩌면 푸른 하늘이 보여 그리 느껴지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왤까. 갑자기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은?
***
웅성웅성. 돌연 공터를 둘러싼 황군 무리 사이로 소란이 일었다.
그것은 한 사내로부터 기인한 일이었다.
응당 죽었다고 생각한…… 그래. 태감에게 마지막 일격을 맞고 숨이 멎을 때만 해도,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움에 임한 그 사내에게 조용히 묵례를 함으로써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무공이나 내기나,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는 그들조차도 신비로움을 느낄 만한 변화가 그 사내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태감이 눈을 크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어떻게 네놈이 그 경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