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5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8화
258화. 풀의 정체
천강과 개방 방주 사이로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을 깬 건 당연히 천강이었다.
"뭐? 신선환의 독성을 일으키는 풀에 대해 알고 있다고?"
"껄껄껄. 그러하니라."
이 새끼가? 그걸 왜 지금 말해?
그럼 대체 무림맹이랑 마교에서는 이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그 정체를 알았다면, 위험하게 적의 수레를 탈취하는 작전 따윈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으나, 아직 들은 게 없는 천강은 애써 미소를 보이며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래서 그 정체가 뭔데?"
"그건 저 북방 몽골의 땅에서 나는 풀이니라."
개방 방주의 설명은 이러했다.
주기적으로 북방으로 웬 무리가 나갔다가 들어오며 희한한 풀을 가지고 오는데, 사실 개방에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새 중원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본즉 그 풀이 맞는 것 같단다.
"나중에 그 무리를 은밀히 따라가 보니 동창(東廠)이었네."
몽골이라…… 그래서 못 알아본 거였나.
-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안 돼요, 소년. 사람들 말로는 현 황제가 북방으로 전쟁을 자주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래. 기억이 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전쟁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전을 했을 것이고, 북방의 땅을 밟으며 그 풀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만했다.
그런데 무림 내 그 누구도 그 풀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석연치 않은 점을 포착한 천강이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어떤 풀이지? 직접 본 적이 있나?"
"저들이 작업하는 걸 우리 식구가 직접 봤네."
처음에는 약초를 캐는가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그것을 캐 위에는 버리고 밑뿌리만 햇빛에 말리고 태운 것이다.
"거의 보름가량을 태운다고 했었던 것 같으이. 몽골의 척박한 땅에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라 그런지, 하루 이틀 말려서는 소용이 없다고 하더구먼. 이내 바짝 말라비틀어지면 그것을 모아다가 가지고 왔더란 말이지."
그래서 아무도 못 알아본 것이구나.
설마하니 그 누구도 그게 뿌리만을 말린 거라고는 생각 못한 것이리라.
"아무튼 그걸 아는 이들은 하르, 하룸? 아! 하르간이라 부르더구먼."
하르간……. 이국적인 이름이다.
"그렇군. 혹 가지고 있는 거 없어? 몰래 숨겨둔 거라든가?"
"예끼. 내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있나? 우리 개방에 팔 만한 거라곤 정보뿐이 안 남아있다, 이눔아!"
하긴. 개방에 물건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진즉에 다 팔아먹을 것으로 바꿔 먹기 때문이다.
'그럼 이야기도 다 들었으니 이 새끼를 어떻게 할까.'
이 노인네 덕분에 천강은 강제로 태감과 만나는 미래를 결정지어야만 했다. 다른 이들은 적들에게서 그 풀을 강탈해보겠다며 목숨 걸고 매복하고 있고.
'그래도 뒤늦게나마 가르쳐 주긴 했으니 정상참작 해줄까.'
내기를 쫙 빼내 한 삼일 정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거야. 그래. 그거 좋네.
그에 천강이 손을 뻗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개방 방주의 몸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음?'
갑자기 시야가 뿌예진다. 돌연 환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미래를 본 순간, 천강이 하늘로 솟구쳐 남서쪽으로 섬광처럼 사라졌다. 그에 따라 천강이 있던 주위로 광풍이 일어 주위를 수차례 흔들어대었다.
"껄껄껄. 젊은 게 참으로 좋구먼!"
***
"황군의 이동속도가 빨라. 내일이면 섬서와 사천의 경계에 도착한다고 봐도 무방하겠어."
섬서의 어느 산속. 십만 황군의 이동을 지켜보는 마교와 무림맹 사람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십만 십만 해도 너무 큰 숫자라 살짝 와 닿지 않았는데, 이렇게 높은 지형에서 보자 그들이 싸울 적이 얼마나 많은 수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사람들을 보며 암운사신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말라고. 우리가 저들과 직접적으로 싸울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우리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긴 하겠지만."
그랬다. 이번 작전에서 본대는 그저 적을 꿰어낼 미끼일 뿐, 실질적으로 이번 싸움의 결과는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 달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다시 이동하자고."
암운사신의 지시에 다시 이동하는 사람들. 그런데 약 한 시진쯤 달렸을까. 그들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그들 앞으로 복면인이…… 아니, 사신 셋이 나타난 것이다.
일전에 무림맹과 함께 이 산을 지나가다 천강이 사신들을 처리한 일이 있었는데, 그들을 찾으러 온 동료들이었다.
'아마 중원을 돌던 스무 명은 일을 마치고 무림맹 쪽으로 합류했을 것이다.'
'그곳으로 가면 동료 오십을 전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급박한 일로 흑귀에게 연락을 못 보낸 것이라 판단한 사신 셋이 북경을 떠나 이곳에 막 당도했던 것.
마주 선 두 무리 사이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신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그에 맞서듯 무림맹과 마교 측에서도 똑같이 무기들을 움켜쥐었다.
"무림인을 처단하라."
"무림인을……."
"말살하라."
수풀 사이로 폭음이 크게 일었다.
***
"저기 사천성이 보이는군요."
한여름을 비단길 위에서 보낸 탓일까. 선두의 외침에 무림맹과 마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도시 내로 들어가고 싶다는 감정이 역력했다.
어쩌면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못하는 상황이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그런 감정이 강하게 이는 건지도 몰랐다.
무림맹과 마교의 정상들이 모여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 사천성 내에 연락책을 더 들여놓는 게 좋겠소. 적들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고 언제든지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말이오."
천마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문제는 누구를 보내느냐로군요."
일단 상황상 무림맹 쪽은 전원 불가능했다. 명분이 뒤집혔어도 어찌 됐든 사천성 도시는 황제의 관할하에 있다.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관직을 받은 신하들이 관리하는 만큼, 그들이 언제 칼을 빼 들고 공격할지 모르는 그곳에 얼굴이 다 팔린 무림맹 사람이 들어갈 순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들어서는 박자는 바로 신선환의 진실이 드러난 이후.
그렇기에 인력을 투입하려면 마교 측에서 해야 하는데, 현재 중원의 무림인이란 무림인은 다 이곳에 모여 있는 상황이다.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최대한 무림인 티가 나지 않는 이들을 투입해야 했다.
"그런 이들이 있을까요?"
"흠. 글쎄 말이오."
당묘오의 질문에 마교 측이 생각에 잠긴다. 그걸 옆에서 가만 지켜보던 천수향이 답답하다는 듯 툭 말했다.
"뭘 고민하고 그래. 그 꼬맹이들 보내면 되잖아?"
"꼬맹이들?"
"그 왜 우리 낭군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들."
이번 전쟁에 마교 측에서는 최대한 실력 있고 경험이 많은 이들로 차출해 나왔다.
그러다 보니 나이들이 하나같이 약관(弱冠)을 넘었는데, 천강과 함께 합류하면서 그러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막 졸업해 지학(志學)에도 못 이른 꼬맹이들. 무진 일행이었다.
"걔 초아인가 하는 애는 암기를 사용하니까 나이가 있어도 상관없을 거고, 나머지는 애기들이라 전혀 의심 안 할걸?"
마교 측이 고개를 주억인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였던 탓이다.
무엇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천성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만큼, 그보다 더 적합자를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 그렇게 네 명을 사천성 내 정보원으로 보내도록 하겠소."
그렇게 무진 일행은 사천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천성의 성벽을 넘어 저잣거리에 들어선 청청이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떠날 때랑 크게 변한 건 없네요. 오히려 조금 더 활기차 보이는데요?"
지금 사천성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어야 했다. 청해에서는 무림맹이, 산서에서 황군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기에.
그럼에도 저잣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상태였다.
초아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보며 답했다.
"아아. 곧 중추절이잖아."
중추절(仲秋節).
음력 8월 15일, 보름달이 뜨는 기간의 명절이다. 이 기간에 사람들은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아마 그걸 위해 준비하느라 그런 걸 거야."
"맞네요. 그러고 보니 곧 추수 기간이군요. 그나저나 이쪽 일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요. 그렇지 않으면 올해 농사는 추밀님 혼자 다 하시겠어요."
말하다 보니 풍미관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는지 청청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화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연화가 초아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한쪽을 가리켰다.
"아줌마. 나 저거 사주면 안 돼?"
"야. 우리 지금 막중한 임무를 위해 들어온 거거든? 조금은 진지하게 하자. 응?"
"배가 차면 진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를 만지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연화를 보고는 초아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연화와 하도 다녀봐서, 앞으로 어찌 나올지 전개가 훤히 예상된 탓이다.
'노상에서 먹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그렇다고 먹을 걸 사주지 않으면 어떤 사달이 날지 알 수 없다.
결국 초아는 애들을 이끌고 마교 지부로 향했다. 일단 제대로 먹이고 움직이자는 생각에서였다.
"방중! 우리 왔다아아!"
벌컥. 열어젖히며 외치는 소리에, 연화 또한 따라 한다.
"선배! 밥 줘어어!"
그러나 조용한 가게.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일단 자리에 앉았다. 명절 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무진과 청청 또한 자리에 앉고, 조금 있자 점소이가 나와 주문을 받았다.
"혹시 가게 주인 어디 갔어?"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서 나가셨습니다."
"중요한 일?"
이 시국에 중요한 일이라면 단 하나.
"언제 돌아온대?"
"곧 오실 겁니다요. 음식은 평소와 같이 대령해 드릴까요?"
점소이에게 이들은 큰 고객이다. 매번 올 때마다 모든 메뉴를 전부 하나씩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
"대신 만두는 3인분!"
"야!"
빽 소리치나 연화가 주문을 그렇게 마무리 짓고. 초아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무진을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조용한 애였는데, 얼마 전부터 무진은 평소보다 더 고요했다.
"근데 넌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뭔 문제 있어?"
"아뇨. 아닙니다, 누님."
"야. 거짓말하지 마. 너 거짓말에 소질 없는 거 너 자신만 모른다?"
"하핫. 진짜입니다."
초아가 눈을 반만 떴다.
딱 봐도 대답을 안 할 기세라 그녀는 청청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네가 말해봐. 얘 요새 왜 이래?"
그러나 무진 옆에 앉아 있는 청청 또한 연유를 몰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여인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무진을 동시에 노려보기 시작했다.
"얼른 말해라. 우리 화내기 전에."
"말 안 하면 아주버님에게 이를 거야."
"오. 청청 센데? 우리와 처음 만날 때 그 꼬맹이가 맞나 모르겠어?"
청청이 작게 웃는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한 방이 꽤 센 모양이었는지, 무진이 볼을 긁적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데?"
초아의 재촉에 무진이 주저주저하다 대답했다.
"그냥…… 요새 들어 형님과 자꾸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입니다."
"천강이랑?"
"예. 암운곡에 함께 있을 땐 그런 걸 좀 덜 느꼈는데, 나가신 이후로 그런 게 점점 심해진다고 할까요."
쥐 굴에서 처음 만났을 땐 불쌍한 동기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66번에게 찍혀 괴롭힘당하는…… 모두가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죽지 않을까 예상된.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66번을 때려눕히더니 끊임없이 성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암운곡 모두를 넘어서고, 마교를 넘어, 중원을 통틀어 가장. 또한 이제는 무림을 구하겠다며 제일 앞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기간 동안 나는 뭘 했나 라는 생각이 무진의 마음에 피어올랐다.
그것은 자괴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천강과 함께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한 데서 오는 아쉬움이기도 했다.
무진은 다시 천강과 함께하고 싶었다. 이전처럼 그 옆에서 함께 수련도 하고, 일도 같이 해결하고.
"그건 제 욕심일까요?"
그럴 리가. 다들 그 감정을 숨기고 있었을 뿐, 여기 모인 모두가 무진과 같은 마음이리라.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돌연 가게 문이 벌컥 열리며 그 분위기가 확 환기되었다. 지하로 내려가려다 무진 일행을 본 방중이 후다닥 뛰어 그들에게로 나아왔다.
"초아 선배?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아. 교주님께서 사천성 내에 분위기도 파악하고 연락도 원활히 주고받을 겸 우릴 투입했어."
"후우. 잘 됐군요. 당장 누굴 보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그럼 지금 당장 교주님께 이걸 전해주십시오."
"이게 뭔데?"
건네주는 서신을 받으며 묻는 질문에 방중이 간단히 대답했다.
"산서로부터 온 증원 요청입니다. 중간에 사신들과 마주치는 바람에 인력에 차질이 생겼답니다."
초아가 서신을 후다닥 펼쳐보았다. 작전 수행을 위해 간 병력 110명 중 28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쓰여 있었다.
"산서에 주둔 중인 마교 인력을 총동원하고 각 경로에 사람 수를 줄였는데도 아직 한 구역이 남습니다. 그곳을 보충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사흘입니다."
해당 구역이 사천에서 제일 가까운 호북 경계지역이긴 하나, 바짝 속도를 붙여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또한 반대로 청해와 사천의 경계에 주둔 중인 무림맹까지 소식을 전하러 가는 데에만도 족히 한나절은 걸리는 거리.
"오고 가는 그 시간을 메울 자는 음존과 미오왕뿐이 없는데, 현재 그들은 두 세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그렇다고 천마가 움직일 순 없는 법.
아비인 암운사신을 통해 연합의 돌아가는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는 초아의 얼굴에 고뇌가 올라왔다.
정말 달려도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거리였던 것. 그때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나오고, 그걸 본 연화가 식기를 들며 크게 외쳤다.
"그럼 이거 먹고 우리가 가면 되지!"
"응?"
모두의 시선이 연화에게로 향한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고 일각(一刻) 후.
"안 돼애애애! 내 만두우우우!"
연화의 서러운 비명이 저잣거리 위로 울려 퍼지고, 방중이 미리 구해놓은 말을 타고 무진 일행이 동쪽으로 내달렸다.