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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6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68화

268화. 받을 건 받고, 돌려줄 건 돌려주고

 

 

'별것 없네.'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숱한 영혼들과 그 위에 올라탄 독사 무리를 보며 천강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일 강한 녀석이 고작 화경이었던 탓에, 천강이 이들을 쓰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너.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한다!"

천강에게 밧줄이 내려오고, 그것을 타고 올라가자 옥졸들이 일제히 다가와 천강의 발 아래로 창을 찔러댔다.

따라 올라오려던 다른 영혼들은 그 공격에 도로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핫. 재미있구만. 아주 재미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구만!"

천강을 보고는 파안대소를 하는 변성대왕. 구경거리가 끝난 탓인지 그는 이내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구덩이 위 한쪽에서 쉬고 있는 세 영혼에게 다가가자, 그들이 까딱 묵례를 했다.

"실력이 제법이오? 무(武)를 익혔소?"

"뭐 그렇지. 근데 원래 형벌이라는 게 이리하는 건가?"

천강의 질문에 세 영혼이 고개를 흔들고는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는 조용히 변성대왕의 욕을 했다.

"미친놈일세. 자네도 다른 왕들을 보지 않았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별짓을 다 하더군."

"며칠 보면 알겠지만, 피만 보면 입가가 만개하는 또라이 중 또라이가 바로 이곳의 판관일세. 대체 명계가 어찌 돌아가려 그러는지."

그리고 이들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녀석은 수시로 놀이를 가장해 영혼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영혼도 피를 흘렸고, 그저 차이가 있다면 육신과는 다르게 금세 회복이 되는 정도.

"때가 됐다. 다 꺼내라."

형벌이 끝나고 영혼들이 다음 판결을 받기 위해 이동한다. 그러나 천강은 그러지 못했다.

변성대왕은 새 영혼들을 끌고 왔고, 구덩이에 그들과 함께 천강을 밀어 넣었다. 그에게 천강은 영원히 가지고 놀 장난감이었다.

"자, 놀이를 시작한다!"

"놀이?"

"그게 뭐지?"

그리고 천강은 늘 놀이에서 1번으로 통과해 휴식을 취했다. 물론, 휴식을 취하는 척 다른 생물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지만.

'문제는 내가 다른 개체를 이해하는 데 십 일이 걸린다는 것인데.'

형벌을 받는 기간은 7일. 현재 남은 수는 스물여섯.

그에 차선으로 천강은 변성대왕과 그 밑 옥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옥졸들도 교대를 하는지, 중간중간 얼굴이 바뀌어 제법 괜찮은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천강은 변성대왕의 놀음에 조용히 따르며 독사지옥에 눌러앉았고,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 15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

 

-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되었다.

- 천산의 보고 노인에게서 받아온 나뭇가지가 썩어들어가고 있어요, 소년.

평범한 나뭇가지라면 진즉에 썩어 문드러졌겠으나, 사학 노인으로부터 받아온 나뭇가지는 무려 천산의 신목이었다.

그 단단한 나뭇가지는 명계의 진한 사기(死氣) 속에서도 잘 버텨냈는데, 이윽고 썩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나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천강이 가만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

늘 그렇듯 천강은 첫 번째로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쉬고 있었고, 처음에는 그 주위에서 경계를 서던 옥졸들도 천강이 온순하단 걸 인지한 탓인지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아쉽군. 아쉬워. 아직 4명이 부족한데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생사경이 바로 코앞인데…….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 생사경에 도달하려는 것도 태감과의 싸움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정작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명계까지 와서 준비한 게 모두 헛고생이나 다름없었다.

'가서 애들을 구해와야지.'

변성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그는 피를 보는 걸 매우 즐겼으나, 이따금씩 이런 식으로 자리를 비우곤 했다.

아무래도 치고받는 싸움에도 파도의 고저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 지루한 순간을 못 버티는 것이다.

'아마 다른 지역 구경을 간 것이겠지.'

천강 또한 그런 식으로 잡혔을 테고 말이다. 변성대왕이 저 멀리 사라진 걸 확인한 신병이기들이 신호를 보내왔다.

천강의 신형이 검은 안개로 완전히 뒤덮이고, 이내 바람같이 사라졌다. 천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변성대왕이 향한 정반대편 산맥이었다.

신병이기들이 다가와 반갑게 소리치며 물었다.

- 근데 그 창은 왜 갖고 온 것이냐?

'아아. 왠지 좋아 보여서.'

변성대왕이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무기를 내려놓고 쉬는 옥졸들의 행태에, 하나 슬쩍 해온 천강이었다.

신병이기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 탈출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이곳에서 어찌 나가느냐로구나.

- 다른 대왕들을 찾아가자니, 다른 놈들도 저놈 같지 말란 법도 없고 말이다.

그러게. 그래도 지금까지 영혼들과 이야기하며 들은 바에 따르면, 변성대왕 전…… 즉 1에서 5지옥까지는 관장하는 대왕들이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저놈의 변태 자슥도 내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세게 치지 않았던가?

소복이 쌓인 눈을 앞에 두고 천강이 심호흡을 했다. 늘 그렇듯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천강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친다. 그리고는 검은 구름 안에 들어서 빠르게 산맥을 넘어섰다. 그에 따라 사방에서 이는 강력한 전격.

'어이가 없네. 검은빛이 번쩍이는 것도 모자라 눈이 부시다니.'

더 흥미로운 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꽃마저 칠흑 같은 묵빛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정체는 그저 어두운 기에 불과했다. 탁기와도 다소 흡사한.

산맥을 넘어선 천강의 신형이 다시 지상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지상은 사방이 꽁꽁 얼어붙은 대지였다.

'한빙지옥이로군.'

지옥의 세 번째 판관이 자리하는 곳.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중후한 기운이 뒤편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영역에 침투한 침입자의 얼굴이 궁금해 친히 확인해보러 온 것이겠지.

"웬 놈이냐."

살을 에는 듯한 목소리가 쫘악 내리깔리고, 천강이 그를 돌아보았다.

변성대왕과 같이 불혹(不惑)쯤 되어 보이나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잘 정돈된 남자. 변성대왕이 사십 후반 정도 된다면, 눈앞의 사내는 사십 초반으로 보인다고 할까.

얼핏 보면 세가나 황족과 같이 보이기도 한 그는 뒷짐을 진 채 천강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천강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그가 눈을 크게 만들었다.

"자네는?!"

그리고 천강 또한 그를 보고는 한마디 아니할 수 없었다.

"응? 천마 나리?"

제3지옥인 한빙지옥을 관장하는 송제대왕. 그는 전생에 천강이 활동하던 시절 천산의 주인인 전대 천마였다.

 

***

 

"저 영혼은 누구기에 대왕님 앞에서 저리 주름을 잡고 있는 겐가?"

하늘로부터 눈 하나 내리지 않으나,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더욱 시린 기운이 느껴지는 얼음 대지 위에서 두 존재가 앉아 서로를 가만 바라본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다른 저승사자가 말했다.

"듣기로는 살아생전 꽤 두터운 인연이라는 것 같더군."

그랬다. 천강과 전대 천마 사이로는 꽤 두터운 인연이 있었다.

천강이 천마를 도운 덕택에 마교가 배신자들에게 넘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었고, 소교주가 정상적으로 대를 이을 수도 있었으니까.

'암. 보통 인연이 아니긴 하지.'

그러나 천마를 바라보는 천강의 얼굴은 전혀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을 반만 뜬 채 노려보는 것에 가까웠다.

"여어. 교주. 우리 사이에 풀 게 참 많지?"

"하핫. 내 그대에게 갚은 은혜가 많지. 그래. 우리 아들은 잘 살고 있던가?"

"갚을 은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니 참 다행이구만. 뭐 일단 댁 아들은 잘 살고 있수. 결혼도 해서 아들도 하나 낳았는데…… 당신을 어찌나 쏙 빼닮았는지,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날 똑같이 이용해 먹더란 말이지."

하하핫. 천마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북명신공을 구해준다는 핑계 삼아 전생에 그는 천강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했다.

배신자들을 북명신공 경쟁자로 몰아 손쉽게 다 처리하고, 결국 그로 인해 죽어나는 건 천강이었다.

숱한 배신자들과 반수에 가까운 마두 무리를 단신으로 싹 다 처리하면서 얻게 된 이종진기. 결국 그것이 천강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정적인 게 되었으니까.

"내 그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지."

"오. 좋은 자세야. 덕분에 분노가 빠르게 식히는구만."

천강이 한차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왈.

"지금 내가 생사경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말이야.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까?"

그러나 천마가 고개를 젓는다.

"미안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이승에 있을 시절 난 생사경엔 얼씬도 못했다네. 지금 내가 엄청난 고수처럼 보여도, 이건 내가 받은 직책으로 인해 따라오는 것일 뿐."

……그런 건가.

그 이야긴 다른 대왕들도 똑같단 의미일 터. 아쉽구만. 이대로 이승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도움이 못 돼 미안하군."

"미안할 필요 없어. 난 대가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받아내니까."

"하핫. 그게 바로 흑살마신다운 자세지."

그러며 그가 천강에게 손을 내밀었다.

"뭔데?"

"자네 목숨 빚을 갚을 생각이네. 손을 이리 줘보게."

손을 뒤로 감추던 천강이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천마가 왼손으로 그 아래 손등을 잡고는 손바닥 위에 검지를 놀리기 시작했다.

천마가 멋들어지게 한 글자를 휘갈긴다.

면(免).

그것은 스르륵 천강의 몸속에 스며들어 이내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뭐야, 이건? 지옥에 오면 죄를 면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건가?"

"비슷하네."

"참네. 아주 내가 지옥에 오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투덜거린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이승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나 이승으로 보내줄 수 있지?"

"물론. 그거야 어렵지 않네. 바로 가겠나?"

"아니."

"응?"

천강이 목을 좌우로 풀었다.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돌려주기. 그중 맞은 건 배로 갚아주기.

변성대왕 덕분에 비록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고 잘 수련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됐든 감쪽같이 속인 탓에 뒤통수 세게 얻어맞고 독사 밭에 드나들었다.

따끔따끔한 맛도 보고.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어이. 교주. 이왕 도와주는 김에 나 하나만 더 도와줘 봐."

 

***

 

"큭큭. 역시 피를 봐야 재미가 있지."

한 차례 1지옥을 훔쳐본 변성대왕이 자신의 구역으로 되돌아왔다. 1지옥은 그 특성상 피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많아 그가 자주 즐겨 가는 곳 중 하나였다.

'조금 더 피를 많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옳지. 무기를 하나씩 쥐여 주고 싸움을 붙여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변성대왕이 막 자신의 옥좌에 앉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옥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들 왜 떨고 있지?'

재빨리 구덩이 안을 살피는 대왕. 그러나 구덩이 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분명 어떤 잘못을 했을 터이니 저리 떠는 것일 텐데.

변성대왕이 옥졸들을 하나씩 쳐다본다. 옥졸들이 부르르 떨며 고개를 푹 수그린다. 그들의 그 행동을 가만 즐기던 것도 잠시, 이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응? 내가 잡아온 영혼 어디 갔느냐?"

"서, 서, 선처해주시옵소서!"

"오호라. 이 새끼가 도망을 갔어?"

"예, 예. 아주 감쪽같이 잠적을 하였나이다."

"그런데 왜 네놈은 창이 없는 게냐?"

변성대왕이 손끝으로 가리키며 묻는 질문에 그 지목을 받은 옥졸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변성대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이것들 보게. 근무를 얼마나 나태하게 했으면, 영혼이 무기를 탈취해 도망까지 갈까. 여봐라!"

"변성대왕님! 자, 자,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녀석을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어라!"

"대왕님! 대왕님!"

옥졸들이 안 됐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창끝을 겨누었다. 그 한 명으로 이번 화를 피할 수 있다는 것에 한편으로 안도하며.

옥졸이 구덩이에 빠지자, 독사도 영혼들도 구분 없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한동안 옥졸의 비명이 나지막이 구덩이 위를 메웠다.

그 모습을 낄낄대며 바라보는 변성대왕. 그러나 곧 그의 표정이 싹 굳었다.

하늘에 수차례 검은 전격이 일고,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에게로 나아온다. 그들의 정체는 각각의 지옥을 관장하는 아홉의 대왕들이었다.

어느덧 독사지옥엔 강대한 기운이 내려앉아, 형벌을 받는 망자들도 그리고 그들에게 벌을 가하는 독사들도 몸을 부르르 떨며 납작 엎드렸다.

변성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펼치며 외쳤다.

"아니, 다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한날한시에 이리 몰려다니시고?"

그러나 그의 인사에 오도전륜대왕의 호통이 돌아왔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예? 그 무슨……."

"이 자를 보고도 할 말이 없는 것이냐!"

그들 가운데로 천강이 슥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사태파악이 된 변성대왕이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변명에 나섰다.

"그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오. 저 영혼이 뭐라 했길래 그러는 것이오."

"네 이놈! 아직도 발뺌하는 것이냐! 이자가 산 자임을 알고도 오랜 기간 지옥에 가둬두다니!"

그것만으로 천벌을 받을진대, 그는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채우고자 천강을 가두었다. 공적으로 사용하라 주어진 힘으로, 공무 대신 사적 놀음을 한 것이다.

"오해요. 나는 결백하건데 저자를 모르외다!"

"그대의 완악함은 이곳을 지나온 망자들에게 이미 모두 들었다! 하여 명계의 규칙대로 제6지옥의 변성대왕을 파직하는 안건을 내걸겠소이다!"

"말도 안 돼!"

변성대왕이 항변을 주장했으나 소용없었다. 다른 지옥의 판관들인 아홉 왕들이 만장일치로 그의 파직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도끼 두 개를 쳐들고는 거부하는 변성대왕 이규.

"내 관직을 내려놓느니, 네놈들을 모두 죽이고 이곳 명계를 나 혼자 다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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