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6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60화
260화. 나는 피하지 않았다
"우리 사문의 무공은 단 한방에 모든 걸 쏟아내는 기술이다. 그 뒤를 절대 생각해서는 안 되는 무공이지."
스승의 말에 무진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명중에 실패하면요? 그럼 위험한 것 아닌가요, 스승님?"
"명중에 실패하더라도, 그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투불능이 될 만큼 강한 일격을 먹이면 된다. 그러니 꾸준히 단전의 크기를 늘리고 기의 통로를 넓혀둬라."
흑철마괴의 흉터 가득한 손이 무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싸움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늘 그것을 명심해라."
***
태감의 눈이 부릅 뜨였다.
타격이 큰 것은 아니나 순간적으로 강한 통증이 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충격인 건 따로 있었다.
'이 내가 고작 화경의 주먹을 맞고 네 발짝이나 밀려났다고?'
사신 시술을 받기 이전에도 존자들에게조차 밀리지 않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고작…… 고작 화경 애송이에게 맞고 밀려나다니?
'인정할 수 없다!'
태감이 기세를 피워 올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의 시선이 전방을 향했다.
그러나 무진은 이미 그의 사각으로 이동해 다음 일격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쿠콰콰콰콰- 쿠콰콰콰콰콰-
태감의 사각을 쫓으며 빠르게 연격을 먹이는 소년.
스승의 말을 떠올린 무진이 한 방 한 방에 자신의 전력을 쏟아 부었다. 그때마다 태감의 얼굴이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기감으로 느끼려 해도 대자연의 맹렬한 기운이 사방에서 휘몰아쳐 감지가 안 되고, 시야는 순간순간 크게 흔들거려 혼이 빠질 지경이다.
그래도 팔을 휘둘러 어떻게든 잡아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쥐 굴에서부터 천강과 매일같이 근접전과 관절기를 연습한 무진이다. 거기에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덧씌워졌다.
지금 그의 근접전 실력은 이미 천강과 같은 반열에 올라서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큿. 젠장. 왠지 그 시커먼 몽둥이가 떠오르더라니! 그래서 이리 효과가 좋은 거였나?!'
무진이 내지르는 무공 흐름이, 천강이 들고 다니던 흑색 절굿공이와 판박이였던 것.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사신들은 그 어떤 외공도 내공도 잘 막아내긴 했으나 유독 그 몽둥이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독은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했으나 이 부분은 찾아도 찾아도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퍽. 퍽. 퍽.
태감이 무진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다.
사신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걸 주무기로 들고나온 무진에게 태감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태감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크아앗. 네놈! 고작 화경인 주제에 어떻게 이런 무식한 기의 흐름이 나올 수 있는 것이냐?!"
별다른 건 없었다. 그저 그 스승이 시킨 대로 매일 단전의 크기를 늘리고, 기의 통로를 넓혔을 뿐.
그걸 4년 가까이 하니, 어느덧 무진은 내기 방출에 한해서는 현경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얻어맞은 태감이 신경질적으로 오른팔을 휘두르며 몸을 돌렸다. 따라 돌며 반대편 겨드랑이를 때리는 무진.
태감이 이번에는 왼팔을 휘둘렀다. 그 뒤로 도망을 간 무진이 이번에는 오금을 가격했다.
"크억."
장난으로 임한 태감과는 달리,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전력을 다하는 무진의 행동엔 일말의 망설임도 군더더기도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이어지는 맹렬한 공격의 연속!
그러나 그 끝은 이내 도래했다. 태감의 등짝에 주먹을 꽂은 무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 무슨…… 말도 안 돼."
"후우. 드디어 잡았구나, 쥐새끼 같은 놈."
무진이 화들짝 놀라 주먹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태감의 몸에 달라붙은 주먹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떠냐? 흑살마신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해 봤는데. 좀 비슷하더냐?"
천강에게 수차례 흡공을 당한 태감은 진즉에 그걸 따라 해 보려 힘썼다. 그리고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그걸 흉내 낼 수 있었다.
내기가 쭉쭉 빨려 나가는 걸 느끼며 무진이 다시 한번 강하게 내력을 방출한다.
다행히 흡공을 떨쳐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잠깐의 틈으로 인해 그는 태감을 놓치고 말았다.
태감이 뒷짐을 지고는 유유히 거리를 벌린다. 무진의 시선이 말없이 그를 쫓는다.
"아직도 내가 흡공을 쓴 걸 못 믿는 눈치로구나."
"그건 그리 쉬이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직접 당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일단 당신의 흡공은 형님의 것과는 다릅니다."
무진이 자신의 주먹을 내려 보았다. 잠깐 빨렸을 뿐인데 팔이 덜덜 떨리고 통증이 일었다.
천강의 흡공은 이러지 않았다. 그저 물이 자연스레 바다로 흘러 내려가듯 내기의 흐름이 내게서 상대에게로 나아가는 것이었으나, 지금 태감의 흡공은 강탈에 가까웠다.
하지만 분명히 흡공은 맞는 상황.
무진이 부들거리는 오른팔을 늘어뜨리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잠잠한 눈으로 태감을 응시했다.
"약속은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네 녀석은 내게 의미 있는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럼 입가에 피는 무엇입니까."
"음?!"
태감이 자신의 입 주변을 훑었다. 손등 위로 혈흔이 선명히 묻어나온다.
"……."
사실 이 혈흔은, 아직 익숙하지 못한 흡공으로 무진의 과도한 내기를 흡수하며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피가 나온 건 사실.
"무림인을 싫어하시더라도 약속은 지켜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태감이 순식간에 무진에게로 나아왔다. 이내 명치에 장법을 먹이자, 무진의 신형이 그대로 쓰러졌다.
쯧쯧. 나와 흑살마신이 없었다면 가히 이 무림에서 최강이라 불리었을 것을…….
"즐거운 내기였다. 약속대로 네 동료들의 목숨을 취하진 않겠다. 뭐 다른 이의 손으로 죽는 건 내가 어찌 못해보지만 말이다."
"그, 그런……."
무진의 눈이 파르르 떨며 태감을 향한다. 태감이 쭈그리고 앉아 그 눈을 마주했다.
"잘 듣거라. 넌 지금부터 모든 혈도가 하나씩 하나씩 막히며 죽어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의식은 더욱 또렷해지겠지. 아마 그것도 이틀 정도가 한계겠지만."
태감이 진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저 아이들을 살리고 싶거든, 내 말을 그대로 흑살마신에게 전하거라."
***
쿠구구구구.
멀쩡하던 봉우리에 벼락이 떨어져 기우뚱 무너져 내린다. 무수한 낙석으로 인해, 그곳을 막 지나려던 천강이 움직임을 멈추어 섰다.
"젠장."
벌써 이번이 일곱 번째다. 마치 천강의 진로를 어떻게든 방해하려는 듯, 자연재해가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광풍이 몰아치는가 하면,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고, 돌연 바위가 바닥에서 솟구치기까지 했다.
- 이 정도면 거의 하늘이 원치 않는 것 같은데요, 소년.
- 내 살다 살다 이런 걸 보는 적은 처음이니라.
- 난 본 적 있네.
태아(太阿)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진나라에 의해 멸망할 위기에 처했을 무렵, 초나라의 왕이 날 뽑았을 때도 이와 같았네. 하늘에서 수백의 벼락이 내리치고, 진의 군대를 모조리 쓸어버렸지.
벼락을 일으킬 만한 능력이 없었음에도 그러한 현상이 인 것에 대해, 그는 그것을 하늘의 뜻이라 말했다.
- 이건 하늘이 그대를 묶어두고 있는 것이네. 세상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으니, 그 노인네 말대로라면 지금 그대가 가려는 곳엔 태감이 있는 것이겠지.
태아의 추측에 다른 신병이기들이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아직까지 천강이 이렇다 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그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는 전혀 유추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천강이 구름 한 점 없는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미래를 바꿀 수는 없는 건가? 내가 그날, 태감과의 만남을 확정 지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란 말인가?'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진은 그에게 의형제이자, 이번 생에 눈을 떠 처음으로 사귄 인물.
비록 서로 간에 많은 대화를 주고받거나 하진 않았으나, 돈독하기만큼은 이전 생에 사귄 이들 못지않았다.
천강의 신형이 다시 빠르게 움직여 강가에 닿았다.
강을 따라 이동하자, 숱한 다리가 전방에서 나타나 뒤로 사라졌다.
'늦으면 안 돼. 더, 더 빨리.'
천강이 본 미래는, 무진이 태감의 장법에 맞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무공이었으나 그 복잡한 내기 운용은 보통 기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살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때 천강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방해가 사라졌어?'
분명 이번에는 물을 이용해 각종 방해 공작을 펼칠 줄 알았더니?
조용하다. 어떤 방해도 저항도 없다. 그렇다는 것은…….
천강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어 섰다. 천강이 발견한 것을 신병이기들도 발견한 듯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 소년, 저쪽입니다!
- 저기에 있느니라!
활활 불타고 있는 다리를 지나 평지에 내려선다.
고즈넉한 산과 강 사이로 타닥타닥 나무 타들어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찬찬히 나아가다 천강의 발이 멈춰 선 곳에는 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무진아."
"형님……."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혀, 형님. 초아 누님과 연화, 청청이……."
"그래. 알겠다. 일단 네 일부터 해결하도록 하자."
천강이 무진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곧 불편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로 내려앉았다. 무진이 힘들게 볼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태감이…… 전 살지 못할 거라 했습니다……."
천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폐와 머리 쪽을 제외한 모든 기혈이 끝에서부터 막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무진의 손과 발끝이 잘게 떨고 있었다.
"태감이 전하라 했습니다. 달포 후…… 황실의 중추절 행사가 다 끝난 다음 날, 자금성에서 기다리겠다고……."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 한 번 확정되면 절대 바꿀 수 없고, 그날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죽네. 만약 만남을 피하게 된다면, 피한 자의 지인 중 누군가가 확정적으로 죽지. 일종의 대가일세.
그날 태감을 만나지 않으면 잡혀간 세 아이는 죽는다.
그러나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면 싸움이 끝나기 전엔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 그런데도 하겠나?
천존이 했던 말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결국 이것은 천강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
"……."
천강의 주먹이 파르르 떨었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순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분노이리라.
"……형님."
무진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올라왔다.
만남이란 건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지만, 때로는 이 헤어지는 순간 때문에 남겨진 이들에겐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된다.
천강의 눈에 과거 스승의 마지막 모습이 비쳤다.
-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생전엔 조금씩은 다를지 몰라도,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그리고 때론 어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걸 사람들은 천명이라 부른다.
무진이 서서히 눈을 감았다. 천강의 양손이 그 멱살을 움켜쥐었다.
"눈 떠라. 난 아직 너를 보내지 않았다."
천강은 이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단순히 죽음이라는 순리에 거역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석연치 않은 부분이 톡톡 천강의 심기를 건들고 있었다.
'나는 태감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일 가까운 사람 중 하나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게 단순히 우연일까?
그럴 리가.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단어 하나로 각종 사건과 만남 등을 포장하지만, 적어도 모든 걸 주관하는 하늘은 아니다.
한사에게 보여줬듯, 재해처럼 보이는 그 홍수 속에는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이치 또한 담겨 있는 것이다.
'나는 태감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았어.'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무진은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니라는 소리.
그때 천강의 기감에 무언가가 잡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둠 속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굽은 등으로 각종 물건을 이고, 한 손으로는 막대기를 잡아 걷는 행태는 영락없는 시골의 늙은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천강에게 꽤 낯이 익었다. 노인이 천강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끌끌끌. 여기서 다 만나는구먼, 흑살마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