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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6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65화

265화. 명계(冥界)

 

 

명계(冥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병으로 죽든, 남에게 칼을 맞아 죽든, 혹은 굶어 죽든 간에, 이승에서 천수가 다해 사망하면 그 영혼이 가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명계다.

일종의 사후세계라 할 수 있는데, 그곳에 가면 살아생전의 일들을 조목조목 따져 시왕(十王)의 심판을 받게 되고. 이후엔 환생을 한다고 한다.

즉, 죽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세계.

돌연, 명계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천강의 대답에 금나한이 눈을 크게 떴다.

"대체 그곳엔 왜 가려는 것이냐?"

"사학 어르신께서 그러시더군요. 선계의 시간은 이승에 비하면 빠르게 흐르지만, 반대로 명계는 이승에 비해 느리게 흐른다고."

천강은 시간이 부족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명계로 가볼 참이었다.

"흠.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이 아래 무저갱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니라. 난 허락할 수 없다."

단호한 그의 태도에, 천강이 잔잔한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그 안에서 걱정하는 마음을 엿본 것이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적에도 그러셨지요. 그때처럼 이번에도 금나한님께서 내려갈 방도와 위험 요소들을 잘 가르쳐 주시면, 그만큼 제가 큰 위험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금나한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네놈이 내가 말한다고 들을 녀석이 아니지. 저번처럼 다짜고짜 뛰어내리느니, 제대로 가르쳐 주는 게 낫겠구만."

팔짱을 끼고는 잠시 장고를 거듭하는 거구.

그는 한참을 심사숙고하더니 천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선계에 특사 자격을 얻어 내려가는 게 좋겠지만, 그러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테고…… 아무래도 편법을 써야겠구나."

오오. 편법이라.

천강의 눈이 강하게 빛났다. 편법이 위험하긴 해도, 그만큼 빠르고 속 편하다는 걸 아주 잘 알았던 탓이다.

"이곳은 저승사자들이 명계와 이승을 드나드는 통로 중 하나니라. 아마 너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

"그들 앞에서 길 잃은 망자인 척 행세하면, 널 명계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오호. 그런 방법이.

"그럼 나올 때는 어찌합니까?"

"변장을 풀거라. 그럼 웬 산 놈을 끌고 왔느냐며 널 바로 내쫓을 것이니라."

참으로 간단하군.

근데 이 간단한 걸 왜 금나한은 위험하다고 말린 거지?

천강이 의문을 품자 그가 검지를 치켜세우고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경고했다.

"단, 시왕(十王)의 눈에 띄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보통 시왕은 살아생전 현명한 이들로 뽑는다. 근데 꽤 자주 뽑지."

자주…… 뽑는다?

"오랜 기간 형벌을 내리다 보면 그 심사가 심히 악해지게 되어 있다. 영혼에 따라 다르지만, 네가 내려갔을 때 그게 한계에 다다른 이 또한 있을 터."

물론, 선계 출신의 말이니 그 자주라는 의미는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승의 시간이 명계보다 빠르고, 선계의 시간이 그런 이승보다 빠르니, 선계 입장에서 명계를 바라보았을 때 얼마나 자주 바뀌겠는가.

그러나 주의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리라.

"그 시왕만 주의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천강이 예를 갖추고는 구덩이 앞에 가 섰다. 오랜만에 퀴퀴한 냄새를 맡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녀오십시오. 전 무림맹과 마교 연맹 쪽에 가 있다가 십 일 후 돌아오겠습니다, 주군."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고."

천강이 폴짝 뛰어 무저갱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뜨거운 열기가 볼과 피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 근데 저승사자들을 어떻게 속일 생각인가요, 소년?

아무리 재주껏 속인다고 쳐도 절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들 하는 일이 망자를 데리고 다니는 일이니.

그러나 천강의 입가엔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걱정 마. 내게 다 생각이 있어."

탁. 바닥에 내려서자 우르르 발소리가 들려온다. 간만에 매질 좀 해볼까 하고 시선을 들자, 저 멀리 도망가는 놈들이 눈에 들어왔다.

- 이전 날에 네게 맞은 데가 아직도 얼얼한 모양이다.

그러게. 저리 잽싸게 도망갈 줄은 몰랐는데.

천강은 빠르게 발을 놀려, 과거 이무기 농장을 향해 내달렸다. 이무기를 하늘로 강제 승천시킨 이후로는 억중이란 아귀가 그곳을 다스리고 있었다.

굴을 내려가 그곳에 도달하자, 이전보다 다소 작아진 숲이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몇몇 아귀들이 밖에서 놀고 있었구만.'

고개를 들어 억중을 찾은즉, 녀석은 숲 한가운데서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었다.

천강이 뽕밭으로 들어서자. 일을 하던 녀석들이 천강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으응? 이 새끼들이?! 야! 똑바로 일 안 해? 너희들 이거 먹기 싫어?"

억중의 외침에 천강 쪽을 흘끗흘끗 쳐다보는 괴물들.

그러나 열기를 바깥으로 빼는 것에 집중하던 억중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대신 버럭 소리쳤다.

"이놈들! 정녕 죽고 싶은 게냐!"

그제야 하나둘 눈치를 보며 다시 일을 한다. 한쪽 지하수에서 물을 퍼 나무에 물을 준다.

그 모습에 천강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야. 우리 억중이. 홀라당 다 태워 먹은 줄 알았는데, 잘하고 있네?"

"어, 어어?"

놈의 눈이 커진다.

"주군!"

녀석이 헐레벌떡 뛰어와 냉큼 엎드렸다. 다른 아귀들보다 훨씬 큰 녀석이 그러자, 주위에 있던 뽕나무 여섯 개가 기우뚱 쓰러지고 말았다.

천강이 그것들을 도로 세우며 물었다.

"하핫. 잘 지냈지?"

"물론입니다!"

억중이 신이 나 그동안 자신이 해낸 이력을 나불댔다.

그 말을 요약해본즉, 이곳에서 만든 천잠사를 명계의 고위직들이 상당히 좋아라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호들갑을 떨어 신빙성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사실대로라면 꽤 놀랄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야. 의외네. 억중이 네가 이런 생산적인 일에 잘 맞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크하핫!"

"아무튼 일전에 네가 보내준 천잠사는 잘 받았다. 아주 제때 보내줬더라."

억중이 머리를 긁적인다. 의외로 칭찬에는 약한 면모가 있었다.

대략 충분히 인사를 나눈 천강은 본론에 들어갔다.

"혹시 추혼살개 여기 얼마나 자주 와?"

"음. 그 흑백무상이라면 사나흘에 한 번꼴로는 옵니다. 아마 오늘 중으로 올 듯싶습니다."

시간 박자는 나쁘지 않네.

"걔들 오면 나한테 한번 들르라고 해. 예전에 수련하던 곳에 있을 테니까."

천강이 무저갱을 내려가 거대한 공동 천정에 올라갔다. 거기엔 싹이 튼 조그마한 천령초들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싹 채취하는 천강.

- 뭐 하는 건가요, 소년?

- 그걸 먹으려는 것이냐? 먹어도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아. 이거 먹으려고 캐는 거 아냐.'

- 그러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수십 개 모이자 제법 그럴듯한 냄새가 났다.

천강이 그것을 옷 안쪽 곳곳에 매달았다. 그리고는 몸을 검은 안개로 감싸자…….

'어때?'

- 허헛.

- 정말…… 감쪽같네요.

- 마치 혼령을 보는 듯하구나!

그건 단순히 신병이기들의 아부성 발언이 아니었다.

억중에게서 천강의 이야기를 듣고는 찾아오던 추혼살개가 깜짝 놀라 외쳤다.

"에엥? 흑살마신 자네 뒈졌나?"

"여어. 오랜만이야. 근데 초면에 다짜고짜 뒈졌다니. 인사치고는 너무 신랄한 거 아냐?"

"으응? 아니 그래서 자네 죽은 겐가, 안 죽은 겐가?"

천강으로부터 진득한 사기(死氣)가 배어 나오니 헷갈렸던 것.

뭔가 확신이 없는지 직접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하고. 검은 안개를 넘어 그 안에 있는 육신에까지 손을 대보고서야 흑백무상은 천강이 산 자임을 인지했다.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천강이 말했다.

"이봐. 듣기로는 너희들이 망자 배달 좀 한다는데."

"그렇지. 그게 우리 일이니."

"그럼 나도 좀 데려가 주라. 명계."

응? 추혼살개와 그 동료 흑백무상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은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천강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야. 산 자를 데려오면 한 소리를 듣는다고. 우리 선임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아냐?"

"아마 몇 년은 떽떽거릴걸?"

"일은 우리한테 다 짬 시키고 어후."

한참을 투덜거리는 두 사자.

"뭐야. 진급 많이 못 했어? 그 정도 뇌물이면 어느 한자리 꿰찰 만할 텐데?"

"후우. 그렇긴 한데, 우리 선임이 완전 또라이라, 우리 공적을 지가 다 가져간다니까?"

"맞아 맞아. 우리 뇌물도."

그로 인해 그들보다 그 위 선임 둘이 먼저 진급하게 생겼단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추혼살개."

"응?"

"내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는데. 어때? 이번에도 나 믿고 일 한 번 함께 해보는 건?"

무슨 일인지는 아직 들어보지 않았으나 추혼살개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천강과 함께하면 손에 떨어지는 게 꽤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뭘 도우면 될까?"

 

***

 

화염과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무저갱의 입구.

그곳을 두 저승사자가 내려간다. 그들 뒤로는 넋을 잃은 망자 둘이 그들을 따르고 있었다.

"어후. 지겹다. 얼른 진급해서 이 일도 그만 끝내고 싶구만."

"그래도 요샌 할 만하지 않나?"

원래라면 한 번 나가면 족히 스물 이상의 영혼을 데리고 와야 했다.

그러나 흑백무상 중 최고참인 녹호와 가렴. 그들은 오직 둘만을 데려온 상태였다.

이러고 명계 입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다른 흑백무상이 데려온 영혼들을 데려가려는 속셈이었다.

무저갱 깊숙한 곳. 명계 입구 근처에 도착해 시간을 때우려는 그들.

그런 그때 두 저승사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들 앞으로는 웬 망자 하나가 초점 없는 눈으로 무저갱을 떠돌고 있었다.

"음? 명계로 가다가 떨어져 나온 망자인가?"

"아니. 표식이 하나도 없는데? 내 볼 땐 그냥 죽은 영혼인 것 같은데."

두 저승사자가 서로를 쳐다본다. 이내 그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데려오면 포상이었지, 아마?"

"맞아. 하핫. 이거 완전 노났구만!"

그로 인해 신나 덩실덩실 춤추는데, 때마침 저 멀리서 다른 흑백무상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어이. 정지."

"너희들 딱 걸렸어. 이리 와."

그들의 손짓에 추혼살개와 그 동료가 다가온다. 곧바로 망자를 강탈해 가는 두 선임들.

추혼살개와 그 동료는 자신들이 데려온 망자를 뺏어가는 그 행태에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망자 이름을 건네 적어 받던 녹호가 쌍심지를 켰다.

"어쭈. 표정이 어째 한번 해보자는 것 같다?"

"아, 아닙니다."

"아니기는. 여기가 명계 밖이지 안이냐!"

힘껏 정강이를 걷어차는 녹호와 가렴.

이후엔 얼차려까지 시킨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빨리 안 하냐? 엉?"

약 반 시진을 그리하고서야 그들은 마치 선심을 쓰듯 놓아주었다.

"많이 데려왔으니 이 정도로 끝난 줄 알아, 자슥들아."

녹호와 가렴이 망자 스물셋을 전부 다 자신들 쪽으로 옮기고는 고갯짓했다. 그것은 완전히 날강도나 다름없었다.

"후딱 갔다 와라. 시간 늦으면 알지?"

"예, 예."

녹호가 벽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돌벽이 쩍 갈라지며 명계로 가는 입구가 드러났다.

"가자, 이놈들아!"

두 저승사자를 따라 이동하는 영혼들.

앞서가는 그들을 따라가다 제일 마지막에 있던 천강이 슬쩍 뒤돌아 고개를 까딱였다. 추혼살개와 그 동료도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셈에 들어가는 두 사자.

"산 자를 명계로 데려가면 징계였지, 아마?"

"맞네. 진급 누락에 흑암지옥 15일일세."

크크큭. 앞으로 벌어질 일에, 두 저승사자가 통쾌하다는 듯 한참을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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